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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사비 도성 내 부소산성의 위상 = On the Status of Busosanseong Fortress of Sabi, the Walled Capital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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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14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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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aims to increase our understanding of the status and characteristics of Busosanseong Fortress as a planned part of Sabi, the fortified capital city of Baekje in the Sabi period (538-660), based on the accounts contained in historical records and the findings of archaeological excavations. Chapter II compares the record on the fortified royal palace of Baekje contained in Comprehensive Land Records (Kuodi Zhi) and Garden of Academia (Hanyuan) with the archaeological discoveries made at the BusosanseongFortress site. According to the Chinese history book, Kuodi Zhi, which provides an accurate depiction of the then situation of the fortress and also contains a valuable record about Baekje in the seventh century, including the size of the kingdom’s fortified palace, the fortress “faced northward”. The assertion that the fortification was built by “piling up stones” is, however, incorrect because Busosanseong is actually an earthen-walled fortification. This record may be justifiable, however, it can’t be overlooked in that it reflects the knowledge of Baekje shared by Chinese historians of that time. In Chapter III, the discussion focuses on the status of Busosanseong Fortress as an integral part of the capital city of Baekje during the Sabi period based on ancient records about its initial construction and Buddhist artifacts discovered inside the fortress. The textual record containing the inscription “Daetong” (大通) discovered near the east gate site of Busosanseong Fortress shows that construction of the fortress began sometime before 538. Archaeologists have also found Buddhist statuettes, a Buddha’s head and halo, and a variety of roof tiles at the sites of Sajaru Pavilion and Gunchangji, all of which suggests that the fortress was also a Buddhist sanctuary. In conclusion, Busosanseong Fortress was neither a place of shelter in times of emergency nor the rear garden of a royalpalace, but rather a fortified royal palace of Sabi Baekje comprising government offices, religious structures used for state rites, and Buddhist temples. It also appears to have been connected with another fortification below Busosanseong Fortress, making it one of two fortifications that formed the royal palace of Baekje in the Sabi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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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aims to increase our understanding of the status and characteristics of Busosanseong Fortress as a planned part of Sabi, the fortified capital city of Baekje in the Sabi period (538-660), based on the accounts contained in historical record...

      This study aims to increase our understanding of the status and characteristics of Busosanseong Fortress as a planned part of Sabi, the fortified capital city of Baekje in the Sabi period (538-660), based on the accounts contained in historical records and the findings of archaeological excavations. Chapter II compares the record on the fortified royal palace of Baekje contained in Comprehensive Land Records (Kuodi Zhi) and Garden of Academia (Hanyuan) with the archaeological discoveries made at the BusosanseongFortress site. According to the Chinese history book, Kuodi Zhi, which provides an accurate depiction of the then situation of the fortress and also contains a valuable record about Baekje in the seventh century, including the size of the kingdom’s fortified palace, the fortress “faced northward”. The assertion that the fortification was built by “piling up stones” is, however, incorrect because Busosanseong is actually an earthen-walled fortification. This record may be justifiable, however, it can’t be overlooked in that it reflects the knowledge of Baekje shared by Chinese historians of that time. In Chapter III, the discussion focuses on the status of Busosanseong Fortress as an integral part of the capital city of Baekje during the Sabi period based on ancient records about its initial construction and Buddhist artifacts discovered inside the fortress. The textual record containing the inscription “Daetong” (大通) discovered near the east gate site of Busosanseong Fortress shows that construction of the fortress began sometime before 538. Archaeologists have also found Buddhist statuettes, a Buddha’s head and halo, and a variety of roof tiles at the sites of Sajaru Pavilion and Gunchangji, all of which suggests that the fortress was also a Buddhist sanctuary. In conclusion, Busosanseong Fortress was neither a place of shelter in times of emergency nor the rear garden of a royalpalace, but rather a fortified royal palace of Sabi Baekje comprising government offices, religious structures used for state rites, and Buddhist temples. It also appears to have been connected with another fortification below Busosanseong Fortress, making it one of two fortifications that formed the royal palace of Baekje in the Sabi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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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글은 문헌사료와 발굴 성과를 분석하여 백제 사비기 부소산성이 차지하는 도성 내의 위상이나 성격을 검토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Ⅱ장에서는 「翰苑」 백제전에서 인용한 「括地志」에 등장하는 百濟 王城 관련 기사를 부소산성에 관한 발굴 조사 내용과 비교해 보았다. 「괄지지」라는 중국의 역사책은 7세기대 백제의 사정을 반영한 사료적 가치가 높은 책으로, ‘백제 왕성’의 규모나 ‘北面한다’는 기사는 부소산성의 현상과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돌을 쌓아 만들었다’는 기사는 부소산성 성벽이 土築이므로 오류라 할 수 있지만 당시 중국인의 인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Ⅲ장에서는 부소산성의 初築 시기와 내부에서 발견된 불교 관련 자료들을 검토하여 사비 도성 내 부소산성의 위상을 검토해 보았다. 부소산성 동문지 일대에서 발견된 ‘大通’명 문자자료는 이 성곽이 538년 이전에 축조되기 시작한 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내부 사자루와 군창지 일대에서 발견된 佛像이나 佛頭, 光背, 각종 기와류 등은 부소산성이 불교적인 聖所로서 중요시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부소산성은 단순한 逃避城이나 後苑이 아니라 국가적인 의례 시설과 각종 중앙행정관서, 불교 사원 등이 배치된 백제 사비기 왕성으로서 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사비기 백제의 왕궁은 부소산성과 그 아래 별도의 평지성 등 2개소의 왕궁이 공존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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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문헌사료와 발굴 성과를 분석하여 백제 사비기 부소산성이 차지하는 도성 내의 위상이나 성격을 검토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Ⅱ장에서는 「翰苑」 백제전에서 인용한 「括地志」에 ...

      이 글은 문헌사료와 발굴 성과를 분석하여 백제 사비기 부소산성이 차지하는 도성 내의 위상이나 성격을 검토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Ⅱ장에서는 「翰苑」 백제전에서 인용한 「括地志」에 등장하는 百濟 王城 관련 기사를 부소산성에 관한 발굴 조사 내용과 비교해 보았다. 「괄지지」라는 중국의 역사책은 7세기대 백제의 사정을 반영한 사료적 가치가 높은 책으로, ‘백제 왕성’의 규모나 ‘北面한다’는 기사는 부소산성의 현상과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돌을 쌓아 만들었다’는 기사는 부소산성 성벽이 土築이므로 오류라 할 수 있지만 당시 중국인의 인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Ⅲ장에서는 부소산성의 初築 시기와 내부에서 발견된 불교 관련 자료들을 검토하여 사비 도성 내 부소산성의 위상을 검토해 보았다. 부소산성 동문지 일대에서 발견된 ‘大通’명 문자자료는 이 성곽이 538년 이전에 축조되기 시작한 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내부 사자루와 군창지 일대에서 발견된 佛像이나 佛頭, 光背, 각종 기와류 등은 부소산성이 불교적인 聖所로서 중요시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부소산성은 단순한 逃避城이나 後苑이 아니라 국가적인 의례 시설과 각종 중앙행정관서, 불교 사원 등이 배치된 백제 사비기 왕성으로서 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사비기 백제의 왕궁은 부소산성과 그 아래 별도의 평지성 등 2개소의 왕궁이 공존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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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종완, "한중관계 2000년-전해종선생구순기념 한중관계논총" 소나무 2008

      2 국립부여박물관, "특별전 부소산" 2016

      3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으로 보는 百濟의 城廓" 디자인그리고 2016

      4 田中俊明, "왕도로서 사비성에 대한 예비적 고찰" 충남대 백제연구소 21 : 1990

      5 조원창, "성왕, 공주에 대통사를 세우다" 서경문화사 2021

      6 윤무병, "산성·왕성·사비도성" 충남대 백제연구소 21 : 1990

      7 이문기, "사비시대 백제 전내부체제의 운영과 변화" 백제연구소 (42) : 61-88, 2005

      8 박순발, "사비도성의 구조에 대하여" 충남대 백제연구소 31 : 2000

      9 심정보, "사비도성과 백제의 성곽"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0

      10 최맹식, "사비도성과 백제의 성곽"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0

      1 김종완, "한중관계 2000년-전해종선생구순기념 한중관계논총" 소나무 2008

      2 국립부여박물관, "특별전 부소산" 2016

      3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으로 보는 百濟의 城廓" 디자인그리고 2016

      4 田中俊明, "왕도로서 사비성에 대한 예비적 고찰" 충남대 백제연구소 21 : 1990

      5 조원창, "성왕, 공주에 대통사를 세우다" 서경문화사 2021

      6 윤무병, "산성·왕성·사비도성" 충남대 백제연구소 21 : 1990

      7 이문기, "사비시대 백제 전내부체제의 운영과 변화" 백제연구소 (42) : 61-88, 2005

      8 박순발, "사비도성의 구조에 대하여" 충남대 백제연구소 31 : 2000

      9 심정보, "사비도성과 백제의 성곽"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0

      10 최맹식, "사비도성과 백제의 성곽"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0

      11 정재윤, "사비 천도의 배경과 시행 과정에 대한 고찰" 한국고대학회 (55) : 39-66, 2018

      12 김성구, "부여의 백제요지와 출토유물에 대하여" 충남대 백제연구소 21 : 1990

      13 심상육 ; 이명호 ; 김태익 ; 김선옥, "부여나성 동나성 2문지 발굴조사의 의의" 백제문화연구소 1 (1): 157-184, 2014

      14 이병호, "부여 부소산성 출토 토기 명문의 판독과 해석" 한국목간학회 (26) : 167-194, 2021

      15 백제고도문화재단, "부여 부소산성 발굴조사 2차 학술자문회의 자료집"

      16 차용걸, "부여 부소산성 기록화사업Ⅱ: 부소산성과 백제산성" 공주대박물관 2019

      17 국립부여박물관, "부여 부소산사지" 2017

      18 백제고도문화재단, "부여 나성(북나성) 10차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자료집"

      19 백제고도문화재단, "부여 나성 북나성Ⅶ" 2017

      20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부여 관북리유적 발굴보고Ⅴ"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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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堀裕, "日本宗敎史4-宗敎の受容と交流" 吉川弘文館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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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김영배, "扶蘇山 出土 百濟靑銅燈蓋" 고고미술동호회 9 (9): 1968

      60 齋藤忠, "彙報-昭和14年に於ける朝鮮古蹟調査の槪要" 考古學協會 30 (30): 1940

      61 藤澤一夫, "古代寺院の遺構に見る韓日の關係" アジア文化硏究所 8 (8): 1971

      62 陳楚家, "中國古代度量衡論文集" 中州古籍出版社 1990

      63 윤용구, "『翰苑』의 편찬과 蕃夷部" 백산학회 (120) : 91-116, 2021

      64 윤용구, "『翰苑』 蕃夷部의 注文構成에 대하여" 공주대 백제문화연구소 45 :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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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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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25 0.25 0.2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21 0.34 0.727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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