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2장에서 천년왕국에 대한 여러 학설들을 살펴보았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각각의 정의와 주장하는 학자들, 그리고 이론의 근거들을 간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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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 천안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 2002
학위논문(석사) -- 천안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 , 신학과 조직신학전공 , 2002. 2
2002
한국어
231 판사항(4)
충청남도
ii, 77p. ; 26cm
참고문헌: p. 7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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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제2장에서 천년왕국에 대한 여러 학설들을 살펴보았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각각의 정의와 주장하는 학자들, 그리고 이론의 근거들을 간략하...
우리는 제2장에서 천년왕국에 대한 여러 학설들을 살펴보았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각각의 정의와 주장하는 학자들, 그리고 이론의 근거들을 간략하게 정리하였다.
제3장에서는 무천년설의 해석학적 근거를 살펴보았다. ‘천년’, ‘다스리다’ 와 같은 천년왕국 용어에서는 상징성 문제를 다루었다. ‘천년’이란 단일개념만을 가지고 문자적으로 실제 ‘천년’에 해당하는 기간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상징적인 해석이 더 계시록의 해석방법에 적합해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천년’은 상징수이다 라고 확실히 결론 짓는 것도 무리가 있어 보였다.
계20:1-6의 번역 및 구조 분석을 통해서, 그 구절이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왕국을 지상적으로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말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죽은 신자들의 영혼들이 죽음과 그리스도의 재림시의 사이동안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하며 통치하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 분석이 자연스럽고 성경에 충실한 해석이면서도 문자의 의미를 살려주고 있고, 이러한 문자적 해석은 전천년설이 아니라 오히려 무천년설을 뒷받침해주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성경의 해석이란 항상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다. 절대적인 해석은 극히 드물다. 우리는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완전하고 정확한 해석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은 우리가 ‘거울을 보듯이 희미하나’ 언젠가 그날이 오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사는 한 완벽하고 객관적인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제4장에서는 천년왕국설을 비교하였다. 각각에 대한 반론들과 각 이론이 지니게 되는 단점들을 찾아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각각의 천년왕국설이 그 이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난점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천년왕국설을 논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종말론과 천년왕국설이 완전한 것이 아니고 어쩔 수 없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점들을 비교해 봄으로써 우리는 무천년설이 전천년설의 단점과 후천년설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5장에서는 역사적 이해를 통한 무천년설의 목회적 적용을 위해서 천년왕국설의 역사적 배경과 천년왕국설의 영향 그리고 목회적 적용에 있어서 무천년설의 장점을 살펴보았다. 역사적 해석을 통해 각각의 역사적 배경에 생겨난 천년왕국설이 어떻게 교회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펴보았고, 다른 천년설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무천년설이 목회적 적용에 있어서 더 우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천년설은 현세대에서 많은 종말론적 축복들을 이미 향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시작된 종말론), 또한 최종적 상태 시에 시작될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된 결정적 미래적 사건들이 일어날 것도 바라보고 있다(미래적 종말론).
예수의 종말론적인 성육, 십자가와 부활의 구속 사건, 성령의 오심으로 인한 “이미”의 천국과, 예수의 재림으로 완성되어질 “아직”의 천국 사이의 균형 있는 종말론이 강조되는 무천년설의 입장이 오늘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이 세상의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게 하는 하나님의 방편이 될 것이다.
고난 중에 있는 사람에게는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필요할 것이며, 이미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보다는 그 소망이 더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균형 잡힌 종말론을 모든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굶고 있는 사람에게 빵과 함께 복음을 주어야 하듯이, 목회적 관점에서는 고난 중에 있는 성도에게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강조되면서 이미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언급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바울 서신들이 각 교회의 상황에 따라서 다른 강조점들을 지니고 있듯이, 천년왕국설은 “이미”와 “아직”의 긴장적 관계로서 이해되는 본질적 요소가 변질되지 않는다면, 그 강조점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는 전천년설이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의 임재에 대한 강한 소망의 장점을 살릴 수도 있고, 때로는 이 땅에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상적인 삶의 공동체를 실현하려는 강한 동기를 주는 후천년설의 장점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무천년설의 장점은 이 두 가지 장점을 다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기는 하지만, 구체적 역사적 사변들과 연관시키려는 것을 유보함으로써 그 긴박성을 상실할 수 있다. 반면에 전천년설은 자칫 종말의 시간을 계산하는 시한부 종말론으로 빠질 위험성을 항상 내포한다. 역사적 사변들과 성경의 관계성을 무시하면 성경의 내용이 추상화되고, 구체화시키면 재림의 시간을 계산하는 오류에 빠진다. 신약의 종말론은 묘하게도 종말의 긴박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반면에 그 구체적 내용과 시간을 말하는 것은 금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하겠다.
제6장에서는 천년왕국설의 공통점들을 찾아보고, 세대주의와 언약신학과의 유사점을 찾아 접근을 시도하고, 무천년설 입장에서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것인가 하는 관점을 가지고 천년왕국설의 다양성과 일치점을 이해해 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것인가?”하는 관점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다.
먼저 천년왕국설의 공통점들을 살펴보았다. 후천년설과 무천년설은 계시록을 비유적으로 해석함으로서, 천년기 이후에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는 해석학적 관점에서 일치하며, 후천년설의 낙관론을 비판할 수밖에 없으나, 성경을 면밀히 살펴보면 낙관적인 역사관이 상당히 내재해 있음을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역사를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므로,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상선벌악)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악이 세상에 만연하게 되지만 동시에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된다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다. 결국 무천년설은 후천년설의 이러한 낙관론도 동시에 수용하고 있다.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의 공통점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고, 역사에 대한 비관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전천년설의 강조점을 무천년설은 동시에 수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무천년설은 계20장의 말씀을 비유적으로 해석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전천년설과 같이 성경의 문자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견지한다. 문명의 도덕적 타락, 이에 대한 하나님의 엄청난 심판으로서의 간섭하심, 성도의 부활과 변형, 최후 심판과 최후 천국 등을 모두 갑자기 되어지는 사건들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같은 길을 간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세대주의와 언약신학과의 접근을 위해, 세대주의의 변형인 “적용파 세대주의자들”에게서 한 예언이 여러 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다원적 적용 개념을 살펴보았다. 이들에게도 결국 예언들이 교회시대(예비적으로)와 천년왕국시대(최종적으로)에 공히 성취되고 있다고 점점 더 인식되고 있다. 결국 두 개의 병행적인 약속 세트(하나는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를 위한 것)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는 한 세트인데 서로 다른 역사적 국면(예비와 최종)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하나님의 백성은 한 백성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후(말세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으로 통합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세대주의자들은 래드(George E. Ladd)와 같은 역사적 전천년설에 가까운 입장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았다.
천년왕국(백은시대)과 완성상태(황금시대)를 나누어 생각하는 세대주의자들에게는 계21:1-22:5에 묘사된 완성상태, 새 하늘과 새 땅(그리스도의 부활체 같은 물리적이고 고체적 땅)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과 이스라엘의 최종 운명이 같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는데,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차이가 나는 그리스도인들과 이스라엘의 별도의 운명을 강조하는 가장 엄격한 세대주의자들에게 이미 도전이 되었으며, 천년왕국에 대한 전통적인 입장들이 서로 가깝게 접근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천년왕국설에서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것을 찾아서 정리하여 보았다.
우리의 신앙은 미래의 것을 바라보고 기대하면서도 현재를 잊지 않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더 확장 될 수 있도록 우리 성도들은 역사적이며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최선의 삶을 이 땅 위에서 살아야 할 것이며, 이것이 바로 미래의 최종적인 종말에 구속주로서 재림하실 주님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사명일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천년왕국설의 차이는 성경관의 차이가 아니라 성경해석의 차이임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결국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의 재림과 최후심판과 영원상태를 믿는 자들이라면, 서로 무시하거나 경원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천년왕국설에서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의 실존적인 삶을 위해서는 현학적인 관심을 가지고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공통분모에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 훨씬 유익할 것이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과 강조점들을 살펴봄으로써, 각각의 천년왕국설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부분들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면을 가진 무천년설의 한쪽은 전천년설의 장점을 보여주고, 다른 한쪽은 후천년설의 장점을 보여주는, 더 포용력이 있는 해석임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무천년설도 약점을 지니고 있다.
결국 이것은 마치 ‘세 명의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처럼, 완전하지 않지만 특정적인 부분을 강조해주는 각각의 조각들이 큰 몸통을 가진 코끼리 각각의 부분(귀, 코, 배 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가진 불완전한 종말론과 천년왕국설을 통하여서도 성령께서는 우리가 바른 길을 가도록 모든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 오늘날까지 인간의 많은 약점과 결점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이끌어 오고 계시며, 우리에게도 구원의 복음을 들려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우리는 성경의 빛 아래서 서로의 성경적 강조점을 수용하면서도 서로의 한계를 지적할 수 있어야겠다. 그러나 율법주의적, 관료주의적, 교리주의적 태도는 옳지 않을 것이다.
진리의 영이시여! 우리의 우둔한 머리를 깨우쳐 주시고, 당신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당신이 이제껏 일해 오신 궤적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께 기도하면서 불완전한 서로를 이해하고, 주님 안에서 한 몸 된 교회로 세워져 가는데 있어 본 논문도 작으나마 기여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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