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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신문』에 나타난 개화지식인들의 근대주의와 儒學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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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60019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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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9세기 조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청일전쟁, 러일전쟁과 중국에서의 의화단 사건 등 일련의 지역적 사건들은 동아시아 지역의 전통적인 힘의 배치를 바꿔 놓았다. 이들 사건들은 조선인들이 ...

      19세기 조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청일전쟁, 러일전쟁과 중국에서의 의화단 사건 등 일련의 지역적 사건들은 동아시아 지역의 전통적인 힘의 배치를 바꿔 놓았다. 이들 사건들은 조선인들이 일본과 중국을 인식하는 방법 뿐 아니라, 자신의 국가/민족을 이해하는 방법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안에서 중화로서의 중국의 역할은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중화는 이제 더 이상 세계의, 문화의 중심을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었으며 중국은 이제 세계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문명화되지 않은’ 주변부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개항 이후 조선의 개화지식인이 인식한 조선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근대화와 문명개화였다. 이것은 서구 열강과 청의 내정 간섭 하에서 문명개화가 조선의 부국강병과 자주독립을 보존하기 위한 방안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개화지식인들은 독립신문을 통해 자주독립, 자유민권 사상을 공론화시키고자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지배질서 체제, 사상, 학문, 사서삼경 등 전통 유학을 ‘부정’적으로 다루었다. 개화지식인들은 기존의 학문, 사상체계를 극복, 청산, 부정해야만 조선을 근대화할 수 있다는 근대주의적 인식하에 ‘탈중화’를 의도적으로 주장하였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중국의 문화, 학문, 사상의 핵심인 유학을 ‘虛學’으로 규정하고 ‘야만’의 것으로 회의, 배격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개화지식인들이 유학을 폄하하고 서구의 학문의 적극적 수용을 강조하는 논리는 서구인들이 동양을 식민지화하는데 활용한 근대주의적 성격이 강한 ‘문명담론’이었다. 이것은 조선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문명담론을 활용하고자 하였던 개화지식인이 가지고 있었던 시대적 한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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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East-Asian countries' opening of ports in the 19th century, and the following series of regional events such as the Sino-Japanese War, Russo-Japanese War in Chosun, and The Boxer Rebellion in China redistributed the traditional power of East-Asian...

      The East-Asian countries' opening of ports in the 19th century, and the following series of regional events such as the Sino-Japanese War, Russo-Japanese War in Chosun, and The Boxer Rebellion in China redistributed the traditional power of East-Asian area. These events not only brought a change in how the Chosun people perceived Japan and China, but also greatly changed how they understood their own 'nation/state' for a fissure had began in the East-Asian Confucianist cultural area's perceptional frame of Sino-central order which encompassed everything. Also, the role of China as the center of East-Asian Confucianist cultural area naturally began to collapse. Sino-centralism was no longer a concept at the center of the world and culture and China now became nothing more than a globally and regionally 'uncivilized' marginal area. The most urgent task which the enlightened intellectuals perceived in Chosun after the opening of their ports was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as this was considered as the way to preserve Chosun's national prosperity, military power, and independence under Western power's and Quing Dynasty's interference in domestic affairs. Especially, the discourse of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began to gain power as it was spread to the general public through The Independent, first issued under the enlightened intellectuals. The first priority of The Independent was to enlighten the Chosun people of the latter Chosun period who were imbued with the old conventions and to overcome the overall crisis which Chosun society was under. For this end, The Independent attempted to on one hand, publicize thoughts of independence and the right to liberty, and on the other, negate traditional 'Confucianism' such as the traditional dominating order system, philosophy, scholarship, and the seven Chinese classics. The enlightened intellectuals intentionally asserted a 'de-Sinocentralism" under the perception that Chosun could only become modernized when it overcame existing scholarship and systems of thought. Specifically, they defined Confucianism at the center of Chinese culture, scholarship, and philosophy as an "empty scholarship' and assumed an attitude which completely doubted and denounced it as 'uncivilized." As such, the enlightened intellectuals who were the prime force of The Independent discarded the 'empty scholarship' and acquired Shilhak (The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to actively search for methods leading to Chosun's national prosperity and military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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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논문요약
      • Ⅰ. 머리말
      • Ⅱ. 전통적인 지역질서체제의 재편과『독립신문』의 창간
      • Ⅲ. 문명개화와 ‘虛學’으로서의 유학 인식
      • Ⅳ. ‘문명개화’ 방법으로서의 신교육 실시와 유학의 폄하
      • 논문요약
      • Ⅰ. 머리말
      • Ⅱ. 전통적인 지역질서체제의 재편과『독립신문』의 창간
      • Ⅲ. 문명개화와 ‘虛學’으로서의 유학 인식
      • Ⅳ. ‘문명개화’ 방법으로서의 신교육 실시와 유학의 폄하
      • Ⅴ.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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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경미, "한국 근대교육의 형성" 혜안 2009

      2 박찬승, "한국 근대 정치사상사연구-민족주의 우파의 실력양성운동론" 역사비평사 1992

      3 앙드레 슈미드,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 휴머니스트 2007

      4 이광린, "서재필의 <독립신문> 간행에 대하여" 39 : 1975

      5 려증동, "부왜역적 기관지 <독립신문> 연구" 경상대학교 출판부 1991

      6 주진오, "독립협회의 대외인식의 구조와 전개" 8 : 1986

      7 채백, "독립신문 연구" 한나래 2006

      8 김도형, "대한제국기의 정치사상연구" 지식산업사 1994

      9 백동현, "대한제국기 언론에 나타난 동양주의 논리와 그 극복" 17 : 2001

      10 백동현, "대한제국기 新舊學論爭의 전개와 그 의의" 한국사상사학회 19 : 2002

      1 김경미, "한국 근대교육의 형성" 혜안 2009

      2 박찬승, "한국 근대 정치사상사연구-민족주의 우파의 실력양성운동론" 역사비평사 1992

      3 앙드레 슈미드,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 휴머니스트 2007

      4 이광린, "서재필의 <독립신문> 간행에 대하여" 39 : 1975

      5 려증동, "부왜역적 기관지 <독립신문> 연구" 경상대학교 출판부 1991

      6 주진오, "독립협회의 대외인식의 구조와 전개" 8 : 1986

      7 채백, "독립신문 연구" 한나래 2006

      8 김도형, "대한제국기의 정치사상연구" 지식산업사 1994

      9 백동현, "대한제국기 언론에 나타난 동양주의 논리와 그 극복" 17 : 2001

      10 백동현, "대한제국기 新舊學論爭의 전개와 그 의의" 한국사상사학회 19 : 2002

      11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근대계몽기 지식의 발견과 사유 지평의 확대" 소명출판 2006

      12 박양신, "근대 초기 일본의 문명 개념 수용과 그 세속화" 한림과학원 (2) : 33-74, 2008

      13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근대 계몽기 지식 개념의 수용과 그 변용" 소명출판 2004

      14 이광린, "구한말 신학과 구학의 논쟁" 23 : 1980

      15 松田宏一江郞, "江戶の 知識から 明治の 政治へ" 2010

      16 長谷川直子, "朝鮮中立化論と日淸日戰爭, In 東アジア近現代通史" 岩波書店 2010

      17 金度亨, "大韓帝國 초기 文明開化論의 발전" 한국사연구회 (121) : 7-204, 2003

      18 신용하, "<독립신문>의 창간과 그 계몽적 역할" 2 : 1975

      19 길진숙, "<독립신문>, <매일신문>에 수용된 ‘문명/야만’담론의 의미층위 In 근대계몽기 지식의 발견과 사유지평의 확대" 소명출판사 2006

      20 노대환, "1890년대 후반 ‘문명’ 개념의 확산과 문명 인식" 한국사연구회 (149) : 239-27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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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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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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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48 0.48 0.4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4 0.42 1.058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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