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일제시기 부산을 거점으로 기업 활동을 전개한 재조일본인기업가 이케다 스케타다(池田佐忠)가 일제 패망 후 모국으로 돌아가 재기를 위해 전개한 다양한 사업의 추진과정과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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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Korean
KCI등재
학술저널
265-294(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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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제시기 부산을 거점으로 기업 활동을 전개한 재조일본인기업가 이케다 스케타다(池田佐忠)가 일제 패망 후 모국으로 돌아가 재기를 위해 전개한 다양한 사업의 추진과정과 그 ...
본 연구는 일제시기 부산을 거점으로 기업 활동을 전개한 재조일본인기업가 이케다 스케타다(池田佐忠)가 일제 패망 후 모국으로 돌아가 재기를 위해 전개한 다양한 사업의 추진과정과 그 귀결을 분석하였다. 이케다는 일제 패전 직후 일본에서의 사업전개를 위해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1952년 7월 심장병으로 갑자기 사망할 때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정력적인 기업 활동을 전개했다. 그 내용은 귀환 후 최초 사업인 염전사업부터, 주택건설사업, 멕시코 석유개발사업으로 이어졌다. 사업은 일제시기 부산에서의 기업 활동을 토대로 했고, 연장선상에 있었다. ‘사업보국’의 신념으로 무장하고, 끊임없는 관련 관청, 중앙 정부와의 접촉을 통해 지원과 특혜를 이끌어내려고 시도하는 사업방식 역시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재기를 위한 사업전개는 순조롭지 못했다. 일제시기 조선축항이 유야만에 투자한 기반을 토대로 시작한 제염사업의 경우 낮은 생산성과 戰後 혼란기의 기자재 공급지연 등으로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울산건설이 소유한 거액의 국채를 토대로 시도한 주택건설사업 역시 폐쇄기관 동척의 지분을 출자로 전환시키는데 실패함으로써 좌절되었다. 이케다가 ‘석유보국’의 기치를 내걸고 ‘최후의 천직’으로 삼았던 멕시코 석유개발사업 역시 자금 조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발대상 석유광구가 소송에 휘말리는 등의 우여곡절과 이케다 자신의 사망으로 계획단계에서 좌절되었다.
이케다는 패전 후 일본에서 일제시기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조국에 충성하고 헌신했지만, 그의 위상은 경계인이자 주변인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식민지 기업 활동의 유산인 울산건설을 토대로 추진한 주택건설사업에서 잘 보여주듯이, 미국에 의해 ‘민주 국가’로 탈바꿈하고 있던 戰後 일본에서 그는 ‘제국 일본의 유산’으로서 청산의 대상이었다. 결국 이케다의 재기를 위한 사업 활동의 전개과정과 그 귀결은 식민지 재조일본인의 국가에 대한 충성도에 상관없는 태생적인 경계인, 주변인 성격과 그 한계를 보다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하겠다. 戰前과 전후, 그의 사업보국의 경영이념과 국가에 기댄 기업 활동방식에 변함이 없었듯이, 그 결과로써의 경계인, 주변인의 역사적 위상도 변함이 없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analyzed the process of promotion and consequences of various businesses developed by Japanese entrepreneur residing in Joseon, Suketada Ikeda, who developed business activities in Busan as a foothol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f...
This study analyzed the process of promotion and consequences of various businesses developed by Japanese entrepreneur residing in Joseon, Suketada Ikeda, who developed business activities in Busan as a foothol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fter returning to his home country after Japan’s defeat. Ikeda moved fast for the development of business in Japan immediately after the defeat of Japan and energetically developed business activities in various areas till he suddenly died of heart disease in July 1952. His activities led from salt pond business, the first business after his return through housing construction business to oil development project in Mexico.
The business was built on his previous business activities in Busa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hich was an extension. His belief, ‘patriotism through business’ and his business approach in which he was trying to bring about support and preferential treatment through incessant contacts with related authorities and the central government remained unchanged.
However, his business progress for recovery was not smooth. His salt manufacture business started based on the investment in the Gulf of Yuya by Joseon Harbor Construction Co., Lt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did not produce expected performance due to low productivity and delay in equipment supply during the postwar period of chaos. His housing construction business attempted based on the large amount of government bonds owned by Ulsan Construction Co., Ltd., too, was frustrated by the failure of conversion of the shares of a closed institution, Oriental Development Company into investment. Mexico oil development project Ikeda took as his ‘final vocation’ putting up the banner of ‘patriotism by petroleum,’ too, was discouraged at the stage of planning due to a complication that the oil mining area, the target of development faced a lawsuit in a situation in which the problem of capital financing was not settled and his own death.
Ikeda stayed loyal and devoted to his country after the defeat as he di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but his status did not go beyond that of a peripheral subject and marginal man. Especially, as well shown in his housing construction business promoted based on Ulsan Construction Company, a legacy of the colonial enterprise activity, in post-war Japan that was transforming itself to a ‘democratic country’ by the U.S., he was an object of liquidation as ‘a legacy of imperial Japan.’ Consequently, the process of development and consequences of Ikeda’s business activities for recovery showed his inherent nature and limitation as a peripheral subject and marginal man, irrespective of the allegiance of the Japanese people residing in Joseon to the country more noticeably. Before and after the war, like his management philosophy of patriotism through business and way of enterprise activity depending on the state remained the same, his historical status as a peripheral subject and marginal man as a result remained unchanged.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이형식, "제국과 식민지의 주변인-재조일본인의 역사적 전개-" 보고사 2013
2 배석만, "전후 한일 양국의 재조일본인 재산처리과정-이케다 스케타다(池田佐忠)의 사례-" 한일민족문제학회 (28) : 53-88, 2015
3 배석만, "일제시기 부산항 매축과 池田佐忠" 선인 2012
4 배석만, "일제말 赤崎灣 추가매축 연구"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9) : 65-98, 2013
5 배석만, "부산항 매축업자 이케다 스케타다(池田佐忠)의 기업 활동" 한국민족문화연구소 (42) : 127-170, 2012
6 石井正紀, "陸軍燃料廠―太平洋戦争を支えた石油技術者たちの戦い" 光人社 2013
7 東洋拓殖株式会社, "蔚山建設(株)関係(簿冊番号 後17番39号)"
8 十菱駿武, "続‧しらべる戦争遺跡の事典" 柏書房 2003
9 "油谷町史"
10 油谷湾鹽業株式會社, "油谷湾綜合開發關係資料"
1 이형식, "제국과 식민지의 주변인-재조일본인의 역사적 전개-" 보고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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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배석만, "일제말 赤崎灣 추가매축 연구"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9) : 65-9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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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油谷町史"
10 油谷湾鹽業株式會社, "油谷湾綜合開發關係資料"
11 池田国司, "池田佐忠 事業と人生"
12 "每日申報"
13 落合功, "大陸進出構想の挫折と油谷湾開発事業" 山口県県史編纂室 20 : 2012
14 "国家帰属清算法人清算資料集"
15 柴田善雅, "制度轉換期の企業と市場 1937~1955" ミネルヴァ書房 2011
16 竹前榮治, "G H Q" 岩波書店 1983
17 배석만, "1930년대 부산 적기만(赤崎灣)매축 연구"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8 : 2012
1910년대 일제의 조선 산림 소유와 이용에 관한 인식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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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4-04-09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Journal of Koreanology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9-05-26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Center for Korean Studies Pusan National University -> Korean Studies Institute, Pusan National University |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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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91 | 0.91 | 0.82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83 | 0.83 | 1.368 | 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