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임진왜란기 경기 의병의 활동양상과 특징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0001694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이 논문은 임진왜란기 경기 의병에 대한 기초적인 검토로서 경기의병의 특징과 양상을 살펴보았다. 임진왜란초기 경기는 37개 읍 가운데 강화?교동을 제외한 35개 읍이 피해를 입었다. 이는 ...

      이 논문은 임진왜란기 경기 의병에 대한 기초적인 검토로서 경기의병의 특징과 양상을 살펴보았다. 임진왜란초기 경기는 37개 읍 가운데 강화?교동을 제외한 35개 읍이 피해를 입었다. 이는 임진왜란초기 피해가 컸던 영남보다도 나쁜 상황으로 경기가 일본군의 북상로와 퇴각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각종 자료에 나타난 경기 의병장의 이름은 16명 정도에 불과하나, 필자가 주목한 사항은 병마절도사나 수령과 같은 지휘관 휘하에 들어가 활약한 이름없는 의병의 활약이다. 경기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 것은 의병장의 부재와 함께 경기에 근왕과 도성회복을 위해 각지에서 모여든 군 지휘관들이 집결해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경기 의병의 특징은 1593년 1월 평양성 전투 이후 官軍과 연계하면서 활동이 두드러졌다는 점에 있다. 이 점은 더 밝혀져야 할 부분으로, 당시 경기의 관군이나 의병에게 도성회복이 중요한 당면 과제로 떠오르면서 의병과 관군의 연계가 긴밀해졌다고 생각한다. 이 무렵 영남에서 의병장이 관료가 되고 의병이 明軍의 支待를 위한 수송군으로 격하되면서 의병 활동이 쇠퇴하지만 경기에서는 오히려 의병이 관군과 연합하면서 활동이 더 살아나는 양상을 보였다고 판단된다. 이 점이 경기 의병의 특징이자 임진왜란 의병사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is a result of a preliminary examination of the actions of the righteous militia units, which originated in the Gyeong’gi region(京畿) during the war with the Japanese in the 1590s. Primary aspects of the righteous militia movements i...

      This article is a result of a preliminary examination of the actions of the righteous militia units, which originated in the Gyeong’gi region(京畿) during the war with the Japanese in the 1590s. Primary aspects of the righteous militia movements in this particular region, and their own characteristics, are discussed in details. In the early stages of the 1590s’ war, total of 35 counties out of 37 in the Gyeong’gi region, with the exception of Gang’hwa(江華) and Gyo"dong(喬桐), sustained heavy damages by the Japanese troops. The situation was even worse than the Yeongnam region(嶺南), which was the first to fall victim to the invading Japanese troops. Gyeong’gi was located in the path of the Japanese troops which was moving North, and also the path of their retreat, so that might have been the reason for such extensive damages.
      There are only 16 people who are confirmed by records to have been part of the Gyeong’gi region’s righteous militia, yet there were other people who were equally important as well, such as the nameless militia soldiers who fought the Japanese soldiers, under the command of local prefects or military commanders. Militia soldiers serving under governmental officials was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Gyeong’gi righteous militia movement, and it was because there was no militia leader left, and governmental commanders from various regions of the peninsula were already in the region to launch an offensive designed to guard the king and retake the capital. Since the battle of the Pyeong’yang-seong(平壤城) fortress that occurred in January 1593, the Gyeong’gi righteous militias actively coordinated their efforts with governmental troops.
      This aspect deserves further attention and examination, as it seems that retaking the capital became a mutual objective and even a unifying bond for both the Gyeong’gi region’s official troops and righteous militia members. In the Yeongnam region, righteous militia leaders became governmental officials, and the righteous militia soldiers’ role was reduced to delivering supplies to the Chinese Ming troops, so their overall activities eventually diminished. Yet in the Gyeong’gi region, the activities of the righteous militias were literally ‘re-energized’, with their cooperation with the governmental troops.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요약
      • 머리말
      • Ⅰ. 임진왜란초기 경기의 적침 상황
      • Ⅱ. 경기 의병과 의병장의 실태
      • Ⅲ. 경기 의병의 특징
      • 요약
      • 머리말
      • Ⅰ. 임진왜란초기 경기의 적침 상황
      • Ⅱ. 경기 의병과 의병장의 실태
      • Ⅲ. 경기 의병의 특징
      • 맺음말
      • Abstract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趙慶南, "亂中雜錄"

      2 조경남, "亂中雜錄"

      3 李舜臣, "亂中日記 1"

      4 최홍규, "추연 우성전의 학문과 활동, In 탈초·역주 추연선생일기" 2008

      5 류성룡, "진사록 (2)"

      6 이준구, "조선후기직역변동연구" 일조각 166-188, 1993

      7 김성우, "조선중기 국가와 사족" 역사비평사 432-, 2001

      8 계승범, "임진의병의 연구 동향과 군사사적 의의, In 임진의병의 역사적 의의와 현재적 가치" 선인 2009

      9 계승범, "임진의병의 연구 동향과 군사사적 의의, In 임진의병의 역사적 의의와 현재적 가치" 선인 83-, 2009

      10 심승구, "임진왜란의 발발과 동원체제의 개편, In 임진왜란과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189-191, 2005

      1 趙慶南, "亂中雜錄"

      2 조경남, "亂中雜錄"

      3 李舜臣, "亂中日記 1"

      4 최홍규, "추연 우성전의 학문과 활동, In 탈초·역주 추연선생일기" 2008

      5 류성룡, "진사록 (2)"

      6 이준구, "조선후기직역변동연구" 일조각 166-188, 1993

      7 김성우, "조선중기 국가와 사족" 역사비평사 432-, 2001

      8 계승범, "임진의병의 연구 동향과 군사사적 의의, In 임진의병의 역사적 의의와 현재적 가치" 선인 2009

      9 계승범, "임진의병의 연구 동향과 군사사적 의의, In 임진의병의 역사적 의의와 현재적 가치" 선인 83-, 2009

      10 심승구, "임진왜란의 발발과 동원체제의 개편, In 임진왜란과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189-191, 2005

      11 나종우, "임진왜란의 발발, In 경기도사-제5권 조선후기" 경기도사편찬위원회 2004

      12 조원래, "임진왜란사 연구의 추이와 과제, In 조선후기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창작과비평사 2000

      13 이형석, "임진왜란사 (상)" 임진왜란사간행위원회, 서울대학교출판부

      14 서인한, "임진왜란사"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50-51, 1987

      15 강문식, "임진왜란기 영·호남 의병활동의 비교" 남명학연구원 16 : 2011

      16 오종록, "임진왜란~병자호란시기 군사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국방부군사편찬위원회 38 : 1999

      17 조원래, "임진왜란 초 도성 일원의 실정과 전황, In 임진왜란사 연구의 새로운 관점" 아세아문화사 2011

      18 조원래, "임란의병장 김천일연구" 학문사 1982

      19 김강식, "임란시의병전쟁, In 임진왜란과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2005

      20 이수건, "월곡 우배선의 임진왜란 의병활동-그의 倡義遺錄 을 중심으로-" 영남대 영남문화연구소 13 : 98-99, 1992

      21 나종우, "영·호남 의병활동의 비교검토" 경상대 경남문화연구원 14 : 1992

      22 이긍익, "연려실기술 권18, 선조조고사본말 宣祖朝名臣"

      23 이긍익, "연려실기술 권16, 선조조고사본말 홍언수·홍계남"

      24 李魯, "역주 龍蛇日記" 한일문화연구소 255-256, 1960

      25 박병련, "역주 고대일록 (상), (하)" 태학사 2009

      26 "신속동국여지승람 권10"

      27 "선조실록 권82"

      28 "선조실록 권7"

      29 "선조실록 권61"

      30 "선조실록 권60"

      31 "선조실록 권47"

      32 "선조실록 권46"

      33 "선조실록 권42"

      34 "선조실록 권39"

      35 "선조실록 권37"

      36 "선조실록 권36"

      37 "선조실록 권35"

      38 "선조실록 권34"

      39 "선조실록 권33"

      40 "선조실록 권32"

      41 "선조실록 권30"

      42 "선조실록 권29"

      43 "선조실록 권28"

      44 "선조실록 권28"

      45 "선조실록 권27"

      46 "선조실록 권26"

      47 "선조수정실록 권26"

      48 류성룡, "서애선생문집 권6, 雜著<記壬辰以後請兵事>"

      49 "류성룡, 서애선생문집 권6, 書狀<論軍糧民食狀三月>"

      50 조경남, "난중잡록 2"

      51 조경남, "난중잡록"

      52 정동일, "고양지역에서의 여타 전투와 의병활동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전국문화원련합회 경기도지회 3 : 1998

      53 정경운, "고대일록"

      54 정경운, "고대일록"

      55 "경국대전 권1"

      56 金垓, "鄕兵日記"

      57 "趙靖, 壬辰倭亂日記 1592년 8월 2일"

      58 北島万次, "豊臣政權の朝鮮侵略に關する學說史的檢討, In 豊臣政權の對外認識と朝鮮侵略" 校倉書房 1990

      59 李睟光, "芝峯類說 권3, 君道部賞功"

      60 朴羲成, "紀年便攷 권18"

      61 朴羲成, "紀年便攷 卷18"

      62 朴羲成, "紀年便攷 卷16"

      63 成渾, "牛溪集 권3, 章疏2 行朝上便宜時務<壬辰十二月>"

      64 李肯翊, "燃藜室記述 卷17, 선조조고사본말 경기의병"

      65 "東國新續三綱行實圖 (忠臣) 卷1, 本國觀察使沈岱"

      66 李源益, "東史略 , 紀年東史約권18, 本朝紀壬辰年六月"

      67 李廷龜, "月沙先生別集 권1, 雜著<壬辰避兵錄>"

      68 조준호, "宣祖 16年 癸未三竄과 禹性傳의 정치활동 - 『秋淵先生日記』를 중심으로 -" 한국학연구소 34 : 675-697, 2010

      69 金正浩, "大東地志 京畿高楊"

      70 김정호, "大東地志"

      71 兪大進, "國朝人物考"

      72 李愼義, "國朝人物考"

      73 吳克成, "問月堂集 卷2, 雜著<壬辰日記(上)>"

      74 申炅, "再造藩邦志 卷2"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1 1.11 1.0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3 1.05 2.153 0.42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