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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황후 발원 불사와 그 의미 = Buddhist Works Sponsored by Empress Myeongseong during the Reign of King Go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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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전통을 견지하려는 세력과 새로운 물결이 이끄는 세계사적인 변화에 직면하게 된 조선 말기에 명성황후는 고종을 보필하며 강력한 정치력을 행사한 왕실 여성이다. 기존의 연구에서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비운의 왕실 여성으로 살펴본 측면이 강했다면, 본 논문에서는 19세기 후반에 강력한 불사의 후원자로서 그의 면모를 주목해 보았다. 正祖 이후 조선 말기 왕실은 왕위 계승에 있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 복잡한 정치적 관계의 역학 속에 명성황후는 왕자 탄생을 통해 이를 타개하고자 하였다.
      알려진 것처럼 명성황후는 무속이나 굿을 이용하는 등 민간신앙을 통해 바라는 바를 이루고자 했지만 동시대 누구보다도 불교를 신앙하면서 불사를 후원하였다. 명성황후의 불사는 대규모 마애불의 조성이나 영험있는 도량의 전각 중창, 국가의 기도처로서 중요한 기능을 했던 신원사 중악단 중건, 금자 법화경 제작 후원을 통해 ‘書寫의 공덕’이 주목된다. 또한 그의 불사는 현실의 고난을 타개하는 관음신앙, 신속히 염원을 들어주는 독성신앙 등의 신앙적 특징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명성황후 불사의 특징은 기도처로서 ‘영험’이 강조된다. 이 점은 동시대 정치적 라이벌이자 불사 후원의 한 축이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불사와 비교된다. 이하응 역시 대규모 불사의 후원자였지만 원당을 지정하고 大房이라는 기도처로서 사찰을 리뉴얼하였으며 그곳에 봉안되어야 할 불상이나 불화 제작을 시주하며 왕실의 기복을 기원하였다. 명실공히 명성황후는 19세기 중~후반 왕자 탄생을 위해 대규모 불사를 후원했던 왕실 불교의 주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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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을 견지하려는 세력과 새로운 물결이 이끄는 세계사적인 변화에 직면하게 된 조선 말기에 명성황후는 고종을 보필하며 강력한 정치력을 행사한 왕실 여성이다. 기존의 연구에서 명성황...

      전통을 견지하려는 세력과 새로운 물결이 이끄는 세계사적인 변화에 직면하게 된 조선 말기에 명성황후는 고종을 보필하며 강력한 정치력을 행사한 왕실 여성이다. 기존의 연구에서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비운의 왕실 여성으로 살펴본 측면이 강했다면, 본 논문에서는 19세기 후반에 강력한 불사의 후원자로서 그의 면모를 주목해 보았다. 正祖 이후 조선 말기 왕실은 왕위 계승에 있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 복잡한 정치적 관계의 역학 속에 명성황후는 왕자 탄생을 통해 이를 타개하고자 하였다.
      알려진 것처럼 명성황후는 무속이나 굿을 이용하는 등 민간신앙을 통해 바라는 바를 이루고자 했지만 동시대 누구보다도 불교를 신앙하면서 불사를 후원하였다. 명성황후의 불사는 대규모 마애불의 조성이나 영험있는 도량의 전각 중창, 국가의 기도처로서 중요한 기능을 했던 신원사 중악단 중건, 금자 법화경 제작 후원을 통해 ‘書寫의 공덕’이 주목된다. 또한 그의 불사는 현실의 고난을 타개하는 관음신앙, 신속히 염원을 들어주는 독성신앙 등의 신앙적 특징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명성황후 불사의 특징은 기도처로서 ‘영험’이 강조된다. 이 점은 동시대 정치적 라이벌이자 불사 후원의 한 축이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불사와 비교된다. 이하응 역시 대규모 불사의 후원자였지만 원당을 지정하고 大房이라는 기도처로서 사찰을 리뉴얼하였으며 그곳에 봉안되어야 할 불상이나 불화 제작을 시주하며 왕실의 기복을 기원하였다. 명실공히 명성황후는 19세기 중~후반 왕자 탄생을 위해 대규모 불사를 후원했던 왕실 불교의 주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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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Empress Myeongseong, a formidable presence in late Joseon Korea, wielded significant political power while assisting King Gojong in governance. This paper focuses on her role as a prominent patroness of Buddhism in the late 19th century. In the aftermath of King Jeongjo's reign, the Joseon royal court faced challenges regarding succession to the throne, and Empress Myeongseong sought to address this through the birth of a prince.
      While utilizing folk beliefs and shamanistic practices to fulfill her aspirations, Empress Myeongseong was deeply devoted to Buddhism, surpassing contemporaries in her support for the faith. Her patronage of Buddhism manifested in various forms, including the construction of large-scale Maitreya statues, the establishment of significant prayer halls such as Chungyul Altar, Jungakdan(中嶽壇), and sponsorship for the production of the Lotus Sutra scriptures. Additionally, her patronage embodied the compassionate aspects of Buddhist faith, offering solace amidst worldly hardships and swiftly granting supplications, showcasing characteristics of Avalokitesvara and Dokseong faith.
      Of particular note is the emphasis on Spiritual Experience in Empress Myeongseong's patronage of Buddhism, distinguishing her efforts from those of her contemporary political rival and fellow patron of Buddhism, Heungseon Daewongun. Empress Myeongseong emerged as a central figure in royal Buddhism of the late 19th century, sponsoring extensive Buddhist rituals in pursuit of the birth of a pr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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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press Myeongseong, a formidable presence in late Joseon Korea, wielded significant political power while assisting King Gojong in governance. This paper focuses on her role as a prominent patroness of Buddhism in the late 19th century. In the afterm...

      Empress Myeongseong, a formidable presence in late Joseon Korea, wielded significant political power while assisting King Gojong in governance. This paper focuses on her role as a prominent patroness of Buddhism in the late 19th century. In the aftermath of King Jeongjo's reign, the Joseon royal court faced challenges regarding succession to the throne, and Empress Myeongseong sought to address this through the birth of a prince.
      While utilizing folk beliefs and shamanistic practices to fulfill her aspirations, Empress Myeongseong was deeply devoted to Buddhism, surpassing contemporaries in her support for the faith. Her patronage of Buddhism manifested in various forms, including the construction of large-scale Maitreya statues, the establishment of significant prayer halls such as Chungyul Altar, Jungakdan(中嶽壇), and sponsorship for the production of the Lotus Sutra scriptures. Additionally, her patronage embodied the compassionate aspects of Buddhist faith, offering solace amidst worldly hardships and swiftly granting supplications, showcasing characteristics of Avalokitesvara and Dokseong faith.
      Of particular note is the emphasis on Spiritual Experience in Empress Myeongseong's patronage of Buddhism, distinguishing her efforts from those of her contemporary political rival and fellow patron of Buddhism, Heungseon Daewongun. Empress Myeongseong emerged as a central figure in royal Buddhism of the late 19th century, sponsoring extensive Buddhist rituals in pursuit of the birth of a pr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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