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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 歷史敎育에서 '統一的多民族國家論'의 대두와 내용 변화 : 歷史敎學大綱(歷史課程標準) (1956∼2016)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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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는 1956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의 역사교육에 반영된 ‘統一的多民族國家論’의 내용 변화를 『歷史敎學大綱(歷史課程標準)』을 중심으로 분석한 것이다.
      중국은 건국 초기 역사교육에서부터 ‘통일적다민족국가론’으로 대변되는 민족주의를 강조했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사회주의 혁명이 민족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내포한 데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중국의 역사교육에서 민족주의가 구현되는 형태는 시대마다 조금씩 달랐다.
      毛澤東 시대(1949∼1976)에는 毛澤東 역사관에 영향을 받아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의 내용이 구성되었다. 毛澤東의 역사관은 유물사관을 골격으로 삼으면서 人民이라는 주체와 계급투쟁을 중시했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에 따라 초기 『歷史敎學大綱』에서는 중국이 ‘통일적다민족국가’로 발전한 근거를 한족과 소수민족 인민이 연대한 계급투쟁에서 찾았다.  
      鄧小平 시대(1978∼1992)에는 毛澤東의 역사관이 기존의 영향력을 상실해갔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생산력 증대와 “民族團結”을 중시하는 역사관이 들어섰다. 이에 따라 한족이 소수민족의 경제적 발전에 영향을 미쳐 둘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유지되었다는 서술이 보다 확대되었다. 또 봉건통치계급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민족단결”에 기여한 봉건통치계급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江澤民이 집권(1992~2004)할 무렵에는 문화보수주의가 대두하고 文化共同體 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교육이 강조되었다. 2001년부터는 기초교육과정 개혁에 따라 역사교육과정 체제가 변하면서 ‘中華民族’이라는 개념이 두 배 이상 빈번하게 언급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歷史課程標準』은 胡錦濤 집권기(2004~2013)를 거쳐 현재까지 적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통일적다민족국가’인 중국을 ‘중화민족’의 국민국가로 전환시키려는 정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이 중국의 역사교육에서 하나의 이론으로 정착하면서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중국사를 바라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의 역사 이해가 민족 바깥의 관점에서 사유되지 못하도록 만들고, 민족주의에서 벗어난 대안적 역사서술에 불쾌감을 느끼는 ‘중화민족’을 길러내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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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1956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의 역사교육에 반영된 ‘統一的多民族國家論’의 내용 변화를 『歷史敎學大綱(歷史課程標準)』을 중심으로 분석한 것이다. 중국은 건국 초기 역사교...

      본 연구는 1956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의 역사교육에 반영된 ‘統一的多民族國家論’의 내용 변화를 『歷史敎學大綱(歷史課程標準)』을 중심으로 분석한 것이다.
      중국은 건국 초기 역사교육에서부터 ‘통일적다민족국가론’으로 대변되는 민족주의를 강조했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사회주의 혁명이 민족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내포한 데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중국의 역사교육에서 민족주의가 구현되는 형태는 시대마다 조금씩 달랐다.
      毛澤東 시대(1949∼1976)에는 毛澤東 역사관에 영향을 받아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의 내용이 구성되었다. 毛澤東의 역사관은 유물사관을 골격으로 삼으면서 人民이라는 주체와 계급투쟁을 중시했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에 따라 초기 『歷史敎學大綱』에서는 중국이 ‘통일적다민족국가’로 발전한 근거를 한족과 소수민족 인민이 연대한 계급투쟁에서 찾았다.  
      鄧小平 시대(1978∼1992)에는 毛澤東의 역사관이 기존의 영향력을 상실해갔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생산력 증대와 “民族團結”을 중시하는 역사관이 들어섰다. 이에 따라 한족이 소수민족의 경제적 발전에 영향을 미쳐 둘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유지되었다는 서술이 보다 확대되었다. 또 봉건통치계급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민족단결”에 기여한 봉건통치계급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江澤民이 집권(1992~2004)할 무렵에는 문화보수주의가 대두하고 文化共同體 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교육이 강조되었다. 2001년부터는 기초교육과정 개혁에 따라 역사교육과정 체제가 변하면서 ‘中華民族’이라는 개념이 두 배 이상 빈번하게 언급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歷史課程標準』은 胡錦濤 집권기(2004~2013)를 거쳐 현재까지 적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통일적다민족국가’인 중국을 ‘중화민족’의 국민국가로 전환시키려는 정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이 중국의 역사교육에서 하나의 이론으로 정착하면서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중국사를 바라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의 역사 이해가 민족 바깥의 관점에서 사유되지 못하도록 만들고, 민족주의에서 벗어난 대안적 역사서술에 불쾌감을 느끼는 ‘중화민족’을 길러내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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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1
      • Ⅱ. 毛澤東의 歷史觀과 ‘統一的多民族國家論’의 대두 6
      • 1. 1956∼62년의 『歷史敎學大綱』: 革命의 동지로서 민족 6
      • Ⅰ. 머리말 1
      • Ⅱ. 毛澤東의 歷史觀과 ‘統一的多民族國家論’의 대두 6
      • 1. 1956∼62년의 『歷史敎學大綱』: 革命의 동지로서 민족 6
      • 2. 1963∼77년의 『歷史敎學大綱』: 漢化와 민족융합 14
      • Ⅲ. 鄧小平 시대의 歷史觀과 ‘統一的多民族國家論’의 변화 19
      • 1. 1978∼85년의 『歷史敎學大綱』: 生産力과 민족 간 경제적 유대
      • 19
      • 2. 1986∼91년의 『歷史敎學大綱』: “民族團結”과 역사인물 평가 변화
      • 23
      • Ⅳ. 江澤民의 國情 인식과 ‘中華民族’ 만들기 31
      • 1. 1992∼2000년의 『歷史敎學大綱』: 文化共同體 意識의 함양 31
      • 2. 2001∼2016년의 『歷史課程標準』: ‘統一的多民族’에서 ‘中華民族’으로
      • 36
      • Ⅴ. 맺음말 41
      • 【참고문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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