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식민지 도시지역정치의 한 사례로서 1920년대 경성시구개수의 이관과 수익세 제정 논란을 검토한 것이다. 원래 시구개수는 1910년대 총독부의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192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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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이 글은 식민지 도시지역정치의 한 사례로서 1920년대 경성시구개수의 이관과 수익세 제정 논란을 검토한 것이다. 원래 시구개수는 1910년대 총독부의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1920년대 ...
이 글은 식민지 도시지역정치의 한 사례로서 1920년대 경성시구개수의 이관과 수익세 제정 논란을 검토한 것이다. 원래 시구개수는 1910년대 총독부의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1920년대 들어 사업의 진척이 부진하자 경성부가 시구개수를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했다. 그리고 그를 위한 유력한 재원으로 수익세 제정이 논의되었다. 그런데 수익세라는 거액의 준조세를 새롭게 제정하는 문제는 총독부, 경성부, 재경성 일본인 유력자, 조선인 친일유력자 등 여러 주체 간의 다면적인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수익세 징수가 민족별 손익이 분명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지방제도 개정으로 도시에서 지역 개발 현안에 대한 여론이 조성되는 장이 일정하게 열린 ‘1920년대 문화통치’의 조건에서 이전과 달리 표면화되었다.
경성부와 재경성 일본인 유력자들은 수익세 제정에 적극적이었다. 그에 반해 조선인 친일유력자들은 수익세 제정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에 대한 조선인의 반대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다. 조선인 친일유력자들은 물론 식민지권력의 협력자였다. 하지만 그들의 지역정치 활동의 기반은 조선인의 여론이었다. 또한 재정적 부담이 큰 경성의 도시 개발 사업에 부정적이었던 총독부 수뇌부도 수익세 제정에 반대했다. 이 점도 조선인 친일유력자들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대립 과정에서 경성부는 시구개수의 이관을 성공시키기 위해 시구개수의 규모와 수익세의 적용 범위를 재고하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경성부라는 지역 단위 식민지권력의 구상이 총독부라는 더 상위의 권력, 그리고 지역의 일본인ㆍ조선인 유력자들의 정치적 기동과 부딪치면서 조정되어 나가는 ‘지역정치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복합적 과정을 거쳐 도달한 ‘합의’는 총독부의 기준에 의해 간단하게 무효화되었다. 이 점은 식민지 지역정치의 근원적 한계를 지시해 준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analyses the argument on transfer of control of the Kyungseong City Street Improvement project and taxation on its beneficiaries, as an example of colonial urban politics. As the project of enhancement of the colonial capital, initiated b...
This article analyses the argument on transfer of control of the Kyungseong City Street Improvement project and taxation on its beneficiaries, as an example of colonial urban politics. As the project of enhancement of the colonial capital, initiat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in the 1910’s, was delayed in the 1920’s, some argued that the project should be transferred to the Kyungseong City Government, with funds financed by taxing the beneficiaries from the project. However, establishing a new quasi-tax, which would collect a large sums of money, provoked multi-pronged disputes among the Government General, Kyungseong City Government, influential figures of Japanese immigrant community and their Korean counterparts of pro-Japanese inclination, for the new tax would cause a clear loss and gain for different national groups. The dispute was able to surface due to the so-called “Cultural Government” of the 1920’s, when public opinions on issues of developing regions could be exchanged more openly through the revision of the regional systems.
The colonial capital government and Japanese colonial leaders in Kyungseong community welcomed the new taxation, while Korean pro-colonialist men of influence vehemently opposed it, voicing fellow Korean people’s interest. They, of course, were partners of colonial government in general, but couldn’t afford to ignore their compatriots’ opinion, which formed the basis for their local political activities. One of the factors was that the Government General also had a negative view on it, apprehending financial burden the city development projects would incur.
Among the disputes, the Kyungseong City Government revised the scale of the project and the scope of assessment of taxation in order to successfully take up the control of it. The process can be viewed as an example of local politics, where opinions of local leaders of Japanese and Korean communities collided and attempted to find an agreement. However, the “agreement” met through the complex process involving a number of interested parties was simply nullified by the standard set by the Government General, which showed an ultimate limitation in colonial urban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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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기 조선 거주 일본인들의 조선농촌진흥교육 -특수사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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