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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詩湖 朴元東의 강릉 지역 유교문화 유산의 정리 활동과 그 의미 = A Study on Park Won-dong's efforts to organize the Confucian cultural heritage of Gangneung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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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is paper, I studied Park Won-dong's efforts to organize and rebuild the Confucian cultural heritage of Gangneung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In particular, I focused on his exploring the background and process of his compilation of Gangneunghyanghyeonrok, Obongseowonsilgi, and Gangneunghyanggyosilgi.
      In the process of compiling Gangneunghyanghyeonrok, Park Won-dong coordinated conflicts between families and corrected the order of 12 Hyang-hyeon's plaque through thorough examination. The compilation of this book is meaningful in that it reaffirmed Gangneung's status as a town of study abroad.
      Obongseowonsilgi is a compilation of the history from the establishment of Obongseowon to the era of Park Won-dong. When the portrait of Uiam was enshrined in Obongseowon in the year of the Sunjo, the local Confucianism was divided into Noron and Soron, and conflicts continued until the time of Park Won-dong. Park Won-dong faithfully included historical records related to the deflection of the Uam portrait in this book, revealing the truth of the incident and urging the unity of the local Confucianism.
      Gangneunghyanggyosilgi was compiled by Park Won-dong in 1932 with Kim Byeong-hwan, and published by the Gangneung Historic Preservation Society in 1933. The publication's Editor also contains the name of Makoto Takizawa, the governor of Gangneung and founder of the Gangneung Historic Preservation Society. This is because this book was published in cooperation with local Confucianism under the leadership of the county governor. This book includes contents related to the Japanese colonial policy, reflecting the Japanese political intentions of using Confucianism to justify colonial rule. Even in this situation, Park Won-dong compiled this book because he had a strong will to inherit and rebuild Gangneung's Confucian culture.
      Park Won-dong's activities to clean up and rebuild Gangneung's Confucian cultural heritage in an era of declining study abroad provided many implications for inheriting Confucian culture in today's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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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is paper, I studied Park Won-dong's efforts to organize and rebuild the Confucian cultural heritage of Gangneung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In particular, I focused on his exploring the background and process of his compilation of Gangneunghya...

      In this paper, I studied Park Won-dong's efforts to organize and rebuild the Confucian cultural heritage of Gangneung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In particular, I focused on his exploring the background and process of his compilation of Gangneunghyanghyeonrok, Obongseowonsilgi, and Gangneunghyanggyosilgi.
      In the process of compiling Gangneunghyanghyeonrok, Park Won-dong coordinated conflicts between families and corrected the order of 12 Hyang-hyeon's plaque through thorough examination. The compilation of this book is meaningful in that it reaffirmed Gangneung's status as a town of study abroad.
      Obongseowonsilgi is a compilation of the history from the establishment of Obongseowon to the era of Park Won-dong. When the portrait of Uiam was enshrined in Obongseowon in the year of the Sunjo, the local Confucianism was divided into Noron and Soron, and conflicts continued until the time of Park Won-dong. Park Won-dong faithfully included historical records related to the deflection of the Uam portrait in this book, revealing the truth of the incident and urging the unity of the local Confucianism.
      Gangneunghyanggyosilgi was compiled by Park Won-dong in 1932 with Kim Byeong-hwan, and published by the Gangneung Historic Preservation Society in 1933. The publication's Editor also contains the name of Makoto Takizawa, the governor of Gangneung and founder of the Gangneung Historic Preservation Society. This is because this book was published in cooperation with local Confucianism under the leadership of the county governor. This book includes contents related to the Japanese colonial policy, reflecting the Japanese political intentions of using Confucianism to justify colonial rule. Even in this situation, Park Won-dong compiled this book because he had a strong will to inherit and rebuild Gangneung's Confucian culture.
      Park Won-dong's activities to clean up and rebuild Gangneung's Confucian cultural heritage in an era of declining study abroad provided many implications for inheriting Confucian culture in today's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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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일제강점기 강릉의 유학자 詩湖 朴元東(1873~1949)이 강릉의 유교문화 유산을 정리한 활동을 고찰한 것이다. 박원동은 강릉향교의 直員을 비롯하여 강릉의 4대 院宇인 鄕賢祠․五峯書院․松潭書院․晦庵影堂의 有司나 管理人을 역임하였다. 본고에서는 『江陵鄕賢行錄』․『五峯書院實記』․『江陵鄕校實記』 등의 편찬 배경과 과정을 집중적으로 탐색하여 박원동이 지닌 지역학 연구자의 위상을 부각하고자 하였다.
      『강릉향현행록』은 향현사에 배향된 12향현의 행록을 모으고 향현사의 연혁을 덧붙인 것으로, 1931년 석판본 1책으로 간행되었다. 『강릉향현행록』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문중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철저한 고증을 통해 12향현의 位次를 바로잡았다. 『강릉향현행록』의 편찬은 12가문을 기리는 것인 동시에 강릉이 지닌 儒鄕으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활동이었다. 한편 총독부의 출판허가 과정에서 「범례」를 비롯한 일부 내용의 수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봉서원실기』는 오봉서원이 설립된 1552년(명종 7)부터 祭田을 확충한 1930년까지의 연혁을 정리한 것인데, 1933년에 편찬을 완료하였다. 순조 연간 우암 영정을 오봉서원에 배향할 때에 지역의 유림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었는데, 박원동 당대까지도 갈등이 여전하였다. 박원동은 『오봉서원실기』에 우암 영정의 배향과 관련된 역사 기록을 충실하게 수록하여 당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한편 유림 사회의 단합을 촉구하였다.
      『강릉향교실기』는 1932년 박원동이 金秉煥(1871~1947)과 함께 편찬한 것으로, 이듬해 강릉고적보존회에서 연활자 1책으로 간행하였다. 간행본의 ‘編輯人’에는 강릉 군수이자 강릉고적보존회의 설립자인 ‘다키자와 마코토[瀧澤誠]’의 이름도 들어 있는데, 이 책이 군수의 주도 하에 지역의 유림이 협력하여 간행한 官撰이었기 때문이다. 『강릉향교실기』에는 일제의 향교 정책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특히 「東洋尊聖錄」은 ‘동양’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유교를 식민 통치의 정당화에 이용하였던 일제의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박원동이 『강릉향교실기』를 편찬한 것은 강릉의 유교문화를 계승하고 재건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유학이 침강하는 시대에 강릉의 유교문화 유산을 정리하고 재건하였던 박원동의 활동은 오늘날 지역사회에서 유교문화를 계승하는 데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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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일제강점기 강릉의 유학자 詩湖 朴元東(1873~1949)이 강릉의 유교문화 유산을 정리한 활동을 고찰한 것이다. 박원동은 강릉향교의 直員을 비롯하여 강릉의 4대 院宇인 鄕賢祠․五峯書...

      본고는 일제강점기 강릉의 유학자 詩湖 朴元東(1873~1949)이 강릉의 유교문화 유산을 정리한 활동을 고찰한 것이다. 박원동은 강릉향교의 直員을 비롯하여 강릉의 4대 院宇인 鄕賢祠․五峯書院․松潭書院․晦庵影堂의 有司나 管理人을 역임하였다. 본고에서는 『江陵鄕賢行錄』․『五峯書院實記』․『江陵鄕校實記』 등의 편찬 배경과 과정을 집중적으로 탐색하여 박원동이 지닌 지역학 연구자의 위상을 부각하고자 하였다.
      『강릉향현행록』은 향현사에 배향된 12향현의 행록을 모으고 향현사의 연혁을 덧붙인 것으로, 1931년 석판본 1책으로 간행되었다. 『강릉향현행록』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문중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철저한 고증을 통해 12향현의 位次를 바로잡았다. 『강릉향현행록』의 편찬은 12가문을 기리는 것인 동시에 강릉이 지닌 儒鄕으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활동이었다. 한편 총독부의 출판허가 과정에서 「범례」를 비롯한 일부 내용의 수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봉서원실기』는 오봉서원이 설립된 1552년(명종 7)부터 祭田을 확충한 1930년까지의 연혁을 정리한 것인데, 1933년에 편찬을 완료하였다. 순조 연간 우암 영정을 오봉서원에 배향할 때에 지역의 유림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었는데, 박원동 당대까지도 갈등이 여전하였다. 박원동은 『오봉서원실기』에 우암 영정의 배향과 관련된 역사 기록을 충실하게 수록하여 당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한편 유림 사회의 단합을 촉구하였다.
      『강릉향교실기』는 1932년 박원동이 金秉煥(1871~1947)과 함께 편찬한 것으로, 이듬해 강릉고적보존회에서 연활자 1책으로 간행하였다. 간행본의 ‘編輯人’에는 강릉 군수이자 강릉고적보존회의 설립자인 ‘다키자와 마코토[瀧澤誠]’의 이름도 들어 있는데, 이 책이 군수의 주도 하에 지역의 유림이 협력하여 간행한 官撰이었기 때문이다. 『강릉향교실기』에는 일제의 향교 정책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특히 「東洋尊聖錄」은 ‘동양’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유교를 식민 통치의 정당화에 이용하였던 일제의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박원동이 『강릉향교실기』를 편찬한 것은 강릉의 유교문화를 계승하고 재건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유학이 침강하는 시대에 강릉의 유교문화 유산을 정리하고 재건하였던 박원동의 활동은 오늘날 지역사회에서 유교문화를 계승하는 데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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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향교석전: 강릉향교․인천향교"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2 안세현, "한말~일제강점기 강릉향교의 변화와 지역사회에서의 역할 -花山學校의 설립을 중심으로-" 한국한문고전학회 38 (38): 355-392, 2019

      3 안세현, "한말~일제강점기 강릉지역 유림의 활동 양상과 그 의미 - 지역사회에서 유교문화의 현대적 계승과 과제 -"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29 : 109-140, 2019

      4 강대민, "한국의 향교 연구" 경성대 출판부 1992

      5 임호민, "지역사 자원의 교육자료 활용방안 탐색" 서경문화사 2009

      6 "증보 강릉향교지" 강릉향교 2009

      7 임호민, "조선시대 향촌조직 결성의 양상과 추이 고찰 -강릉지방의 사레를 중심으로-" 강원사학회 (27) : 93-121, 2015

      8 임호민, "조선시대 사회의 모습" 집문당 2003

      9 장정룡, "일제강점기 강릉고적보존회 역할과 고전출판" 강원발전연구원 2006

      10 한길로, "일제 말 지방 유림의 동향과 친일시의 국면 - 강릉 유림을 중심으로 -" 인문학연구원 (60) : 304-338, 2016

      1 "향교석전: 강릉향교․인천향교"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2 안세현, "한말~일제강점기 강릉향교의 변화와 지역사회에서의 역할 -花山學校의 설립을 중심으로-" 한국한문고전학회 38 (38): 355-392, 2019

      3 안세현, "한말~일제강점기 강릉지역 유림의 활동 양상과 그 의미 - 지역사회에서 유교문화의 현대적 계승과 과제 -"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29 : 109-140, 2019

      4 강대민, "한국의 향교 연구" 경성대 출판부 1992

      5 임호민, "지역사 자원의 교육자료 활용방안 탐색" 서경문화사 2009

      6 "증보 강릉향교지" 강릉향교 2009

      7 임호민, "조선시대 향촌조직 결성의 양상과 추이 고찰 -강릉지방의 사레를 중심으로-" 강원사학회 (27) : 93-121, 2015

      8 임호민, "조선시대 사회의 모습" 집문당 2003

      9 장정룡, "일제강점기 강릉고적보존회 역할과 고전출판" 강원발전연구원 2006

      10 한길로, "일제 말 지방 유림의 동향과 친일시의 국면 - 강릉 유림을 중심으로 -" 인문학연구원 (60) : 304-338, 2016

      11 이충형, "오봉서원에 관한 연구" 관동대학교 영동문화연구소 5 : 1994

      12 방동인, "영동지방향토사연구자료총서 2(書院․學校Ⅰ)" 관동대영동문화연구소 1994

      13 안세현, "시호 박원동의 생애와 활동 연구: 일제강점기 강릉 유교문화의 정리와 계승" 강원연구원 강원학연구센터 2020

      14 차장섭, "선교장과 관동 사대부가의 삶"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9

      15 권오영, "근대이행기의 유림" 돌베개 2012

      16 "강릉향교칠백년사지" 강릉향교 2013

      17 박도식, "강릉의 12향현" 채륜 2018

      18 금창헌, "강릉 화산학교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연구" 관동대 영동문화연구소 8 : 2001

      19 김풍기, "강릉 지역 詩社 주춘사의 한시집 <住春詩話> 에 대하여" 강원대 강원문화연구소 34 : 2015

      20 차장섭, "강릉 선교장의 형성과 발전" 한국학중앙연구원 (39) : 6-33, 2018

      21 박민영, "閔龍鎬의 江陵義兵 抗戰에 대한 연구" 한국민족운동사학회 5 : 1991

      22 朴元東, "詩湖文集" 강원출판사 1993

      23 朴元東, "詩湖居士日記(필사본 5책)"

      24 "江陵金氏大同譜"

      25 朴元東, "江陵鄕賢行錄: 幷江陵鄕賢祠沿革" 江陵鄕賢祠 1931

      26 朴元東, "江陵鄕校實記"

      27 "江陵朴氏世譜"

      28 이청희, "復齋 閔龍鎬의 義兵活動" 관동대 영동문화연구소 6 : 1985

      29 崔東吉, "五峰書院古蹟" 三山書齋 1931

      30 朴元東, "五峯書院實記(필사본 1책)"

      31 임호민, "18세기 강릉지방 사족․관․문중간의 갈등양상" 관동대 인문학연구소 9 : 2005

      32 임호민, "18~19C 강릉 鄕儒의 爭端과鄕校의 役割" 한국역사민속학회 (43) : 231-257, 2013

      33 이규대, "17세기 초반 江陵지방 栗谷鄕約의 성격" (사)율곡학회 27 : 71-101, 2013

      34 이규대, "17세기 江陵地方의 士族과 향약 조직" 관동대 영동문화연구소 3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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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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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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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36 0.36 0.3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7 0.36 0.746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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