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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솔동고분군 축조 배경과 역사적 의미 = The Construction Background and the Historical Meaning of the Hansol-dong Ancient To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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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14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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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aims to analyze the tombs of Hansol-dong and ancient remains in the Sejong area to examine their historical significance. Through this, it was noted that the Naseongri power that constructed the tombs of Hansol-dong played a great role in Ungjincheondo (transfer of capital to Ungjin) by contributing to the Baekje’s stabilization of the midstream of the Geumgang River.
      Baekje would utilize help from neighboring countries and local influences as it was losing the war against Goguryeo. It is understood in the dimension to strengthen its control over the Geumgang river area that grave goods like gilt-bronze crowns come from the tombs of Yongwon-ri and the tombs of Suchon-ri constructed around this time. The tombs of Hansol-dong, also, had similar aspects, which were related to Baekje’s advancement to the Geumgang river area, and it would redevelop the Ungjin area, also through the Ye Shikjin clan’s epitaph.
      As powers that help Baekje’s Ungjincheondo were the Moks and the Haes, and the local influences, like the powers that constructed the tombs of Suchon-ri and the tombs of Hansol-dong contributed to it as well. Naseong-ri power that constructed the tombs of Hansol-dong became prosperous as a provincial city and united powers in the Sejong area by occupying the routes of the Geumgang River. The rise of Naseong-ri power became the background that made Ungjincheondo possible by controlling the traffic routes in the upstream of the Geumgang.
      Naseong-ri power is based on the region, but some of them likely included emigrants, given that it was a city planned by Baekje. Baekje developed the Geumgang river area around the 5th century, utilizing Chinese immigrants that acquired advanced culture, it is possible to peek at part of what happened through the Ye Shikjin clan. After Ungjincheondo, Naseong-ri power did not form a great power, but it was noted that this was maintained also through Ye Shikjin, who served as the leader of the Ungjin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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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aims to analyze the tombs of Hansol-dong and ancient remains in the Sejong area to examine their historical significance. Through this, it was noted that the Naseongri power that constructed the tombs of Hansol-dong played a great role in U...

      This study aims to analyze the tombs of Hansol-dong and ancient remains in the Sejong area to examine their historical significance. Through this, it was noted that the Naseongri power that constructed the tombs of Hansol-dong played a great role in Ungjincheondo (transfer of capital to Ungjin) by contributing to the Baekje’s stabilization of the midstream of the Geumgang River.
      Baekje would utilize help from neighboring countries and local influences as it was losing the war against Goguryeo. It is understood in the dimension to strengthen its control over the Geumgang river area that grave goods like gilt-bronze crowns come from the tombs of Yongwon-ri and the tombs of Suchon-ri constructed around this time. The tombs of Hansol-dong, also, had similar aspects, which were related to Baekje’s advancement to the Geumgang river area, and it would redevelop the Ungjin area, also through the Ye Shikjin clan’s epitaph.
      As powers that help Baekje’s Ungjincheondo were the Moks and the Haes, and the local influences, like the powers that constructed the tombs of Suchon-ri and the tombs of Hansol-dong contributed to it as well. Naseong-ri power that constructed the tombs of Hansol-dong became prosperous as a provincial city and united powers in the Sejong area by occupying the routes of the Geumgang River. The rise of Naseong-ri power became the background that made Ungjincheondo possible by controlling the traffic routes in the upstream of the Geumgang.
      Naseong-ri power is based on the region, but some of them likely included emigrants, given that it was a city planned by Baekje. Baekje developed the Geumgang river area around the 5th century, utilizing Chinese immigrants that acquired advanced culture, it is possible to peek at part of what happened through the Ye Shikjin clan. After Ungjincheondo, Naseong-ri power did not form a great power, but it was noted that this was maintained also through Ye Shikjin, who served as the leader of the Ungjin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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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의 목적은 한솔동고분군과 세종 일대의 고대 유적을 분석하여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는 데 있다.
      이를 통해 한솔동고분군을 축조한 나성리 세력이 백제의 금강 중류 지역 지배의 안정화에 기여함으로써 웅진 천도에 큰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백제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밀리자 태자인 전지를 왜에 파견하는 등 주변국의 도움을 받고자 하였다.
      또한 금강 하구 유역 세력가로 추정되는 사두를 등용하여 지방의 戰力을 활용하고자 하였다. 이후 용원리고분군과 수촌리고분군 등에서 금동관 등 위세품이 출토되는 것도 백제가 이들 세력을 거점으로 삼아 점차 금강 중류 유역에 대한 진출과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차원에서 이해된다. 한솔동고분군 또한 양상이 비슷하여 백제의 금강 유역 진출과 관련됨이 분명하고, 예식진 일가 묘지명을 통해서도 웅진 지역을 개발하려는 백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제의 웅진 천도는 방어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수도로서의 입지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지역을 택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에 도움을 준 세력으로는 목씨와 해씨뿐만 아니라 수촌리고분군과 한솔동고분군 축조 세력 등 지방 세력가도 일조하였다. 한솔동고분군을 축조한 나성리 세력은 지방도시로 번성하고, 금강의 길목을 장악하여 세종 일대의 세력들을 통합하였다. 나성리 세력의 부상은 금강 상류로 가는 길을 통제함으로써 웅진 천도가 가능하게 된 배경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나성리 세력은 재지적 기반에 바탕을 두었지만 백제에 의한 계획도시라는 점에 주목하면 이들 중 일부는 이주민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백제는 선진문물을 취득한 중국계 이주민들을 활용하여 5세기를 전후로 한 시기부터 금강 유역을 개발하였으며, 예식진 일족을 통해서 그 모습의 일부를 엿볼 수 있었다. 웅진 천도이후 한솔동고분군 축조 세력의 연속성이 보이지 않은 것은 나성리의 도시 기능 위축과 이들의 중앙귀족화와 관련이 있다. 이들은 천도 후 벌어진 권력 다툼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지만 웅진 방령을 지낸 예식진의 모습을 통해서도 명맥을 이어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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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의 목적은 한솔동고분군과 세종 일대의 고대 유적을 분석하여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는 데 있다. 이를 통해 한솔동고분군을 축조한 나성리 세력이 백제의 금강 중류 지역 지배의 안정...

      본고의 목적은 한솔동고분군과 세종 일대의 고대 유적을 분석하여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는 데 있다.
      이를 통해 한솔동고분군을 축조한 나성리 세력이 백제의 금강 중류 지역 지배의 안정화에 기여함으로써 웅진 천도에 큰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백제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밀리자 태자인 전지를 왜에 파견하는 등 주변국의 도움을 받고자 하였다.
      또한 금강 하구 유역 세력가로 추정되는 사두를 등용하여 지방의 戰力을 활용하고자 하였다. 이후 용원리고분군과 수촌리고분군 등에서 금동관 등 위세품이 출토되는 것도 백제가 이들 세력을 거점으로 삼아 점차 금강 중류 유역에 대한 진출과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차원에서 이해된다. 한솔동고분군 또한 양상이 비슷하여 백제의 금강 유역 진출과 관련됨이 분명하고, 예식진 일가 묘지명을 통해서도 웅진 지역을 개발하려는 백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제의 웅진 천도는 방어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수도로서의 입지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지역을 택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에 도움을 준 세력으로는 목씨와 해씨뿐만 아니라 수촌리고분군과 한솔동고분군 축조 세력 등 지방 세력가도 일조하였다. 한솔동고분군을 축조한 나성리 세력은 지방도시로 번성하고, 금강의 길목을 장악하여 세종 일대의 세력들을 통합하였다. 나성리 세력의 부상은 금강 상류로 가는 길을 통제함으로써 웅진 천도가 가능하게 된 배경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나성리 세력은 재지적 기반에 바탕을 두었지만 백제에 의한 계획도시라는 점에 주목하면 이들 중 일부는 이주민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백제는 선진문물을 취득한 중국계 이주민들을 활용하여 5세기를 전후로 한 시기부터 금강 유역을 개발하였으며, 예식진 일족을 통해서 그 모습의 일부를 엿볼 수 있었다. 웅진 천도이후 한솔동고분군 축조 세력의 연속성이 보이지 않은 것은 나성리의 도시 기능 위축과 이들의 중앙귀족화와 관련이 있다. 이들은 천도 후 벌어진 권력 다툼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지만 웅진 방령을 지낸 예식진의 모습을 통해서도 명맥을 이어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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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성정용, "횡혈식석실분의 수용과 고구려사회의 변화" 동북아역사재단 2009

      2 중앙문화재연구원,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녹지공간 및 생활권 2-4지역 내 저습8유적(북쪽)연기 나리성리유적" 2015

      3 한국고고환경연구소,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녹지공간 및 생활권 2-4지역 내 저습7·8유적(남쪽)연기 나성리유적" 2015

      4 이홍종, "한신대학교박물관 20년의 발자취" 한신대학교박물관 2010

      5 정수옥, "한솔동 백제고분군의 역사성과 그 가치" 백제학회 2021

      6 성정용, "한솔동 백제고분군의 역사성과 그 가치" 백제학회 2021

      7 백제학회, "한솔동 백제고분군의 역사성과 그 가치" 2021

      8 양기석, "한국사6-백제" 1995

      9 박현숙, "학술회의 / 백제 웅진시대와 공주 공산성 : 웅진 천도와 웅진성" 백제문화연구소 (30) : 117-132, 2001

      10 조범환, "중국인 유이민의 백제 귀화와 정착 과정에 대한 검토-「陳法子墓誌銘」을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탐구학회 (19) : 7-36, 2015

      1 성정용, "횡혈식석실분의 수용과 고구려사회의 변화" 동북아역사재단 2009

      2 중앙문화재연구원,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녹지공간 및 생활권 2-4지역 내 저습8유적(북쪽)연기 나리성리유적" 2015

      3 한국고고환경연구소,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녹지공간 및 생활권 2-4지역 내 저습7·8유적(남쪽)연기 나성리유적" 2015

      4 이홍종, "한신대학교박물관 20년의 발자취" 한신대학교박물관 2010

      5 정수옥, "한솔동 백제고분군의 역사성과 그 가치" 백제학회 2021

      6 성정용, "한솔동 백제고분군의 역사성과 그 가치" 백제학회 2021

      7 백제학회, "한솔동 백제고분군의 역사성과 그 가치"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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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정재윤, "웅진시대 백제 정치사의 전개와 그 특성" 서강대학교 대학원 2000

      12 한국고고환경연구소, "연기 송원리 유적" 2010

      13 강종원, "수촌리 백제고분군 조영세력 검토" 백제연구소 (42) : 39-6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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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강동석, "세종시 일원 유적과 경관 변화-청동기시대~삼국시대를 중심으로" 호서고고학회 2021

      20 한국고고환경연구소, "세종 나성리 유적" 2018

      21 정재윤, "사비 천도의 배경과 시행 과정에 대한 고찰" 한국고대학회 (55) : 39-6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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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국립공주박물관, "백제의 계획도시, 세종나성동" 2020

      29 허의행, "백제의 계획도시, 세종 나성동" 국립공주박물관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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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이홍종 ; 허의행, "漢城百濟期 據點都市의 構造와 機能 - 羅城里遺蹟을 中心으로 -" 백제연구소 (60) : 87-1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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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이현숙, "『세종의 과거와 현재』15년간의 발굴 성과와 과제" 호서고고학회 2021

      54 정재윤, "4~5세기 백제와 고구려의 관계" 고구려발해학회 44 : 59-89, 2012

      55 盧重國, "4~5世紀 百濟의 政治運營" 6 : 1994

      56 신경애, "4-5세기 백제 지방세력의 동향 : 웅진천도 전후를 중심으로" 공주대학교 대학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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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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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25 0.25 0.2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21 0.34 0.727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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