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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자유 민중무대Freie Volksbühne> 운동 연구(1): 대전 예술의 전당 활성화를 위한 사례연구-연구결과 개요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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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G3599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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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Die vorliegende Arbeit zielt darauf, sich mit der hundertjährigen Kulturbewegung besonders im Bereich des Theaters durch einene Verein <Berliner Freie Volksbühne> auseinanderzusetzen., die begründet wurde, um unter der Losung 'dem Volkk die K...

      Die vorliegende Arbeit zielt darauf, sich mit der hundertjährigen Kulturbewegung besonders im Bereich des Theaters durch einene Verein <Berliner Freie Volksbühne> auseinanderzusetzen., die begründet wurde, um unter der Losung 'dem Volkk die Kunst' um 1890 der finanziell schwächeren Schichte, d. h. der Arbeiter anbieten wollte. Behandelt wird zuersten, wie die Intelektuellen wie Bruno Wille und Otto Brahm usw. in Zusammenarbeit mit theaterinteressierten Arbeiter den Verein begründete und wie der Verein schon 2 Jahre seit seiner Begründung durch einen Orientierungsunterschied zwischen Brahm und Mehring in zwei aufgespalten
      wurde; zweitens, wie sich der wiedervereinte Verein im Zeitalter Weimarer Republik aufgrund der künstlerischen Tätigkeit einer Reihe von den hervorragenden Persönlickheiten wie Reinhardt-Kayßler-Piscator-Martin zu der geschichtlich größten Theaterpublikumsorganization entwicklte und wie der Verein nach dem Hitlers Machtergreifung von Goebbels, der im Verien einen potenziellen Gegener gegen Nazis sah, stufenweise aufgelöst wurde; drittens, wie versucht wurde, kurz nach dem 2. Weltkrieg unter dem Alliertenregime Freie Volksbühne wiederzugründen, wie doch wieder in Ost- und West-Volksbühne aufgeteilt und welche Aktivitäten die beiden Volksbühne voneinander getrennt zeigten. Dabei war vor allem die Rückkehr Picators in West-Berliner Volksbühne bedeutsam für die Geschichte der Freien Volksbühne. ; viertens, wie der vereinte Verein im wiederver- einigten Staat sein ursrüngliches Zweck zu verwirklichen versucht hat und mit welchen Schwierigkeiten er konfrontiert worden ist. Letztlich werden aus der Geschichte der Berliner Freien Volksbühne einige Lehrpunkte zusammengefasst, die für die Aktivierung der Daejoner Kunsthalle sehr informativ sein können. In Anlehnung am Wissen um Berliner Freie Volksbühne resumiert man, dass es sehr eindringlich notwendig ist, einen kulturellen Verein zu begründen, der eine Brücke zwischen künstlerischen Produkten und ihren Konsumenten aufbauen sollte, um die Daejoner Kunsthalle als den modernsten, bequemen Perfomance-Raum vollständig zu aktivieren und dadurch Performingarts vorwärts zu betreiben. Dazu sollten die kunstinterssierten Intellektuellen Initiative angreifen, indem sie zugleich sich daran kunstsüchtige, möglichst viele Bürger beteiligen lassen. Dabei sollte aber einigermassen städtische Unterstützung, z. B. Zuschuss für einzelne Zuschauerplatz, erfol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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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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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자유민중무대>는 1890년 베를린에서 전개된 노동자 중심의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결성된 연극관객단체이다. 그러나 이 운동을 선도했던 것은 브루노 빌레, 오토 브람 등을 중심으로한 젊...

      <자유민중무대>는 1890년 베를린에서 전개된 노동자 중심의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결성된 연극관객단체이다. 그러나 이 운동을 선도했던 것은 브루노 빌레, 오토 브람 등을 중심으로한 젊은 지성인들로 <민중에게 예술을!>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경제적 여유가 없는 노동계층에게 연극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제공하고 아울러 이를 통해 노동자들의 의식을 개조하며 아울러 새로운 예술인 자연주의 예술을 진작 시키려하였다. 물론 거기에는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등장한 사민당 세력의 문화정책 의지도 작용하고 있었다. 이 운동은 그러나 그 자체에 두 가지의 상충된 흐름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는 <교양의 증진과 향유>라는 목표 실현의 흐름과 <연극을 통한 의식의 변화와 세계개선>이라는 목표 실현의 흐름이었다. 이로 인해 <자유민중무대>는 성립 2년만에 프란츠 메링이 이끄는 본래의 <자유민중무대>와 당파성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입장의 빌레가 이끄는 <신 자유민중무대>로 나뉘어졌다. 전자는 당시 경찰당국의 제제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조직 자체를 해체하였고(그러나 비공식 형태로 일부가 연극활동을 계속하였음), 빌레는 이에 탄력적으로 대처하면서 단체를 발전 시켜나갔다. 1900년을 넘어서면서 자유민중무대가 연출자 막스 라인하르트와 협조관계를 맺으며 연극활동을 함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이 발전은 그간 나뉘어져 있던 두 민중무대 조직의 통합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단체 자체 극장을 보유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빌로우플라츠에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시설과 최대 규모의 극장을 건축하게 된 것이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에 이르면 자유민중무대는 독일 역사상 초유의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연극관객단체로 성장해 있었다. 당시 일련의 연출가들 즉 카이슬러, 피스카토르, 마르틴, 힐페르트 등의 활동으로 전용극장은 베르린 최고의 극장이 되었고, 당대 문제를 다룬 문제극들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도덕의 교화장>으로서의 극장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물론 교양의 향유라는 관극행위에 부합되는 작품들 공연도 뛰어난 완성도로 이뤄졌다. 그러나 자유민중무대 협회 내부에서 격렬한 노선투쟁도 있어서 정치극을 지향했던 피스카토르는 이 단체를 벗어나 <젊은 민중무대>를 만들기도 했다. 히틀러의 권력 장악은 민중무대의 운명에도 작용했다. 나치스는 잠재적인 적인 이 단체를 그 약점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점진적인 방법을 써서 해체시켜 버렸다. 이때 나치스의 책략 수용을 거부하고 스스로 협회 집행부 직을 내던졌던 총무이사 네스트리프케는 패전 후 이 단체 재건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냉전시대는 자유민중무대를 또 분열로 내몰았다. 동-서 베를린의 민중무대 조직이 잠시 별도로 존재하다가 동독의 건국과 함께 동 베를린의 그것은 <자유독일 노동연맹 FDGB>에 흡수되어 버렸고, 반면 서 베를린의 자유민중무대는 분단 상황 속에서 본래의 설립 목적 실현을 위해 노력하여 맨 먼저 쿠어퓌르스텐탐(=쿠담)에 전용극장을 임대하여 활동하다가 세퍼스트라세에 극장을 건축하여 활동 본거지로 삼았다. 이때 예술감독 슈와 다시 복귀한 피스카토르의 활약으로 이 극장은 타 극장과 특별히 차별되고 뛰어난 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통일 후 긴축재정 여파와 타 관객조직의 등장, 타 대중매체에 흡인력으로 인한 회원감소로 재정난에 빠진 자유민중무대는 1992년부터 연극제작활동은 멈추고 관객조직으로만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구 동 베르린 소재 로자-룩셈부르크-플라츠 극장은 통일 후 시립극장으로 지위가 바뀌기는 했으나 공연플랜 자체는 옛 민중무대 전용극장 시절의 색깔을 강하게 띄고 있고 특히 통독의 사회상황에 맞춰 옛 동독 출신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극장활동이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현 극장총감독인 카스토르프는 시대비판적인 동 시대 연극의 제작과 독특한 연출 기법을 통해 과거 민중무대 극장의 전통을 뚜렷이 계승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비록 시대의 상황이 바뀌어 베를린 자유민중무대가 직접적인 연극 제작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원래의 목표는 아직도 유효한 듯이 보이며, 이를 위해 이 단체는 그런 목표를 실현해낼 수 있는 극작가의 발굴에 초점을 맞춰 1953년부터 신진 극작가에게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문학상을 수여해오고 있다.
      독일 자유민중무대 운동의 연구는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연극계, 특히 2003년 대전에 세워진 <대전 예술의 전당>의 활성화를 위한 유효한 사례연구가 될 수 있다. 아직 공연문화 전통이 길지 않은 이 도시의 경우 공연물의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매개해 줄 자생적인 관객조직의 필요성이 매우 절박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아울러 공연예술작품의 생산과정에 수용자의 취향과 의지가 쌍 방향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한다면, 독일의 이 문화운동으로부터 상당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즉 이런 단체의 설립 등에 지역 지식인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 이 방면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을 적절히 조직하고 이런 활동에 시 당국은 적절한 물적 지원을 하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초현대적인 공연공간으로 지역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대전예술의 전당> 활성화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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