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해방 후 중국지역 한인의 귀환과 마약문제 = Korean returness from China and the issue of drugs after the Liberation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5913877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roblem of opium and drugs eas not something that can simply be solved by liberation from the colonies. Under the Japanese colony, many Koreans in Joseon were already exposed to opium and drugs. And right after liberation, the shadow of opium and drugs still fell on Korean society.
      So far, studies on drug problems from liberation to the 1960s of the military government were heavily studied in connection with some specific problems like the aspect of heritage of Japanese colony, political chaos after colonial liberation, Korean War, anti-Communism. But this paper focuses on the Koreans who returned from China after liberation. We will look at how they are related to drug problems and drug policies.
      The seriousness of the drug problem hanging on Korean society after liberation was not only due to the Japanese colonial rule but also to Koreans returning from China. Right after liberation were the effects of korean drug workers and addicts who returned from Manchuria and Huabei(화북). This paper has an introductory character. So further research is needed. But even during the military government in the 1960s, we can not help but notice the influence of the 'manchurian network' who returned from Manchuria after liberation. It is believed that the shadow of Manchukuo also worked to a certain extent on drug policy.
      The legacy, which remained in Korean society after liberation, was having some influence in the early stages of Korean society and the government's policy making. That included not only the legacy of the colonies, but also the compatriots back home.
      번역하기

      The problem of opium and drugs eas not something that can simply be solved by liberation from the colonies. Under the Japanese colony, many Koreans in Joseon were already exposed to opium and drugs. And right after liberation, the shadow of opium and ...

      The problem of opium and drugs eas not something that can simply be solved by liberation from the colonies. Under the Japanese colony, many Koreans in Joseon were already exposed to opium and drugs. And right after liberation, the shadow of opium and drugs still fell on Korean society.
      So far, studies on drug problems from liberation to the 1960s of the military government were heavily studied in connection with some specific problems like the aspect of heritage of Japanese colony, political chaos after colonial liberation, Korean War, anti-Communism. But this paper focuses on the Koreans who returned from China after liberation. We will look at how they are related to drug problems and drug policies.
      The seriousness of the drug problem hanging on Korean society after liberation was not only due to the Japanese colonial rule but also to Koreans returning from China. Right after liberation were the effects of korean drug workers and addicts who returned from Manchuria and Huabei(화북). This paper has an introductory character. So further research is needed. But even during the military government in the 1960s, we can not help but notice the influence of the 'manchurian network' who returned from Manchuria after liberation. It is believed that the shadow of Manchukuo also worked to a certain extent on drug policy.
      The legacy, which remained in Korean society after liberation, was having some influence in the early stages of Korean society and the government's policy making. That included not only the legacy of the colonies, but also the compatriots back home.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아편과 마약문제는 식민지 해방으로 간단히 단절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조선의 많은 한인들이 일본 식민지하에서 이미 아편과 마약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해방 직후에도 아편과 마약의 그림자는 한국 사회에 여전히 드리워져 있었다.
      일본의 조선 강점기의 아편마약 확산에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정책과 관련이 깊었던 반면 해방 직후와 1960년대 군사정부 시기의 마약정책은 중국 귀환 동포와의 관련성이 주목된다. 해방 직후 만주ㆍ화북으로부터 많은 한인들이 귀환하였는데 이들 한인 가운데 일부 중국에서 아편마약을 밀매하거나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있었다. 한편 1960년대 군사정부의 마약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해방 이후 만주로부터 귀환한 인물들의 역할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군사정부의 핵심 인사 가운데 ‘만주국’에서 군에 복무했거나 관리를 지낸 ‘만주 인맥’들이 주요 직책에 포진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약정책 역시 ‘만주국’에서 시행된 정책과 유사한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방 직후부터 1960년대 군사정부 시기까지의 마약문제에 대한 연구는 주로 일본 식민지의 유산과 해방 후의 정국혼란, 한국전쟁과 반공주의, 그리고 국가통제라는 측면과 연계하여 연구된 측면이 많았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해방 이후 중국으로부터 귀환한 한인들과 관련하여 해방 이후 한국의 마약문제와 마약정책에 주목하였다.
      일본의 조선 강점 이후 만주와 화북의 도시로 이주했던 많은 한인들은 아편과 마약 밀매에 관여하였다. 이들 중국 이주 한인들은 낯선 타국에서 정업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들 한인은 ‘일본 신민’으로 치외법권의 특혜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밀매 등 부정업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 패전 직전까지 화북과 만주에서 아편마약과 관련이 있었던 이주 한인들의 다수가 중국인과 국민정부의 한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송환정책에 따라 본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이들의 귀환은 해방 직후 한국 사회에 마약문제라는 사회불안 요소의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군사정부의 마약정책과 1930년대 ‘만주국’의 마약정책과의 유사성을 시론적으로 살펴보았다. 사실 시공간적으로 볼 때 남한의 군사정부와 ‘만주국’과는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가상적 또는 주적을 맞대고 있는 ‘만주국’과 남한의 유사한 환경, 1960년대 남한에 수립된 군사정부와 ‘만주 인맥’과의 관련성, 경제개발 계획의 유사성과 노동력 확보에 대한 인식 등을 통해 당시 군사정부의 정책들이 ‘만주국’의 정책들과 흡사한 점들이 많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한 가운데 군사정부의 마약정책에서도 공산간첩의 마약 재원 차단, 경제개발 계획과 연계한 노동력 보호, 계몽과 치료 등에 ‘만주국’ 시대 아편마약 정책의 잔영이 떠오른다고 하겠다.
      요컨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드리워진 마약문제의 심각성은 일본 식민지배의 영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지역 한인의 귀환과도 관련이 있었다. 해방 직후의 경우는 중국 화북과 만주로부터 귀환한 한인 아편마약 관련 종사자 또는 중독자의 영향이 있었다. 비록 시론적인 측면이 있어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1960년대 군사정부 시기에도 해방 후 만주로부터 귀환한 ‘만주 인맥’의 영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마약정책에서도 ‘만...
      번역하기

      아편과 마약문제는 식민지 해방으로 간단히 단절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조선의 많은 한인들이 일본 식민지하에서 이미 아편과 마약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해방 직후에도 아편과 마약...

      아편과 마약문제는 식민지 해방으로 간단히 단절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조선의 많은 한인들이 일본 식민지하에서 이미 아편과 마약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해방 직후에도 아편과 마약의 그림자는 한국 사회에 여전히 드리워져 있었다.
      일본의 조선 강점기의 아편마약 확산에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정책과 관련이 깊었던 반면 해방 직후와 1960년대 군사정부 시기의 마약정책은 중국 귀환 동포와의 관련성이 주목된다. 해방 직후 만주ㆍ화북으로부터 많은 한인들이 귀환하였는데 이들 한인 가운데 일부 중국에서 아편마약을 밀매하거나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있었다. 한편 1960년대 군사정부의 마약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해방 이후 만주로부터 귀환한 인물들의 역할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군사정부의 핵심 인사 가운데 ‘만주국’에서 군에 복무했거나 관리를 지낸 ‘만주 인맥’들이 주요 직책에 포진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약정책 역시 ‘만주국’에서 시행된 정책과 유사한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방 직후부터 1960년대 군사정부 시기까지의 마약문제에 대한 연구는 주로 일본 식민지의 유산과 해방 후의 정국혼란, 한국전쟁과 반공주의, 그리고 국가통제라는 측면과 연계하여 연구된 측면이 많았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해방 이후 중국으로부터 귀환한 한인들과 관련하여 해방 이후 한국의 마약문제와 마약정책에 주목하였다.
      일본의 조선 강점 이후 만주와 화북의 도시로 이주했던 많은 한인들은 아편과 마약 밀매에 관여하였다. 이들 중국 이주 한인들은 낯선 타국에서 정업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들 한인은 ‘일본 신민’으로 치외법권의 특혜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밀매 등 부정업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 패전 직전까지 화북과 만주에서 아편마약과 관련이 있었던 이주 한인들의 다수가 중국인과 국민정부의 한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송환정책에 따라 본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이들의 귀환은 해방 직후 한국 사회에 마약문제라는 사회불안 요소의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군사정부의 마약정책과 1930년대 ‘만주국’의 마약정책과의 유사성을 시론적으로 살펴보았다. 사실 시공간적으로 볼 때 남한의 군사정부와 ‘만주국’과는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가상적 또는 주적을 맞대고 있는 ‘만주국’과 남한의 유사한 환경, 1960년대 남한에 수립된 군사정부와 ‘만주 인맥’과의 관련성, 경제개발 계획의 유사성과 노동력 확보에 대한 인식 등을 통해 당시 군사정부의 정책들이 ‘만주국’의 정책들과 흡사한 점들이 많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한 가운데 군사정부의 마약정책에서도 공산간첩의 마약 재원 차단, 경제개발 계획과 연계한 노동력 보호, 계몽과 치료 등에 ‘만주국’ 시대 아편마약 정책의 잔영이 떠오른다고 하겠다.
      요컨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드리워진 마약문제의 심각성은 일본 식민지배의 영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지역 한인의 귀환과도 관련이 있었다. 해방 직후의 경우는 중국 화북과 만주로부터 귀환한 한인 아편마약 관련 종사자 또는 중독자의 영향이 있었다. 비록 시론적인 측면이 있어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1960년대 군사정부 시기에도 해방 후 만주로부터 귀환한 ‘만주 인맥’의 영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마약정책에서도 ‘만...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박민영, "해방후 滿洲國軍 출신 한인의 귀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2) : 137-164, 2004

      2 손춘일, "해방 직후 재만 조선인들의 한반도 귀환" 9 : 2003

      3 조석연, "해방 이후의 마약문제와 사회적 인식 - 해방과 정부수립 초기를 중심으로 -" 한국사학회 (108) : 301-342, 2012

      4 손염홍, "중국 북경지역 한인 ‘범죄자’ 처리와 미귀환" 한국근현대사학회 (37) : 61-91, 2006

      5 대한민국정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대한민국정부 1962

      6 경제개발계획평가교수단,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평가보고서" 기획조정실 1967

      7 김웅기, "일본의 '만주형' 발전모델이 박정희 정부 산업화에 미친 영향"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06

      8 오카베마키오,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 : 제국 일본의 교두보" 어문학사 2009

      9 박강, "만주국의 아편정책" 중국학연구소 (8) : 89-123, 1994

      10 박강, "만주국 아편단금정책의 재검토" 23 : 1999

      1 박민영, "해방후 滿洲國軍 출신 한인의 귀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2) : 137-164, 2004

      2 손춘일, "해방 직후 재만 조선인들의 한반도 귀환" 9 : 2003

      3 조석연, "해방 이후의 마약문제와 사회적 인식 - 해방과 정부수립 초기를 중심으로 -" 한국사학회 (108) : 301-342, 2012

      4 손염홍, "중국 북경지역 한인 ‘범죄자’ 처리와 미귀환" 한국근현대사학회 (37) : 61-91, 2006

      5 대한민국정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대한민국정부 1962

      6 경제개발계획평가교수단,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평가보고서" 기획조정실 1967

      7 김웅기, "일본의 '만주형' 발전모델이 박정희 정부 산업화에 미친 영향"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06

      8 오카베마키오,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 : 제국 일본의 교두보" 어문학사 2009

      9 박강, "만주국의 아편정책" 중국학연구소 (8) : 89-123, 1994

      10 박강, "만주국 아편단금정책의 재검토" 23 : 1999

      11 조석연, "마약법 제정 이후 한국의 마약문제와 국가통제(1957∼1976)" 한국근현대사학회 (65) : 232-266, 2013

      12 "동아일보"

      13 강상중, "기시노부스케와 박정희" 책과함께 2013

      14 金春善, "광복후 중국 동북지역 한인들의 정착과 국내귀환" 한국근현대사학회 (28) : 181-218, 2004

      15 "경향신문"

      16 宮島幹之助, "續現代史資料(12) 阿片問題" みすず書房 1986

      17 興亞院華北連絡部, "續現代史資料(12) 阿片問題" みすず書房 1986

      18 古海忠之, "滿洲勞工ニ關スル罪行" 49 : 1998

      19 滿洲帝國政府, "滿洲建國十年史" 原書房 1969

      20 滿洲國史編纂刊行會, "滿洲國史各論" 滿洲國史編纂刊行會 1971

      21 外務省條約局外務省書記官西村熊雄, "滿洲國及北支ニ於ケル阿片麻藥問題ニ關スル視察報告" 1935

      22 山田豪一, "滿洲國の阿片專賣" 汲古書院 2003

      23 韓錫政, "東아시아 國家 만들기의 연결 고리 : 滿洲國, 1932-1940" 16 : 2001

      24 中央檔案館, "日本帝國主義侵華檔案資料選編: 東北經濟掠奪" 中華書局 1991

      25 鈴木隆史, "日本帝國主義と滿州 1900~1945 下" 塙書房 1992

      26 歷史學硏究會, "太平洋戰爭史2 日中戰爭Ⅰ" 靑木書店 1974

      27 한홍구, "大韓民國에 미친 滿洲國의 遺産" 16 : 2001

      28 小林英夫, "大東亞共榮圈の形成と崩壞" 御茶の水書房 1977

      29 岡部牧夫, "史料が語る滿洲國統治の實情 : 古海忠之供述書の意義" 49 : 1998

      30 徐 行, "前後 華北地區 韓僑의 安置와 送還 -天津 韓僑의 管理와 送還을 중심으로-" 한국근현대사학회 (28) : 219-253, 2004

      31 朝鮮總督官房外務部, "中華民國在留朝鮮人槪況"

      32 박지영, "‘적색 마약’과의 전쟁: 한국의 마약 정책과 반공주의, 1945-1960" 대한의사학회 25 (25): 77-110, 2016

      33 박강, "20세기 전반 동북아 한인과 아편" 선인 2008

      34 박강, "1930년대 만주지역의 아편재배와 한인, 그리고 匪賊" 한국민족운동사학회 (92) : 179-210, 2017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81 0.81 0.7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5 0.66 1.616 0.06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