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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 南朝 塼築墳을 통해 본 武寧王陵의 ‘外簡內奢’ = The Evaluation of the Simple Exterior and Luxurious Interior of King Muryeong's Tomb Based on the Study on the Southern Dynasties’ Brick Chamber To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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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Jeongji-san ruin was the only location presumed to connect with the Funeral and Burial Rituals of King Muryeong's Tomb. To some extent, two sites of Bangdanjeokseok (squared altar where stones were piled up) relics in Songsan-ri Ancient Tombs can be considered as cult facilities due to the buried major part of the tomb chamber. So far, there are 15 tombs which can be confirmed to locate in Songsan-ri Ancient Tombs. However, the relationships between the 2 sites of cult-facilities like Bangdanjeokseok relics and other groups of tombs remain to be identified. Nanjing Lion Southern Dynasty Cemetery and Xiao Wei Tomb had rigorous layouts that consisted of ritual facilities such as Mausoleum, Tomb Passage, stone carvings (stone beasts, stone pillars, stone tablets) and Que Gate at the Tomb. Compared with these facilities, King Muryeong's Tomb was relatively simple. During the 55 years of Xiao Liang Dynasty, Baekje sent envoys seven times to the Liang Dynasty. Therefore, it would be unreasonable to explain the lag in Baekje's acceptance of the culture of the Southern Dynasty, and more appropriate to look for the cause in the inherent culture of Baekje. There are many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e types of cultural relics from the King Muryeong's Tomb and the Southern Dynasty princely tombs. Epitaphs and porcelain cultural relics are generally unearthed in the tombs of the King Muryeong's Tomb and the tombs of the Liang Dynasty princes with the same status in the same period.
      Pottery and figurines are basically buried in the Huangdi Mausoleum or the tombs of princes during the Southern Dynasties. On the contrary, no one was unearthed in the King Muryeong's Tomb. Although the earthenware in Baekje tombs is generally not very large, there are also a few unearthed. There might be certain unknown relationships between such phenomenon and both of the Land Purchase Record and the Jinmyosu found in King Muryeong's Tomb. Firstly, no earthenware was buried because of the concept of afterlife to be gods. Additionally, the function of Jinmyosu was not limited to safeguarding the tomb but also played some multi-functional roles. In conclusion, by comparing with the Brick Chamber Tombs of the Southern Dynasty, we can fully explain the phenomenon of “exterior simplicity and interior luxury” in the King Muryeong's T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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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gji-san ruin was the only location presumed to connect with the Funeral and Burial Rituals of King Muryeong's Tomb. To some extent, two sites of Bangdanjeokseok (squared altar where stones were piled up) relics in Songsan-ri Ancient Tombs can be c...

      Jeongji-san ruin was the only location presumed to connect with the Funeral and Burial Rituals of King Muryeong's Tomb. To some extent, two sites of Bangdanjeokseok (squared altar where stones were piled up) relics in Songsan-ri Ancient Tombs can be considered as cult facilities due to the buried major part of the tomb chamber. So far, there are 15 tombs which can be confirmed to locate in Songsan-ri Ancient Tombs. However, the relationships between the 2 sites of cult-facilities like Bangdanjeokseok relics and other groups of tombs remain to be identified. Nanjing Lion Southern Dynasty Cemetery and Xiao Wei Tomb had rigorous layouts that consisted of ritual facilities such as Mausoleum, Tomb Passage, stone carvings (stone beasts, stone pillars, stone tablets) and Que Gate at the Tomb. Compared with these facilities, King Muryeong's Tomb was relatively simple. During the 55 years of Xiao Liang Dynasty, Baekje sent envoys seven times to the Liang Dynasty. Therefore, it would be unreasonable to explain the lag in Baekje's acceptance of the culture of the Southern Dynasty, and more appropriate to look for the cause in the inherent culture of Baekje. There are many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e types of cultural relics from the King Muryeong's Tomb and the Southern Dynasty princely tombs. Epitaphs and porcelain cultural relics are generally unearthed in the tombs of the King Muryeong's Tomb and the tombs of the Liang Dynasty princes with the same status in the same period.
      Pottery and figurines are basically buried in the Huangdi Mausoleum or the tombs of princes during the Southern Dynasties. On the contrary, no one was unearthed in the King Muryeong's Tomb. Although the earthenware in Baekje tombs is generally not very large, there are also a few unearthed. There might be certain unknown relationships between such phenomenon and both of the Land Purchase Record and the Jinmyosu found in King Muryeong's Tomb. Firstly, no earthenware was buried because of the concept of afterlife to be gods. Additionally, the function of Jinmyosu was not limited to safeguarding the tomb but also played some multi-functional roles. In conclusion, by comparing with the Brick Chamber Tombs of the Southern Dynasty, we can fully explain the phenomenon of “exterior simplicity and interior luxury” in the King Muryeong's T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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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971년 송산리고분군 내에서 우연히 무령왕릉을 발견했다. 이는 정확한 墓主를 밝혀주는 백제에 속하는유일한 무덤이다.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시기의 주류 묘제인 塼築墳文化를 받아들여 구축하였다. 이 점은 백제 웅진시기를 이채롭게 하는 대목일 것이다. 전축분을 포함한 출토유물에서도 남조의 영향이 다수 표출되었다. 따라서 무령왕릉의 구조나 출토유물의 성격을 철저히 파악하고 이해하려면 무령왕릉과 중국 남조 전축분 간의 比較硏究는 불가결할 것이다.
      무령왕릉에 관한 상장의례 시설은 추정으로 본 艇止山 遺蹟뿐이다. 그리고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고분군에 제사에 관한 방단적석유구도 2기만 발견되었으며, 埋葬主體部가 없어서 祭禮施設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무령왕릉을 포함한 송산리고분군에 지금 확인 가능한 무덤은 총 15기에 달하는데, 그 중에 제례시설로 본 2기의 방단적석유구는 여러 무덤과 서로 어떤 대응관계를 맺고 있었는지에 대해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에 南京獅子沖南朝陵園과 蕭偉墓의 경우에는 능원담장, 신도, 석각(석수, 석주, 석비), 墓闕 등예제시설을 갖추고 있는 정연한 능원배치에 비해 무령왕릉 외부에는 소박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양나라에 존속 되었던 55년 동안 백제에서 梁으로 遣使한 횟수는 총 7회에 달하였으며, 백제가 남조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 중에 나타난 지체성으로 해석하면 무리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규명하려면 南朝文化에 착안하기보다 백제의 고유문화에서 그 단서를 찾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무령왕릉과 남조 왕후일급 무덤에 출토유물의 종류 간의 많은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무령왕릉과 비슷한시기 및 동등 신분위계를 가진 양나라 諸王候墓에서 출토된 유물의 공통점은 묘지석과 磁器類遺物이 있다는점이다. 다만 남조시기의 皇帝陵이나 王候墓에는 거의 다 도기나 俑이 출토되었지만 반면 무령왕릉에는 한점이라도 출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록 백제시기 토기의 부장량 자체가 많지 않았으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매지권, 진묘수 등을 함께 고려한다면 승선적인 내세관을 지닌 결과로 인해 토기부장이 전무하게 된 주장과 진묘수는 鎭墓를 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피장자의 승선을 돕는 다목적성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흥미롭다. 이상과 같이, 남조 전축분은 무령왕릉과 서로 비교를 통해 외부의 附屬禮制施設과 출토유물의 종류 및 위계에 나타난 차이점을 충분히 해명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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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송산리고분군 내에서 우연히 무령왕릉을 발견했다. 이는 정확한 墓主를 밝혀주는 백제에 속하는유일한 무덤이다.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시기의 주류 묘제인 塼築墳文化를 받아들여 구...

      1971년 송산리고분군 내에서 우연히 무령왕릉을 발견했다. 이는 정확한 墓主를 밝혀주는 백제에 속하는유일한 무덤이다.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시기의 주류 묘제인 塼築墳文化를 받아들여 구축하였다. 이 점은 백제 웅진시기를 이채롭게 하는 대목일 것이다. 전축분을 포함한 출토유물에서도 남조의 영향이 다수 표출되었다. 따라서 무령왕릉의 구조나 출토유물의 성격을 철저히 파악하고 이해하려면 무령왕릉과 중국 남조 전축분 간의 比較硏究는 불가결할 것이다.
      무령왕릉에 관한 상장의례 시설은 추정으로 본 艇止山 遺蹟뿐이다. 그리고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고분군에 제사에 관한 방단적석유구도 2기만 발견되었으며, 埋葬主體部가 없어서 祭禮施設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무령왕릉을 포함한 송산리고분군에 지금 확인 가능한 무덤은 총 15기에 달하는데, 그 중에 제례시설로 본 2기의 방단적석유구는 여러 무덤과 서로 어떤 대응관계를 맺고 있었는지에 대해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에 南京獅子沖南朝陵園과 蕭偉墓의 경우에는 능원담장, 신도, 석각(석수, 석주, 석비), 墓闕 등예제시설을 갖추고 있는 정연한 능원배치에 비해 무령왕릉 외부에는 소박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양나라에 존속 되었던 55년 동안 백제에서 梁으로 遣使한 횟수는 총 7회에 달하였으며, 백제가 남조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 중에 나타난 지체성으로 해석하면 무리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규명하려면 南朝文化에 착안하기보다 백제의 고유문화에서 그 단서를 찾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무령왕릉과 남조 왕후일급 무덤에 출토유물의 종류 간의 많은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무령왕릉과 비슷한시기 및 동등 신분위계를 가진 양나라 諸王候墓에서 출토된 유물의 공통점은 묘지석과 磁器類遺物이 있다는점이다. 다만 남조시기의 皇帝陵이나 王候墓에는 거의 다 도기나 俑이 출토되었지만 반면 무령왕릉에는 한점이라도 출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록 백제시기 토기의 부장량 자체가 많지 않았으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매지권, 진묘수 등을 함께 고려한다면 승선적인 내세관을 지닌 결과로 인해 토기부장이 전무하게 된 주장과 진묘수는 鎭墓를 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피장자의 승선을 돕는 다목적성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흥미롭다. 이상과 같이, 남조 전축분은 무령왕릉과 서로 비교를 통해 외부의 附屬禮制施設과 출토유물의 종류 및 위계에 나타난 차이점을 충분히 해명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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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국립공주박물관, 2006

      2 가경고고학연구소, "천안 GM자동차 부품배송센터 신축사업부지 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부분완료 약식보고서" 2014

      3 권오영, "정지산유적과 백제의 喪葬儀禮" 국립공주박물관 1998

      4 이병호, "웅진·사비기 백제 왕실의 조상 제사 변천" 한국고대학회 (55) : 5-38, 2018

      5 금강고고학연구소, "아산 갈매리 대지조성 사업부지 내 문화재 발굴조사 아산 갈매리 목책유적" 2014

      6 이남석, "송산리 고분군" 서경문화사 2010

      7 정치영, "석촌동 1호분 북쪽 연접적석총의 구조와 성격" 중부고고학회 20 (20): 67-89, 2021

      8 이찬희, "석수, 지석의 岩種同定과 해석, In 무령왕릉신보고서Ⅲ" 국립공주박물관 2014

      9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서천 본산리유적 발굴(시굴)조사 개략보고서" 2015

      10 국립공주박물관, "백제의 제사유적 艇止山" 1999

      1 국립공주박물관, 2006

      2 가경고고학연구소, "천안 GM자동차 부품배송센터 신축사업부지 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부분완료 약식보고서" 2014

      3 권오영, "정지산유적과 백제의 喪葬儀禮" 국립공주박물관 1998

      4 이병호, "웅진·사비기 백제 왕실의 조상 제사 변천" 한국고대학회 (55) : 5-38, 2018

      5 금강고고학연구소, "아산 갈매리 대지조성 사업부지 내 문화재 발굴조사 아산 갈매리 목책유적" 2014

      6 이남석, "송산리 고분군" 서경문화사 2010

      7 정치영, "석촌동 1호분 북쪽 연접적석총의 구조와 성격" 중부고고학회 20 (20): 67-89, 2021

      8 이찬희, "석수, 지석의 岩種同定과 해석, In 무령왕릉신보고서Ⅲ" 국립공주박물관 2014

      9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서천 본산리유적 발굴(시굴)조사 개략보고서" 2015

      10 국립공주박물관, "백제의 제사유적 艇止山" 1999

      11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의 국제성과 무령왕" 2011

      12 장수남, "백제 무령왕의 빈례 절차 연구" 백제연구소 (69) : 71-104, 2019

      13 정재윤 ; 박초롱, "문헌 및 고고자료를 통해 본 고대 장송의례 - 백제를 중심으로 -" 백제학회 (31) : 29-53, 2020

      14 김상렬, "무령왕릉에 보이는 상장 : 빈을 중심으로" 인하대학교 대학원 2002

      15 조유전, "무령왕릉발굴20주년기념학술회의특집 : 송산리 방단계단형무덤에 대하여" 백제문화연구소 (21) : 43-59, 1991

      16 齊東方, "무령왕릉과 동아시아 문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4

      17 권오영, "무령왕릉 출토 진묘수의 계보와 사상적 배경, In 무령왕릉-출토 유물 분석 보고서(Ⅱ)" 국립공주박물관 2006

      18 정재윤, "무령왕릉 지석의 새로운 해석" 국립공주박물관 2018

      19 권오영, "무령왕릉 다시보기" 한성백제박물관 2019

      20 이장웅, "무령왕릉 다시보기" 2019

      21 한성백제박물관, "무령왕릉 다시보기" 2019

      22 신준, "무령왕릉 다시보기" 2019

      23 조윤재, "무령왕릉 다시보기" 한성백제박물관 2019

      24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기초자료집"

      25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1971-2021 발굴50년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 2021

      26 강원표, "무령왕릉 1971-2021 발굴50년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 국립공주박물관 2021

      27 권오영, "고대 한국의 喪葬儀禮" 20 : 2000

      28 "陳書"

      29 小林仁, "鎭墓獸―고대 동아시아 무덤의 수호신" 국립공주박물관 2018

      30 박중환, "金石文을 통해서 본 백제인의 來世觀" 호남사학회 (29) : 27-56, 2007

      31 "讀禮通考"

      32 이남석, "艇止山" 국립공주박물관 1999

      33 "舊唐書"

      34 王志高, "百濟武寧王陵形制結構的考察" (財)忠清文化財研究院 (創刊) : 2005

      35 王志高, "百濟武寧王陵出土文物二題, In 베일에 싸인 백제사의 열쇠 공주 송산리고분군" 공주시·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국립공부박물관 2021

      36 忠淸南道, "百濟 武寧王陵" 1991

      37 국립공주박물관, "百濟 斯麻王"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1

      38 이남석 ; 이현숙, "百濟 喪葬儀禮의 硏究 - 錦江流域 상장의례 遺蹟의 意味 -" 백제문화연구소 (54) : 311-336, 2016

      39 宋 松, "漢嵩山太室闕銘拓本版本" 2020

      40 趙海洲, "漢代陵墓前的闕門及其起源探討" (6) : 2005

      41 浙江省文物管理委員會, "浙江瑞安桐溪與蘆蒲古墓清理" (10) : 1960

      42 鄒厚本, "江蘇考古五十年" 南京出版社 2000

      43 王志高, "江蘇南京市白龍山南朝墓" (1) : 1998

      44 南京市博物院, "江蘇丹陽胡橋南朝大墓及磚刻壁畫" (2) : 1974

      45 金吉植, "氷庫를 통해 본 公州 艇止山遺蹟의 性格" 韓國考古美術硏究所 12 : 2001

      46 국립공주박물관, "武寧王陵과 東亞細亞文化" 2001

      47 공주시, "武寧王陵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 2020

      48 文化公報部 文化財管理局, "武寧王陵 發掘調査報告書" 1973

      49 張寅成, "武寧王陵 墓誌를 통해 본 百濟人의 生死觀" 忠南大學校 百濟硏究所 32 : 2000

      50 武昌市革委會文化局文物工作組, "武昌吳家灣發掘一座古墓" (6) : 1975

      51 陸建方, "梁朝桂陽王蕭象墓" (8) : 1990

      52 "梁書"

      53 "梁典"

      54 국립공주박물관, "松山里 古墳群 基礎資料集 解說"

      55 "建康實錄"

      56 傅熹年, "唐長安大明宮含元殿原狀的探討" (7) : 1973

      57 金吉植, "古代의 氷庫와 喪葬禮" 한국고고학회 47 : 137-176, 2002

      58 조윤재, "古代 中國 鎭墓獸의 變容과 武寧王陵 鎭墓獸 再論" 백제연구소 (69) : 49-70, 2019

      59 "南齊書"

      60 張寅成, "南朝의 喪禮 硏究" 忠南大學校 百濟硏究所 32 : 2000

      61 南京市博物館總館, "南朝真跡南京新出南朝磚印壁畫墓與磚文精選" 江蘇鳳凰美術出版社 2016

      62 王志高, "南朝帝王陵寢初探" (4) : 1999

      63 "南史"

      64 羅宗真, "南京西善橋油坊村南朝大墓的發掘" (6) : 1963

      65 薑林海, "南京西善橋南朝墓" (11) : 1993

      66 南京市博物院, "南京西善橋南朝墓" (1) : 1997

      67 許志強, "南京獅子沖南朝大墓墓主身份的探討" (4) : 2015

      68 南京博物院, "南京棲霞山甘家巷六朝墓群(M6)" (5) : 1976

      69 阮國林, "南京梁桂陽王肖融夫婦合葬墓" (12) : 1981

      70 南京市文物研究所, "南京梁平王蕭偉墓闕發掘報告" (7) : 2002

      71 邵磊, "南京市靈山南朝墓發掘簡報" (11) : 2012

      72 周保華, "南京市雨花台區西善橋南朝劉宋墓" (4) : 2013

      73 李蔚然, "南京太平門外劉宋明曇憘墓" (1) : 1976

      74 霍華, "南京堯化門南朝梁墓發掘簡報" (12) : 1981

      75 南京市博物院, "南京堯化門南朝梁墓發掘簡報" (12) : 1981

      76 尤振克, "南京博物院江蘇丹陽縣胡橋、建山兩座南朝墓葬" (2) : 1980

      77 南京市博物館, "南京南郊六朝謝珫墓" (5) : 1998

      78 劉振東, "冥界的秩序中國古代墓葬制度概論" 文物出版社 2015

      79 王志高, "六朝建康城發掘與研究" 江蘇人民出版社 2015

      80 王志高, "六朝帝王陵寢論述" 20 (20): 2004

      81 "六朝事蹟編類"

      82 李漢祥, "公州 艇止山遺蹟과 編年과 性格" 국립공주박물관 1998

      83 尹根一, "公州 宋山里 古墳 發掘調査 漑報" 문화재관리국 (21) : 1988

      84 임영진, "公州 宋山里 D地區 積石遺構의 性格" 백제문화연구소 1 (1): 109-128, 2013

      85 楊 寬, "中國古代陵寢制度史研究" 上海古籍出版社 1985

      86 劉敦楨, "中國古代建築史" 中國建築工業出版社 1983

      87 (財)東邦文化財研究院, "世宗 坪基里 遺跡" 2015

      88 Albert E. Dien, "Six Dynasties Civilization" 社會科學文獻出版社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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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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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25 0.25 0.2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21 0.34 0.727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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