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1세기 후반 이래 高麗에서 刊行된 佛敎經典이 日本에 전해져 筆寫될 때, 기록된 題記를 분석하여 韓·日兩國의 關係를 살펴보려고 한 것이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高麗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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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Korean
911.005
KCI등재
학술저널
123-194(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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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1세기 후반 이래 高麗에서 刊行된 佛敎經典이 日本에 전해져 筆寫될 때, 기록된 題記를 분석하여 韓·日兩國의 關係를 살펴보려고 한 것이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高麗時...
이 논문은 11세기 후반 이래 高麗에서 刊行된 佛敎經典이 日本에 전해져 筆寫될 때, 기록된 題記를 분석하여 韓·日兩國의 關係를 살펴보려고 한 것이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高麗時代는 한반도의 역사상 異民族과의 接觸이 가장 많았던 시기에 해당하지만 日本과의 關係는 公式的인 外交關係가 樹立되지 못하였다. 이는 9세기 후반 이래 日本政府가 自國의 經濟的인 形便을 考慮하여 大陸과의 交涉을 抛棄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東北아시아 三國은 地域的인 近接性으로 인해 漂流民의 刷還, 商人과 求法僧의 往來, 그리고 倭寇 등과 관련하여 일정한 接觸이 없지는 않았다. 이러한 접촉을 계기로 韓·日兩國의 交流가 어느 정도 進展되어 12세기말부터 약 1세기에 걸쳐 韓半島와 日本列島의 隣接한 두 地域의 地方官府 사이에 政治的인 臣屬을 前提로 한 進奉貿易이 展開되었다. 이 時期 前後의 事情은 자료의 부족으로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當時 일본에서 이루어진 佛敎經典의 題記를 통해 대체적인 형편은 유추할 수 있다. 이에 의하면 11세기 후반 이래 고려에서 간행된 續藏經이 商人 또는 僧侶를 통해 中國과 日本에 流布되었고, 그곳에서 刊行 또는 筆寫되었다. 이는 閉鎖的인 外交政策을 취하고 있던 일본에서도 고려↔일본, 고려↔宋↔日本 등의 方式으로 동북아시아 3국 사이에 文物의 交流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고려시대의 韓·日關係는 戰爭時期의 敵對的인 關係와 거의 유사한 상태였기에 高麗前期 兩國의 接觸은 貿易商人을 통해 이루어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2세기 후반이후 약 1세기에 걸쳐 大宰府와 進奉貿易을 行할 때 倭寇의 禁止를 위한 使臣派遣이 일시 있었지만 극히 한정적이었다. 13세기 후반 大元蒙古國의 登場으로 인해 동북아시아 3國은 準戰時體制와 같았기에 韓·中·日 三國人의 접촉과 교류는 거의 단절된 상태였다. 그렇지만 당시에도 僧侶들은 人間에 의해 區分지어진 地域과 境界를 넘나들 수 있었던 것 같고, 이들의 왕래에 따른 三國人의 接觸과 交流는 있었다. 또 佛典의 流布를 통해 얼어붙은 國家間의 情報와 文物을 접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고, 이를 통해 高麗末期 韓·日兩國 政府의 接觸과 같은 通交의 準備段階가 構築되기도 하였던 것 같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essay is a research to the relation between Japan and Korea through an analysis of Jegi(題記) in transcription of Buddhist Scriptures that made in Koryo and was transmitted to Japan from Koryo after the late 11thcentury. Tosumup, theresultisasf...
This essay is a research to the relation between Japan and Korea through an analysis of Jegi(題記) in transcription of Buddhist Scriptures that made in Koryo and was transmitted to Japan from Koryo after the late 11thcentury. Tosumup, theresultisasfollows. Koryo was the period that was in contact with many ethnic groups. Nonetheless, Koryo had no official diplomatic ties with Japan. Because the Japanese government abandoned connection with the continent for their economic conditions after the latter half of the 9thcentury. But there was a series of connection with three kingdoms in Northeast Asia because of the geographical proximity. For these connections, the exchange between Japan and Koryo was made some progress. As a result, a tributary trade was started between government officials of Japan and Koryo during a century from the end of 12thcentury. We don`t know specifically to the circumstance of this period because of alack of data. But it can be in ferred from Jegi of Buddhist Scriptures at that time in Japan. Accordingly, Sokjanggyeong(續藏經) that was published in Koryo circulated through Japan by merchants and monks, and the Japanese published and copied it since the latter half of the 11th century. It showed that the exchange of culture and good existed in Japan that retreated intoi solation. The relation between Japan and Koryo was similar with relation between two opposing countries in the Koryo period, for this reason, the contact with two kingdoms accomplished by trade merchants. Surely, after the latter half of the 12thcentury, there was dispatch of envoys during a century, but it was very limited. After the latter half of 13thcentury, the contact with three kingdoms was severed, because the reation between three kingdoms in Northeast Asia was similar in a quasi state of war. Of course, Of course there were exceptional cases such a smonks. Also, thecirculation of Buddhist Scriptures had greatly influenced the exchange between Japanand Koryo. As a result, two kingdoms were in the stages of preparation of the exchange.
식민지 "官展"의 실현 -조선미술전람회 일본인 심사원을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