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관대한 대일강화조약과 이승만 정권의 강화조약외교 - 일본의 군사적 주권 문제와 이를 둘러싼 한미 간의 마찰 = The Leniency of the Peace Treaty with Japan and the Syngman Rhee Administration: The Issues of Japanese Military Sovereignty and ROK-US Friction

      한글로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Republic of Korea’s foreign policy over the Peace Treaty with Japan focusing on Japanese military sovereignty.
      As the Cold War was coming, the United States regarded Japan as a strategic cornerstone. And when the Korean War broke out, the United States pushed forward a speedy plan to conclude a Peace Treaty with Japan. But regional states opposed the Peace Treaty for not restricting Japanese military sovereignty. Therefore, the United States persuaded the regional states to show the leniency and welcome Japan as an equal member of free nations. In other words, the leniency of the Peace Treaty with Japan not only waived compensation arising out of war acts, but also permitted Japan to rearm and participate in collective security as an equal member of free nations.
      In the process of concluding the Peace Treaty with Japan, the Syngman Rhee administration, which insisted to participate in the Peace Treaty with Japan, concentrated its attention on the compensation issue. At the same time, the Republic of Korea placed importance on the Japanese military sovereignty. The Republic of Korea insisted on a restrictive treaty that does not permit Japan’s rearmament.
      But, the idea to restrain Japanese rearmament was alien to the lenient way of thinking of the United States. Hence, Korea’s position raised disputes with the United States in regards to the characteristics of the Peace Treaty.
      번역하기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Republic of Korea’s foreign policy over the Peace Treaty with Japan focusing on Japanese military sovereignty. As the Cold War was coming, the United States regarded Japan as a strategic cornerstone. And w...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Republic of Korea’s foreign policy over the Peace Treaty with Japan focusing on Japanese military sovereignty.
      As the Cold War was coming, the United States regarded Japan as a strategic cornerstone. And when the Korean War broke out, the United States pushed forward a speedy plan to conclude a Peace Treaty with Japan. But regional states opposed the Peace Treaty for not restricting Japanese military sovereignty. Therefore, the United States persuaded the regional states to show the leniency and welcome Japan as an equal member of free nations. In other words, the leniency of the Peace Treaty with Japan not only waived compensation arising out of war acts, but also permitted Japan to rearm and participate in collective security as an equal member of free nations.
      In the process of concluding the Peace Treaty with Japan, the Syngman Rhee administration, which insisted to participate in the Peace Treaty with Japan, concentrated its attention on the compensation issue. At the same time, the Republic of Korea placed importance on the Japanese military sovereignty. The Republic of Korea insisted on a restrictive treaty that does not permit Japan’s rearmament.
      But, the idea to restrain Japanese rearmament was alien to the lenient way of thinking of the United States. Hence, Korea’s position raised disputes with the United States in regards to the characteristics of the Peace Treaty.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의 목적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이승만 정권의 외교를 일본의 군사적주권문제를 중심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강화조약의 준비과정에서 한국이 일본의 재군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보고, 그것이 미국의관대한 대일강화조약 구상과 어떠한 마찰을 가져왔는지 고찰하였다.
      일본의 비군사화와 민주화를 목표로 했던 미국의 대일점령정책은 냉전을 배경으로 그 목표가 일본의 부흥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을 계기로 대일강화조약을 조속히 추진하였다. 한편 일본의 군사적 주권을 제한하지 않은 내용으로 대일강화조약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주변국들이 우려하자 미국은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독일과 같이 일본이 전승국과 다시 대결하는 상황이 닥쳐서는안 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조약이 패자에 대해 차별적이고 굴욕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관대함을 촉구하였다. 패전국 일본이 다른 국가들과동등하게 군사적 주권을 갖도록 허용하여 서방 진영의 일원으로서 집단안전보장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대일강화조약의 관대함이었던 것이다.
      한편 한국은 대일강화조약에 참가하여 연합국 지위 및 대일배상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한국이 중요시한 것은 일본의 군사적 주권 문제였다. 이승만은 일본이 평화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국가로 재건되었는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성급하게 일본을 재건했다가는 오히려 일본이 서방에 적대적인국가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이러한 인식 속에 이승만 정권은 강화조약에서일본의 군사적 주권을 제약하고 일본의 비군사화·민주화를 감시해야 한다고주장하며, 관대한 강화조약을 추구하는 미국과 의견을 달리했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의 입장 차는 일개 현안의 영역을 넘어 강화조약의 성격 그 자체에 관한논쟁의 양상을 띠었다.
      번역하기

      본고의 목적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이승만 정권의 외교를 일본의 군사적주권문제를 중심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강화조약의 준비과정에서 한국이 일본의 재군비에 대해 ...

      본고의 목적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이승만 정권의 외교를 일본의 군사적주권문제를 중심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강화조약의 준비과정에서 한국이 일본의 재군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보고, 그것이 미국의관대한 대일강화조약 구상과 어떠한 마찰을 가져왔는지 고찰하였다.
      일본의 비군사화와 민주화를 목표로 했던 미국의 대일점령정책은 냉전을 배경으로 그 목표가 일본의 부흥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을 계기로 대일강화조약을 조속히 추진하였다. 한편 일본의 군사적 주권을 제한하지 않은 내용으로 대일강화조약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주변국들이 우려하자 미국은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독일과 같이 일본이 전승국과 다시 대결하는 상황이 닥쳐서는안 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조약이 패자에 대해 차별적이고 굴욕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관대함을 촉구하였다. 패전국 일본이 다른 국가들과동등하게 군사적 주권을 갖도록 허용하여 서방 진영의 일원으로서 집단안전보장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대일강화조약의 관대함이었던 것이다.
      한편 한국은 대일강화조약에 참가하여 연합국 지위 및 대일배상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한국이 중요시한 것은 일본의 군사적 주권 문제였다. 이승만은 일본이 평화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국가로 재건되었는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성급하게 일본을 재건했다가는 오히려 일본이 서방에 적대적인국가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이러한 인식 속에 이승만 정권은 강화조약에서일본의 군사적 주권을 제약하고 일본의 비군사화·민주화를 감시해야 한다고주장하며, 관대한 강화조약을 추구하는 미국과 의견을 달리했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의 입장 차는 일개 현안의 영역을 넘어 강화조약의 성격 그 자체에 관한논쟁의 양상을 띠었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太田修, "歷史としての日韓國交正常化Ⅱー脫植民地化編" 法政大學出版局 2011

      2 박진희, "한일회담: 제1공화국의 정책과정과 한일회담 전개과정" 선인 2008

      3 이원덕, "한일과거사 처리의 원점"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4 강노향, "주일대표부" 동아PR연구소출판부 1966

      5 김숭배,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의 신념과 한·일관계의 양가성" 한국국제정치학회 57 (57): 207-242, 2017

      6 국사편찬위원회, "자료 대한민국사 22권" 국사편찬위원회 2006

      7 남기정,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한일관계 -‘ 관대한 평화’와 냉전의 상관성 -" 동북아역사재단 (22) : 37-71, 2008

      8 정성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한국·미국·일본의 외교정책의 고찰" (7) : 1990

      9 강병근, "샌프란시스코 平和條約에 따른 ‘Korea/朝鮮’의 獨立承認과 韓日 間 請求權解決에 關한 一 考察" 동북아법연구소 10 (10): 159-182, 2017

      10 장박진, "미완의 청산: 한일회담 청구권 교섭의 세부 과정" 역사공간 2014

      1 太田修, "歷史としての日韓國交正常化Ⅱー脫植民地化編" 法政大學出版局 2011

      2 박진희, "한일회담: 제1공화국의 정책과정과 한일회담 전개과정" 선인 2008

      3 이원덕, "한일과거사 처리의 원점"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4 강노향, "주일대표부" 동아PR연구소출판부 1966

      5 김숭배,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의 신념과 한·일관계의 양가성" 한국국제정치학회 57 (57): 207-242, 2017

      6 국사편찬위원회, "자료 대한민국사 22권" 국사편찬위원회 2006

      7 남기정,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한일관계 -‘ 관대한 평화’와 냉전의 상관성 -" 동북아역사재단 (22) : 37-71, 2008

      8 정성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한국·미국·일본의 외교정책의 고찰" (7) : 1990

      9 강병근, "샌프란시스코 平和條約에 따른 ‘Korea/朝鮮’의 獨立承認과 韓日 間 請求權解決에 關한 一 考察" 동북아법연구소 10 (10): 159-182, 2017

      10 장박진, "미완의 청산: 한일회담 청구권 교섭의 세부 과정" 역사공간 2014

      11 최정준, "미국의 동북아시아 냉전전략과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형성: 전후 영토문제와 배상문제를 중심으로" 동서문제연구원 30 (30): 111-141, 2018

      12 공보처, "대통령이승만박사담화집" 공보처 1952

      13 유의상, "대일외교의 명분과 실리: 대일청구권 교섭과정의 복원" 역사공간 2016

      14 국회사무처, "국회속기록 제78호"

      15 유지아, "韓國戰爭 前後, 對日講和條約 論議에 의한 아시아 내에서 日本의 安保와 位相 -韓國과의 關係를 中心으로-" 한일민족문제학회 (18) : 69-105, 2010

      16 添谷芳秀, "東アジアの‘ヤルタ体制’" 64 (64): 1991

      17 大蔵省財政史室, "昭和財政史-終戦から講和まで" 東洋経済新聞社 1982

      18 太田修, "日韓交渉ー請求權問題の硏究" クレイン 2015

      19 外岡秀俊, "日米同盟半世紀-安保と密約" 朝日新聞社 2001

      20 吉澤文壽, "戰後日韓關係ー國交正常化交渉をめぐって" クレイン 2015

      21 金民樹, "対日講和条約と韓國参加問題" (131) : 2002

      22 マイケル, "「日米關係」とは何だったのか" 草思社 2004

      23 신욱희, "‘일본문제’에서 ‘북한문제’로: 한국전쟁을 통한 동북아시아에서의 위협전이" 한국정치외교사학회 38 (38): 151-177, 2016

      24 Oliver, Robert T., "Verdict in Korea" Bald Eagle Press 1952

      25 Office of the Secretary of Defense, "United States -Vietnam Relations 1945 -1967 : vol. 8"

      26 Dulles, John Foster, "Security in the Pacific" 30 (30): 1952

      27 "Rhee Papers, 우남B24"

      28 "Rhee Papers, 우남B02"

      29 U.S. Department of State, "FRUS: 1947. vol. 6: Far East"

      30 U.S. Department of State, "FRUS : 1951. vol. 7, part 1: Korea and china"

      31 U.S. Department of State, "FRUS : 1951. vol. 6, part. 1: Asia and the Pacific"

      32 U.S. Department of State, "FRUS : 1950. vol. 6: East Asia and The Pacific"

      33 U.S. Department of State, "FRUS : 1948. vol. 1, Part.2: General: The United Nations"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8 1.18 1.1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6 0.98 2.155 0.1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