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8년 베를린 회의 이후 비스마르크는 유럽 대외정책의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했다. 1870/71년 독프전쟁 이후 적대관계에 있는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강대국들과 친선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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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수 (서울대학교)
2022
Korean
Korea-German Treaty ; Bismarck ; Brandt ; english-german relations ; foreign policy ; 조독수호통상조약 ; 비스마르크 ; 브란트 ; 영독관계 ; 외교정책
KCI등재
학술저널
289-318(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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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베를린 회의 이후 비스마르크는 유럽 대외정책의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했다. 1870/71년 독프전쟁 이후 적대관계에 있는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강대국들과 친선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
1878년 베를린 회의 이후 비스마르크는 유럽 대외정책의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했다. 1870/71년 독프전쟁 이후 적대관계에 있는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강대국들과 친선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의 외교전략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일이 유럽강대국들과동맹관계를 유지해야했다. 1879년 독오 동맹, 1881년 삼제동맹, 1882년 삼국동맹을 통해서 오스트리아, 러시아, 이탈리아와 동맹을 체결했다. 1882년 이후 영국을 자신의동맹체제에 포섭하는 것이 비스마르크의 과제였다.
그러나 1713년 유트레히트 조약 이후 영국 대외정책의 기본 골격은 유럽 대륙에서거대 강국이 등장하는 것을 방지하는 세력균형이었다. 그래서 유럽 대륙에서 분쟁과갈등이 발생하면 약자를 지원했다. 이는 약자의 보호자라는 인도주의적 입장이 아니라 유럽 대륙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외교전략이었다.
유럽 대륙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비스마르크의 대외정책과 영국의 전통적인 세력균형정책은 대립할 수 밖에 없었다. 비스마르크가 발견한 타협은 유럽에서 독일의주도권 장악에 대한 반대급부로 동아시아와 아프리카와 같은 비유럽 지역에서 영국의패권 장악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스마르크의 거대한 외교정책에 입각해서 조독수호통상조약과 조영통상조약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1882년 거의 동일한 시기에 체결된 조미조약, 조영조약, 조독조약 중에서 조미조약만 비준이 완료되었고 조독조약과 조영조약은 비준이 거부되면서 2차 조약으로 진행되었다. 비스마르크는비유럽 지역인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대외정책은 영국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2차 조약 체결과정에서도 독일은 전폭적으로 영국의 주장을 수용했다. 그리고1885년 봄에 발생한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에서도 영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비유럽지역에서의 비스마르크 외교정책은 많은 경우 영국에 동조하는 입장이었다.
이는 유럽에서 독일의 주도권 장악이라는 거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진행된 것이었다. 우리는 비스마르크 외교정책의 대부분이 성공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을 동맹국으로 포섭한다는 그의 가장 중요한 외교전략은 실패했다. 1889년 독일이영국에게 동맹을 제의했지만 영국은 거절했다.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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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현수, "파크스 관련 사료를 통해 본 ‘조영수호통상조약’ 체결과정" 11 : 2004
3 정상수, "일본의 한국 강제병합과 강대국들의 대응 1895~1910년" 한국서양사연구회 (42) : 109-148, 2010
4 김용구, "세계외교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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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Grundmann, Herbert, "Handbuch der deutschen Geschichte, vol. 3" 1960
9 Jung, Sangsu, "Deutschland und das Gelbe-Meer"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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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6 | 0.76 | 0.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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