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 조면호가 남긴 〈삭전가〉와 〈삭전해〉는 19세기의 고을축제와 줄당기기의 존재 양상 및 성격을 파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료이다. 이 자료를 통해 고을을 배경으로 벌어진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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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Korean
1858년 ; 의성현 ; 고을축제 ; 줄당기기 ; 향리 ; 현령 ; 축제의 정치성 ; 문화적 의미 ; Uiseong county ; downtown festival ; tug-of-war ; petty town official ; county magistrate ; politics of festival ; cultural meaning
KCI등재
학술저널
297-338(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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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 조면호가 남긴 〈삭전가〉와 〈삭전해〉는 19세기의 고을축제와 줄당기기의 존재 양상 및 성격을 파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료이다. 이 자료를 통해 고을을 배경으로 벌어진 축제...
옥수 조면호가 남긴 〈삭전가〉와 〈삭전해〉는 19세기의 고을축제와 줄당기기의 존재 양상 및 성격을 파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료이다. 이 자료를 통해 고을을 배경으로 벌어진 축제와 그 중심적 연행인 줄당기기의 존재양상 및 성격, 그리고 문화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1858년, 의성현의 읍치에서 벌어진 고을축제는 제석의 나례로부터 입춘제를 거쳐 대보름 다음날의 줄당기기까지 이어졌으며, 특히 줄당기기는 축제의 절정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제석의 나례는 공리가 주관하였고 화룡제와 곡점을 위주로 한 입춘제는 호장이 여러 아전들을 거느리고 거행하였다. 한편 줄당기기는 암줄인 남부와 숫줄인 북부로 편을 갈라 진행하였다. 읍치의 밖에서 만든 줄을 운반하는 과정은 노래와 춤, 그리고 풍물이 함께하는 길놀이로서 ‘거리의 축제’에 다름 아니었고 이런 양상은 다른 길놀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본격적인 줄당기기는 해가 진 뒤에 능파정에서 벌어졌다. 줄이 도착하면 먼저 줄고사를 올리고 각종 앞놀이를 펼쳤다. 줄당기기는 앞놀이를 마치고 시작하였는데 모두 놀이에 몰입하여 주위의 눈길이나 일신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놀이에 빠져들었다. 승부가 결정되면 이긴 편은 가무를 즐기며 자축하였고 뒤이어 관아 근처의 봉생루에서, 현령이 이긴 편에게 돈과 비단을 내리는 시상식이 있었다.
1858년의 고을축제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축제의 의미는 고을의 안과태평을 주술종 교적으로 예측하고 기원하는 데 있었지만, 축제에 관여한 주체들은 각기 상이한 입장을 갖고 있었고, 이 입장을 바탕으로 고을 축제의 문화적 의미가 실현되었다. 지방관은 고을축제를 통해서 민심을 위무함으로써 민정을 안정시키려 하였고, 향리들은 그들과 고을민의 우호적 연대를 확인시키는 한편 그들이 상위에서 고을민을 대표하는 존재임을 납득시키려 하였다. 한편 고을민은, 시공간의 속성과 의미의 변화, 동관의식을 바탕으로 한 축제적 연대, 일상적 차별의 약화와 무화, 언어의 축제화와 축제적 웃음 등을 통해 그들의 축제욕구를 충족하는 한편 지배적 가치들을 상대화함으로써 지방관이나 향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현실의 지배관계를 부정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Sakjeunga and Sakjeunhae, which a county magistrate Cho Myun-ho wrote, provide us with reliable intellectual information in grasping the aspects and feature of county festival and tug-of-war in the 19th century. I looked into the aspects, feature and ...
Sakjeunga and Sakjeunhae, which a county magistrate Cho Myun-ho wrote, provide us with reliable intellectual information in grasping the aspects and feature of county festival and tug-of-war in the 19th century. I looked into the aspects, feature and cultural meaning of a festival and tug-of-war of central performance performed in a county.
In 1859, the festival which had performed in downtown of Uiseong county was composed of the sequence of Nare of the New Year’s Eve, the ritual of the day which signals the arrival of spring, and tug-of-war of the 16th of January. Nare of the New Year's Eve manege under the supervision of lower official Gongri, and the ritual of the day which signals the arrival of spring was conducted by the town head of Hojang with a large number of petty town officials. On the other hand, tug-of-war was performed with people divided into the southern part of female rope and the northern part of male rope. When people carried the rope made in the outside of downtown, they performed a dance and song, and played the instruments for folk music. It was be nothing but ‘street festival’ as a parade Gilnori. An earnest tug-of-war was performed around Nyungpajung after the sunset. After the rope arrived there, they held the kosa rites and did various playing of Apnori. People began to do tug-of-war after Apnori, and was absorbed in it as seriously as they disregarded their own safety and others’ eyes.
After win and loss was decided, winners celebrated by themselves with song and dance and county magistrate awarded silk fabrics and money as a prize to them. In 1858, officially downtown festival magico-religiously prayed for the safety and tranquility of a county, but participant in a festival held different standpoints each other. cultural meaning of festival was realized on the base of those different standpoints. The local magistrate tried to stabilized a civil government by consoling the people of county. On the other side lower officials tried to establish friendly relations with county people, and made them consent to be representatives of county people. By satisfying their festival desire and refusing a ruling value through the attribute and meaning of time and place, festival solidarity, the weakness and demolition of social distinction, and the festivalization of language, county people opened the possibility to deny a social ruling relationship in reality.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향리집단과 의례화된 반란으로서의 탈춤 연행, 조선 후기의 향리" 일조각 1998
2 차기선, "한국의 줄다리기" 한국문화인류학회 14 : 1982
3 "한국공동체신앙의 역사적 연구" 1997
4 "한국ㆍ중국의 성황신앙사와 순창의 城隍大神事跡" 민속원 1998
5 한양명, "한국 대동놀이 연구"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6 "탈춤의 미학" 현암사 1994
7 "축제적 재판의 성격과 사회적 의미" 한국민속학회 10 : 1999
8 "촌락사회의 줄당기기 연구" 1983
9 "줄당기기의 다양성과 보편성, 민속문화의 지역성과 보편성" 집문당 2000
10 "줄당기기의 공동체적 성격에 관한 연구" 태학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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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장주근, "줄다리기에 대하여" 한국문화인류학회 1 : 1968
12 "조선후기 지방 이서조직의 비교사적 고찰" 일지사 90집 : 2000
13 "조선후기 읍치에 있어서 공공의례의 다층성과 향리 주재의 중재 제의" 성곡학술문화재단 32 : 2001
14 "조선후기 읍치 사회의 구조와 제의" 역사학회 147 : 1995
15 "조선의 향토오락" 문당 : 1992
16 "조선시대 고을축제의 성격과 전승집단" 집문당 2004
17 "조선 시대 놀이문화의 성격과 과제, 유교민속 조사ㆍ연구 방법론" 한국국학진흥원 2005
18 "조선 시대 관청 주도의 탈춤들, 조선 후기 민속문화의 주체" 집문당 109-, 2004
19 "조선 성황제의 사전화와 민속화" 민속원 1998
20 "읍치 성황제 주제집단의 변화와 제의 전통의 창출" 민속원 1997
21 "원전과 변환" 한국민속학회 37 : 2003
22 "옥수 조면호의 기속시 연구" 동방한문학회 24 : 2003
23 "옥수 조면호의 ‘서사잡절’ 전후편에 대하여" 한국고전문학회 20 : 2001
24 "영산줄다리기ㆍ쇠머리대기" 소민원 1978
25 "안일방의 성립과 변천, 조선 후기의 향리" 일조각 1998
26 정승모, "성황사의 민간화와 향촌사회의 변동"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회 7 : 1991
27 "민속예술을 통해본 신명풀이의 존재양상과 성격" 비교민속학회 22 : 2002
28 任東權, "모포줄다리기" 文化財管理局 (155) :
29 "대화적 상상력" 문학과 지성사 1994
30 "경상도 감영 향리와 안동향리의 진출, 조선 후기의 향리" 일조각 1998
31 "樵南 李啓秀의 車戰歌를 통해 본 19세기의 安東 車戰" 한국민속학회 (38호) : 2004
32 "新增東國輿地勝覽"
33 "城隍大神事跡記를 통해서 본 순창의 성황제" 민속원 1998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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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2-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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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52 | 0.52 | 0.5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9 | 0.64 | 0.965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