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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인민지원군 철군의 원인과 중·북 관계 = The Reason for Withdrawal of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and China-North Korea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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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396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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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t the end of 1956, North Korea demanded China to withdrawal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from North Korea. Two reasons for North Korea's request for the withdrawal could be presented as follow: First, it was due to the intervention of China and th...

      At the end of 1956, North Korea demanded China to withdrawal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from North Korea. Two reasons for North Korea's request for the withdrawal could be presented as follow: First, it was due to the intervention of China and the Soviet Union in "August incident" of 1956. North Korea held grievance against China after the intervention; Second, on November 1956, the collapse of Imre Nagy regime of Hungary by Soviet military forces had an effect on North Korea to require the withdrawal of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Around the end of 1956, China agreed to withdraw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There were two major reasons why China had decided to withdraw the troops. First, China wanted to avoid any conflict between China and North Korea, and tried to pursue stability in Northeast Asia. Second, China suspected that North Korea might have left the social camp, or been in conflict with China and the Soviet Union to take her own line.
      The withdrawal of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was executed in 1958, but, in fact, the decision of the withdrawal was made in 1956. The issues surrounding the troop withdrawal clearly indicate that China and North Korea did not keep a cordial relationship that one may easily imagine. On the contrary, China and North Korea distrusted each other. In the matter of the troop withdrawal, North Korea had to consider the safety of its own regime, and China considered the issue from the perspective of its own national interests. In this respect, China and North Korea did not maintain relationship of the "lips and teeth" at l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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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958년 10월, 중국인민지원군은 북한에서 최종적으로 철군하였다. 기존의 학계는 중국인민지원군 철군 문제를 1950년대 중반 이후 중·북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주목하면서 일정한 ...

      1958년 10월, 중국인민지원군은 북한에서 최종적으로 철군하였다. 기존의 학계는 중국인민지원군 철군 문제를 1950년대 중반 이후 중·북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주목하면서 일정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는 사료의 한계로 인하여 철군이 실제로 결정됐던 정확한 시기를 밝힐 수 없었고, 철군의 원인과 배경을 중·북 관계의 측면에서만 분석했기 때문에 중국인민지원군 철군에 관한 종합적인 이해가 미흡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새로운 사료를 바탕으로 1956년 말 북한이 먼저 철군요구를 제기하여 중국이 철군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중·북 관계를 전체 사회주의 진영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검토함으로써 중국인민지원군 철군에 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혔다. 당시 북한이 중국인민지원군의 철군을 요구했던 주요 원인은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인한 중·소의 공동 내정간섭과 1956년 11월 소련군에 의한 헝가리 정권의 붕괴가 북한에 끼친 영향과 충격으로부터 기인하였다. 반면, 중국이 중국인민지원군의 철군을 결정했던 주된 까닭은 중·북 갈등이 고조되는 것을 방지하여 동북아 국제정세의 안정을 추구했기 때문이었고, 또한 북한이 사회주의 진영을 이탈하거나 중·소와 대립하여 독자노선을 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한편, 철군문제를 둘러싼 중·북의 입장은 양국 간 상호신뢰가 견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중·북은 표면적인 우호·협력 관계와는 상반되게 서로를 불신하고 의심하였으며, 철군문제에 있어 북한은 정권의 안위를 우선적으로 고려했고 중국은 국익의 관점에서 사안을 판단하였다. 따라서 중·북은 적어도 철군문제에 관하여 양국이 긴밀히 연결되어 서로의 이해를 같이하는 ‘순치상의(脣齒相依)’적 관계는 분명히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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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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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김용현, "한국전쟁 이후 중국인민지원군의 역할에 관한 연구" 북한연구학회 10 (10): 149-16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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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소련 대사관의 1956년 업무보고"

      8 이종석, "중·소의 북한 내정간섭 사례연구-8월종파사건" 6 (6): 381-419, 2010

      9 김일영, "주한미군 : 역사, 쟁점, 전망" 한울 2009

      10 러시아 연방 외무성 대외정책 문서, "주재 소련대사 푸자노프의 일기(1957년 7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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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 "최창익, 윤공흠, 서휘, 리필규, 박창옥 등 동무들의 종파적 음모 행위에 대하여(전원회의 결정 1956년 8월 30~31일)"

      6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최창익, 윤공흠, 서휘, 리필규, 박창옥 동무들에 대한 규율 문제를 개정할 데 관하여(전원회의 결정 1956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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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러시아 연방 외무성 대외정책 문서, "주재 소련대사 푸자노프의 일기(1957년 7월 5일)"

      11 조선중앙통신사, "조선중앙년감"

      12 로동신문, "조선인민군 병력 축소에 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성명"

      1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개인숭배’에 관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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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로동신문, "쏘련과 기타 사회주의 국가들 간의 친선 협조의 발전 및 그 가일층의 강화의 기본에 관한 쏘련 정부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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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10-07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urnal of Asia-Pacific Studies                           -> Journal of Asia-Pacific Studies KCI등재
      2019-04-10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Journal of Asia-Pacific Studies -> Journal of Asia-Pacific Studies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09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unal of Asia-Pacific Studies -> The Journal of Asia-Pacific Studies KCI등재
      2013-12-3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Jounal of Asia-Pacific Studies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6-08 학회명변경 한글명 : 아시아 태평양지역연구원 -> 국제지역연구원
      영문명 : Center for Asia-Pacific Studies -> Institute of Global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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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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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6 0.76 0.7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6 0.73 1.093 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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