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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고자료로 본 조선시대의 젓가락 연구 = Use of Chopsticks during Joseon Dynasty reflecting the archaeological evid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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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213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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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겪게 되는 가장 큰 사회적 변화는 정치 이념이 성리학 으로 바뀌었다는 것이고 성리학적 가치를 현실세계에 실현하기 위한 많은 조치 가 이어졌을 것이다. 고려시대까지 숟가락과 젓가락, 그리고 많은 양의 도자기를 부장하는 풍습은 고려시대 이래 중국 북방민족과의 교류에서 시작된 것으로 성 리학적 지배질서를 대변하는 장례서인 주자가례와 부합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 다고 하여도 고려시대 이래의 장속이 변화하여 새로운 장속이 정착되기까지 전 쟁과 기아 등의 상황을 합하여 조선의 개국 이후 200년이 넘게 소요되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장속은 일변하여 분묘에 수저를 부장하는 경우는 거의 사라지고 백자 사발에 상평통보 한 두점이 부장품의 전부이고 그나마 아예 넣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한 장속의 변화에도 숟가락은 조선시대 전체의 밥상 을 지킨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장속은 변하였다고 하여도 밥과 국, 그리고 반 찬을 주로 하는 구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묘 출토 자료로 본 조선전기 젓가락의 사용은 상당히 미미한 수준이다. 임진 왜란과 병자호란이 끝이 나고 경신대기근을 지나 18세기에 들어 영정조시기 정 국의 안정은 임란이후 조선에 유입된 새로운 음식물의 등장과 새로운 조리서의 발간, 저장음식의 발달 등 당시의 밥상을 더욱 풍부하게 하여주었을 것으로 생각 된다. 이 시기에 제작된 풍속화에 젓가락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그려지게 되는 것은 젓가락의 사용이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자료로 볼 수 있다. 또한 젓가락 사용의 확대는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성리학의 발달로 가례가 일반화되어 가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가례에 있어 사용하는 그릇이나 도구, 음식들이 일원화되어 간다는 것으로 가례에 있어 음식을 덜거나 옮기는데 필수적인 젓가락 또한 그 사용이 일반화되어 가는 하나의 단초가 되었 을 것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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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겪게 되는 가장 큰 사회적 변화는 정치 이념이 성리학 으로 바뀌었다는 것이고 성리학적 가치를 현실세계에 실현하기 위한 많은 조치 가 이어졌을 것이다.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겪게 되는 가장 큰 사회적 변화는 정치 이념이 성리학 으로 바뀌었다는 것이고 성리학적 가치를 현실세계에 실현하기 위한 많은 조치 가 이어졌을 것이다. 고려시대까지 숟가락과 젓가락, 그리고 많은 양의 도자기를 부장하는 풍습은 고려시대 이래 중국 북방민족과의 교류에서 시작된 것으로 성 리학적 지배질서를 대변하는 장례서인 주자가례와 부합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 다고 하여도 고려시대 이래의 장속이 변화하여 새로운 장속이 정착되기까지 전 쟁과 기아 등의 상황을 합하여 조선의 개국 이후 200년이 넘게 소요되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장속은 일변하여 분묘에 수저를 부장하는 경우는 거의 사라지고 백자 사발에 상평통보 한 두점이 부장품의 전부이고 그나마 아예 넣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한 장속의 변화에도 숟가락은 조선시대 전체의 밥상 을 지킨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장속은 변하였다고 하여도 밥과 국, 그리고 반 찬을 주로 하는 구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묘 출토 자료로 본 조선전기 젓가락의 사용은 상당히 미미한 수준이다. 임진 왜란과 병자호란이 끝이 나고 경신대기근을 지나 18세기에 들어 영정조시기 정 국의 안정은 임란이후 조선에 유입된 새로운 음식물의 등장과 새로운 조리서의 발간, 저장음식의 발달 등 당시의 밥상을 더욱 풍부하게 하여주었을 것으로 생각 된다. 이 시기에 제작된 풍속화에 젓가락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그려지게 되는 것은 젓가락의 사용이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자료로 볼 수 있다. 또한 젓가락 사용의 확대는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성리학의 발달로 가례가 일반화되어 가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가례에 있어 사용하는 그릇이나 도구, 음식들이 일원화되어 간다는 것으로 가례에 있어 음식을 덜거나 옮기는데 필수적인 젓가락 또한 그 사용이 일반화되어 가는 하나의 단초가 되었 을 것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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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biggest social event during the novel Joseon Dynasty would be the introduction of the Neo-Confucianism to the social system and political ideology, and there must have been several attempts to accept the new concept in their society. The tradition of Goryeo which buried diverse objects such as spoons, chopsticks and celadon to the tombs had been commenced since Goryeo was highly involved with the Northern people in China. According to the Confucian Ritualism, however, which was main initiative of Joseon idealism of that time, the tradition of Goryeo was not in accordance with the Joseon. In the meantime, the tradition of the funeral had kept changed since Goryeo, and this took more than 200 years to settle the funeral system of Joseon. During the late Joseon, the tradition of funeral had been changed which buried less spoons or few white celadon and coins into the tombs. To a certain extent, no more burial goods were usually found in the tombs. Although the funeral system had been changed, it should be highlighted that spoons were still the main utensils of dining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refore, the primary dining composition was still rice, soup and dishes. From the evidence found in the tombs, the usage of chopsticks of early Joseon was quite rare. After the Japanese Invasion, Manchu Invasion and Great Famine, Joseon’s cuisine from the ingredients to diet, preserving techniques and publication of new recipe had been introduced in 18th Joseon. Given the painting which was drawn in this period, people who hold chopsticks were the solid evidence that chopsticks were highly used in this period. Also it is presumed that chopsticks were developed with the normalization of auspicious confucian ceremony. During the ceremony, the utensils such as dishes, tools and foods seem to be unified which resulted the requisite use of chopsticks for the cere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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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biggest social event during the novel Joseon Dynasty would be the introduction of the Neo-Confucianism to the social system and political ideology, and there must have been several attempts to accept the new concept in their society. The tradition...

      The biggest social event during the novel Joseon Dynasty would be the introduction of the Neo-Confucianism to the social system and political ideology, and there must have been several attempts to accept the new concept in their society. The tradition of Goryeo which buried diverse objects such as spoons, chopsticks and celadon to the tombs had been commenced since Goryeo was highly involved with the Northern people in China. According to the Confucian Ritualism, however, which was main initiative of Joseon idealism of that time, the tradition of Goryeo was not in accordance with the Joseon. In the meantime, the tradition of the funeral had kept changed since Goryeo, and this took more than 200 years to settle the funeral system of Joseon. During the late Joseon, the tradition of funeral had been changed which buried less spoons or few white celadon and coins into the tombs. To a certain extent, no more burial goods were usually found in the tombs. Although the funeral system had been changed, it should be highlighted that spoons were still the main utensils of dining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refore, the primary dining composition was still rice, soup and dishes. From the evidence found in the tombs, the usage of chopsticks of early Joseon was quite rare. After the Japanese Invasion, Manchu Invasion and Great Famine, Joseon’s cuisine from the ingredients to diet, preserving techniques and publication of new recipe had been introduced in 18th Joseon. Given the painting which was drawn in this period, people who hold chopsticks were the solid evidence that chopsticks were highly used in this period. Also it is presumed that chopsticks were developed with the normalization of auspicious confucian ceremony. During the ceremony, the utensils such as dishes, tools and foods seem to be unified which resulted the requisite use of chopsticks for the cere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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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국립민속박물관, "한민족역사문화도감 식생활-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2 최준식, "한국인에게 밥은 무엇인가" 휴머니스트 2004

      3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고대목기-함안 성산산성을 중심으로-" 2008

      4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고대목기" 2008

      5 강인희, "한국식생활사" 삼영사 1993

      6 정의도, "한국고대숟가락연구" 경인문화사 2014

      7 이난영, "한국고대금속공예연구" 일지사 1992

      8 통도사성보박물관, "통도사성보박물관소장유물 명품"

      9 통도사성보박물관, "통도사성보박물관 명품도록"

      10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청주 용암유적(Ⅱ)-본문- -사진-" 2000

      1 국립민속박물관, "한민족역사문화도감 식생활-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2 최준식, "한국인에게 밥은 무엇인가" 휴머니스트 2004

      3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고대목기-함안 성산산성을 중심으로-" 2008

      4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고대목기" 2008

      5 강인희, "한국식생활사" 삼영사 1993

      6 정의도, "한국고대숟가락연구" 경인문화사 2014

      7 이난영, "한국고대금속공예연구" 일지사 1992

      8 통도사성보박물관, "통도사성보박물관소장유물 명품"

      9 통도사성보박물관, "통도사성보박물관 명품도록"

      10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청주 용암유적(Ⅱ)-본문- -사진-" 2000

      11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청원 오창유적(Ⅰ)-본문—사진-" 1999

      12 성림문화재연구원, "청도 대전리 고려·조선묘군Ⅱ" 2008

      13 성림문화재연구원, "청도 대전리 고려·조선묘군Ⅰ" 2008

      14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창원 가음정 복합유적(하) 고려시대~조선시대" 2009

      15 삼강문화재연구원, "창녕 영산 서리 조선묘군-창녕 영산 서리 농공단지 조성부지 내유적 시·발굴조사-본문, 도면, 사진" 2012

      16 경남고고학연구소, "진주 무촌Ⅱ-고려·조선묘군(2)-" 2004

      17 경남고고학연구소, "진주 무촌-고려·조선묘군(1)-" 2004

      18 이해원, "중국의 음식문화" 고려대학교출판부 2010

      19 국립고궁박물관, "종묘"

      20 정의도, "조선후기 숟가락의 변화" 한국문물연구원 (3) : 2013

      21 윤방언, "조선왕조 종묘와 제례"

      22 김상보, "조선시대의 음식문화-음식을 통해 보는 조선시대·조선사람" 가람기획 2006

      23 정의도, "조선시대 분묘출토 유물의 지역성-김해구산동유적과 은평 진관동유적의 비교연구-" 한국문물연구원 (2) : 2012

      24 전북문화재연구원, "전주 유상리유적"

      25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인천 원당동유적(Ⅰ)" 2007

      26 중앙문화재연구원, "은평뉴타운 제2지구C공구내 은평 진관동분묘군Ⅳ" 2009

      27 중앙문화재연구원, "은평뉴타운 제2지구C공구 체육시설부지내 은평 진관동분묘군Ⅵ" 2010

      28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왕흥사Ⅲ" 2009

      29 공주대학교 박물관, "염창리고분군(본문)(도판)"

      30 이성우, "식생활사 문헌연구 한국식경대전" 향문사 1981

      31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조사보고서 태안마도3호선" 2012

      32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조사보고서 태안마도2호선" 2011

      33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조사보고서 태안마도1호선" 2010

      34 충청문화재연구원, "서천 옥남리유적(날머리Ⅰ·Ⅱ유적·갓재골유적·원개들유적·우아실유적(본문)(사진)" 2008

      35 한강문화재연구원, "서울 진관동유적Ⅳ(2권)" 2010

      36 한강문화재연구원, "서울 진관동유적Ⅲ" 2010

      37 한강문화재연구원, "서울 진관동유적Ⅱ" 2010

      38 국립공주박물관, "새로운 만남 백제의 목기"

      39 한국토지주택공사, "부산 고촌 택지개발사업지구 내 고촌유적(Ⅰ지구)-본문·부록- -도면·사진-" 2010

      40 동아대학교 박물관, "밀양고법리벽화묘" 2002

      41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을 격물하다"

      42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무령왕릉"

      43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대구 옥포 본리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내 달성본리리고분군발굴조사보고서-본문—사진-" 2007

      44 국립중앙박물관, "단원풍속도첩"

      45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 "단양현곡리 고려고분군" 2008

      46 중앙문화재연구원, "논산 원북리유적(본문)(도면)" 2001

      47 기전문화재연구원, "남양주 호평·평내 택지개발지구내 문화유적시·발굴조사보고서(Ⅰ)-조선시대 분묘군-" 2001

      48 경남고고학연구소, "김해 구산동유적-고려·조선묘군(5)-" 2009

      49 경남고고학연구소, "김해 구산동유적-고려·조선묘군(4)-" 2009

      50 간송미술관, "김득신풍속화첩"

      51 경남문화재연구원, "기장 정관산업단지 진입도로부지 내 유적발굴조사"

      52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 "기산김준근조선풍속도"

      53 진홍섭, "국보 5.공예" 1985

      54 전남대학교 박물관, "광주쌍촌동 주거지"

      55 서울시립대학교박물관, "고려인의 영원한 삶 단양 현곡리"

      56 국립중앙박물관, "고려왕실의 도자기"

      57 성림문화재연구원, "경산 신대·부적 조선묘군" 2008

      58 정의도, "경남지역 조선전기 숟가락연구" 한국문물연구원 (창간) : 2011

      59 "高麗圖經"

      60 정의도, "韓國古代靑銅匙箸硏究- 高麗時代 -" 석당학술원 (38) : 61-140, 2007

      61 정의도, "靑銅숟가락의 登場과 擴散 - 三國時代~統一新羅時代 -" 석당학술원 (42) : 271-380, 2008

      62 奈良國立博物館, "第67會 正倉院展"

      63 奈良國立博物館, "第54會 正倉院展"

      64 奈良國立博物館, "第40會 正倉院展"

      65 정의도, "武寧王陵 出土 靑銅匙箸硏究" 한국고대학회 (30) : 213-283, 2009

      66 정의도, "松隱 朴翊先生墓 出土遺物의 考古學的 解釋" 한국고대학회 (33) : 345-374, 2010

      67 "朱子家禮"

      68 "春官通考"

      69 大阪市立東洋陶磁美術館, "新發見 高麗靑磁 –韓國水中考古學成果展-"

      70 "國朝五禮儀"

      71 "世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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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 : The Research Foundation of Cultural Relics in East Asia -> The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Relics in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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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01 평가 등재후보 탈락 (계속평가)
      2017-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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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24 0.24 0.2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25 0.22 0.56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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