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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閭巷 洛社詩에 나타난 社會批判意識 硏究 = (A) Study on social criticism in Chinese poetry by naksa me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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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은 조선 후기 사회에서 중간적 신분을 지닌 閭巷人들의 시각에서 당시 사회를 바라보고자, '洛社' 동인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한시에 투영된 사회 비판 의식을 고찰하였다.
      연구 방법은 역사주의적 방법과 비교문학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먼저 洛社 동인들의 전반적인 문학 세계를 살펴보고, 사회 비판 의식의 양상을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으로 나누어 연구하였다.
      본고에서 논의된 사항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洛社 동인들은 林俊元(?∼1697)과 洪世泰(1653∼1725)를 중심으로 서울의 북부에 거주하면서 詩社를 결성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스스로를 시인으로 자부하고 있었으며, 詩社를 통해 同類 意識을 가짐으로써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不平之氣를 狂歌로 나타내어 함께 외쳐 부르기도 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였다.
      이들이 활동한 시기는 대략 顯宗∼英祖朝에 이르는 약 50∼60년간이었다. 洛社는 순수 여항인들만으로 구성된 최초의 여항 詩社였으며, 동인들은 시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고 이들은 天機論的 문학관을 자신들의 문학 활동의 이론적 토대로 삼았으며, 나아가 신분 문제까지 아우르는 논리로 삼았다.
      洛社 동인들은 본격적인 여항 시집인 「海東遺珠」와 「昭代風謠」, 그리고 개인 문집을 활발히 간행함으로써 이후 여항 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洛社 동인들의 가장 큰 주제는 신분 갈등 문제였다. 그것은 신분 상승 욕구가 강할수록, 그리고 포부가 강할수록 더욱 강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한 예로, 홍세태의 「嫩竹」은 욕망은 강한데 현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데서부터 출발하고 있는데, 신세 한탄에만 머물지 않고 강한 도전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낙사 동인들은 신분 문제를 다룰 때 '劍'을 즐겨 표현했다. 이득원의 「短劍篇」에서처럼 칼은 "무지개를 뿜어, 북두성까지 곧장 뻗치고, 밤에 걸어두면 용처럼 으르렁대고, 낮에 어루만지면 한낮에도 싸늘하며, 우레치면 문득 미쳐 날뛰어, 빈 산의 귀신처럼 울부짖"을 정도로 비범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 칼은 "천관에 바치고 싶지"만 이룰 수 없는, 당시 사회에서는 쓸 수 없는 무용지물이 다. 이것은 바로 여항인이라는 자신들의 신분적 제약을 확인한 자아 인식이다.
      초기 六家 시인들은 신분 문제 해결에 매우 소극적인 것이었는데 비해, 洛社 동인들은 보다 적극적인 경향을 취하였다. 이들은 天機論을 자신들의 문학 이론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평등 의식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신분제 자체를 부정하는 단계에까지는 인식이 미치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常賤民의 신분 문제를 다루는데는 소홀하였다.
      그러나 洛社 동인 가운데 洪世泰와 鄭來僑·鄭敏僑 형제는 신분 문제에만 얽매이지 않고 사회 문제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고발하는 등 치열한 시인 정신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知的인 면뿐만 아니라 詩才로써 당시 양반 사대부들에까지 인정받는 명실 상부한 여항의 지식인이요 교육자였다. 이들의 공통된 점은 天機論을 바탕으로 비판 의식이 매우 강했다. 평생 가난한 가운데 간혹 지방 근무를 하면서 사회 제반 모순의 현장을 가까이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지방의 吏胥들과는 달리, 선비나 시인으로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분은 비록 말단 관리에 불과하였지만 牧民과 濟民의 사고를 지녔다.
      그들은 收稅 制度의 모순, 이를 담당했던 수령과 관속들의 부정 행위 등 삼정 문란의 실상을 간과하지 않았다. 특히 洪世泰의 「抄丁行」, 鄭來僑의 「農家歎」, 鄭敏僑의 「軍政歎」 등은 三政 紊亂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며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수작이다. 洛社 동인들은 恤民 의식뿐만 아니라 官에 의한 사회 구조적 모순도 비판하고 있다.
      洛社 동인들은 사회 문제를 폭넓게 고찰하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의식은 근대 시민 사회로 나아가는 데 디딤돌 역할을 한 것은 틀림이 없다. 또한 중인들의 의식 수준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음은 물론, 이후 전개되는 여항 문학의 전개에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양반 사대부나 서얼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집단적 의식 세계를 보여주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하겠다.
      번역하기

      본 논문은 조선 후기 사회에서 중간적 신분을 지닌 閭巷人들의 시각에서 당시 사회를 바라보고자, '洛社' 동인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한시에 투영된 사회 비판 의식을 고찰하였다. ...

      본 논문은 조선 후기 사회에서 중간적 신분을 지닌 閭巷人들의 시각에서 당시 사회를 바라보고자, '洛社' 동인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한시에 투영된 사회 비판 의식을 고찰하였다.
      연구 방법은 역사주의적 방법과 비교문학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먼저 洛社 동인들의 전반적인 문학 세계를 살펴보고, 사회 비판 의식의 양상을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으로 나누어 연구하였다.
      본고에서 논의된 사항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洛社 동인들은 林俊元(?∼1697)과 洪世泰(1653∼1725)를 중심으로 서울의 북부에 거주하면서 詩社를 결성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스스로를 시인으로 자부하고 있었으며, 詩社를 통해 同類 意識을 가짐으로써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不平之氣를 狂歌로 나타내어 함께 외쳐 부르기도 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였다.
      이들이 활동한 시기는 대략 顯宗∼英祖朝에 이르는 약 50∼60년간이었다. 洛社는 순수 여항인들만으로 구성된 최초의 여항 詩社였으며, 동인들은 시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고 이들은 天機論的 문학관을 자신들의 문학 활동의 이론적 토대로 삼았으며, 나아가 신분 문제까지 아우르는 논리로 삼았다.
      洛社 동인들은 본격적인 여항 시집인 「海東遺珠」와 「昭代風謠」, 그리고 개인 문집을 활발히 간행함으로써 이후 여항 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洛社 동인들의 가장 큰 주제는 신분 갈등 문제였다. 그것은 신분 상승 욕구가 강할수록, 그리고 포부가 강할수록 더욱 강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한 예로, 홍세태의 「嫩竹」은 욕망은 강한데 현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데서부터 출발하고 있는데, 신세 한탄에만 머물지 않고 강한 도전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낙사 동인들은 신분 문제를 다룰 때 '劍'을 즐겨 표현했다. 이득원의 「短劍篇」에서처럼 칼은 "무지개를 뿜어, 북두성까지 곧장 뻗치고, 밤에 걸어두면 용처럼 으르렁대고, 낮에 어루만지면 한낮에도 싸늘하며, 우레치면 문득 미쳐 날뛰어, 빈 산의 귀신처럼 울부짖"을 정도로 비범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 칼은 "천관에 바치고 싶지"만 이룰 수 없는, 당시 사회에서는 쓸 수 없는 무용지물이 다. 이것은 바로 여항인이라는 자신들의 신분적 제약을 확인한 자아 인식이다.
      초기 六家 시인들은 신분 문제 해결에 매우 소극적인 것이었는데 비해, 洛社 동인들은 보다 적극적인 경향을 취하였다. 이들은 天機論을 자신들의 문학 이론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평등 의식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신분제 자체를 부정하는 단계에까지는 인식이 미치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常賤民의 신분 문제를 다루는데는 소홀하였다.
      그러나 洛社 동인 가운데 洪世泰와 鄭來僑·鄭敏僑 형제는 신분 문제에만 얽매이지 않고 사회 문제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고발하는 등 치열한 시인 정신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知的인 면뿐만 아니라 詩才로써 당시 양반 사대부들에까지 인정받는 명실 상부한 여항의 지식인이요 교육자였다. 이들의 공통된 점은 天機論을 바탕으로 비판 의식이 매우 강했다. 평생 가난한 가운데 간혹 지방 근무를 하면서 사회 제반 모순의 현장을 가까이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지방의 吏胥들과는 달리, 선비나 시인으로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분은 비록 말단 관리에 불과하였지만 牧民과 濟民의 사고를 지녔다.
      그들은 收稅 制度의 모순, 이를 담당했던 수령과 관속들의 부정 행위 등 삼정 문란의 실상을 간과하지 않았다. 특히 洪世泰의 「抄丁行」, 鄭來僑의 「農家歎」, 鄭敏僑의 「軍政歎」 등은 三政 紊亂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며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수작이다. 洛社 동인들은 恤民 의식뿐만 아니라 官에 의한 사회 구조적 모순도 비판하고 있다.
      洛社 동인들은 사회 문제를 폭넓게 고찰하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의식은 근대 시민 사회로 나아가는 데 디딤돌 역할을 한 것은 틀림이 없다. 또한 중인들의 의식 수준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음은 물론, 이후 전개되는 여항 문학의 전개에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양반 사대부나 서얼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집단적 의식 세계를 보여주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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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is devoted to look into the late Choseon Dynasty through the eyes of Yeohang men that were in intermediate social status. Their social criticism reflected on their own poems has been studied.
      They lived mostly in northern part of Seoul and made up a Poets' Society to have periodical gatherings. Lim, Junweon and Hong, Setae were key figures. They called confidently themselves poets and tried to express everything by means of poetry. They acted together and comforted each other in the boundary of the Poets' Society as well. They sang together Kwang-Ga (mad song) to pour their discontent out and let people know their existence.
      They were active for about 50∼60 years between early Hyeonjong and early Yeongjo in Joseon Dynasty. Naksa was the first Poets' Society composed of pure Yeohang men and had such an importance to the members.
      They made big footprints publishing common collections of poems and private collections vigorously. This publication led the progress in Yeohang literature.
      The biggest subject was the social class complication. The bigger the desire and the ambition of class rise, the more this phenomenon prevails. They had a more aggressive tendency toward this issue while poets of Yuk-ka performed passively. They adopted Cheongiron as their literature theory and brought up the sense of equality in which they insisted they were same as Yangban (noble class). They, however, did not reach the denial of the whole class system because they neglected the problems with other lower classes. Hong, Setae and the brothers of Jeong, Raekyo and Jeong, Minkyo displayed articulate poets' spirit criticizing general social problems instead of merely cohering into the class matter.
      They were reputed as Yeohang intellectuals and Yeohang educators even acknowledged by the high nobility. They were known different from any local subordinate officials conceiving the thought of ruling and saving people though they were often placed in temporary petty officials as well.
      The social criticism of Naksa has not been broadly touched, but this is well understandable when we know there were not so much for them to do in rigorous class system like Choseon Dynasty Despite of this limit, their mind had surely been helpful to move to citizen centered society and contributed to enlightening middle class. They also spurred the Yeohang literature. It is another remarkable point that they performed in group mind which is not to be seen in nobility or illegitimate progeny from no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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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is devoted to look into the late Choseon Dynasty through the eyes of Yeohang men that were in intermediate social status. Their social criticism reflected on their own poems has been studied. They lived mostly in northern part of Seoul and...

      This study is devoted to look into the late Choseon Dynasty through the eyes of Yeohang men that were in intermediate social status. Their social criticism reflected on their own poems has been studied.
      They lived mostly in northern part of Seoul and made up a Poets' Society to have periodical gatherings. Lim, Junweon and Hong, Setae were key figures. They called confidently themselves poets and tried to express everything by means of poetry. They acted together and comforted each other in the boundary of the Poets' Society as well. They sang together Kwang-Ga (mad song) to pour their discontent out and let people know their existence.
      They were active for about 50∼60 years between early Hyeonjong and early Yeongjo in Joseon Dynasty. Naksa was the first Poets' Society composed of pure Yeohang men and had such an importance to the members.
      They made big footprints publishing common collections of poems and private collections vigorously. This publication led the progress in Yeohang literature.
      The biggest subject was the social class complication. The bigger the desire and the ambition of class rise, the more this phenomenon prevails. They had a more aggressive tendency toward this issue while poets of Yuk-ka performed passively. They adopted Cheongiron as their literature theory and brought up the sense of equality in which they insisted they were same as Yangban (noble class). They, however, did not reach the denial of the whole class system because they neglected the problems with other lower classes. Hong, Setae and the brothers of Jeong, Raekyo and Jeong, Minkyo displayed articulate poets' spirit criticizing general social problems instead of merely cohering into the class matter.
      They were reputed as Yeohang intellectuals and Yeohang educators even acknowledged by the high nobility. They were known different from any local subordinate officials conceiving the thought of ruling and saving people though they were often placed in temporary petty officials as well.
      The social criticism of Naksa has not been broadly touched, but this is well understandable when we know there were not so much for them to do in rigorous class system like Choseon Dynasty Despite of this limit, their mind had surely been helpful to move to citizen centered society and contributed to enlightening middle class. They also spurred the Yeohang literature. It is another remarkable point that they performed in group mind which is not to be seen in nobility or illegitimate progeny from no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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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國文抄錄>
      • I. 序論 = 1
      • II. 文學的 背景과 文學 世界 = 4
      • 1. 閭巷 文學의 展開 過程과 洛社 = 4
      • 가. 閭巷 文學의 展開 過程 = 4
      • <國文抄錄>
      • I. 序論 = 1
      • II. 文學的 背景과 文學 世界 = 4
      • 1. 閭巷 文學의 展開 過程과 洛社 = 4
      • 가. 閭巷 文學의 展開 過程 = 4
      • 나. 洛社의 形成 背景과 構成員 = 8
      • 2. 洛社 同人들의 全般的인 文學 世界 = 11
      • 가. 同人들의 文學 世界 = 11
      • 나. 同人들의 作詩 能力 = 21
      • III. 社會 批判 意識의 樣相 = 29
      • 1. 身分的 桎梏의 表出 = 29
      • 가. 身分 葛騰의 形象化 = 30
      • 나. 葛藤 解消의 促求 = 43
      • 2. 社會 制度와 世態 批判 = 48
      • 가. 民生苦의 現場 告發 = 50
      • 나. 社會的 矛盾 告發 = 58
      • IV. 洛社 文學의 文學史的 意義 = 76
      • V. 結論 = 80
      • <參考文獻>
      • <英文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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