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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6세기 초 筑紫國 이와이[磐井]의 난과 신라 = The Connection between Silla and the Iwai Rebellion in Tsukushi Province during the Early Sixth - century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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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0050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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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5세기 말 6세기 초는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많은 격동이 초래된 시대였다. 고구려의 남하와 백제의 한강 상실 및 南遷, 신라의 대두, 왜국의 왕조 교체 및 지역 지배층의 변동 등이 연이어졌다...

      5세기 말 6세기 초는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많은 격동이 초래된 시대였다. 고구려의 남하와 백제의 한강 상실 및 南遷, 신라의 대두, 왜국의 왕조 교체 및 지역 지배층의 변동 등이 연이어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6세기 초 왜국에서는 구주의 筑紫 지역을 기반으로 자립하고자 하였던 이와이의 난이 발생하였다.
      종래 이와이의 난은 왜국 왕권의 한반도 출병에 따른 구주의 부담 증대에 대한 반발이라는 이른바 지방 반란설로서 설명하는 경향도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오히려 국가성립과정에 발생한 영토통일전쟁이었다는 관점이 우세해지고 있다. 본고에서도 이와이의 난의 기본 사료를 검토하고 이와이의 난은 당시의 일본열도의 상황이 지역 수장층의 변동을 위시한 왜국 전체의 격동기라는 시점을 중시하여 각 지역 세력의 권력관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구주 세력과 야마토 세력의 충돌이었다는 시점에 입각하여 분석하였다.
      또한 신라와 이와이의 커넥션 형성에 대해서는 별고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이와이의 구주 독립론과 신라의 왜국 분할론이 결탁이었다는 시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결과적으로 이와이의 거병은 성공하지 못하였으며 이것은 곧 구주 자립의 좌절이기도 하였고 동시에 왜국 분할론의 실패를 의미하였다. 이 난의 진압 결과 야마토 정권은 일본열도 내의 패권적 위치를 굳힐 수 있는 기반을 보다 확고히 할 수 있었으며 또한 구주 지역에 대한 지배도 강화할 수 있었다. 계체 신왕조를 중심으로 한 기내 세력의 전국 지배는 이러한 전국적인 동란을 극복해가면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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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orea peninsular and Japan were in a turmoil during the late 5th century and early 6th century. There were a series of events including Goguryo"s marching down to south, Baekje"s lost of Hangang area and moving capital to Woongjin, advancement of Sill...

      Korea peninsular and Japan were in a turmoil during the late 5th century and early 6th century. There were a series of events including Goguryo"s marching down to south, Baekje"s lost of Hangang area and moving capital to Woongjin, advancement of Silla, dynasty change of Wa and changes of local ruling class. In the middle of these events, Iwas rebellion broke out in the beginning of 6th century in Wa that tried to establish independence at the area of Tsukushi in Kyushu.
      In the past, there has been a tendency to understand Iwai rebellion as a local revolt which stood against the increase of burden on Kyushu caused by Wa sovereignty"s military campaign to Korean peninsular. But today, the dominant perspective is rather on a territorial war for unification generated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a country. This study also analyzed Iwai rebellion from the perspective of crash between Kyushu force and Yamato force happened in the reorganizing process of power relations among local forces, by considering the situation of Japan at the time as a turbulent period of entire Wa including the change of local ruling class after reviewing basic historical materials.
      Also for the connection making between Silla and Iwas, the perspective of collusion between Independence Kyushu theory of Iwai and Dividing Wa theory of Silla, as I mentioned in a separate study, is emphasized once more. Consequently, the military coup of Iwas did not succeed which means a collaped of Independent Kyushu and a failure of Dividing Wa theory at the same time. As the result of suppressing this rebellion, Yamato regime could firmly establish the foundation for domiance in Japan and strengthen its ruling over Kyushu. Nationwide dominance of Kinai force with central rol of Keitai-tenno became possible by overcoming these nationwide 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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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이와이의 난의 주요 사료
      • Ⅲ. 이와이의 난과 신라
      • Ⅳ. 이와이 난의 국제적 성격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이와이의 난의 주요 사료
      • Ⅲ. 이와이의 난과 신라
      • Ⅳ. 이와이 난의 국제적 성격
      • Ⅴ.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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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請田正幸, "六世紀前期の日朝關係-任那‘日本府’を中心として-, In 古代朝鮮と日本" 龍溪書舍 1974

      2 이재석, "일본 고대 웅략조의 歷史像" 9 : 1999

      3 "율령"

      4 "삼국사기"

      5 김태식, "고대 한일관계 연구사 -임나문제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학회 27 : 15-52, 2002

      6 和田晴吾, "群集墳と終末期古墳, In 新版<古代の日本> 5 近畿1" 角川書店 1992

      7 林屋辰三郞, "繼體・欽明朝內亂の史的分析, In 古代國家の解體" 東京大學出版會 1955

      8 三品彰英, "繼體紀の諸問題, In 日本書紀硏究 2" 塙書房 1966

      9 정효운, "筑紫 磐井의 戰爭과 新羅" 대한일어일문학회 20 (20): 293-306, 2003

      10 森貞次郞, "筑後風土記逸文に見える筑紫君磐井の墳墓" 43 : 1956

      1 請田正幸, "六世紀前期の日朝關係-任那‘日本府’を中心として-, In 古代朝鮮と日本" 龍溪書舍 1974

      2 이재석, "일본 고대 웅략조의 歷史像" 9 : 1999

      3 "율령"

      4 "삼국사기"

      5 김태식, "고대 한일관계 연구사 -임나문제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학회 27 : 15-52, 2002

      6 和田晴吾, "群集墳と終末期古墳, In 新版<古代の日本> 5 近畿1" 角川書店 1992

      7 林屋辰三郞, "繼體・欽明朝內亂の史的分析, In 古代國家の解體" 東京大學出版會 1955

      8 三品彰英, "繼體紀の諸問題, In 日本書紀硏究 2" 塙書房 1966

      9 정효운, "筑紫 磐井의 戰爭과 新羅" 대한일어일문학회 20 (20): 293-306, 2003

      10 森貞次郞, "筑後風土記逸文に見える筑紫君磐井の墳墓" 43 : 1956

      11 小田富士雄, "磐井の反乱, In 古代の日本3 九州" 角川書店 1978

      12 亀井輝一郎, "磐井の乱の前後, In 新版古代の日本3 九州・沖縄" 角川書店 1991

      13 篠川賢, "磐井の乱, In 日本古代史研究事典" 東京堂出版 1995

      14 藤間生大, "日本民族の形成" 岩波書店 1951

      15 "日本書紀"

      16 白石太一郞, "日本古墳文化論, In 講座日本歷史1 原始・古代1" 東京大學出版會 1984

      17 "日本古典文學大系 風土記" 岩波書店 1958

      18 "日本古典文學大系 日本書紀 下" 岩波書店 1965

      19 山尾幸久, "日本古代史の論点4 権力と国家と戦争" 小學館 1998

      20 都出比呂志, "日本古代の國家形成論序說-前方後圓墳體制の提唱" 343 : 28-, 1991

      21 大山誠一, "所爲‘任那日本府’の成立について(上・中・下)" 32 (32): 1980

      22 武田幸男, "平西將軍・倭隋の解釋" 77 : 1975

      23 都出比呂志, "巨大古墳の時代, In 新版<古代の日本> 1 古代史總論" 角川書店 209-212, 1993

      24 "宋書"

      25 鎌田元一, "大王による國土の統一, In 日本の古代6 王権をめぐる戦い" 中央公論社 89-, 1986

      26 田村圓澄, "古代最大の內戰 磐井の亂" 大和書房 1985

      27 吉田晶, "古代國家の形成, In 岩波講座日本歷史2" 岩波書店 1975

      28 "古事記"

      29 李永植, "加耶諸國と任那日本府" 吉川弘文館 1993

      30 김현구, "任那日本府硏究" 일조각 1993

      31 "三國志"

      32 笠井倭人, "三国遺事百済王暦と日本書紀, In 古代の日朝関係と日本書紀" 吉川弘文館 2000

      33 鈴木靖民, "ヤマト政権の確立過程, In 增補 古代國家史硏究の步み" 新人物往來社 1983

      34 나행주, "6세기 한일관계의 연구사적 검토, In 한일관계사연구논집3 임나 문제와 한일관계" 景仁文化社 2005

      35 정효운, "6세기 한·일관계사의 재구축-왜와 임나 관계의 재해석을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학회 (56) : 337-365, 2009

      36 이재석, "6세기 초 繼體 新王朝의 성립과 그 의의" 27 : 2012

      37 연민수, "6세기 전반 가야 제국을 둘러싼 백제・신라의 동향, In 고대한일관계사" 혜안 1998

      38 정효운, "6세기 동아시아 정세와 ?磐井의 亂?" 한국일어일문학회 43 : 337-356, 2002

      39 이재석, "4~6세기 왜국의 대외위기론과 그 실체, In 일본의 대외위기론과 팽창의 역사적 구조" 제이앤씨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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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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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5 0.5 0.4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1 0.58 0.981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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