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소설에 나타난 질병의 의미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이청준의 작품세계를 질병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세 가지이다. 첫번째는 이청준이 작품 속에서 어떠한 질병들을 주요한 소재로 삼고 있고, 질병들의 어떠한 측면들을 이용하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두번째는 질병을 소재로 한 이청준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질병이 작품 속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세번째는 질병들이 소설 속에서 차지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첫 번째는 복통이다. ？퇴원？에 나오는 자아망실로 인한 위궤양과 ？귀향연습？에 나오는 실향으로 인한 배앓이는 모두 복통이라는 증상으로 나타난다. ？퇴원？과 ？귀향연습？에서 복통이 갖는 의미는 ‘자아’라는 개인적인 차원이 ‘고향’이라는 좀 더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퇴원？의 ‘나’ 가 앓고 있는 위궤양이 개인적인 자아망실의 질병이라면, ？귀향연습？의 남지섭이 앓고 있는 배앓이는 좀 더 보편적인 차원의 자아망실증이다.
두 번째는 정신병에 관한 것이다. ？퇴원？과 ？귀향연습？의 인물들이 복통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 ‘자아’의 문제였다면, 정신병을 다룬 작품들이 보여주는 것은 이들의 ‘자아’를 병들게 만든 원인들이다. 정신병을 소재로 한 세 작품들은 주인공들이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을 추적하면서 이들이 앓고 있는 정신병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것이 ‘밀실’ 또는 ‘방’으로의 ‘자기실종’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버지, 전짓불, 독선적인 의사들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주인공들은 밀실로, 하숙방으로, 사자 우리속으로 실종되고자 한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실패하고 아버지로 표상되는 세계와의 대결에서 패배한다.
세 번째는 나병에 관한 것이다. 복통과 정신병을 다룬 작품에서 보여준 ‘개인’과 ‘자아’의 문제는 ？당신들의 천국？의 나병을 통해서 ‘집단’과 ‘운명’의 문제로 변모한다. 이들이 겪게 될 운명은 분명히 패배의 운명이지만 작가의 꿈은 단지 패배의 운명만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청준이 ‘환자’와 ‘질병’을 소재로 한 작품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세계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개인들이다. 하지만 작가의 최종적인 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천국？에 주제 속에 드러나 있듯이 작가의 최종적인 꿈은 패배의 운명에 처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자생적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개척해나가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