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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資料の性格  :  各資料間の連關性を中心に 각 자료간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 조선자료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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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른바 조선자료에 관한 연구의 일환으로 본고에서는 조선자료에 나타나는 한글에 의한 탁음전사표기와 대역일본어표기를 중심으로 자료들을 비교하면서 각 자료간의 연관성에 대해서 검...

      이른바 조선자료에 관한 연구의 일환으로 본고에서는 조선자료에 나타나는 한글에 의한 탁음전사표기와 대역일본어표기를 중심으로 자료들을 비교하면서 각 자료간의 연관성에 대해서 검토해 보았다. 그결과 방어집석의 탁음전사표기와 탁음표기의 예외적인 표기라고 할 청음화 된 표기 예로부터 방언집석의 표기가 원간본 첩해신어 표기를 준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四つ假名의 표기와 일본어에 보여지는 방언적요소 등에서도 방언집석의 왜역관들이 개수본 첩해신어 등의 표기법을 무시하고 원간본 첩해신어의 표기법에 따르려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선왕조시대 사역권에서 편찬 간행된 조선자료를 그 편찬 또는 간행시기로부터 추측할 때 방언빕석의 왜역관들은 당시 과시용서로 이미 쓰이고 있던 첩해신어 등을 이용해서 책을 편찬했으리라는 것은 왜역관들의 동향을 보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방언집석의 왜역관들이 다른 조선자료의 편찬에도 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간행되어 있던 제1차 개수본 첩해신어와 개수중간본 첩해신어와 그 내용이 같다는 제2차 개수본 첩해신어의 표기법 등을 따르지 않고 굳이 원간본 첩해신어의 표기법을 따르려고 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ザ行音표기 등에 있어서 방언집적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표기법을 시도한 면도 없지는 않으나 전체적인 표기로 볼 때 일본어에 한정해서 본다면 그 표기의 열악함과 규범성 등으로 보아 첩해신어 등과는 달리 역관들의 일본어에 관한 지식이 의문시될 정도이다.
      어휘에 있어서도 類解類인 원간본 왜어류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설에도 방언집석의 표기는 그와 같응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동 시대에 사역원에서 같이 일하던 역관들의 일본어에 관한 지식이 방언집석의 편찬시에만 유독 열악했다고 볼 수도 없고 특히 개수중간본 첩해신어의 간행은 1781년으로 그 편찬시기는 방언집석의 편찬기인 1778년과 거의 겹친다고 보아야 함으로 방언집석의 왜역관들이 개수본 첩해신어 등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방언집석의 저자 서명웅(1716-1787)은 1783년 그간의 자신이 학문적 관심을 종합 정리하여 일종의 類書인 保晩齋叢書를 저술하였고 그 다음해인 1784년에 총서에서 빠진 것들을 모아 保晩齋剩簡을 완성했는데 그 속에 당시의 통역관들이 漢語, 淸語, 蒙古語, 倭語 등의 방언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도록 편찬한 것이 방언집석(方言類釋)이다. 그는 1755년 謝恩書狀官으로 淸에 다녀왔으며 1765년 도승지 겸 홍문관 提學司譯提調가 되어 1769년 다시 淸나라에 갔다가 돌아와 文獻備考 編輯堂上이 되었다는 인물이다. 즉 그는 淸의 전문가라고 해야할 인물로 倭語에 관한 지식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서명웅의 保晩齋叢書와 保晩齋剩簡의 중심은 先天學으로 農政 土理 등 실용에 필요한 학문을 총 망라한 내용으로 그 내용의 방대함 탓으로 극히 일부분이라 할 類書인 방언집석의 倭語표기에 소홀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청나라 전문가인 그로서는 왜어 표기의 소홀함을 간과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방언집석의 일본어사전표기에 있어서는 원간본 첩해신어의 영향이 가장 컸다는 사실에 주목해서 조선자료 상호간의 연관성에 관해서 다루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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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はじめに
      • Ⅱ. 濁音轉寫表記による 連關性
      • 1. ガㆍザㆍダㆍバ 行音の 轉寫表記
      • 2. 濁音表記の例外的な表記
      • Ⅲ. 四つ假名の 表記による連關性
      • Ⅰ. はじめに
      • Ⅱ. 濁音轉寫表記による 連關性
      • 1. ガㆍザㆍダㆍバ 行音の 轉寫表記
      • 2. 濁音表記の例外的な表記
      • Ⅲ. 四つ假名の 表記による連關性
      • Ⅳ. 語彙表記の變化による連關性
      • Ⅴ. おわりに
      • 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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