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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甲午改革期監理署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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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는 갑오개혁기 監理署의 정체성을 내정개혁과 23부제 지방제도개혁 및 관제개혁과의 관계성 그리고 개항장 개설지역의 특성을 통하여 규명하고자 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23부제시행은 조선의 복잡하고 형식적인 지방관제도를 개혁하고 지방관리의 극심한 부패를 막아 조선의 근대화를 꾀하고자 강력한 중앙집권제의 구축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500년간의 8도 지방제도의 역사성과 지역적 제도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고, 내정개혁에 대한 오오토리공사와 이노우에특임공사의 정략적 접근, 개화파의 친일성과 조급한 개혁, 그리고 개혁에 대한 조선내부의 위와 아래로부터의 저항, 그리고 개혁에 필요한 재정조달능력의 부재등의 이유들로 인해, 23부제는 시행된지 불과 1년 2개월이 지난 1896년 8월 4일 폐지되고 말았다.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던 조선정부는, 내치안정과 내정개혁에 필요한 재정조달을 외채에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조선정부와 이노우에 특임공사와의 사이에서 이루어진 차관도입은 조선의 내정개혁과 해관권 그리고 금융권을 볼모로 하는 것이었다
      23부제 지방제도개혁과 더불어 논란의 한 축이 되었던 감리서는, 내정개혁 전반에서와 같이, 감리서의 운영과 감리 겸무와 폐지 그리고 복설의 과정에서도 예산의 영향을 받았으며, 감리서가 완전히 폐지되는 1906년 4월까지 단 한 차례도 재정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1883년 이후 조성된 개항장과 23부제 실시 이후 개설된 각 개항장 그 가운데서도 서남해도서지역에 조성된 개항장은 조선의 수산업과 농업의 주요 산지이며 관북지역은 대청 대러의 교통요충지였다. 때문에 23부 각 부와 당해 지역에서의 개항장은 경제적으로는 자본수탈지역이었으며 군사적으로는 대청 대러에 대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활용되었다.
      감리서 개설 이후 감리규칙이 제정되는 등의 과정이 있었지만, 종합적 관점에서는, 감리서의 독립된 관서로서의 규정이나 전문성 그리고 해관전문인력양성 등에 관한 근본적인 방안은 없었고, 감리규정에는 경찰업무를 강화하는 등 개항장과 해관업무에 대한 외연적이며 부수적 사무와 지휘계통에 관한 내용 일색이었다.
      따라서 감리서의 겸무 폐지, 복설되어 가는 과정에서 제 규정들의 내용은 감리가 해관관세업무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어 가고 있음을 방증하는 내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903년 감리를 지방관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추가적 조치는, 성진(길주)개항지에서 개항장과 감리 설치지역을 둘러싸고 지역주민 간의 격렬한 대립으로 인한 감리업무에 공백을 방지하고자 한 조치인데, 이것은 감리업무가 거류지에서 인명보호를 위한 경찰행정업무로 그 내용이 변화되고 아울러 감리의 업무가 거류지의 일반사무로 한정되어 감을 의미하는 것이다.
      감리서의 겸무와 폐지 그리고 복설, 그 후의 감리서 및 감리규칙의 제정과 여러 가지 보완적 조치들을 거치면서 드러난 많은 모순들은 그 발원지가 조일간의 무관세불평등조약에서 시작된 것이며, 감리서는 조선의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교묘히 포장된 내정개혁과 23부제 지방제도개혁과 연계되어, 결과적으로는 개항장을 중심으로 조선에서의 이권장악과 자본수탈을 위한 정략적 도구로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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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갑오개혁기 監理署의 정체성을 내정개혁과 23부제 지방제도개혁 및 관제개혁과의 관계성 그리고 개항장 개설지역의 특성을 통하여 규명하고자 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23부제시...

      본 연구는 갑오개혁기 監理署의 정체성을 내정개혁과 23부제 지방제도개혁 및 관제개혁과의 관계성 그리고 개항장 개설지역의 특성을 통하여 규명하고자 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23부제시행은 조선의 복잡하고 형식적인 지방관제도를 개혁하고 지방관리의 극심한 부패를 막아 조선의 근대화를 꾀하고자 강력한 중앙집권제의 구축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500년간의 8도 지방제도의 역사성과 지역적 제도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고, 내정개혁에 대한 오오토리공사와 이노우에특임공사의 정략적 접근, 개화파의 친일성과 조급한 개혁, 그리고 개혁에 대한 조선내부의 위와 아래로부터의 저항, 그리고 개혁에 필요한 재정조달능력의 부재등의 이유들로 인해, 23부제는 시행된지 불과 1년 2개월이 지난 1896년 8월 4일 폐지되고 말았다.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던 조선정부는, 내치안정과 내정개혁에 필요한 재정조달을 외채에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조선정부와 이노우에 특임공사와의 사이에서 이루어진 차관도입은 조선의 내정개혁과 해관권 그리고 금융권을 볼모로 하는 것이었다
      23부제 지방제도개혁과 더불어 논란의 한 축이 되었던 감리서는, 내정개혁 전반에서와 같이, 감리서의 운영과 감리 겸무와 폐지 그리고 복설의 과정에서도 예산의 영향을 받았으며, 감리서가 완전히 폐지되는 1906년 4월까지 단 한 차례도 재정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1883년 이후 조성된 개항장과 23부제 실시 이후 개설된 각 개항장 그 가운데서도 서남해도서지역에 조성된 개항장은 조선의 수산업과 농업의 주요 산지이며 관북지역은 대청 대러의 교통요충지였다. 때문에 23부 각 부와 당해 지역에서의 개항장은 경제적으로는 자본수탈지역이었으며 군사적으로는 대청 대러에 대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활용되었다.
      감리서 개설 이후 감리규칙이 제정되는 등의 과정이 있었지만, 종합적 관점에서는, 감리서의 독립된 관서로서의 규정이나 전문성 그리고 해관전문인력양성 등에 관한 근본적인 방안은 없었고, 감리규정에는 경찰업무를 강화하는 등 개항장과 해관업무에 대한 외연적이며 부수적 사무와 지휘계통에 관한 내용 일색이었다.
      따라서 감리서의 겸무 폐지, 복설되어 가는 과정에서 제 규정들의 내용은 감리가 해관관세업무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어 가고 있음을 방증하는 내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903년 감리를 지방관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추가적 조치는, 성진(길주)개항지에서 개항장과 감리 설치지역을 둘러싸고 지역주민 간의 격렬한 대립으로 인한 감리업무에 공백을 방지하고자 한 조치인데, 이것은 감리업무가 거류지에서 인명보호를 위한 경찰행정업무로 그 내용이 변화되고 아울러 감리의 업무가 거류지의 일반사무로 한정되어 감을 의미하는 것이다.
      감리서의 겸무와 폐지 그리고 복설, 그 후의 감리서 및 감리규칙의 제정과 여러 가지 보완적 조치들을 거치면서 드러난 많은 모순들은 그 발원지가 조일간의 무관세불평등조약에서 시작된 것이며, 감리서는 조선의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교묘히 포장된 내정개혁과 23부제 지방제도개혁과 연계되어, 결과적으로는 개항장을 중심으로 조선에서의 이권장악과 자본수탈을 위한 정략적 도구로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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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서론
      • 2. 23부제와 개항장 감리서의 특성
      • 3. 개항장과 감리의 특성
      • 4. 결론
      • 【국문초록】
      • 1. 서론
      • 2. 23부제와 개항장 감리서의 특성
      • 3. 개항장과 감리의 특성
      • 4. 결론
      • 참고문헌
      • 【日文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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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태웅, "한국근대 지방재정 연구-지방재정의 개편과 지방행정의 변경-" 아카넷 2012

      2 민회수, "한국 근대 開港場·開市場의 監理署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3

      3 손병규, "조선후기 재정구조와 지방재정운영 ― 재정 중앙집권화와의 관계―" 조선시대사학회 (25) : 117-144, 2003

      4 "조선왕조행정사 근대편" 국사편찬위원회

      5 金玉根, "조선왕조재정사연구 近代編" 一潮閣 1992

      6 김현석, "인천감리서에 대한 기초적 연구" 1 : 2004

      7 박탄, "이헌영의 정보 획득 전략과 근대 일본의 形象化 - 『日槎集略』 중 問答錄을 中心으로 -" 택민국학연구원 (11) : 1-29, 2013

      8 엄지은, "이헌영의 일본 세관 시찰과 일본관 : 『일사집략』을 중심으로"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2009

      9 한석태, "갑오개혁기의 지방통치제도의 변화에 관한 연구" 12 : 1996

      10 이윤상, "갑오개혁기 근대적 조세제도 수립 시도와 지방사회의 대응"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9) : 217-252, 2002

      1 김태웅, "한국근대 지방재정 연구-지방재정의 개편과 지방행정의 변경-" 아카넷 2012

      2 민회수, "한국 근대 開港場·開市場의 監理署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3

      3 손병규, "조선후기 재정구조와 지방재정운영 ― 재정 중앙집권화와의 관계―" 조선시대사학회 (25) : 117-144, 2003

      4 "조선왕조행정사 근대편" 국사편찬위원회

      5 金玉根, "조선왕조재정사연구 近代編" 一潮閣 1992

      6 김현석, "인천감리서에 대한 기초적 연구" 1 : 2004

      7 박탄, "이헌영의 정보 획득 전략과 근대 일본의 形象化 - 『日槎集略』 중 問答錄을 中心으로 -" 택민국학연구원 (11) : 1-29, 2013

      8 엄지은, "이헌영의 일본 세관 시찰과 일본관 : 『일사집략』을 중심으로"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2009

      9 한석태, "갑오개혁기의 지방통치제도의 변화에 관한 연구" 12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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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민회수, "갑오개혁기 개항장 監理署 일시 폐지의 배경" 한국근현대사학회 (75) : 7-40, 2015

      12 李榮昊, "갑오개혁 이후 지방사회의 개편과 城津民擾" 41 : 1993

      13 이현종, "감리서연구" 11 (11): 1968

      14 "韓末近代法令資料集 第1卷"

      15 李聖學, "韓國의 行政區域에 관한 硏究" 22 : 1972

      16 趙璣濬, "韓國資本主義成立史論" 大旺社 1985

      17 李聖學, "韓國行政區域의 名號에 關한 歷史地理學的硏究-京과 府의 경우-" 31 :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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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金敬泰, "開港直後의 關稅權回復問題-釜山海關收稅事件을 中心으로-" 8 : 1972

      20 鄭光燮, "開港場における地方制度-管理署を中心に" 42 (42):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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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吉川昭, "群山開港史" ふるかわ海事事務所 1999

      26 吉野誠, "甲申甲午期의 近代變革과 民族運動"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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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金正起, "淸日戰爭과 韓日關係" 一潮閣 1985

      29 "李朝時代の財政"

      30 夫貞愛, "朝鮮海關의 創設經緯" 1 : 1973

      31 高柄翊, "朝鮮海關과 淸國海關과의 關係" 4 : 1965

      32 高雅明, "朝鮮における殖民地金融史の研究" 大原新生社刊 1978

      33 "日本外交文書 第27卷第2冊"

      34 金義煥, "日本の大陸侵略期における釜山港変化の歴史的考察(上)-1876~1945年を中心に-" 15 : 1978

      35 "大阪朝日新聞"

      36 "大阪朝日新聞"

      37 金鎭鳳, "地方行政區域變遷의 政治社會的背景에 대한 硏究" 1 : 1987

      38 "仁川府使"

      39 李相燦, "1896년 義兵運動의 政治的 性格" 서울大學校 大學院 1996

      40 金順德, "1876~1905년 關稅政策과 關稅의 운용" 15 :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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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5-30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한일관계사학회 -> 한일관계사연구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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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5 1.5 1.3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7 1.09 1.872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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