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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興 雲垈里 粉靑沙器의 樣式的 特徵과 編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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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朝鮮 前期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혼란기를 겪었기 때문에 더욱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太宗(재위1400~1418)과 世宗(재위 1418
      ~1450) 연간에는 왕권을 강화하여 중앙집권체제를 갖추기 위해 재정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에 따라 稅源을 통해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였고 세원 중 하나인 磁器는 전국에 분포한 磁器所를 통해 공납되었다. 이 때 공납된 자기는 대부분 粉靑沙器였으며, 분청사기는 14세기 후반 강진 磁器所가 해체된 후 전국으로 흩어진 도공들에 의해 발생하였기에 고려 말 퇴락한 상감청자에서 그 淵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분청사기는 점차 상감, 인화, 박지, 조화, 철화, 귀얄, 덤벙 등 다양한 기법을 지니며 독자적인 도자 양식으로 발전•변모하였다.
      분청사기를 생산한 가마 가운데 고흥 운대리는 앞에서 설명한 일곱 가지 기법을 모두 이용하였고, 이 가운데 덤벙분청사기는 동반 생산된 다른 기법들에 비해 정교하게 번조한 양상을 보인다. 또한 운대리 한 지역에만 25基에 달하는 분청사기 가마터가 집중 분포하는 것은 다른 지역 가마터에서는 볼 수 없는 양상으로 고흥 운대리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 가마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문헌자료나 운영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편년자료가 출토되지 않아 연구에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지금까지 발굴조사와 정밀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가마구조, 기종과 기형, 장식기법, 문양, 명문 등을 분석하여 제작기술과 양식적 특징을 살펴보고 나아가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의 편년을 세우고자 하였다.
      먼저, 발굴조사된 가마터에서 밝혀진 가마구조의 변화를 파악하였고 각 가마터에서 출토•수습된 분청사기 중 출토량이 가장 많은 발과 접시를 유형 분류한 후 새롭게 출현하거나 소멸하는 경향이 나타나 이를 토대로 순서배열법을 이용해 각 가마별로 운영시기를 추정하는 근거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장식기법, 문양, 명문의 종류를 분석하여 각 가마터별로 확인되는 전반적인 제작양상을 통해 편년을 설정한 결과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는 크게 Ⅰ期, Ⅱ期, Ⅲ期로 나눌 수 있었다.
      Ⅰ期(15세기 2/4분기)는 官窯인 分院이 설치(1469년)되기 前 시기로 공납용 분청사기를 중심으로 생산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상감과 인화분청사기를 위주로 제작되었고 Ⅰ期 후반기에 귀얄과 덤벙분청사기가 등장하는 특징을 보인다. 가마는 번조실 중앙에 불기둥이 한 개 설치된 ‘단실불기둥(1)요’로 운영되었고 번조받침은 내화토빚음받침과 태토빚음받침이 주로 사용되었다. 폐기장은 흙을 채굴한 유구를 활용하였다. 기종은 일상기와 특수용기 모두 생산하였고 이 가운데 유형 분류가 가능한 발과 접시의 경우 측사면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Ⅰ형이 대표 기형으로 제작되었다. 장식기법은 상감과 인화기법을 비롯해 박지, 조화기법도 사용하였고 귀얄과 덤벙기법은 비교적 소량 이용되었으며, 특히 면상감기법은 Ⅰ期에만 사용되었다. 문양은 동물문, 식물문, 기하학문 등 다양한 소재가 확인되는데 특히 인화기법의 문양소재인 집단연권문을 활용한 그릇은 더욱 정교하게 번조한 경향이 나타난다. 銘文 자기는 대부분 인화분청사기로 상감과 인화기법을 이용하여 표기하였고 내저중심에 주로 위치한다. 종류는 ‘天’ • ‘元’ • ‘大’ • ‘十’ • ‘∗’ • ‘田’ 등 사용처와 숫자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명문들이 있다.
      Ⅱ期(15세기 3/4분기~15세기 4/4분기)는 官窯인 分院이 설치(1469년)되기 前後 시기로 공납용 분청사기의 생산이 Ⅰ期에 비해 감소하며 인화귀얄분청사기 위주로 생산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철화기법이 등장하며 조화, 귀얄, 덤벙기법이 크게 증가하는 특징을 보이는 시기이다. 가마는 번조실 중앙에 불기둥이 두 개 설치된 ‘단실불기둥(2)요’로 운영되어 불기둥이 1개에서 2개로 늘어나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번조받침은 내화토와 태토에 가는 모래를 섞어 빚은 받침이 주로 이용되어 모래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으며, 폐기장은 가마 한쪽의 자연경사면을 이용하였다. 기종은 일상기와 특수용기 모두 생산하였고 이 중 유형 분류한 발은 측사면이 동체 하단부에서 꺾여 수직에 가까운 사선으로 올라 구연에 이르는 형태인 Ⅳ형이 새로 출현하며, 접시의 경우는 구연이 수평으로 꺾여 전을 이루는 형태인 Ⅳ형과 구연이 수직에 가깝게 꺾인 Ⅴ형이 새로 출현하는 특징을 나타낸다. 장식기법은 상감과 인화기법은 감소•소멸하는 반면에 인화귀얄, 조화, 귀얄, 덤벙기법이 1기에 비해 크게 증가한다. 그리고 철화기법이 등장하여 Ⅱ期와 구분되는 경향을 보인다. 문양은 집단연권문, 연주문 등이 더 이상 시문되지 않고 주름문과 종선문 등으로 간략•단순해지며 박지기법은 동물문이 거의 사라진다. 새로 출현한 철화기법은 초화문 계통이 대부분 시문되며 조화기법은 1期에는 시문되지 않았던 구름문 등 새로운 문양이 등장한다. 銘文 자기는 인화귀얄분청사기, 귀얄, 덤벙분청사기로 상감, 인화, 조화, 철화기법을 이용하여 내저중심, 내측면, 외면 등에 표기되는데 1기에 비해 명문을 표기하는 기법과 위치가 다양해진다. 명문의 종류는 ‘礼’ • ‘元’ • ‘大’ • ‘十’ • ‘ㅠ’ 등으로 禮賓寺와 관련된 ‘礼’銘의 관사명이 처음으로 확인되었고 이 밖에 사용처, 숫자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명문 등이 있다.
      Ⅲ期는 (16세기 1/4) 分院이 설치(1469년)된 以後로 공납용 분청사기의 생산의 의무가 거의 사라져 가는 시기로써, 명문자기의 제작이 소멸하는 경향을 보인다. 분청사기의 종류는 상감, 인화, 철화분청사기 등은 대부분 소멸되며 귀얄과 덤벙기법을 이용한 분청사기가만 생산된다. 가마는 번조실 바닥이 계단식으로 발전하여 ‘단실불기둥(2)계단식요’로 운영되었고 번조받침은 모래빚음받침 등으로 모래의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굵은 모래도 빈번히 사용하였다. 그리고 받침의 크기도 커지는 양상을 보인다. 폐기장은 가마 양쪽의 자연경사면을 이용하였고 경사도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 구간은 段을 만들어 조성한 유형으로 변화하였다. 기종은 발과 접시가 대부분으로 편병과 제기류는 더 이상 제작되지 않고 특수용기도 양이잔과 전접시만 생산되어 기종이 단순해지고 그릇의 기벽이 두꺼워지고 있다. 기형은 1期에 발과 접시 모두에서 대표 유형으로 제작된 Ⅰ형이 소멸되며 장식기법은 귀얄과 덤벙기법의 분장 농도가 옅어지는 경향이 일부 관찰된다. 명문자기는 덤벙분청사기에 철화기법으로 외면에 표기한 사례가 있으며 명문의 종류도 ‘十’銘만 확인되어 거의 소멸하는 양상을 보인다.
      지금까지 본 논문은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의 특징과 편년을 알아보기 위해 25基 가마터에서 확인된 자기를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 가마구조, 기종, 기형, 장식기법, 문양, 명문의 변천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고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가마의 선후관계와 제작시기를 추정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 가마터 25기 중 1호, 2호, 7호, 14호, 15호 가마터만 발굴조사가 되었으며 앞으로 발굴조사가 더 실시되어 자료가 축척된다면 더 명확한 특징과 편년 그리고 본격적인 백자 생산의 여부와 시기도 밝혀질 것으로 판단되므로 이 부분은 향후 연구 과제로 남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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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 前期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혼란기를 겪었기 때문에 더욱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太宗(재위1400~1418)과 世宗(재위 1418 ~1450) 연간에는 왕권을 강화하여...

      朝鮮 前期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혼란기를 겪었기 때문에 더욱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太宗(재위1400~1418)과 世宗(재위 1418
      ~1450) 연간에는 왕권을 강화하여 중앙집권체제를 갖추기 위해 재정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에 따라 稅源을 통해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였고 세원 중 하나인 磁器는 전국에 분포한 磁器所를 통해 공납되었다. 이 때 공납된 자기는 대부분 粉靑沙器였으며, 분청사기는 14세기 후반 강진 磁器所가 해체된 후 전국으로 흩어진 도공들에 의해 발생하였기에 고려 말 퇴락한 상감청자에서 그 淵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분청사기는 점차 상감, 인화, 박지, 조화, 철화, 귀얄, 덤벙 등 다양한 기법을 지니며 독자적인 도자 양식으로 발전•변모하였다.
      분청사기를 생산한 가마 가운데 고흥 운대리는 앞에서 설명한 일곱 가지 기법을 모두 이용하였고, 이 가운데 덤벙분청사기는 동반 생산된 다른 기법들에 비해 정교하게 번조한 양상을 보인다. 또한 운대리 한 지역에만 25基에 달하는 분청사기 가마터가 집중 분포하는 것은 다른 지역 가마터에서는 볼 수 없는 양상으로 고흥 운대리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 가마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문헌자료나 운영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편년자료가 출토되지 않아 연구에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지금까지 발굴조사와 정밀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가마구조, 기종과 기형, 장식기법, 문양, 명문 등을 분석하여 제작기술과 양식적 특징을 살펴보고 나아가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의 편년을 세우고자 하였다.
      먼저, 발굴조사된 가마터에서 밝혀진 가마구조의 변화를 파악하였고 각 가마터에서 출토•수습된 분청사기 중 출토량이 가장 많은 발과 접시를 유형 분류한 후 새롭게 출현하거나 소멸하는 경향이 나타나 이를 토대로 순서배열법을 이용해 각 가마별로 운영시기를 추정하는 근거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장식기법, 문양, 명문의 종류를 분석하여 각 가마터별로 확인되는 전반적인 제작양상을 통해 편년을 설정한 결과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는 크게 Ⅰ期, Ⅱ期, Ⅲ期로 나눌 수 있었다.
      Ⅰ期(15세기 2/4분기)는 官窯인 分院이 설치(1469년)되기 前 시기로 공납용 분청사기를 중심으로 생산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상감과 인화분청사기를 위주로 제작되었고 Ⅰ期 후반기에 귀얄과 덤벙분청사기가 등장하는 특징을 보인다. 가마는 번조실 중앙에 불기둥이 한 개 설치된 ‘단실불기둥(1)요’로 운영되었고 번조받침은 내화토빚음받침과 태토빚음받침이 주로 사용되었다. 폐기장은 흙을 채굴한 유구를 활용하였다. 기종은 일상기와 특수용기 모두 생산하였고 이 가운데 유형 분류가 가능한 발과 접시의 경우 측사면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Ⅰ형이 대표 기형으로 제작되었다. 장식기법은 상감과 인화기법을 비롯해 박지, 조화기법도 사용하였고 귀얄과 덤벙기법은 비교적 소량 이용되었으며, 특히 면상감기법은 Ⅰ期에만 사용되었다. 문양은 동물문, 식물문, 기하학문 등 다양한 소재가 확인되는데 특히 인화기법의 문양소재인 집단연권문을 활용한 그릇은 더욱 정교하게 번조한 경향이 나타난다. 銘文 자기는 대부분 인화분청사기로 상감과 인화기법을 이용하여 표기하였고 내저중심에 주로 위치한다. 종류는 ‘天’ • ‘元’ • ‘大’ • ‘十’ • ‘∗’ • ‘田’ 등 사용처와 숫자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명문들이 있다.
      Ⅱ期(15세기 3/4분기~15세기 4/4분기)는 官窯인 分院이 설치(1469년)되기 前後 시기로 공납용 분청사기의 생산이 Ⅰ期에 비해 감소하며 인화귀얄분청사기 위주로 생산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철화기법이 등장하며 조화, 귀얄, 덤벙기법이 크게 증가하는 특징을 보이는 시기이다. 가마는 번조실 중앙에 불기둥이 두 개 설치된 ‘단실불기둥(2)요’로 운영되어 불기둥이 1개에서 2개로 늘어나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번조받침은 내화토와 태토에 가는 모래를 섞어 빚은 받침이 주로 이용되어 모래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으며, 폐기장은 가마 한쪽의 자연경사면을 이용하였다. 기종은 일상기와 특수용기 모두 생산하였고 이 중 유형 분류한 발은 측사면이 동체 하단부에서 꺾여 수직에 가까운 사선으로 올라 구연에 이르는 형태인 Ⅳ형이 새로 출현하며, 접시의 경우는 구연이 수평으로 꺾여 전을 이루는 형태인 Ⅳ형과 구연이 수직에 가깝게 꺾인 Ⅴ형이 새로 출현하는 특징을 나타낸다. 장식기법은 상감과 인화기법은 감소•소멸하는 반면에 인화귀얄, 조화, 귀얄, 덤벙기법이 1기에 비해 크게 증가한다. 그리고 철화기법이 등장하여 Ⅱ期와 구분되는 경향을 보인다. 문양은 집단연권문, 연주문 등이 더 이상 시문되지 않고 주름문과 종선문 등으로 간략•단순해지며 박지기법은 동물문이 거의 사라진다. 새로 출현한 철화기법은 초화문 계통이 대부분 시문되며 조화기법은 1期에는 시문되지 않았던 구름문 등 새로운 문양이 등장한다. 銘文 자기는 인화귀얄분청사기, 귀얄, 덤벙분청사기로 상감, 인화, 조화, 철화기법을 이용하여 내저중심, 내측면, 외면 등에 표기되는데 1기에 비해 명문을 표기하는 기법과 위치가 다양해진다. 명문의 종류는 ‘礼’ • ‘元’ • ‘大’ • ‘十’ • ‘ㅠ’ 등으로 禮賓寺와 관련된 ‘礼’銘의 관사명이 처음으로 확인되었고 이 밖에 사용처, 숫자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명문 등이 있다.
      Ⅲ期는 (16세기 1/4) 分院이 설치(1469년)된 以後로 공납용 분청사기의 생산의 의무가 거의 사라져 가는 시기로써, 명문자기의 제작이 소멸하는 경향을 보인다. 분청사기의 종류는 상감, 인화, 철화분청사기 등은 대부분 소멸되며 귀얄과 덤벙기법을 이용한 분청사기가만 생산된다. 가마는 번조실 바닥이 계단식으로 발전하여 ‘단실불기둥(2)계단식요’로 운영되었고 번조받침은 모래빚음받침 등으로 모래의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굵은 모래도 빈번히 사용하였다. 그리고 받침의 크기도 커지는 양상을 보인다. 폐기장은 가마 양쪽의 자연경사면을 이용하였고 경사도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 구간은 段을 만들어 조성한 유형으로 변화하였다. 기종은 발과 접시가 대부분으로 편병과 제기류는 더 이상 제작되지 않고 특수용기도 양이잔과 전접시만 생산되어 기종이 단순해지고 그릇의 기벽이 두꺼워지고 있다. 기형은 1期에 발과 접시 모두에서 대표 유형으로 제작된 Ⅰ형이 소멸되며 장식기법은 귀얄과 덤벙기법의 분장 농도가 옅어지는 경향이 일부 관찰된다. 명문자기는 덤벙분청사기에 철화기법으로 외면에 표기한 사례가 있으며 명문의 종류도 ‘十’銘만 확인되어 거의 소멸하는 양상을 보인다.
      지금까지 본 논문은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의 특징과 편년을 알아보기 위해 25基 가마터에서 확인된 자기를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 가마구조, 기종, 기형, 장식기법, 문양, 명문의 변천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고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가마의 선후관계와 제작시기를 추정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 가마터 25기 중 1호, 2호, 7호, 14호, 15호 가마터만 발굴조사가 되었으며 앞으로 발굴조사가 더 실시되어 자료가 축척된다면 더 명확한 특징과 편년 그리고 본격적인 백자 생산의 여부와 시기도 밝혀질 것으로 판단되므로 이 부분은 향후 연구 과제로 남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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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14
      • Ⅱ.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의 제작배경 17
      • Ⅲ.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의 가마와 출토현황 21
      • 1. 가마와 유구 23
      • 2. 출토유물 30
      • Ⅰ. 머리말 14
      • Ⅱ.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의 제작배경 17
      • Ⅲ.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의 가마와 출토현황 21
      • 1. 가마와 유구 23
      • 2. 출토유물 30
      • 3. 가마구조의 변화와 특징 37
      • Ⅳ.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의 양식적 특징 47
      • 1. 기종과 기형 47
      • 2. 기법과 문양 54
      • 3. 명문 70
      • Ⅴ.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의 편년 설정 79
      • 1. 광주 충효동 분청사기의 편년자료 검토 79
      • 1) 광주 충효동 가마터 퇴적층의 생성시기 80
      • 2) 광주 충효동 분청사기의 변천단계 85
      • 2.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의 편년 설정 91
      • 1) Ⅰ期 : 15세기 2/4분기 91
      • 2) Ⅱ期 : 15세기 3/4분기 ~ 15세기 4/4분기 95
      • 3) Ⅲ期 : 16세기 1/4분기 100
      • Ⅵ. 맺음말 106
      • 參考文獻 110
      • 表 目 次 115
      • 圖版目次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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