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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18세기 감영도시 대구와 낙동강 중류지역의 역사공간적 특징 = The Characteristics of Daegu with a Provincial Office and the Midstream Part of the Nakdong River as Historical Spaces in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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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is a study of Daegu in the 18th century. Daegu was the center of Gyeongsang-do during the Joseon Dynasty. It can be seen in two aspects, one is the institutional aspect of the center of administration and the other is the cultural aspect. D...

      This paper is a study of Daegu in the 18th century. Daegu was the center of Gyeongsang-do during the Joseon Dynasty. It can be seen in two aspects, one is the institutional aspect of the center of administration and the other is the cultural aspect. Daegu has been the center of administration where observers reside since the establishment of Gyeongsang-do Gamyeong in 1601. Because of this, people and goods gathered. Daegu was the largest city in Gyeongsang-do in the late Joseon Dynasty. Cities are places where people and goods gather, and an open and inclusive culture is created.
      The other is the cultural aspect. Nakdonggang River is joined by several streams of water in Yeongnam and gathers into one to penetrate the center of Yeongnam. The Nakdonggang River is a symbol of Yeongnam and penetrates the whole, forming a cultural area called Yeongnam Culture. This Yeongnam Culture created a variety of cultures by forming several cultural areas again. Daegu is located in the middle of the Nakdonggang River and is located at the point where the two regions meet between the left and right cultures. Daegu was a place where both academic and cultural characteristics of Yeongnam converged.
      Against this background, this paper confirmed the urban aspects of Daegu in the 18th century in the daily lives of its members. The daily life of Cho Jae-ho (1702-1762), who lived in Daegu as an observer of Gyeongsang-do in the 18th century, brings together various and comprehensive aspects of Daegu, an administrative city. The daily life of Choi Heung-won (1705-1786), the nobleman who lived in Daegu at the same time, showed the life and ideas of the nobleman in the city. In this way, Daegu in the 18th century, seen from the daily lives of the noblemen, was an open city where various cultures were f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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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은 18세기 대구의 역사공간적 특징을 연구한 것이다. 조선후기에 대구는 경상도의 중심이었다. 두 측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행정의 중심이라는 제도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적...

      본 논문은 18세기 대구의 역사공간적 특징을 연구한 것이다. 조선후기에 대구는 경상도의 중심이었다. 두 측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행정의 중심이라는 제도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적인 측면이다. 대구는 1601년 경상도 감영이 자리한 이후 관찰사가 거주하는 행정의 중심이었다. 이 때문에 경상도 전지역에서 사람과 물산이 대구로 모였다. 대구는 사람과 물산이 모이는 곳이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문화가 만들어졌다.
      다른 하나는 문화적 측면이다. 낙동강은 여러 물줄기가 합해서 영남의 중앙을 관통한다. 낙동강은 영남의 상징이며, ‘영남문화’로 일컬어지는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이 ‘영남문화’는 다시 몇몇의 문화권역을 형성하면서 다채로운 문화를 포함하였다. 대구는 낙동강의 중류에 위치하면서 경상도 전역의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조선후기 대구는 영남의 학문적·문화적 특징이 모두 수렴되는 곳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본고는 18세기 대구의 모습을 구성원의 일상에서 확인하였다. 경상도 관찰사로 대구에서 지냈던 조재호(趙載浩, 1702~1762)의 일상은 행정도시 대구의 다양하고 포괄적인 모습을 모여 준다. 같은 시기에 대구에서 거주하였던 사대부 최흥원(崔興遠, 1705~1786)의 일상은 대구 사대부의 생활과 관념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사대부의 일상에서 본 18세기 대구는 개방적이고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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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호구총수"

      2 이훈상, "조선후기 지방 파견 화원들과 그 제도, 그리고 이들의 지방 형상화" 국학연구원 (144) : 305-366, 2008

      3 김무진, "조선후기 경상감영에 관한 연구" 36 : 2015

      4 김백철, "조선시대 상주의 통치구조와 중층적 위상" 한국학연구원 (74) : 109-165, 2019

      5 "정조실록"

      6 김정운, "이익(李瀷)과 영남지역 학자의 교유" 22 : 2020

      7 "영조실록"

      8 이수건, "영남학파의 형성과 전개" 일조각 1995

      9 구본욱, "연경서원의 경영과 유현들" 한국학연구원 (57) : 97-133, 2014

      10 최흥원, "역중일기"

      1 "호구총수"

      2 이훈상, "조선후기 지방 파견 화원들과 그 제도, 그리고 이들의 지방 형상화" 국학연구원 (144) : 305-366, 2008

      3 김무진, "조선후기 경상감영에 관한 연구" 36 : 2015

      4 김백철, "조선시대 상주의 통치구조와 중층적 위상" 한국학연구원 (74) : 109-165, 2019

      5 "정조실록"

      6 김정운, "이익(李瀷)과 영남지역 학자의 교유" 22 : 2020

      7 "영조실록"

      8 이수건, "영남학파의 형성과 전개" 일조각 1995

      9 구본욱, "연경서원의 경영과 유현들" 한국학연구원 (57) : 97-133, 2014

      10 최흥원, "역중일기"

      11 "여지도서"

      12 "신증동국여지승람"

      13 "선조수정실록"

      14 박종천, "모당일기에 나타난 17세기 초 대구 사림의 강학활동과 강회講會" 한국국학진흥원 (44) : 45-89, 2021

      15 손처눌, "모당일기"

      16 윤증, "명재유고"

      17 "만기요람"

      18 서사원, "낙재집"

      19 이현일, "갈암집"

      20 장윤수, "百弗庵 崔興遠 가문의 學風과 실천지향의 삶" 한국학연구원 (58) : 211-250, 2015

      21 김태웅, "朝鮮後期 監營 財政體系의 成立과 變化 ― 全羅監營 財政을 중심으로 ―" 역사교육연구회 (89) : 163-193, 2004

      22 김명자, "『역중일기曆中日記 』를 통해 본 18세기 대구 사족 최흥원의 관계망" 한국국학진흥원 (38) : 9-38, 2019

      23 정재훈, "『慕堂日記』를 중심으로 본 孫處訥의 교육활동" 퇴계연구소 (57) : 271-296, 2015

      24 김정운, "17세기 초반의 대구와 사대부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다면적 위상" 한국국학진흥원 (44) : 91-140, 2021

      25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譯註)嶺營日記·嶺營狀啓謄錄" 학민문화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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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2-02-27 학회명변경 영문명 : institute of korean studes -> Academia Koreana KCI등재
      201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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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7 0.57 0.5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6 0.61 1.133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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