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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SCOPUS

      The Characteristics of the Ruling Structure during Early Chosŏn = 朝鮮初期 支配體制의 성격에 대한 一考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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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7650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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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조선시대의 지배체제가 중앙집권체제라는 데에는 한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다. 특히 조선초기는 고려의 중앙집권적 체제를 계승하여 그것을 더욱 강화시킨 시기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초기 중앙집권체제의 세밀한 분석은 물론, 그것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별반 이루어져 있지 않다.
      조선의 지배체제는 인격이 부정되는 노비 등을 제외한 사회 구성원 전반이 국왕의 신민으로서 봉사하고 은택을 입는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모든 양인이 군역을 위시한 국역의 의무를 지는 한편으로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던 것이 이를 나타낸다. 한편 권력은 여러 제도 장치에 의해 국왕에게 집중되고, 이 집중된 권력이 국왕의 명령에 의해 또는 국왕의 명령에 따라 정해진 제도에 의해 다시금 각 관서와 관원에게 분배되어 행사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초기의 지배체제는 서양이나 일본의 봉건제와는 뚜렷히 구별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런데 지배체제가 운영되는 실제 내용에서는 국왕과 백성의 중간에 위치하는 지배층과 이들이 소속되어 근무하는 여러 관서가 상당한 정도의 자율성을 갖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입법과 사법 과정에서 백성의 생활에 의미가 있는 부분은 관서나 주요 관원 선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주요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주요 관원들의 영향력은 매우 컸으며, 이는 관원의 임명 절차에서도 유사하게 작용하였다. 이러한 주요 관원들의 힘은 겉으로는 그들이 갖춘 높은 수준의 식견에 입각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들이 지닌 경제적 사회적 기반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의 중앙집권체제는 내면적으로는 분권적인 봉건제도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었다.
      조선초기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는 고려말에 맞은 국내외의 위기를 극복해야 할 필요성과 새 왕조가 백성들로부터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필요성이 결합되어 중앙권력을 강화시켜 지배층의 권익을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할 목적에서 나옹 것이었다. 따라서 농장의 발달과 외적의 침입으로 대표되는 위기가 약화되고 새 왕조가 안정성을 확보하면 중앙집권체제의 강도와 성격이 달라질 개연성이 많았다. 15세기 중엽부터 나타난 변화는 실제로 중앙집권체제의 강도가 느슨해지고, 국가의 공적 이익보다도 지배층의 사적 이익이 추구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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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의 지배체제가 중앙집권체제라는 데에는 한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다. 특히 조선초기는 고려의 중앙집권적 체제를 계승하여 그것을 더욱 강화시킨 시기로 이해...

      조선시대의 지배체제가 중앙집권체제라는 데에는 한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다. 특히 조선초기는 고려의 중앙집권적 체제를 계승하여 그것을 더욱 강화시킨 시기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초기 중앙집권체제의 세밀한 분석은 물론, 그것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별반 이루어져 있지 않다.
      조선의 지배체제는 인격이 부정되는 노비 등을 제외한 사회 구성원 전반이 국왕의 신민으로서 봉사하고 은택을 입는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모든 양인이 군역을 위시한 국역의 의무를 지는 한편으로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던 것이 이를 나타낸다. 한편 권력은 여러 제도 장치에 의해 국왕에게 집중되고, 이 집중된 권력이 국왕의 명령에 의해 또는 국왕의 명령에 따라 정해진 제도에 의해 다시금 각 관서와 관원에게 분배되어 행사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초기의 지배체제는 서양이나 일본의 봉건제와는 뚜렷히 구별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런데 지배체제가 운영되는 실제 내용에서는 국왕과 백성의 중간에 위치하는 지배층과 이들이 소속되어 근무하는 여러 관서가 상당한 정도의 자율성을 갖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입법과 사법 과정에서 백성의 생활에 의미가 있는 부분은 관서나 주요 관원 선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주요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주요 관원들의 영향력은 매우 컸으며, 이는 관원의 임명 절차에서도 유사하게 작용하였다. 이러한 주요 관원들의 힘은 겉으로는 그들이 갖춘 높은 수준의 식견에 입각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들이 지닌 경제적 사회적 기반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의 중앙집권체제는 내면적으로는 분권적인 봉건제도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었다.
      조선초기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는 고려말에 맞은 국내외의 위기를 극복해야 할 필요성과 새 왕조가 백성들로부터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필요성이 결합되어 중앙권력을 강화시켜 지배층의 권익을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할 목적에서 나옹 것이었다. 따라서 농장의 발달과 외적의 침입으로 대표되는 위기가 약화되고 새 왕조가 안정성을 확보하면 중앙집권체제의 강도와 성격이 달라질 개연성이 많았다. 15세기 중엽부터 나타난 변화는 실제로 중앙집권체제의 강도가 느슨해지고, 국가의 공적 이익보다도 지배층의 사적 이익이 추구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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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Introduction
      • Land ownership and the centralized ruling structure
      • The centralized social structure and institutions
      • The centralized ruling structure and the exercise of political power
      • Conclusion
      • Introduction
      • Land ownership and the centralized ruling structure
      • The centralized social structure and institutions
      • The centralized ruling structure and the exercise of political power
      • Conclusion
      • 〈국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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