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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초기 관습도감의 재고찰 -주요 기능 및 재직 인물을 중심으로- = Reconsideration on Gwanseupdogam in the Early Years of Joseon -Focusing on Major Functions and Figures in the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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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관습도감은 관현맹인과 여기가 소속되어 내연의 주악을 맡은 기관 정도로 알려져 있었으나, 조선 초기 관습도감은 개국 후 제례작악(制禮作樂) 과정에서 나라의 음악을 마련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기관이었다. 그 중요한 역할이란 새로 지어진 악장을 바탕으로 새 음악을 만드는 일, 세종 신악의 습악과 사용을 관장하는 일, 민간음악을 관리하고 전습하는 일, 그리고 향․당악을 연주하는 여러 악인들을 관리하는 일을 포괄한다.
      관습도감의 관직을 맡은 이들 중에는 조선 초기 주요 인물인 정도전, 맹사성, 박연, 세조가 있었는데, 이들은 음악 창작 및 관리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박연의 경우 1431~1432년에 관습도감사를 맡았는데, 이때는 아악이 아닌 향․당악과 정재에 대한 일들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관습도감이 향․당악을 관장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향․당악의 연주를 맡은 전악서가 악공들의 체아직으로 구성된 반면 관습도감은 당상관을 포함한 유품의 관리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관습도감은 향․당악과 관련된 일들을 총괄하는 기관이었으며 전악서의 상급기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관습도감은 도감이라는 기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임시기관으로 설립된 것으로 보이나 조선 초기 관습도감은 다른 기관에 비해 많은 인원이 재직하였고 구임관(久任官)을 두어 업무가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지닐 수 있게 하였다. 관습도감은 5대 왕의 재임기관을 거치는 동안 비교적 오랜 시간 운영되면서 조선 초기 향․당악과 관련된 여러 일들을 주도하고 맡았으며, 그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세조대에 장악원으로 통합되었는데 특히, 장악원의 직제 중 경관직의 관원들이 관습도감의 일들을 이어나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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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습도감은 관현맹인과 여기가 소속되어 내연의 주악을 맡은 기관 정도로 알려져 있었으나, 조선 초기 관습도감은 개국 후 제례작악(制禮作樂) 과정에서 나라의 음악을 마련하는 데에 중요...

      관습도감은 관현맹인과 여기가 소속되어 내연의 주악을 맡은 기관 정도로 알려져 있었으나, 조선 초기 관습도감은 개국 후 제례작악(制禮作樂) 과정에서 나라의 음악을 마련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기관이었다. 그 중요한 역할이란 새로 지어진 악장을 바탕으로 새 음악을 만드는 일, 세종 신악의 습악과 사용을 관장하는 일, 민간음악을 관리하고 전습하는 일, 그리고 향․당악을 연주하는 여러 악인들을 관리하는 일을 포괄한다.
      관습도감의 관직을 맡은 이들 중에는 조선 초기 주요 인물인 정도전, 맹사성, 박연, 세조가 있었는데, 이들은 음악 창작 및 관리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박연의 경우 1431~1432년에 관습도감사를 맡았는데, 이때는 아악이 아닌 향․당악과 정재에 대한 일들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관습도감이 향․당악을 관장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향․당악의 연주를 맡은 전악서가 악공들의 체아직으로 구성된 반면 관습도감은 당상관을 포함한 유품의 관리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관습도감은 향․당악과 관련된 일들을 총괄하는 기관이었으며 전악서의 상급기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관습도감은 도감이라는 기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임시기관으로 설립된 것으로 보이나 조선 초기 관습도감은 다른 기관에 비해 많은 인원이 재직하였고 구임관(久任官)을 두어 업무가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지닐 수 있게 하였다. 관습도감은 5대 왕의 재임기관을 거치는 동안 비교적 오랜 시간 운영되면서 조선 초기 향․당악과 관련된 여러 일들을 주도하고 맡았으며, 그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세조대에 장악원으로 통합되었는데 특히, 장악원의 직제 중 경관직의 관원들이 관습도감의 일들을 이어나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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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While Gwanseupdogam(慣習都監) was known as the institute where male blind wind and string instrument players and female entertainers mostly in charge of musical performances at Naeyeon(內宴) belonged, it was in fact the institute that played a crucial role in preparing music during the process of establishing rites and creating their music after establishment of Joseon. The crucial role it played included creating new music based on newly written lyrics, supervising musical training and use of the Great King Sejong's Sinak(新樂), collecting and inheriting civilian music, and managing various musicians who played Hyang-ak and Dang-ak.
      Among figures who held positions in Gwanseupdogam were some of the major figures in the early years of Joseon such as Jeong Do-jeon, Maeng Sa-seong, Park Yeon, and King Sejo, who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creating and managing music. As for Park Yeon, he held the post of Gwanseupdogamsa from 1431 to 1432. During the period, tasks on Hyang-ak and Dang-ak not A-ak, the court music, and dancing were managed, which indicates that Gwanseupdogam supervised Hyang-ak and Dang-ak. Jeonakseo(典樂署) in charge of playing Hyang-ak and Dang-ak consisted of court musicians who were Cheajik (sinecures with rotated shifts), whereas Gwanseupdogam consisted of graded officials including Dangsanggwan. Therefore, it is suggested that Gwanseupdogam was an organization of higher level than Jeonakseo that directed tasks on Hyang-ak and Dang-ak.
      Gwanseupdogam, as implied by the “dogam” part of the name, is seen to have been established as a temporary organization originally, but in the early years of Joseon, a considerable number of personnel held positions in Gwanseupdogam compared to other organizations, and tasks were constantly done with expertise as a fixed number of experts were appointed to work for a long term. Gwanseupdogam was operated for a relatively lengthy period over incumbencies of five kings, leading and taking on various tasks on Hyang-ak and Dang-ak in the early years of Joseon, then was integrated into Jangagwon during the incumbency of King Sejo when such tasks were nearly completed, after which it is thought that officials in the central office of Jangagwon continued the tasks of Gwanseupdo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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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le Gwanseupdogam(慣習都監) was known as the institute where male blind wind and string instrument players and female entertainers mostly in charge of musical performances at Naeyeon(內宴) belonged, it was in fact the institute that played a c...

      While Gwanseupdogam(慣習都監) was known as the institute where male blind wind and string instrument players and female entertainers mostly in charge of musical performances at Naeyeon(內宴) belonged, it was in fact the institute that played a crucial role in preparing music during the process of establishing rites and creating their music after establishment of Joseon. The crucial role it played included creating new music based on newly written lyrics, supervising musical training and use of the Great King Sejong's Sinak(新樂), collecting and inheriting civilian music, and managing various musicians who played Hyang-ak and Dang-ak.
      Among figures who held positions in Gwanseupdogam were some of the major figures in the early years of Joseon such as Jeong Do-jeon, Maeng Sa-seong, Park Yeon, and King Sejo, who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creating and managing music. As for Park Yeon, he held the post of Gwanseupdogamsa from 1431 to 1432. During the period, tasks on Hyang-ak and Dang-ak not A-ak, the court music, and dancing were managed, which indicates that Gwanseupdogam supervised Hyang-ak and Dang-ak. Jeonakseo(典樂署) in charge of playing Hyang-ak and Dang-ak consisted of court musicians who were Cheajik (sinecures with rotated shifts), whereas Gwanseupdogam consisted of graded officials including Dangsanggwan. Therefore, it is suggested that Gwanseupdogam was an organization of higher level than Jeonakseo that directed tasks on Hyang-ak and Dang-ak.
      Gwanseupdogam, as implied by the “dogam” part of the name, is seen to have been established as a temporary organization originally, but in the early years of Joseon, a considerable number of personnel held positions in Gwanseupdogam compared to other organizations, and tasks were constantly done with expertise as a fixed number of experts were appointed to work for a long term. Gwanseupdogam was operated for a relatively lengthy period over incumbencies of five kings, leading and taking on various tasks on Hyang-ak and Dang-ak in the early years of Joseon, then was integrated into Jangagwon during the incumbency of King Sejo when such tasks were nearly completed, after which it is thought that officials in the central office of Jangagwon continued the tasks of Gwanseupdo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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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성천, "한국전통음악형성론" 민속원 2004

      2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96

      3 송방송, "증보한국음악통사" 민속원 2007

      4 나영훈, "조선전기 都監의 조직과 기능" 조선시대사학회 (70) : 41-98, 2014

      5 나영훈, "조선전기 都監의 운영과 官制정비" 한국사연구회 (162) : 331-389, 2013

      6 "조선왕조실록"

      7 이정희, "조선시대 장악원 전악의 역할" 한국국악학회 40 : 281-304, 2006

      8 김종수, "조선시대 무동과 악공의 재조명" 국립국악원 (39) : 145-175, 2019

      9 김종수, "조선시대 궁중연향의 본질과 여악제도의 변천" 민속원 2018

      10 김종수, "조선시대 관현맹인의 존재 양상" 국립국악원 (42) : 167-190, 2020

      1 이성천, "한국전통음악형성론" 민속원 2004

      2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96

      3 송방송, "증보한국음악통사" 민속원 2007

      4 나영훈, "조선전기 都監의 조직과 기능" 조선시대사학회 (70) : 41-98, 2014

      5 나영훈, "조선전기 都監의 운영과 官制정비" 한국사연구회 (162) : 331-389, 2013

      6 "조선왕조실록"

      7 이정희, "조선시대 장악원 전악의 역할" 한국국악학회 40 : 281-304, 2006

      8 김종수, "조선시대 무동과 악공의 재조명" 국립국악원 (39) : 145-175, 2019

      9 김종수, "조선시대 궁중연향의 본질과 여악제도의 변천" 민속원 2018

      10 김종수, "조선시대 관현맹인의 존재 양상" 국립국악원 (42) : 167-190, 2020

      11 김종수, "조선시대 가동⋅무동의 개념 정립과 활동 — 행행(行幸)⋅강무(講武)⋅사악(賜樂)을 중심으로 —" 온지학회 (56) : 323-360, 2018

      12 나영훈, "조선시대 都監의 성립과 변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16

      13 임영선, "조선 초기 회례 용악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20

      14 송지원, "조선 초기 국왕의 음악정책 - 태조 · 태종 · 세조를 중심으로 -" 한국음악사학회 (57) : 317-345, 2016

      15 김종수, "조선 초기 樂章 演行 양상 - 受寶ㆍ夢金尺ㆍ覲天庭ㆍ受明命 -" 온지학회 (18) : 75-103, 2008

      16 김대식, "조선 초 십학(十學) 제도의 설치와 변천" 교육연구소 12 (12): 1-26, 2011

      17 이숙희, "장악기관 청사 연구 -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서울학연구소 (61) : 73-112, 2015

      18 "용재총화"

      19 한영우, "왕조의 설계사 정도전" 지식산업사 1999

      20 "신증동국여지승람"

      21 송방송, "세종조(世宗朝)의 아악서(雅樂署)와 전악서(典樂署)" 세종대왕기념사업회 3 : 1988

      22 장사훈, "국악논고" 서울대학교 출판사 1993

      23 임영선, "고려시대 교방(敎坊)에 대한 재고찰" 국립국악원 (39) : 389-412, 2019

      24 "고려사"

      25 "경국대전"

      26 이혜구, "韓國音樂論叢" 秀文堂 1976

      27 송혜진, "韓國 雅樂史 硏究" 민속원 2000

      28 권오성, "譯註 蘭溪先生遺藁" 국립국악원 1993

      29 송방송, "樂掌謄錄硏究"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1980

      30 金松姬, "朝鮮初期의 「提調」制에 관한 硏究" 12 : 1987

      31 유승원, "朝鮮初期의 雜職-掌樂院의 雜職" 진단학회 51 : 1981

      32 박소동, "懸吐完譯 詩經集傳 上" 전통문화연구회 2018

      33 김종수, "孟思誠의 音樂에 關聯된 記錄의 管見" 국립국악원 11 : 1999

      34 송방송, "世祖朝 音樂業績의 歷史的 照明" 12 :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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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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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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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4 0.44 0.3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8 0.36 0.89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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