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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9년 쉴러 축제와 독일 시민계급의 문화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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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thesis examines the Schiller Festival of 1859 to analyze cultural nationalism in Germany before the establishment of the German Empire. In November 1859, festivals commemorating the 100th anniversary of Friedrich Schiller’s birth were held simultaneously in over 500 cities, mainly German-speaking areas in central Europe. The Schiller Festival of 1859 was organized voluntarily in each city by the German bourgeoisie, rising personages of the region. Having undergone the radicalization of the German Revolution of 1848~1849, they planned a decent and orderly festival. The festival basically made it possible to imagine the nation as an ethnic community that shared the cultural memory of Schiller. At the same time, the German bourgeoisie showed off their power and values they pursued in diverse programs within the festival. Cultural nationalism of the German bourgeoisie had complex goals of forming not only an ethnic community but also a civil society. Moreover, symbolic struggles over a common cultural capital, Schiller, took place in the festival. German bourgeoisie brought Schiller to the fore as a symbol of freedom, unification, and bourgeois values. The festival succeeded in eliciting a wide resonance in the German-speaking areas. However, various political and social forces representing regions, classes, religions, and political complexions attempted to weaken the symbolic power, which often resulted in overt conflicts. There were multi-layered competitions to take the initiative in Germany at the period when forming a nation-state was a significant go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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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thesis examines the Schiller Festival of 1859 to analyze cultural nationalism in Germany before the establishment of the German Empire. In November 1859, festivals commemorating the 100th anniversary of Friedrich Schiller’s birth were held simu...

      This thesis examines the Schiller Festival of 1859 to analyze cultural nationalism in Germany before the establishment of the German Empire. In November 1859, festivals commemorating the 100th anniversary of Friedrich Schiller’s birth were held simultaneously in over 500 cities, mainly German-speaking areas in central Europe. The Schiller Festival of 1859 was organized voluntarily in each city by the German bourgeoisie, rising personages of the region. Having undergone the radicalization of the German Revolution of 1848~1849, they planned a decent and orderly festival. The festival basically made it possible to imagine the nation as an ethnic community that shared the cultural memory of Schiller. At the same time, the German bourgeoisie showed off their power and values they pursued in diverse programs within the festival. Cultural nationalism of the German bourgeoisie had complex goals of forming not only an ethnic community but also a civil society. Moreover, symbolic struggles over a common cultural capital, Schiller, took place in the festival. German bourgeoisie brought Schiller to the fore as a symbol of freedom, unification, and bourgeois values. The festival succeeded in eliciting a wide resonance in the German-speaking areas. However, various political and social forces representing regions, classes, religions, and political complexions attempted to weaken the symbolic power, which often resulted in overt conflicts. There were multi-layered competitions to take the initiative in Germany at the period when forming a nation-state was a significant go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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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9세기를 나폴레옹 전쟁으로 시작한 독일에서는, 영방국가(Territorialstaat)가 여전히 난립하던 현실 속에서 언어・역사・예술 등 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민족과 민족국가를 형성하고자 하는 문화민족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본 연구는 1871년 독일제국 수립 이전 독일 역내 문화민족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1859년 쉴러 축제를 살핀다. 1859년 11월, 프리드리히 쉴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가 중부 유럽의 독일어권을 중심으로 500여 개 도시에서 동시에 개최되었다. 축제는 지역 단위로 분산적・자발적인 기획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를 주도했던 것은 당대 지역사회의 명사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던 독일 시민계급(Bürgertum)이었다. 불과 10년 전인 1848년 혁명 당시 상층의 반(反)혁명과 하층의 과격화를 목도했던 시민계급은, 고하로부터의 압력을 적절히 이용하며 온건하고 질서정연한 축제를 기획했다.
      1859년 쉴러 축제를 통해 지역민들은 쉴러라는 문화적 기억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근 지역은 물론 독일어권 전역이 함께 축제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쉴러를 기념하는 독일 민족’을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시민계급은 축제 속 다양한 행사들에서 자신들의 힘과 성취를 과시함으로써, ‘사회의 부르주아화’를 도모했다. 축제에는 족류적(ethnic) 통합과 시민사회의 창출이라는 시민계급의 복합적인 목표가 공존했다.
      또한, 1859년 쉴러 축제는 시민계급이 쉴러라는 상징을 내세워 마련한 문화적 상징투쟁의 장이었다. 그들은 소위 ‘민족국가 형성기’를 주도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들이 지향하는 부르주아적 가치를 쉴러라는 상징 속에 담았다. 축제가 독일어권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공명을 이끌어내면서 상징투쟁의 장이 성공적으로 형성되었다. 시민계급을 경계하던 각계각층의 세력들은 이를 견제하며 그 효과를 약화시키고자 했다. 따라서 축제에는 미묘한 충돌상이 언제나 존재했고, 때로는 그 갈등이 심화되어 공공연하게 표출되기도 했다. 축제 속에서 전개된 치열한 상징투쟁에서 드러나듯이, 당시 독일 역내 지역・계층・종교・정치적 지향을 망라하는 다양한 정치・사회 세력들은 민족국가 형성기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중층적 경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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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를 나폴레옹 전쟁으로 시작한 독일에서는, 영방국가(Territorialstaat)가 여전히 난립하던 현실 속에서 언어・역사・예술 등 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민족과 민족국가를 형성하고자 하는 ...

      19세기를 나폴레옹 전쟁으로 시작한 독일에서는, 영방국가(Territorialstaat)가 여전히 난립하던 현실 속에서 언어・역사・예술 등 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민족과 민족국가를 형성하고자 하는 문화민족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본 연구는 1871년 독일제국 수립 이전 독일 역내 문화민족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1859년 쉴러 축제를 살핀다. 1859년 11월, 프리드리히 쉴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가 중부 유럽의 독일어권을 중심으로 500여 개 도시에서 동시에 개최되었다. 축제는 지역 단위로 분산적・자발적인 기획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를 주도했던 것은 당대 지역사회의 명사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던 독일 시민계급(Bürgertum)이었다. 불과 10년 전인 1848년 혁명 당시 상층의 반(反)혁명과 하층의 과격화를 목도했던 시민계급은, 고하로부터의 압력을 적절히 이용하며 온건하고 질서정연한 축제를 기획했다.
      1859년 쉴러 축제를 통해 지역민들은 쉴러라는 문화적 기억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근 지역은 물론 독일어권 전역이 함께 축제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쉴러를 기념하는 독일 민족’을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시민계급은 축제 속 다양한 행사들에서 자신들의 힘과 성취를 과시함으로써, ‘사회의 부르주아화’를 도모했다. 축제에는 족류적(ethnic) 통합과 시민사회의 창출이라는 시민계급의 복합적인 목표가 공존했다.
      또한, 1859년 쉴러 축제는 시민계급이 쉴러라는 상징을 내세워 마련한 문화적 상징투쟁의 장이었다. 그들은 소위 ‘민족국가 형성기’를 주도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들이 지향하는 부르주아적 가치를 쉴러라는 상징 속에 담았다. 축제가 독일어권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공명을 이끌어내면서 상징투쟁의 장이 성공적으로 형성되었다. 시민계급을 경계하던 각계각층의 세력들은 이를 견제하며 그 효과를 약화시키고자 했다. 따라서 축제에는 미묘한 충돌상이 언제나 존재했고, 때로는 그 갈등이 심화되어 공공연하게 표출되기도 했다. 축제 속에서 전개된 치열한 상징투쟁에서 드러나듯이, 당시 독일 역내 지역・계층・종교・정치적 지향을 망라하는 다양한 정치・사회 세력들은 민족국가 형성기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중층적 경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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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I. 머리말 1
      • II. 1859년 쉴러 축제의 개최 배경 7
      • 1. 19세기 독일 역내 공공축제의 성행 7
      • 2. 문화적 인물에 대한 기념 전략과 쉴러 기념의 전개 11
      • I. 머리말 1
      • II. 1859년 쉴러 축제의 개최 배경 7
      • 1. 19세기 독일 역내 공공축제의 성행 7
      • 2. 문화적 인물에 대한 기념 전략과 쉴러 기념의 전개 11
      • 3. 1850년대 후반 반동정책의 후퇴와 저항적 민족감정의 고조 16
      • III. 지역 시민계급의 축제 기획 19
      • 1. 지역 내 자발적 축제 준비와 독일어권 전역으로의 확산 19
      • 2. 시민계급 중심의 축제위원회와 온건한 축제 기획 25
      • IV. 부르주아적 축제 속 문화민족주의 31
      • 1. 축제의 과시적 성격과 사회의 부르주아화 도모 31
      • 2. 문화적 상징투쟁과 민족국가 형성기의 주도권 경쟁 43
      • V. 맺음말 54
      • 참고문헌 56
      • Abstract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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