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전라우수영 체제 하 서남해 요충지인 남도포진 만호의 관인적 위상과 역 할 변화를 조선후기를 중심으로 규명하였다. 『대전회통』, 『속대전』, 『전주찬요』, 『양전 편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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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전라우수영 체제 하 서남해 요충지인 남도포진 만호의 관인적 위상과 역 할 변화를 조선후기를 중심으로 규명하였다. 『대전회통』, 『속대전』, 『전주찬요』, 『양전 편고』 등...
본 연구는 전라우수영 체제 하 서남해 요충지인 남도포진 만호의 관인적 위상과 역 할 변화를 조선후기를 중심으로 규명하였다. 『대전회통』, 『속대전』, 『전주찬요』, 『양전 편고』 등 법전류와 『승정원일기』, 『각사등록』, 『우후영전진도첩』, 지방 진보 및 진지류 자료를 종합 분석하여 남도 만호의 제도적 지위와 지휘‧보고 체계, 남도 만호의 선발 배경과 출신 성분, 남도 만호의 관로(前職/移職)와 최고 관직 도달 양상, 남도 만호의 재임 기간과 포폄, 체직 사유, 마지막으로 만호의 역할 변화를 추적하였다.
첫째, 남도 만호는 법제상 종4품 수군 변장이었으나 현실적으로는 6품 참상 출신도 서용되었다. 보고 체계는 전시나 훈련시에는 거진(가리포‧임치도) 첨사를 경유하지만, 평시에는 전라우수사에 직보하는 경향이 강했다. 둘째, 선발은 무과 급제자 중심이지 만 금군, 군관, 초관 등 하급 장교에서 승륙되는 비중이 높았다. 한편, 드물지만 역 관·화원 등 중인 출신도 만호에 제수될 수 있어서 선천(宣薦)을 지닌 엘리트 무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셋째, 전직과 이직을 분석하였다. 만호는 제수 전에는 군관, 수문장, 초관 등 하급장교직이 주류였고, 만호 재임 후에도 첨사, 만호, 별장 등 변장 순환을 가거나 대부분은 남도 만호를 끝으로 이력이 종결되었다. 당상관으로의 승진은 15.6% 에 그쳤으며, 이마저도 주로 오위장, 동지사나 첨지중추부사 등 한직에 머물렀다. 당 대 무관과 음관들이 바라던 수령 진출은 3.5%로 극히 제한되었다. 넷째, 평균 재임 일수는 646일로 법정 900일 대비 71% 수준이었는데, 이는 다른 수령에 비해 법정 대비로 높은 수준이었다. 이는 남도 만호의 재직이 안정적이었던 점을 알려준다. 다만 18세기 후반을 고점으로 19세기 이후로는 급감하는 경향이 보였다. 만호의 체직 사유 로는 표류선이나 이양선에 대한 대응의 지연이나 부적절한 대처가 많았고, 공물과 군 량 관리의 소홀 등 직무 태만의 사례도 확인된다. 또한 공금의 유용 등 사익의 추구 도 확인된다. 그런데 이보다 더 많은 사례에서는 수사가 올린 포폄에 대해 병조에서 불투명한 이유로 낮은 포폄으로 조정되는 구조적 불합리점이 존재했다. 이는 남도 만 호의 낮은 위상에서 기인한다고 보인다. 다섯째, 조선후기에 들어서면 평가나 포상 사례가 군사적인 공로보다는 진휼, 환곡, 권농 등 일반 행정에서의 성과에 집중되었다. 이는 조선후기 남도 만호의 기능이 군사적 기능보다는 목민관으로서의 행정과 구휼에 집중된 결과로 보인다.
본 연구는 남도포진 만호라는 개별 사례를 분석한 연구이지만 조선후기 수군 만호 의 사회적 위상과, 이들의 인사 운영, 그리고 역할에 대한 이해를 실증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본 연구를 토대로 문관이나, 엘리트 무관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관료제 연구 의 보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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