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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세기 경주지역 목곽묘의 位階와 時空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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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2042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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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무덤은 당시의 매장관념이 물질화로 표현된 것이며, 여기에는 집단과 집단 그리고 개인과 개인 간의 위계가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위계의 연구는 당시 사람들이 무덤에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고자 했던 방법을 찾아내어 매장관념을 복원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무덤 부장품은 크게 착장형과 보유형 기물로 구성된다. 착장형은 특정 집단의 매장관념과 관계없이 무덤 주인공의 위계가 표현된 정치적 기물이었다. 보유형은 그가 가진 무력과 부가 과시적으로 나타난 것이었으며, 집단에 따라 선호한 기물이 조금씩 다를 수 있었다. 무덤의 규모는 상위의 위계일수록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었으나, 위계간의 차별화가 심화되는 것은 대략 4세기 후반부터였다. 착장형은 처음에 검(도)의 착장 유무와 수량이 중요한 기준이 되다가, 4세기 후반부터는 장식대도ㆍ帶冠ㆍ帶裝飾具 등을 중심으로 하는 통합복식체계로 나타났다. 보유형은 철기류에서 무덤 주인공이 가진 무력과 부가 잘 드러났다. 철기류는 기본조합(철모, 철부+철겸 등)의 부장 유무와 수량에 따라 차이가 있었고, 특정 집단의 매장관념에 따라서는 재갈ㆍ삽날ㆍ쇠스랑 등도 위세품의 가치로 인식되었다. 3세기 말부터는 갑주ㆍ안교ㆍ등자, 4세기 후반부터는 금은과 유리 용기 등이 중요 위세품으로 추가되었는데, 이 기물의 소유관계는 시기가 내려올수록 확대되는 경향이었다. 3∼4세기 경주 지역에 축조된 각 고분군은 4세기 전반까지 5개 그룹(A∼E)으로 위계관계가 식별이 되었고, 4세기 후반부터는 앞 시기의 A그룹이 분화하여 한 그룹(S그룹)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王墓의 수준으로 평가되는 사라리 130호와 황남대총 남분은 특히 착장형 기물의 수량과 내용 면에서 S와 A그룹을 능가하는 상위 그룹(R그룹)이었다. 이렇게 하여 경주 지역 무덤의 위계는 4세기 후반을 기준으로 이전의 6개 그룹과 이후의 7개 그룹으로 식별되었다. R그룹의 무덤은 늦어도 목곽묘 등장기 이후부터, S그룹은 4세기 후반부터 경주 도심 지구에 한정되어 축조된 것으로 나타났다. 3세기 이후에는 A그룹도 개별 고분군에 따라서는 축조되지 않은 곳도 있었으며, 4세기 후반 이후에는 대릉원 일원에 분포가 더욱 집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현상은 경주 지역에서 도심 지구 외에 있는 개별 집단이 급속하게 세력이 재편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특히 4세기 후반 이후 경주 도심 지구에 A그룹 이상의 무덤이 집중된 것은 기타 지구와의 구분이 확고해졌음을 의미하였다. 특히 S그룹은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된 권력과 부의 편중 현상이 극대화되어 나타난 것이자, 김씨 집단이 마립간이 되면서 기존 수장(A그룹)의 세력 기반이 붕괴되는 등 새롭게 권력이 재편된 결과물이였다. 이는 사로국이 이 즈음에 들어 초기 관료제를 갖춘 중앙정부를 구성하는 수준으로 질적인 변화를 도모했음을 말해주는 요소로 파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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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은 당시의 매장관념이 물질화로 표현된 것이며, 여기에는 집단과 집단 그리고 개인과 개인 간의 위계가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위계의 연구는 당시 사람들이 무덤에 사회적 지위를 나타...

      무덤은 당시의 매장관념이 물질화로 표현된 것이며, 여기에는 집단과 집단 그리고 개인과 개인 간의 위계가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위계의 연구는 당시 사람들이 무덤에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고자 했던 방법을 찾아내어 매장관념을 복원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무덤 부장품은 크게 착장형과 보유형 기물로 구성된다. 착장형은 특정 집단의 매장관념과 관계없이 무덤 주인공의 위계가 표현된 정치적 기물이었다. 보유형은 그가 가진 무력과 부가 과시적으로 나타난 것이었으며, 집단에 따라 선호한 기물이 조금씩 다를 수 있었다. 무덤의 규모는 상위의 위계일수록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었으나, 위계간의 차별화가 심화되는 것은 대략 4세기 후반부터였다. 착장형은 처음에 검(도)의 착장 유무와 수량이 중요한 기준이 되다가, 4세기 후반부터는 장식대도ㆍ帶冠ㆍ帶裝飾具 등을 중심으로 하는 통합복식체계로 나타났다. 보유형은 철기류에서 무덤 주인공이 가진 무력과 부가 잘 드러났다. 철기류는 기본조합(철모, 철부+철겸 등)의 부장 유무와 수량에 따라 차이가 있었고, 특정 집단의 매장관념에 따라서는 재갈ㆍ삽날ㆍ쇠스랑 등도 위세품의 가치로 인식되었다. 3세기 말부터는 갑주ㆍ안교ㆍ등자, 4세기 후반부터는 금은과 유리 용기 등이 중요 위세품으로 추가되었는데, 이 기물의 소유관계는 시기가 내려올수록 확대되는 경향이었다. 3∼4세기 경주 지역에 축조된 각 고분군은 4세기 전반까지 5개 그룹(A∼E)으로 위계관계가 식별이 되었고, 4세기 후반부터는 앞 시기의 A그룹이 분화하여 한 그룹(S그룹)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王墓의 수준으로 평가되는 사라리 130호와 황남대총 남분은 특히 착장형 기물의 수량과 내용 면에서 S와 A그룹을 능가하는 상위 그룹(R그룹)이었다. 이렇게 하여 경주 지역 무덤의 위계는 4세기 후반을 기준으로 이전의 6개 그룹과 이후의 7개 그룹으로 식별되었다. R그룹의 무덤은 늦어도 목곽묘 등장기 이후부터, S그룹은 4세기 후반부터 경주 도심 지구에 한정되어 축조된 것으로 나타났다. 3세기 이후에는 A그룹도 개별 고분군에 따라서는 축조되지 않은 곳도 있었으며, 4세기 후반 이후에는 대릉원 일원에 분포가 더욱 집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현상은 경주 지역에서 도심 지구 외에 있는 개별 집단이 급속하게 세력이 재편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특히 4세기 후반 이후 경주 도심 지구에 A그룹 이상의 무덤이 집중된 것은 기타 지구와의 구분이 확고해졌음을 의미하였다. 특히 S그룹은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된 권력과 부의 편중 현상이 극대화되어 나타난 것이자, 김씨 집단이 마립간이 되면서 기존 수장(A그룹)의 세력 기반이 붕괴되는 등 새롭게 권력이 재편된 결과물이였다. 이는 사로국이 이 즈음에 들어 초기 관료제를 갖춘 중앙정부를 구성하는 수준으로 질적인 변화를 도모했음을 말해주는 요소로 파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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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Funerary objects of tombs are largely classified into two according to their purposes: for wearing and for retention. Wearing-type funerary objects are funeral costume and accessories that directly represent the hierarchical status of the dead in tomb while the retention-type funerary objects are the tools to demonstrate his/her power and wealth. The higher hierarchical status of the dead is, the bigger the size of a tomb tends to be. Discrimination according to hierarchical status became more serious around the late 4th century. One of the important criteria to classify funeral costume and accessories was whether the dead wore the sword or not in the beginning. Beginning around the late 4th century, the status became to be discriminated according to costume regulation system focusing on ornamentals word, crown, and belt ornaments, etc. Retention-type articles varied in type and quantity depending on hierarchical status of the dead and it tended to be to possess armed force and wealth such as plate armor, helmets, and gold crafts, beginning the late 3th century. The hierarchical status of wooden chamber tombs in Gyeongju during 2nd ~ 4th century are largely classified into 6~7groups(R, S, A~E grade). Beginning the late 4th century, Group A was segmented and one more group was added(Group S). Group Swhich newly emerged in the late 4th century was found to be central noble class with the characteristics of administrative executives. There are high possibilities that Group R tombs were built since the mid 2nd century and Group S tombs were built in the area restricted to the downtown of Gyeongju since the late 4th century. The Group S tombs built in the downtown since the late 4th century resulted in maximized unequal distribution of power and wealth, which have been continued to then. It was also the outcome of new shuffled power according to the fall of the existing force after Kim’s family had the power of Maripk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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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nerary objects of tombs are largely classified into two according to their purposes: for wearing and for retention. Wearing-type funerary objects are funeral costume and accessories that directly represent the hierarchical status of the dead in tomb...

      Funerary objects of tombs are largely classified into two according to their purposes: for wearing and for retention. Wearing-type funerary objects are funeral costume and accessories that directly represent the hierarchical status of the dead in tomb while the retention-type funerary objects are the tools to demonstrate his/her power and wealth. The higher hierarchical status of the dead is, the bigger the size of a tomb tends to be. Discrimination according to hierarchical status became more serious around the late 4th century. One of the important criteria to classify funeral costume and accessories was whether the dead wore the sword or not in the beginning. Beginning around the late 4th century, the status became to be discriminated according to costume regulation system focusing on ornamentals word, crown, and belt ornaments, etc. Retention-type articles varied in type and quantity depending on hierarchical status of the dead and it tended to be to possess armed force and wealth such as plate armor, helmets, and gold crafts, beginning the late 3th century. The hierarchical status of wooden chamber tombs in Gyeongju during 2nd ~ 4th century are largely classified into 6~7groups(R, S, A~E grade). Beginning the late 4th century, Group A was segmented and one more group was added(Group S). Group Swhich newly emerged in the late 4th century was found to be central noble class with the characteristics of administrative executives. There are high possibilities that Group R tombs were built since the mid 2nd century and Group S tombs were built in the area restricted to the downtown of Gyeongju since the late 4th century. The Group S tombs built in the downtown since the late 4th century resulted in maximized unequal distribution of power and wealth, which have been continued to then. It was also the outcome of new shuffled power according to the fall of the existing force after Kim’s family had the power of Maripk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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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서론
      • Ⅱ. 목곽묘 변천의 획기
      • Ⅲ. 목곽묘의 위계와 규모
      • 1. 개념 정리
      • 국문초록
      • Ⅰ. 서론
      • Ⅱ. 목곽묘 변천의 획기
      • Ⅲ. 목곽묘의 위계와 규모
      • 1. 개념 정리
      • 2. 위계의 구분
      • 3. 묘의 규모
      • Ⅳ. 위계관계의 시공적 변화
      • 1. 시간적 변화
      • 2. 공간적 변화
      • Ⅴ. 결론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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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咸舜燮, "황금의 나라 신라의 왕릉황남대총" 국립중앙박물관 2010

      2 주보돈,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 동향" 서경문화사 2007

      3 이형우, "진·변한 諸國의 位置와 存在樣態" 경상북도·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02

      4 노태호, "원삼국~백제 한성기 중서부지역 철도자 연구" 한국고고학회 (93) : 82-125, 2014

      5 井上主稅, "영남지방 출토 왜계유물로 본 한일교섭" 경북대학교 대학원 2007

      6 오광섭, "영남지방 출토 劍把附銅劍ㆍ鐵劍에 대한 小考 - 劍把附를 중심으로 -" 영남고고학회 (53) : 47-71, 2010

      7 이희준, "신라고고학연구" 사회평론 2007

      8 이희준, "신라 형성기의 유적" (사)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 2011

      9 최병현, "신라 조기양식토기의 설정과 편년" 영남고고학회 (63) : 105-156, 2012

      10 최병현, "신라 조기 경주지역 목곽묘의 전개와 사로국 내부의 통합과정" 한국고고학회 (95) : 102-159, 2015

      1 咸舜燮, "황금의 나라 신라의 왕릉황남대총" 국립중앙박물관 2010

      2 주보돈,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 동향" 서경문화사 2007

      3 이형우, "진·변한 諸國의 位置와 存在樣態" 경상북도·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02

      4 노태호, "원삼국~백제 한성기 중서부지역 철도자 연구" 한국고고학회 (93) : 82-125, 2014

      5 井上主稅, "영남지방 출토 왜계유물로 본 한일교섭" 경북대학교 대학원 2007

      6 오광섭, "영남지방 출토 劍把附銅劍ㆍ鐵劍에 대한 小考 - 劍把附를 중심으로 -" 영남고고학회 (53) : 47-71, 2010

      7 이희준, "신라고고학연구" 사회평론 2007

      8 이희준, "신라 형성기의 유적" (사)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 2011

      9 최병현, "신라 조기양식토기의 설정과 편년" 영남고고학회 (63) : 105-156, 2012

      10 최병현, "신라 조기 경주지역 목곽묘의 전개와 사로국 내부의 통합과정" 한국고고학회 (95) : 102-159, 2015

      11 박광열, "신라 적석목곽분의 연구와 금관총" 국립중앙박물관 20 : 53-77, 2014

      12 김용성, "신라 고총체계의 관점" 영남고고학회 39-57, 2014

      13 이현혜, "고고학자료로 본 斯盧國 六村" 한국고대사학회 (52) : 193-232, 2008

      14 권용대, "경주지역의 출현기 목곽묘 연구" 한국고대사탐구학회 (9) : 177-210, 2011

      15 장기명, "경주지역 원삼국시대 분묘의 철기부장유형과 위계" 한국고고학회 (92) : 80-123, 2014

      16 최수형, "경주지역 목곽묘의 위계구조 검토" 국립문화재연구소 47 (47): 60-85, 2014

      17 이희준, "경주 황성동유적으로 본 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 사로국" 신라문화연구소 38 : 137-186, 2011

      18 李在賢, "辰·弁韓社會의 考古學的 硏究" 釜山大學校 大學院 2003

      19 金龍星, "碩晤尹容鎭敎授停年退任紀念論叢" 311-343, 1996

      20 김용성, "皇南大塚 南墳의 年代와 被葬者 檢討" 한국상고사학회 42 : 57-86, 2003

      21 咸舜燮, "新羅 麻立干時期에 移入된 中央아시아 및 西아시아의 文物" 國立慶州博物館 2 : 51-71, 2009

      22 李熙濬, "新羅 高塚의 특성과 의의" 嶺南考古學會 20 : 1-25, 1997

      23 金龍星, "新羅 高塚의 殉葬" 한국대학박물관협회 59 : 64-87, 2002

      24 權五榮, "斯盧六村의 위치문제와 首長의 성격" 東國大學校 新羅文化硏究所 14 : 7-18, 1997

      25 李盛周, "打捺文土器의 展開와 陶質土器 發生" 韓國考古學會 42 : 57-106, 2000

      26 윤온식, "嶺南地域原三國時代後期祭儀土器의 設定 -포항지역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고고학회 (76) : 23-60, 2010

      27 李熙濬, "太王陵의 墓主는 누구인가?" 한국고고학회 (59) : 74-117, 2006

      28 全德在, "上古期 新羅 六部의 性格에 대한 考察" 東國大學校 新羅文化硏究所 12 : 35-90, 1995

      29 李熙濬, "4~5세기 신라 고분 피장자의 服飾品 着裝 定型" 한국고고학회 47 : 63-92, 2002

      30 李熙濬, "4-5세기 新羅의 考古學的 硏究" 서울大學校 大學院 1998

      31 윤온식, "2~4세기 동해남부지역 목곽묘의 유형과 전개" 중앙문화재연구원 (20) : 25-7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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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8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4 학회명변경 한글명 : (사)한국매장문화재협회 -> (사)한국문화유산협회
      영문명 : Korean Association for Archaeological Heritage -> Korea Cultural Heritage Association
      KCI등재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4-12-12 학회명변경 한글명 : 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 -> (사)한국매장문화재협회
      영문명 : Korea cultural properties investigation and research institute association -> Korean Association for Archaeological Heritage
      KCI등재
      201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9-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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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7 0.67 0.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8 0.45 1.229 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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