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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부장적 개발 내셔널리즘과 낭만적 위선의 균열: 1960년대 『여원』의 연애 담론 연구 = Patriarchal Nationalism of Development and Exposure of Romantic Hypocrisy : a study on the love discourse of the woman’s magazine Yoewon in the 196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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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ssued from the 1955, Yeowon became the most popular woman’s magazine in Korea until it ended to be issued in 1970. In this paper, I searched the love discourse of the magazine to learn how love, marriage and sexuality of Korean woman were discussed and regulated under the trend of Korean development nationalism in the 1960s and how the woman’s stance was reflected in the modernization system of the period.
      In the early 1960s, the generation of 4.19 asserted freedom of love out of the belief on the theoretical concept of the self and freedom, which the generation learned as a favorable ideal of democracy though they could not have experienced the ideal within their environment. However, as the military regime reinforced, young generation’s assertion was retreated, and Yeowon started to emphasize on the role of a homemaker based on a patriarchal family system, so that the modernization of love and marriage was integrated into the nation's development plan by renaming the virtue of traditional morality as woman’s intrinsic value. On the other hand, as the concept of ‘yeonae’(love) was generalized and the experience of love was accumulating, there arisen a scepticism on the idea of sublime and lasting love. With this scepticism, the divorce rate was increased, and the free-wife’s discourse was seething fiercely. The discourse on free-wives(Chayu-buin) of the 1960s was different from that of the 1950s, in that it was generated with the tendency for some women to determine to reject the gender role given to a woman within the trend of capitalism which revealed outspoken affirmation on the desire for sex and material. In the background of the free-wife’s discourse, thoughts and experiences that deviated from the integrated authority of the discourse traveled across intricately, while the violent nature of man’s patriarchism and the expedient nature of woman’s opportunism riding on the very patriarchism were revealed and exposed breaking through the shield of ideology of romantic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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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ued from the 1955, Yeowon became the most popular woman’s magazine in Korea until it ended to be issued in 1970. In this paper, I searched the love discourse of the magazine to learn how love, marriage and sexuality of Korean woman were discussed...

      Issued from the 1955, Yeowon became the most popular woman’s magazine in Korea until it ended to be issued in 1970. In this paper, I searched the love discourse of the magazine to learn how love, marriage and sexuality of Korean woman were discussed and regulated under the trend of Korean development nationalism in the 1960s and how the woman’s stance was reflected in the modernization system of the period.
      In the early 1960s, the generation of 4.19 asserted freedom of love out of the belief on the theoretical concept of the self and freedom, which the generation learned as a favorable ideal of democracy though they could not have experienced the ideal within their environment. However, as the military regime reinforced, young generation’s assertion was retreated, and Yeowon started to emphasize on the role of a homemaker based on a patriarchal family system, so that the modernization of love and marriage was integrated into the nation's development plan by renaming the virtue of traditional morality as woman’s intrinsic value. On the other hand, as the concept of ‘yeonae’(love) was generalized and the experience of love was accumulating, there arisen a scepticism on the idea of sublime and lasting love. With this scepticism, the divorce rate was increased, and the free-wife’s discourse was seething fiercely. The discourse on free-wives(Chayu-buin) of the 1960s was different from that of the 1950s, in that it was generated with the tendency for some women to determine to reject the gender role given to a woman within the trend of capitalism which revealed outspoken affirmation on the desire for sex and material. In the background of the free-wife’s discourse, thoughts and experiences that deviated from the integrated authority of the discourse traveled across intricately, while the violent nature of man’s patriarchism and the expedient nature of woman’s opportunism riding on the very patriarchism were revealed and exposed breaking through the shield of ideology of romantic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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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960년대 초반, 『여원』은 4.19의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청년 세대의 발언을 통해 ‘자아’와 ‘자유’의 이념에 바탕을 둔 ‘연애’의 자율성을 주창했지만 실제 역사나 경험과 유리된 무균질적인 이상은 군사 권력에 의해 국가주의가 부활하면서 곧바로 쇠잔해 갔다. 군사 정권의 개발 내셔널리즘이 강화되면서 『여원』은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기반하여 주부 역할을 강조했고, 사랑과 결혼의 근대화는 ‘자유’에 선행하는 ‘덕성’의 호명을 통해 국가 발전의 기획 내부로 통합되었다. 전통을 배격했던 근대화 권력이 여성의 덕성이라는 측면에서 부분적, 선별적으로 전통을 재호명함으로써, 서구 근대와 전통은 여성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율배반적으로 접속했다. 전통비판과 개발주의가 근대화를 추진하는 원심력으로 작동했다면 여성성의 가치로 재호명된 덕성은 물질적인 근대의 비인간적 질주를 통어하는 구심력으로 여성을 강박했다. 여성의 관용과 희생의 이름으로 호명된 전통 윤리는 개발 근대화에 걸림돌이 되는 사적인 욕망들을 효과적으로 제어함으로써 사적인 삶과 공적인 개발을 갈등 없이 통합하는 가부장적 개발 내셔널리즘 체제를 성립시켰다.
      가부장적 근대화가 추진되는 한편에서는 이혼율이 증가하고 자유부인 담론이 비등했다. 1960년대의 자유부인은, 戰後의 그것과 달리, 성욕과 물욕을 긍정하는 자본주의화 된 세계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성역할에 대한 저항과 거부의 의지를 함축했다. 1950년대의 자유부인이 아프레걸을 모방한 존재였다면, 1960년대의 자유부인은 젠더화된 근대성의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일그러진 정상성을 반증하는 경계인들이었다. 자유부인 담론의 이면에는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가 은폐했던 젠더 억압의 가부장적 폭력성과 그에 편승한 타산적 편의주의에 대한 적나라한 자각이 노출되고 있었으며, 담론의 통합적 권력에서 벗어나는 이질적 사고와 경험들이 복잡하게 횡단했다. 낭만적 사랑의 이념에 충실했던 50년대의 ‘아프레걸-자유부인’과 달리, 60년대의 자유부인은 사랑의 영원성에 대한 경험적 회의나 순결하고 신성한 사랑의 이념이 지니는 허위와 위선의 노출 속에 존재했으며, 따라서 60년대 자유부인 담론의 이면에는 성적 순결성과 혼인제도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러나 현모양처의 이데올로기에 여성 스스로가 소망을 일치시키는 자발적 동화가 지배적인 가운데, 매체의 ‘지식-권력’이 선택했던 것은 가부장 부재의 불안의식보다는 강력한 가부장에 대한 의존심리였다.
      『여원』이 독보적으로 실어날랐던 성 담론은 본원론적 과학진단을 가장하여 가부장적 성역할의 구획과 젠더화된 국가주의를 보조했다. 196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과감하고 도발적인 성격을 가속화했던 성 담론은 표면적으로는 이데올로기의 표준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가상의 저항을 통해 있을 수 있는 반발을 보충함으로써 오히려 지배 제도와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데 복무하는 존속의 알리바이를 제공했다. 그러나 낭만적 사랑의 위선에 대한 의식적 자각과 성 담론이 제기한 미시적 균열들은 아프레걸론, 자유부인론으로 집약되는 가부장적 통제의지와 그로부터 빚어진 숭고한 사랑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1970년대 청년문화의 저항의식을 매개하는 촉매의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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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초반, 『여원』은 4.19의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청년 세대의 발언을 통해 ‘자아’와 ‘자유’의 이념에 바탕을 둔 ‘연애’의 자율성을 주창했지만 실제 역사나 경험과 유리된 무균...

      1960년대 초반, 『여원』은 4.19의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청년 세대의 발언을 통해 ‘자아’와 ‘자유’의 이념에 바탕을 둔 ‘연애’의 자율성을 주창했지만 실제 역사나 경험과 유리된 무균질적인 이상은 군사 권력에 의해 국가주의가 부활하면서 곧바로 쇠잔해 갔다. 군사 정권의 개발 내셔널리즘이 강화되면서 『여원』은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기반하여 주부 역할을 강조했고, 사랑과 결혼의 근대화는 ‘자유’에 선행하는 ‘덕성’의 호명을 통해 국가 발전의 기획 내부로 통합되었다. 전통을 배격했던 근대화 권력이 여성의 덕성이라는 측면에서 부분적, 선별적으로 전통을 재호명함으로써, 서구 근대와 전통은 여성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율배반적으로 접속했다. 전통비판과 개발주의가 근대화를 추진하는 원심력으로 작동했다면 여성성의 가치로 재호명된 덕성은 물질적인 근대의 비인간적 질주를 통어하는 구심력으로 여성을 강박했다. 여성의 관용과 희생의 이름으로 호명된 전통 윤리는 개발 근대화에 걸림돌이 되는 사적인 욕망들을 효과적으로 제어함으로써 사적인 삶과 공적인 개발을 갈등 없이 통합하는 가부장적 개발 내셔널리즘 체제를 성립시켰다.
      가부장적 근대화가 추진되는 한편에서는 이혼율이 증가하고 자유부인 담론이 비등했다. 1960년대의 자유부인은, 戰後의 그것과 달리, 성욕과 물욕을 긍정하는 자본주의화 된 세계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성역할에 대한 저항과 거부의 의지를 함축했다. 1950년대의 자유부인이 아프레걸을 모방한 존재였다면, 1960년대의 자유부인은 젠더화된 근대성의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일그러진 정상성을 반증하는 경계인들이었다. 자유부인 담론의 이면에는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가 은폐했던 젠더 억압의 가부장적 폭력성과 그에 편승한 타산적 편의주의에 대한 적나라한 자각이 노출되고 있었으며, 담론의 통합적 권력에서 벗어나는 이질적 사고와 경험들이 복잡하게 횡단했다. 낭만적 사랑의 이념에 충실했던 50년대의 ‘아프레걸-자유부인’과 달리, 60년대의 자유부인은 사랑의 영원성에 대한 경험적 회의나 순결하고 신성한 사랑의 이념이 지니는 허위와 위선의 노출 속에 존재했으며, 따라서 60년대 자유부인 담론의 이면에는 성적 순결성과 혼인제도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러나 현모양처의 이데올로기에 여성 스스로가 소망을 일치시키는 자발적 동화가 지배적인 가운데, 매체의 ‘지식-권력’이 선택했던 것은 가부장 부재의 불안의식보다는 강력한 가부장에 대한 의존심리였다.
      『여원』이 독보적으로 실어날랐던 성 담론은 본원론적 과학진단을 가장하여 가부장적 성역할의 구획과 젠더화된 국가주의를 보조했다. 196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과감하고 도발적인 성격을 가속화했던 성 담론은 표면적으로는 이데올로기의 표준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가상의 저항을 통해 있을 수 있는 반발을 보충함으로써 오히려 지배 제도와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데 복무하는 존속의 알리바이를 제공했다. 그러나 낭만적 사랑의 위선에 대한 의식적 자각과 성 담론이 제기한 미시적 균열들은 아프레걸론, 자유부인론으로 집약되는 가부장적 통제의지와 그로부터 빚어진 숭고한 사랑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1970년대 청년문화의 저항의식을 매개하는 촉매의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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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앤소니 기든스,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새물결 1999

      2 김성보, "한국현대생활문화사 : 1960년대" 창비 2016

      3 이영미,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 : 《장한몽》에서 <모래시계>까지" 푸른역사 2016

      4 김은실, "한국 근대화 프로젝트의 문화 논리와 가부장성" 생각의 나무 (8) : 79-100, 1999

      5 김복순, "전후 여성교양의 재배치와 젠더정치" 한국여성문학학회 18 (18): 7-60, 2007

      6 김은하, "전후 국가 근대화와 “아프레 걸(전후 여성)” 표상의 의미" 한국여성문학학회 (16) : 177-209, 2006

      7 여성문학학회 여원 연구모임, "여원 연구 : 여성, 교양, 매체" 국학자료원 2008

      8 권보드래, "1960년을 묻다: 박정희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 천년의상상 2012

      9 최경희, "1960년대 여성지를 통해 본 ‘교양의 레짐’ 연구 -『가정생활』, 『여상』, 『여원』에 나타난전통․국민․감정의 동원체제를 중심으로-" 우리문학회 (48) : 89-112, 2015

      10 송인화, "1960년대 『여원』 연재소설 연구 - 연애담론의 사회, 문화적 의미를 중심으로" 한국여성문학학회 19 (19): 293-336, 2008

      1 앤소니 기든스,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새물결 1999

      2 김성보, "한국현대생활문화사 : 1960년대" 창비 2016

      3 이영미,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 : 《장한몽》에서 <모래시계>까지" 푸른역사 2016

      4 김은실, "한국 근대화 프로젝트의 문화 논리와 가부장성" 생각의 나무 (8) : 79-100, 1999

      5 김복순, "전후 여성교양의 재배치와 젠더정치" 한국여성문학학회 18 (18): 7-60, 2007

      6 김은하, "전후 국가 근대화와 “아프레 걸(전후 여성)” 표상의 의미" 한국여성문학학회 (16) : 177-209, 2006

      7 여성문학학회 여원 연구모임, "여원 연구 : 여성, 교양, 매체" 국학자료원 2008

      8 권보드래, "1960년을 묻다: 박정희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 천년의상상 2012

      9 최경희, "1960년대 여성지를 통해 본 ‘교양의 레짐’ 연구 -『가정생활』, 『여상』, 『여원』에 나타난전통․국민․감정의 동원체제를 중심으로-" 우리문학회 (48) : 89-112, 2015

      10 송인화, "1960년대 『여원』 연재소설 연구 - 연애담론의 사회, 문화적 의미를 중심으로" 한국여성문학학회 19 (19): 293-336, 2008

      11 최경희, "1960~1970년대 여성지를 통해본 근대화의 젠더 양상 연구 -『여원』, 『여상』, 『주부생활』에 나타난 근대화의 혼종적 성격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20 (20): 313-331, 2016

      12 장미경, "1960-70년대 가정주부(아내)의 형성과 젠더정치: 여원, 주부생활 잡지 담론을 중심으로" 사회과학연구소 15 (15): 142-180, 2007

      13 김지영, "1950년대 여성잡지 『여원』 의 연재소설 연구 -연애 담론의 소설적 형상화를 중심으로-" 한국여성문학학회 (30) : 347-384, 2013

      14 김현주, "1950년대 여성잡지 <여원>과 ‘제도로서의 주부’의 탄생" 대중서사학회 (18) : 387-4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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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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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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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6 0.76 0.9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 0.78 1.791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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