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부여 능산리고분군의 현황을 살펴본 후 웅진기나 주변국가와의 비교를 통해 백제 사비기 능묘와 이를 포함한 능원의 문제에 접근해 보았다. 백제는 사비 천도 후 넓은 남사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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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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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사비기 ; 능산리고분군 ; 능묘 ; 능사 ; 능원 ; Baekje ; Sabi period ; tombs of Neungsan-ri ; royal tomb ; Buddhist temple of royal tomb ; 陵寺 ; boundary of the royal tomb ; 陵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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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99-12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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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부여 능산리고분군의 현황을 살펴본 후 웅진기나 주변국가와의 비교를 통해 백제 사비기 능묘와 이를 포함한 능원의 문제에 접근해 보았다. 백제는 사비 천도 후 넓은 남사면이 ...
본고에서는 부여 능산리고분군의 현황을 살펴본 후 웅진기나 주변국가와의 비교를 통해 백제 사비기 능묘와 이를 포함한 능원의 문제에 접근해 보았다.
백제는 사비 천도 후 넓은 남사면이 있는 능산리 일대를 선택하고, 지형을 잘 이용하여 왕릉을 포함한 고분군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능산리고분군 중 왕과 왕비의 능은 차별시켜 중앙고분군에 조성되었고, 동고분군과 서고분군은 시기나 구조로 보아 각각 왕족의 무덤군일 가능성이 있다. 능원과 관련되는 고분 외 시설로는 능산리 서고분군 내 건물들과 인근의 능산리사지를 들 수 있다. 능산리사지는 그동안의 조사와 연구를 통해 위덕왕(창왕)대 조성된 능사로서, 창건 시점인 이른 단계에는 중심사역에 강당지나 공방지Ⅱ를 중심으로 의례적 성격의 건물이 있었고, 위치나 기와 등으로 보아 늦은 단계인 북편건물지 1과 2에서도 건물 구성이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어서 강당지 등의 건물 기능이 북편건물지쪽으로 확대 또는 이동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능산리 서고분군에서는 고분들과 함께 초석건물을 포함한 지상식건물 2기와 수혈주거가 확인되었다. 초석건물인 1호 건물지는 고분들과 떨어진 지점에 단독으로 위치하지만, 2호 건물지와 수혈주거지는 고분들 사이에 존재하며 쪽구들 등의 취사·난방시설을 갖추고 있다. 1호와 2호 건물지는 구조와 위치는 다르지만 기와 등으로 보아 축조 시기가 비슷하여 6세기 후엽 서고분군의 조영과 함께 축조된 건물로 추정된다. 고분들과 별도로 공존했던 1호 건물은 고분과 관련된 의례(제의 등)를 위한 건물, 2호 건물지와 수혈주거지는시차는 있지만 고분 조영과 관련하여 임시적으로 거주했던 건물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러한 자료들로 보아 중국 남조의 영향이 강했던 백제 웅진기와 달리 사비기 능묘에는 웅진기 양상이 이어지면서도 변화되는 부분이 있다. 웅진기 이후 능묘의 구릉 군집은 그대로 이어지지만 조영 순서뿐 아니라 배치, 석실의 구조와 벽화 내용, 능원으로서 능사를 포함한 제의 관련 건물들의 존재 등은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사비기의 변화 양상은 고구려와 신라, 중국의 자료와 비교해보면 중국 북위 영향을 받은 고구려 능묘나 능사의 영향이 더 컸던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를 포함한 삼국은 국가에 따라 약간의 시차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6세기 전후부터 7세기 전엽에 걸쳐 구릉 능선을 따라 군집을 이루는 능묘, 능사가 포함된 능원이 나타나는 시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단독 능묘와 능원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이며, 그 과정에는 중국의 영향과 함께 삼국간의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set out to examine the state of the tombs of Neungsan-ri, Buyeo and compare them with their counterparts from the Woongjin period and those of neighboring states, making an approach to the issues of royal tombs and and their boundary of Bae...
This study set out to examine the state of the tombs of Neungsan-ri, Buyeo and compare them with their counterparts from the Woongjin period and those of neighboring states, making an approach to the issues of royal tombs and and their boundary of Baekje during the Sabi period.
Baekje built ancient tombs including the boundary of royal tombs in Neungsan-ri after moving its capital to Sabi. It is likely that the central tombs of Neungsan-ri were usually for the royal family(kings and queens), whereas the eastern and western ones were for the royal members of different lines. The facilities related to the boundary of royal tombs are the buildings in the western tombs of Neungsan-ri and the nearby site of Neungsan-ri Buddhist Temple. In Neungsan-ri Buddhist Temple, buildings of ritual character including the Lecture hall(강당지) and Workshop II(공방지Ⅱ) was built at an early stage around the foundation of the Buddhist temple of royal tomb(567). At a later stage, buildings for rituals might have gradually expanded or moved to the northern section of the site. And the building No.1(foundation stone building) in the the western tombs of Neungsan-ri is estimated to have been built along with the western tombs and played rituals related to tombs.
These data suggest that the royal tombs of the Sabi period introduced new changes while continuing the patterns of the Woongjin period, unlike the previous Woongjin period when Baekje's tombs were under the huge influence of Southern Dynasties in China. The complex of royal tombs on the slopes of the mountain continued since the Woongjin period, but new changes were introduced including the order and arrangement of tombs, structure of stone chamber tomb, content of murals, and buildings for rituals including Buddhist temple of royal tomb. These patterns of the Sabi period were under the greater influence of Goguryeo's Buddhist temple of royal tomb that were affected by Northern Wei Dynasty. The Three Kingdoms including Baekje built the complex of royal tombs on the slopes of the mountain and boundary of royal tombs including Buddhist temple of royal tomb between the sixth century and the former half of the seventh century with some time differences among them. These represent a transitional period toward single royal tomb and its boundary, and it is estimated that there were influences among the Three Kingdoms as well as influences from China in the 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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