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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5년 일제의 京城府 二村洞 水害對策과 都市開發 構想 = Imperial Japan's Flood Countermeasure of Ichon-dong, Seoul and Plan for Urban Development in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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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808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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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July 1925, the highest flood in the 20th century occurred on the Korean Peninsula.For Seoul and Gyeonggi Province, the rain fell between 300 and 500 millimeters between July 16 and 18. Due to the flooding of the Han River, the number of victims and...

      In July 1925, the highest flood in the 20th century occurred on the Korean Peninsula.For Seoul and Gyeonggi Province, the rain fell between 300 and 500 millimeters between July 16 and 18. Due to the flooding of the Han River, the number of victims and property losses reached 647 and 130 million won. At this time, the authorities abolished Ichon-dong which connects to the Hangang River.
      It is evident that Japan rejected the request for the construction of the dam by the Korean people in Ichon-dong, which is based on national discrimination. Also, this ouster of the Japanese was closely related to urban development plans designed according to the logic of capital accumulation.
      Thus, the residents of Ichon-dong were expelled from the homes of the people immediately after the floods. Instead, the idea of a plan for a Japanese plan began to materialize. Although the idea of this initiative was not realized immediately due to fiscal deficit, the Korean people's lives in Ichon-dong were counted as a r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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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925년(을축년) 7월 한반도에서는 20세기 최고의 홍수가 발생하였다. 서울과 경기의 경우, 비가 7월 16일과 18일 사이에 300~500밀리미터가 내릴 정도였다. 한강 범람으로 인해 사망자와 재산 피해...

      1925년(을축년) 7월 한반도에서는 20세기 최고의 홍수가 발생하였다. 서울과 경기의 경우, 비가 7월 16일과 18일 사이에 300~500밀리미터가 내릴 정도였다. 한강 범람으로 인해 사망자와 재산 피해액이 각각 647명, 1억 3천만 원(1년 예산의 58%)에 이르렀다. 한강에 연접한 이촌동의 경우, 이 홍수로 말미암아 廢洞이 되었다. 이러한 폐동을 야기한 홍수 피해는 일제가 이촌동 조선인 주민의 요구대로 이 지역에 제방을 수축하였다면 예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제는 이런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채 일본인 거주 지역에만 제방을 수축하였다. 심지어 을축년 홍수 이후에는 이촌동을 폐동으로 만들어 조선인의 거주를 금지하였다.
      일제 당국의 이러한 시책은 1920년대 초부터 추진해 왔던 ‘대경성’ 도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龍山을, 日本人을 위한 日本人의 商業地區로 개발시키고자 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재원 부족으로 소기의 계획대로 추진하지 못하였지만 일제는 시시때때로 이촌동 조선인 주민을 축출하고자 하였다. 이는 일제가 수행했던 수해 복구의 底意 즉 실제를 잘 보여준다. 여기에는 도시계획을 추진했던 일제당국, 일본인 상공인들 특히 토목 청부업자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이촌동이라는재난의 현장에서 민족 차별의 논리와 자본 축적의 논리가 결합하여 관철되고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는 민족·계급 차별의 논리에 입각하되 개발의 논리와 연계하여 조선인 빈민 배척을 넘어 일본인 자본가의 이윤 축적을 지원하기에이른 것이다. 이는 일제가 그들의 통치 근거로 자주 내세웠던 公共性의 훼손을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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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서울시사편찬위원회, "한강의 어제와 오늘" 2001

      2 경성제국대학 위생조사부, "토막민의 생활과 위생" 민속원 2010

      3 박달성, "천지를 뒤집어 흔들든 水國大變亂記, 報告와 雜觀" (62) : 1925

      4 김백영, "지배와 공간 : 식민지도시 경성과 제국 일본" 문학과지성사 2009

      5 이하영, "조선기근구제회 참여세력 연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2009

      6 존 C. 머터, "재난불평등" 동녘 2016

      7 김백영, "일제하 서울에서의 식민권력의 지배전략과 도시공간의 정치학"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5

      8 김종근, "일제하 京城의 홍수에 대한 식민정부의 대응 양상 분석- 정치생태학적 관점에서" 한국사연구회 (157) : 291-327, 2012

      9 고태우, "일제시기 재해문제와 ‘자선·기부문화’ - 전통·근대화·‘공공성’ -" 국학연구원 (168) : 147-184, 2014

      10 김영미, "일제시기 경성 이촌동민들의 수해대책운동과 지역운동" 5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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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경성제국대학 위생조사부, "토막민의 생활과 위생" 민속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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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고태우, "일제시기 재해문제와 ‘자선·기부문화’ - 전통·근대화·‘공공성’ -" 국학연구원 (168) : 147-184, 2014

      10 김영미, "일제시기 경성 이촌동민들의 수해대책운동과 지역운동" 5 : 2006

      11 손정목, "일제강점기 도시계획연구" 일지사 1990

      12 고태우, "일제 식민권력의 재해대책 추이와 성격" 역사문제연구소 18 (18): 352-398, 2014

      13 서울특별시 용산구청, "용산구지" 2001

      14 용산구청, "용산구지" 1992

      15 송병권, "식민지 통치권력 재해 조사를 둘러싼 일반과 특수의 간극 - 1928년 경북지역 가뭄 조사를 중심으로 -" 수선사학회 (54) : 65-91, 2015

      16 김덕진, "세상을 바꾼 기후" 다른 2013

      17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서울행정사" 1997

      18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서울재해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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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이태진, "새한국사" 까치 2012

      21 서일수, "동서양 역사 속의 공공건설과 국가경영" 학고방 2010

      22 조선연구회, "대경성" 1925

      23 최병두, "근대적 공간의 한계" 삼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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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片山隆三, "京城都市計劃と防水私議" 1925

      34 경성부, "『경성부사』 2권" 1934

      35 동아일보사, "『日政下 東亞日報 押收社說集』, ‘천재와 조선의 참상-조난 형제를 구제하여 부흥사업을 성취하라-’(1925년 7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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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염복규, "1920년대 경성도시계획운동의 전개와 성격" 107 : 2005

      41 유승희, "1920~1930년대 경성부 주택문제의 전개와 대책" 국제지역연구원 19 (19): 131-16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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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7 0.67 0.6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4 0.63 1.2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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