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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조선후기 연안항해와 外洋航路의 개척 = The Exploitation of Ocean Passage in the latter per iod of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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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3538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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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해금정책(海禁政策)을 고수했던 조선정부는 대명률을 근거로 외양항해를 금지하였다. 외양항해금지령을 어겼을 경우 뱃사람뿐만 아니라 해당지역의 수령이나 병수사(兵水使)도 처벌하였 ...

      해금정책(海禁政策)을 고수했던 조선정부는 대명률을 근거로 외양항해를 금지하였다. 외양항해금지령을 어겼을 경우 뱃사람뿐만 아니라 해당지역의 수령이나 병수사(兵水使)도 처벌하였 다. 낮에는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목표물을 통해 방향을 잡았고, 밤에는 별자리를 관측하여 항해하는 것이 연안항해의 일반적 항해술이었다. 연안 항해를 규정하는 것은 조류와 바람이 었다. 바람이 없을 경우 소형 선박들이 뒤에서 노로 밀어 대형선박의 운항을 돕기도 했다. 야간이나 안개가 끼었을 경우 나침반을 활용하여 방향을 잡았 다. 야간항해도 주간항해에 비해 위험 했지만 일반적으로 행해졌다.
      조선후기에는 선박의 규모가 점차 커졌다. 대형선박이 수심이 낮고 암초가 많은 해역을 통과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외양항로를 택하여 운항하였다. 외양항로는 바람을 제어할 수만 있다면 연안항해에 비해 훨씬 빨랐다. 외양항해는 18세기 후반 대형선 박을 소유한 경강선인(京江船人)과 선상(船商)이 선도하고, 조운선과 지토선과 어선이 합류하면서 19세기에는 점차 보편화되어 갔다. 특히 연해지역의 개발로 인해 경제적 이익을 선점하려는 연해주민들의 모험심이 외양항해를 더욱 촉진시켰다.
      고려시대에 비해 후퇴했지만, 조선 시대의 해운은 정체 상태로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개항이후 서양 기선이 주도하는 외양항해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조선의 뱃사람들도 외양항해의 이점을 충분히 인지하여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시대 해운이 도달한 수준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해운에서 조선사회의 내재적 발전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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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Chosun government which adhered to the strategy of sea defense prohibited the marine voyage on the basis of the Great Ming Code. The violation of the rules of marine voyage ban was subject to the punishment not only sailors but also the governor, ...

      The Chosun government which adhered to the strategy of sea defense prohibited the marine voyage on the basis of the Great Ming Code. The violation of the rules of marine voyage ban was subject to the punishment not only sailors but also the governor, commander of army & navy in the concerned district. The direction of the daytime Coastal voyage was taken through identifiable objects by naked eyes, and at night the voyage was performed by observing constellations.
      The voyage of costal area was determined by the tide & wind. If there was no wind, the voyage of large ships was assisted by the push of small ships behind with their oars. At night or foggy days, the direction was taken by the use of compass. It was taken 20 days from southern coastal region of Jeonla, 7∼9 days from coastal area of south of Geumgang, and 8 days from Geum River Estuary for a transport ship to arrives at Seoul. But the large ship sailed through by taking the Ocean passage due to the difficulty of sailing in low depth & many sea reefs costal passages. The Ocean passage was much faster than the costal voyage provided the wind can be controlled.
      The Ocean voyage gradually became common in the latter period of the 18th century by the lead of Han river sailors & maritime merchants as well as joining grain transport ships, local ships, and fishery ships. Specially, in connection with the development of the coastal areas, the adventurism of coastal residents who intended to take advantage from it promoted further the Ocean voyage.
      Though there could not be matched with the Ocean voyage led by steamships of western countries after the period of open port, but those sailors of Chosun dynasty performed about it through complete recognition of the merit of Ocean voyage. This not only indicated the level of shipping transport attained by Chosun dynasty but being an example to have shown the Intrinsic development of shipping in the Chosu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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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1. 머리말
      • 2. 외양항해 금지정책
      • 3. 연안항해의 항해술과 속도
      • 1) 연안항해의 항해술
      • 2) 연안항해의 속도
      • 1. 머리말
      • 2. 외양항해 금지정책
      • 3. 연안항해의 항해술과 속도
      • 1) 연안항해의 항해술
      • 2) 연안항해의 속도
      • 4. 외양항로의 개척
      •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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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吉田光男, "李朝末期の漕倉構造と漕運作業の一例:漕行日錄にみる1875年の聖堂倉" 113 : 1984

      2 김문경, "해상활동, In 한국사 9-통일신라" 국사편찬위원회 1998

      3 나애자, "한국근대해운업사연구" 국학자료원 1998

      4 정진술, "한국고대의 해상교통로" 한국해양전략연구소 2009

      5 Angela Schottenhammer, "중국의 상업에 대한 역사적 고찰-명 (1368-1644)초의 해금정책과 그 해제(1567)」" 25 : 2005

      6 최완기, "조선후기 선운업사연구" 일조각 1989

      7 고동환, "조선후기 서울상업발달사 연구" 지식산업사 1998

      8 고동환, "조선후기 상업과 국가권력" 9 : 2005

      9 고동환, "조선후기 錦江水運과 浦口市場圈" 호서사학회 (43) : 101-138, 2006

      10 吉田光男, "조선후기 稅穀輸送船의 운항양상에 관한 定量分析 시도―19세기 삼남지방의 경우, In 민족사의 전개와 그 문화(상)" 창작과 비평사 1990

      1 吉田光男, "李朝末期の漕倉構造と漕運作業の一例:漕行日錄にみる1875年の聖堂倉" 113 : 1984

      2 김문경, "해상활동, In 한국사 9-통일신라" 국사편찬위원회 1998

      3 나애자, "한국근대해운업사연구" 국학자료원 1998

      4 정진술, "한국고대의 해상교통로" 한국해양전략연구소 2009

      5 Angela Schottenhammer, "중국의 상업에 대한 역사적 고찰-명 (1368-1644)초의 해금정책과 그 해제(1567)」" 25 : 2005

      6 최완기, "조선후기 선운업사연구" 일조각 1989

      7 고동환, "조선후기 서울상업발달사 연구" 지식산업사 1998

      8 고동환, "조선후기 상업과 국가권력" 9 : 2005

      9 고동환, "조선후기 錦江水運과 浦口市場圈" 호서사학회 (43) : 101-138, 2006

      10 吉田光男, "조선후기 稅穀輸送船의 운항양상에 관한 定量分析 시도―19세기 삼남지방의 경우, In 민족사의 전개와 그 문화(상)" 창작과 비평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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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김문경, "장보고-해양경영사연구" 도서출판 이진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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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문경호, "1123년 徐兢의 고려 항로와 慶源亭" 한국중세사학회 (28) : 485-5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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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20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DONG BANG HAK CHI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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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23 1.23 1.1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6 0.97 2.154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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