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 펠로포네소스 전쟁 등을 기회로 하여 지중해 세계에는 군사조직의 비중이 증가하게 되었다. 군국주의의 팽배는 다음 차례 로마의 패권의 성장에 기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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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English
920
KCI등재
학술저널
79-10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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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 펠로포네소스 전쟁 등을 기회로 하여 지중해 세계에는 군사조직의 비중이 증가하게 되었다. 군국주의의 팽배는 다음 차례 로마의 패권의 성장에 기여하게 된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 펠로포네소스 전쟁 등을 기회로 하여 지중해 세계에는 군사조직의 비중이 증가하게 되었다. 군국주의의 팽배는 다음 차례 로마의 패권의 성장에 기여하게 된다.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가 카르타고를 제압한 것이 그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지중해는 로마의 패권에 기초하여 의무, 법, 질서, 나아가서는 획일적 기독교가 지배적인 사회로 발돋움하게 된다.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기 전,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진 카르타고??페니키아 인과 그리스 인의 이해관계는 획일적인 민족성으로 구분 대립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소규모 도시(폴리스)로 나뉘어져 있던 이들은 구체적인 경제적 이해관계 혹은 정치체제 및 이념으로 대립했다. 그런 가운데 그리스 인과 카르타고??페니키아 인들은 복잡한 이합집산의 양상을 연출하였다. 한 지역의 도시 공동체가 언제나 하나의 단일한 종족으로만 구성되었다고 규정하기도 어려우며, 서로 간에 자연스럽게 혼혈이 이루어졌다. 이런 현상이 가장 명백하게 노정되는 것이 로마의 패권이 성립되기 전의 시켈리아와 그 주변 지역이다.
로마 패권의 성장은 종족적으로 로마 인의 지중해 팽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가 주도하는 군국주의(imperium)의 사회적 확산, 또 그에 기초한 사회적 불평등의 확산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 전의 지중해 사회는 군사적 조직이 사회에서 갖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만큼 덜 획일적이었던 것으로 규정할 수 있겠다. 이런 사회에서는 소규모의 갈등이 개진된 것이 사실이나, 그 대신 교류와 평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겠다. 다시 말하면, 포에니 전쟁(264~146 B.C.)으로 로마가 지중해의 패자로 등장하기 전의 지중해는 여러 종족과 도시들이 서로 교류하고 갈등하는 장이 되었으며, 다핵성, 다양성, 자유의 가치관이 후대보다 더 강했던 것이라 하겠다.
군사조직에 기초한 로마의 지중해 통일은 현실화되었으나, 그것을 필연적인 역사의 흐름으로 보기 어렵다. 카르타고와 로마의 패권 다툼에서 로마가 아니라 카르타고가 승리했더라면, 로마 대신 카르타고의 패권이 지중해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카르타고가 가지고 있었던 소규모 도시국가, 시민이 갖는 자유의 원리가 여전히 획일적 군국주의, 의무, 법, 질서를 대신하여 지중해 세계에 존속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목차 (Table of Contents)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신격화 : 그리스 · 로마 전통의 종합
『로마 공화국과 이탈리아 도시, 통합과 조직의 역사』- 김창성지음, 서울 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