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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대 기독교 문명론의 수용과 여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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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개항 이후 외세의 유입과 급격한 사회 변동 속에서 조선의 근대화를 모색했던 개화지식인들은 19세기 말엽에 이르러 서구의 문물뿐 아니라 사상까지 모두 수용하는 문명개화를 추진했다. 문명개화를 주장한 이들은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문명이 융성한 나라이자 궁극적인 개혁 모델로 상정했다. 그리고 미국 사회의 발전 동력이 기독교에서 나왔다고 보았다. 이들은 기독교를 문명 종교로 인식하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백성을 교화시켜 조선 사회를 계몽하고자 했다. 이러한 기독교 문명론은 당시 교육, 의료 활동을 통해 근대문명을 소개했던 내한 선교사들에 의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내한 선교사들은 조선을 비문명국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는 여성의 열악한 지위와 관련이 있었다. 선교사들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한 미국 선교사들은 미국 중산계급의 삶과 가정을 문명의 표준으로 제시하여 여성 지위의 향상과 생활 개선을 도모했다. 이에 따라 미국 사회의 ‘공화국의 아내’, ‘공화국의 어머니’라는 이념적 여성관을 근간으로 한 기독교 여성관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남성과 같이 고등교육을 받고 아내와 어머니로서 국민의 역할을 담당하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선교사들과 기독교를 수용한 조선인들은 신문과 잡지를 통해 의식 개선을 도모하고, 여학교를 설립해 여성교육사업을 실시했다. 기독교계가 실시한 여성교육사업은 남녀의 권리가 동일하며 여성도 문명화를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인식시켰다. 또한 조혼과 축첩제도 등 가정 내의 비문명적 요소를 비판하고 근대적인 가족윤리를 제시했다. 직접적으로는 학교 교육을 통해 기독교 여성관을 정착시키고자 했다.
      도시에는 중등교육기관인 여학교가 설립되었고, 시골에는 각 교회를 중심으로 소학교가 세워져 여아들의 초등교육을 담당했다. 교회에서 운영한 성경반과 사경회는 부녀자들이 근대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기독교의 교세가 확장되면서 여성들은 기독교를 계기로 불평등하고 억압으로 여겼던 삶을 벗어나 부부간의 화목, 사랑이 기반이 된 가정생활을 모색해나갔다. 그리고 점차 서구적 가정 형태와 생활 방식은 문명화된 기독교 가정이 갖춰야 할 모습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한편, 근대 교육의 수혜를 입은 여성들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각하게 되고,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나라를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1920년을 전후로 신여성으로 불렸다. 기독교 신여성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가정주부로 살아가거나 사회에 진출해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거나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기독교 지도자가 되는 등 다양한 진로를 보였다. 이들은 ‘배운 여성’으로서 사회 곳곳에 문명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기독교계가 시행한 여성교육사업의 근저에는 기독교 문명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은 조선을 서구처럼 기독교적 가치를 지닌 문명국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문명화된 기독교 여성의 양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들이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주목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부각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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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항 이후 외세의 유입과 급격한 사회 변동 속에서 조선의 근대화를 모색했던 개화지식인들은 19세기 말엽에 이르러 서구의 문물뿐 아니라 사상까지 모두 수용하는 문명개화를 추진했다. 문...

      개항 이후 외세의 유입과 급격한 사회 변동 속에서 조선의 근대화를 모색했던 개화지식인들은 19세기 말엽에 이르러 서구의 문물뿐 아니라 사상까지 모두 수용하는 문명개화를 추진했다. 문명개화를 주장한 이들은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문명이 융성한 나라이자 궁극적인 개혁 모델로 상정했다. 그리고 미국 사회의 발전 동력이 기독교에서 나왔다고 보았다. 이들은 기독교를 문명 종교로 인식하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백성을 교화시켜 조선 사회를 계몽하고자 했다. 이러한 기독교 문명론은 당시 교육, 의료 활동을 통해 근대문명을 소개했던 내한 선교사들에 의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내한 선교사들은 조선을 비문명국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는 여성의 열악한 지위와 관련이 있었다. 선교사들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한 미국 선교사들은 미국 중산계급의 삶과 가정을 문명의 표준으로 제시하여 여성 지위의 향상과 생활 개선을 도모했다. 이에 따라 미국 사회의 ‘공화국의 아내’, ‘공화국의 어머니’라는 이념적 여성관을 근간으로 한 기독교 여성관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남성과 같이 고등교육을 받고 아내와 어머니로서 국민의 역할을 담당하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선교사들과 기독교를 수용한 조선인들은 신문과 잡지를 통해 의식 개선을 도모하고, 여학교를 설립해 여성교육사업을 실시했다. 기독교계가 실시한 여성교육사업은 남녀의 권리가 동일하며 여성도 문명화를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인식시켰다. 또한 조혼과 축첩제도 등 가정 내의 비문명적 요소를 비판하고 근대적인 가족윤리를 제시했다. 직접적으로는 학교 교육을 통해 기독교 여성관을 정착시키고자 했다.
      도시에는 중등교육기관인 여학교가 설립되었고, 시골에는 각 교회를 중심으로 소학교가 세워져 여아들의 초등교육을 담당했다. 교회에서 운영한 성경반과 사경회는 부녀자들이 근대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기독교의 교세가 확장되면서 여성들은 기독교를 계기로 불평등하고 억압으로 여겼던 삶을 벗어나 부부간의 화목, 사랑이 기반이 된 가정생활을 모색해나갔다. 그리고 점차 서구적 가정 형태와 생활 방식은 문명화된 기독교 가정이 갖춰야 할 모습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한편, 근대 교육의 수혜를 입은 여성들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각하게 되고,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나라를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1920년을 전후로 신여성으로 불렸다. 기독교 신여성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가정주부로 살아가거나 사회에 진출해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거나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기독교 지도자가 되는 등 다양한 진로를 보였다. 이들은 ‘배운 여성’으로서 사회 곳곳에 문명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기독교계가 시행한 여성교육사업의 근저에는 기독교 문명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은 조선을 서구처럼 기독교적 가치를 지닌 문명국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문명화된 기독교 여성의 양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들이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주목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부각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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