兩唐書 유오전은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사실들을 전하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적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唐代`割據藩鎭`의 연원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당조의 통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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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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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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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337-348(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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兩唐書 유오전은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사실들을 전하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적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唐代`割據藩鎭`의 연원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당조의 통치를 ...
兩唐書 유오전은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사실들을 전하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적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唐代`割據藩鎭`의 연원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당조의 통치를 약화시킨 유력한 `할거번진`들이 가진 공통점 중 하나는 그들 모두 반란을 일으킨 安祿山의 부하였다는 점이다. 단, 여기에도 두 가지 계통이 존재한다. 하나는 안사의 난 말기에 唐朝에 투항하였다가 다시 당조를 이반하고 당말까지 당조의 통치를 거부하였던, 이른바 `河北三鎭`이 그들이다. 또 하나는 안사의 난 중에 안록산을 이반하여 당조의 일원으로서 반란군과 싸우다가 반란이 종결된 뒤 당조의 지배를 벗어난, 平盧 번진과 淮西 번진이다(鄭炳俊, 「李正己 一家 이후의 山東 藩鎭-順地化 過程」, 『대외문물교류연구』 3, 2004, p.122). 유오는 이정기 일가가 지배하던 평로 번진의 군장으로 복무하였다. 그가 평로 번진에 복무하게 되는 과정과 활동 내용을 통해 당시 할거번진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세력을 키우고 유지하였는가를 잘 알 수 있다. 한편, 양당서 유오전에는 유오의 숙부이면서 宣武節度使가 된 劉全諒이란 인물이 보이는데, 그 역시 요서 평로군 출신이다. 단, 절도사 유전량은 당조에 대해 불손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둘째는 高句麗 遺民史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산동의 평로 번진을 지배한 李正己 일가는 고구려 유민이다. 중국 학자 孫慧慶에 의하면 안사의 난 중인 肅宗 上元 2년(761), 이정기는 平盧節度使 侯希逸과 함께 평로의 병사 2만여 명을 거느리고 遼西지역에서 오늘날의 山東지역으로 남하하였다. 그때 그들이 거느린 총인원은 병사 가족들을 포함하여 모두 10만인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그 10만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점하는 것은 漢族이었지만, 그 다음으로 많은 숫자가 고구려 유민이었을 것이라고 한다(「唐代平盧節度使南遷之后 議」, 『北方文物』1992-4, p.74). 그렇다면 이정기와 평로군의 남하는 고구려 유민사에서 큰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뒤 이정기는 후희일을 몰아내고 스스로 평로군의 藩帥에 올라 3세대 4대에 걸쳐 약 54년 동안 산동지역을 사실상 독립적으로 지배하였다. 그 과정에서 고구려 유민들이 여러 가지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유오는 이정기 일가가 멸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이 역시 고구려 유민사의 일대사건이라 할 수 있다. 양당서 유오전에는 이정기 일가의 멸망과정이 상세히 적혀 있다. 셋째는 이정기 일가가 멸망한 후에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당조의 지배에 순응하지 않았던 평로 번진의 잔존 세력을 살펴볼 수 있다. 이정기 일가가 멸망한 후 평로 번진은 세 개의 번진으로 분할되어 모두 당조의 명을 받드는 지역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유오는 이정기 일가를 멸망시킨 공으로 昭義節度使에까지 오르자 그 역시 당조에 불손한 태도를 보였으며, 그 자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러한 유오 일가가 의지한 세력이 바로 이전의 평로군에서 데려간 병사들이었다는 점이다. 즉 『資治通鑑』권243, 敬宗 寶曆원년 7월조를 보면 "昭義節度使劉悟之去……州也, 以…..兵二千自隨爲親兵"(p.7844)라고 적혀 있는데, 이때 ……은 평로군을 가리킨다. 또 『新唐書』권193, 「列傳」118, `忠義下·賈直言`에는 유오의 아들인 소의절도사 劉從諫에 대해 기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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