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북위 통치자가 장기간 수도 평성으로 인력과 물자를 강제로 집결시킨 사실과 ‘운강 모식’의 형성 및 발전이라는 상호 연관된 두 주제를 중심으로 고찰을 시도하였다. 386년 선비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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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북위 통치자가 장기간 수도 평성으로 인력과 물자를 강제로 집결시킨 사실과 ‘운강 모식’의 형성 및 발전이라는 상호 연관된 두 주제를 중심으로 고찰을 시도하였다. 386년 선비족 ...
본고는 북위 통치자가 장기간 수도 평성으로 인력과 물자를 강제로 집결시킨 사실과 ‘운강 모식’의 형성 및 발전이라는 상호 연관된 두 주제를 중심으로 고찰을 시도하였다.
386년 선비족 탁발규가 북위를 건국한 이후 약 한 세기 동안 평성과 그 인근 지역은 북중국의 정치·문화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대규모 인력과 재물이 집중되면서 다양한 대형 건축 사업이 추진되었고, 그중 운강석굴은 그 결정체로 평가된다. 운강석굴은 화평 초년부터 정광 5년까지 60여 년에 걸쳐 조성되었으며, 조성 시기의 변화를 기준으로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는 대표적 특징을 지닌 유형이 확인되는데, 이를 ‘운강 모식’이라 부를 수 있다.
제1기 석굴은 화평 초년 담요가 주관하여 조성한 중부 서측의 다섯 석굴을 가리킨다. 이 석굴들의 양식적 특징은 남아시아·중아시아는 물론 신장과 간쑤 지역에서도 유사한 선례가 발견되지 않아, 5세기 중반 평성의 승속 장인들이 창조한 새로운 모식으로 판단된다. 당시 북중국 각지의 인재와 공예 기술자가 평성에 집결하였으며, 황제를 비롯한 통치층의 적극적인 불교 후원과 서역 불교국가와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예술 요소가 유입되었다. 이러한 복합적 조건 속에서 북위 황실은 동서 문화를 융합하여 독자적 특색을 지닌 제1기 운강 모식을 완성하였다.
제2기 석굴은 대부분 중부 동측에 위치하며, 북위의 한화 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내부 구조는 정교해지고 공예 양식은 섬세해졌으며, 불경을 토대로 한 도상이 다양하게 유행하였다. 불상의 조형은 점차 청수해지고 복식은 포의박대식으로 변모하는 등 남조 양식의 요소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청·제 지역의 확보와 남북 간의 활발한 교류로 인해 운강석굴의 한화가 가속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서역적 요소의 비중은 크게 약화하였다. 낙양 천도 이전의 효문제 시기는 북위 역사상 가장 안정되고 개혁과 창조가 활발히 이루어진 시기로, 운강석굴의 조성 규모는 제1기를 능가하였으며 조형 양식 또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이로써 제2기 운강 모식이 형성되었다.
제3기 석굴은 주로 중·소형 석굴로 이루어지며, 제20굴 서측의 서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 시기에는 석굴 형식이 급격히 다변화되어 운강 전체 양식 중 가장 다양한 형식이 혼재한다. 제2기의 탑묘굴 형식을 계승하면서도 평천장 구조와 방형에 가까운 평면 구성이 발전하였고, 벽면 배치와 조상 구성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난다. 불상과 보살상의 조형은 더욱 청수해졌으며, 한화 복식의 불보살상이 일반화되었다. 낙양 천도 전후에도 운강석굴의 조성은 지속되었으며, 효문제와 선무제 시기의 낙양 용문 고양동·빈양동은 운강석굴의 양식을 계승·모방하였다. 이후 효명제 시기에 낙양의 불사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평성과 함께 운강석굴은 점차 쇠퇴하였다.
운강석굴은 신장 동쪽 지역에서 가장 먼저 출현한 대형 석굴군으로, 북위 황실이 전국의 기술과 인력, 자원을 집중하여 조성하였다. 특히 제1·2기 석굴의 조성 주체는 황실과 그 인척 혹은 측근으로, 이들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새로운 모식은 자연스럽게 북위 영내 석굴 조성의 기준이 되었으며, 이후 각지의 석굴에서도 그 영향을 폭넓게 확인할 수 있다.
통도사성보박물관 소장 필사본 『營造法式』의 특징과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