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목은 이색(李續, 1328-1396) 이 한국 다도문화사에 남긴 업적을 알기 위해, 그의 다도사상과 그가 인식한 다도의 교육적 가치를 고찰하였다. 또한 목은 학맥의 다인 과 다연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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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본고에서는 목은 이색(李續, 1328-1396) 이 한국 다도문화사에 남긴 업적을 알기 위해, 그의 다도사상과 그가 인식한 다도의 교육적 가치를 고찰하였다. 또한 목은 학맥의 다인 과 다연을 ...
본고에서는 목은 이색(李續, 1328-1396) 이 한국 다도문화사에 남긴 업적을 알기 위해,
그의 다도사상과 그가 인식한 다도의 교육적 가치를 고찰하였다. 또한 목은 학맥의 다인
과 다연을 중심으로 그의 영향이 미친 다도문화권역을 대략 살펴보았다.
목은은 조선 오백년 성리학의 기초를 일으킨 대학자로서,고려 말의 정치적 · 사회적 변
화와 혁신, 그리고 유불과 계층 간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무척 고난의 시대를 산 정치가였
다. 그는 스승인 다가 이제현과 아버지 이곡의 가통다도 영향을 받아, 85편에 달하는 고려
에서 가장 많은 차시문을 남겼다.
찻자리의 풍경이나 다음(茶餘)을 사랑하는 글은 아무나 쓸 수 없으므로, 옛 문사 · 승려
들의 차시문은 예사롭지가 않다고 보아야 한다. ‘예사롭지가 않다’고 함은 지금 우리가 본
받을 수 있는 진리와 삶의 힘이 깃들어 있음이다.
이색은 다사를 실천적 유학공부로서 역행하며 다도사상을 남겨 일가를 이룬 다가(茶家)
이다.
그는 차를 잘 끓여 마시는 일을 성의(誠意) . 정심(正心) . 수선(修身)하는 구체적 방법이
라고 하는 군자 수양의 다도를 주창하여, 세계 최초이자 그 유례가 드문 업적을 남겼다.
즉, 찻자리는 자신과 가정과 천하를 다스리는 공부를 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주희(朱熹)는 차의 쓴맛에서 주역의 교훈을 찾았지만, 목은은 음다 후의 섬(心)과 다기
(茶器)와 다미(茶味)에서 ‘성(誠)’과 ‘진(員)’을 내포한 ‘무사(無邪)’라는 유가사상을 찾았다.
그는 다공문화(茶供文化) 전반을 아우르는 다도사상을 내세운 것이다.
이색은 찻자라에서 유학사상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를 혼융한 하나의 ‘지도(至道)’를 구
하였고 또한 얻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성(誠)’과 ‘역행(力行)’과 ‘정
좌(靜坐)’를 중시하였는데, 이를 다사(茶事)와 명석(혼席)에서 교육적 가치를 찾았다. 그는
명실공히 군자다도의 태두임이 분명하다.
이색은 불우했던 당대에 다도를 통하여 수평적 · 수직적 소통을 하면서 주도하여 정신적
지주로서 사상적 · 교육적 진리를 펴고자 하였다.
목은의 학맥다도는 스승 이제현과 이곡의 영향을 받았고, 동료 학인다우로는 사담 유숙,
둔촌 이집, 원재 정추, 운곡 원천석, 유항 한수를 들 수 있다. 문도의 다인으로는 포은 정몽주,척약재 김구용,쌍매당 이첨, 도은 이숭인,양촌 권근,춘정 변계량이 있으며, 여타의 교유다인으로 난파 이거인,기우자 이행,삼봉 정도전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이색으로 인해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 외에도 차시문은 없으나 다석을 함께 했거나 차와 다구를 선물로 준 기록상의 인물
로, 연무설 · 섭백경 · 홍수겸 · 권중화 · 우제 · 이광보 · 안종원 · 이계성 · 이계림 · 유탁 · 하안부 · 박성량 · 김안렴 · 이우량 · 최유경 등이 있고,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윤정당 · 상당군 · 한첨서 · 유밀직 · 군수 이공 · 성부원군 · 안대부 등이 있었다.
다인 승려로는 태고 보우와 나옹 혜근이 있고 친구인 나잔자, 그리고 수안, 죽간선사, 감로사 승려, 차를 얻은 송광사 화상, 개천사의 담 스님과 행재, 보림사 영공, 송광사 부목,연곡사 주지 인우와 무열, 백암사 운암, 섣봉, 구곡 각운 등이 있다. 당대에 다연이 있는 학맥과 승려는 50인이 넘는 셈이다. 이외에 기록으로 알 수 있는 유방선, 서거정 등 후대의 사숙제자들도 적지 않다. 또한 조선시대 건국왕가인 태조 · 정종 · 태종 · 세종 · 문종에 이묘기까지 음다생활과 더불어 다공(茶供)을 국가의 예의제도로써 확고히 세운 데는 목은과 문도들의 영향이 무척 컸다.
이로써 목은이 한국 다도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그의 다도관도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
쳤겠는가 짐작이 간다.
이 시대에 받들어야 할 이색 다도의 요지는, 치국평천하하고자 한다면 집에 앉아서 차
부터 끓여 마시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윤리 교육이나 실천적
수양 방법은 이색의 다도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근현대에 우리는 경제가 목적인 시대를 살아왔으나, 이제와 미래는 경제가 수단인 세대
를 살게 된다. 이때야말로 철학의 기초가 있는 의례문화와 다도가 중시되지 않을 수 없다.
『고려사절요』를 보면 탐욕스러웠던 신돈(辛旽,?~ 1371) 이 집에 있을 적에는 술을 마시
고 고기를 먹으며 음악과 여색을 마음대로 즐겼으나, 공민왕을 벌 때는 청담(淸談)을 하며
채소와 과일,차(참飯)를 마셨다고 하였다. 이는 목은 이색과 정반대의 다음(茶飯)문화를
추구하는 경우이므로, 우리가 경계해야 되는 의례 · 다도의 이면이다.
현대 다도의 중요한 덕성(德性)도 ‘생각에 삿됨이 없음’과 ‘진정한 소통’이 아닌가 생각
된다. 이는 나무가 물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는 덕성과 같다. 함께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
들은 좀 더 수선하고 역행하여, 찻자리에서 나의 본질과 작용의 조화,찻물을 통한 나와
너의 참된 화해, 사회현상과 철학의 상통, 그리고 각 종교 간의 존중이 있다면 목은의 이
상사회를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글은 생활 속 다음(茶飯)을 통해 ‘하학상달
(下學上達)’의 예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목은의 글에는 천년 후에 자선의 뜻을 알아주어 이루어질 것을 예견하는 글이 있는데,
이 시대와 후대의 다인들이 소홀히 넘길 수 없는 대목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우리는 급히 도입된 서구교육으로 인해 가정과 학교의 전통적 덕성 교육이 망가
져, 후대에 그 벌을 받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태조 · 태종 · 세종이 그랬듯이 예다문화를 교육하고 제도화하는 정책이 있기를 바란다.
본고는 이색의 4,000편에 달하는 시문 전체를 면밀히 읽지 못하고 써졌으므로 더러는
소략한 부분도 있을 것이나, 다가(茶家) 이색과 진정으로 소통하고자 한 데에 의의를 두면
서 후학들의 정진을 기대하고자 한다.
목차 (Table of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