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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조선시기제주 동부지역의교통로와 普門寺址 = Traffic Roads and Bomunsaji(普門寺址) in the East of Jeju in the Goryeo and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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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status and role of (the site of) Bomunsa Temple located in the middle mountainous region of Jeju Island. The study focused on the fact that this temple is assumed to have been built during the Goryeo era, b...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status and role of (the site of) Bomunsa Temple located in the middle mountainous region of Jeju Island. The study focused on the fact that this temple is assumed to have been built during the Goryeo era, but lasted until the late Joseon. The fact that historical records about Jeju’s temples during the Goryeo era found in various town annals including Jeongsaryu and that the ancient maps of Jeju created during the Joseon era clearly mark the location of Bomunsa Temple suggests that the temple did not perform religious roles only.
      It is highly likely that Bomunsa Temple functioned as a stopover for the district magistrate’s tour from Jeju-mok District to Jeongui-hyeon County and as a lodging for travelers. As suggested in previous studies reporting that this temple was located on an important traffic route and provided travelers with convenience and relaxation, it is remarkable that the temple did not function only as a simple religious institution but also as a facility to enhance the convenience of travel, unlike central Buddhist temples.
      Jeju was incorporated into the local administrative system of Goryeo in 1105 (10th year of King Sukjong), and is thought to have developed a different culture from that of the previous era in various fields under the rule of magistrates constantly dispatched by the central government. In particular, with the state and temple led manual industry that seemed to have expanded in the region during this period, it is considered that the island produced various items used by government offices and temples. By producing a variety of Buddhist items supplied to the 15 temples of Goryeo that are identified in the relevant historical sources and fulfilling advanced functions in different areas including construction, Jeju society achieved a rapid growth since its incorporation into the central government.
      Therefore, Bomunsa Temple is also considered to have performed not only for producing Buddhist items, but also for enhancing the convenience of travel. It seems that the culture and tradition of the temple were continued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the temple served a special role for the tour of the district magistrate, so that its location was marked on various maps made around the 17th century. To identify the status of Jeju’s Buddhism during the Goryeo era, this study focused on the function of Bomunsa Temple, for it is highly likely to serve as a basic clue to understand the social contribution of Buddhism to Jeju society and the degree of its cultural preva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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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 위치한 보문사(지)의 위상과 역할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보문사의 창건은 고려시기로 추정되지만 조선후기까지 존속하였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고려시대 ...

      본고는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 위치한 보문사(지)의 위상과 역할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보문사의 창건은 고려시기로 추정되지만 조선후기까지 존속하였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고려시대 제주의 사찰에 대한 문헌 기록이 正史類를 비롯한 읍지 등에 잘 남아 있고, 조선시대 제작된 제주의 고지도에도 보문사의 위치가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다는 점은 단순히 종교적 기능에만 머무르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문사는 제주목에서 정의현으로 이어지는 목사 순행길의 중간 기착지로 기능을 수행함과 동시에 오가는 행인들의 숙박지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원이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하여 편의와 휴식을 제공하였다는 기존의 연구 성과들이 확인된다는 점에서 제주의 보문사는 중앙의 사찰과 같이 단순한 종교 기능 외에 여행자의 편의를 적극 돕는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점이 부각된다.
      특히 제주는 1105년(숙종 10)에 고려 정부의 지방행정에 편입되었고 이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중앙의 수령 파견으로 여러 분야에서 이전 시기와는 다른 양상의 문화 전개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시기에 확대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관영수공업과 사원수공업은 관청과 사찰에 직접적으로 소용되었을 여러 물품들을 생산, 공급하였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헌에서 확인되는 고려시대의 사찰 15곳에 공급되었을 僧物을 포함하여 건축기술과 같은 고급 기능 등은 당시 중앙에 편입된 제주사회의 빠른 발전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문사 또한 자체 승물의 제작에 그치지 않고 여행자들의 편의를 돕는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문화전통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17세기 전후에 제작된 여러 고지도의 곳곳에 표시될 정도로 그 위상은 목사의 순행길에서도 특별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고려시대 제주 불교의 정체성과 위상을 확인함에 있어서 보문사지의 기능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당시 제주사회에 끼친 불교의 사회적 기여 정도와 문화적 확장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초적 단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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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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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제주문화원, "(국역) 增補耽羅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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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3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rklife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lklife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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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3 0.63 0.6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8 0.66 1.486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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