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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1920년대 초반 조선 지식인의 ‘조선 미술’ 규정과 서술 - 잡지『동명』을 중심으로 - = The Recognizing anew of the History of Korean Arts in the early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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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many colonized Korean peoples participated in the March First Movement in 1919. Even though this movements did not accomplish the main goals of Korean independence, the Korean intellectuals earnestly scrutinized in the essence of Korean-ness based on the Koreans’ self-confidence.
      In general the Modern Nationalism which called the Printed-Nationalism ware usually built by both nation education and mass-communication such as Korean news papers, Korean magazines and so on. This paper focuses on the discourses of Korean identities by Choi Nam-son(崔南善)’s arguments and the articles of magazine Dong Myeong(東明) during the early 1920s.
      The academic finding of Korean-ness was called the Korean Studies(朝鮮學). One of these fields was the re-evaluation of Korean Arts. For the purpose of writing the history of Korean Arts, many Korean intellectuals competed with Sekino Tadashi(關野貞)’s theories on Korean Arts.
      Sekino Tadashi who was a professor of Tokyo Imperial University participated in the research and classification of the Korean traditional architectures. Based on these researches, he emphasized on two themes. The first, he said that all of Korean Arts were the mimic of the Chinese Arts. Second, through the history of Korean Arts, the Unified Shilla dynasty was evaluated the age of Golden period by him. On the contrary, the Korean intellectuals recognized anew the values of Korean Arts and translated the Japanese scholars’ articles on positively evaluated Korean ceramic wares during the Koryo and Choson dynasty against Sekino’s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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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many colonized Korean peoples participated in the March First Movement in 1919. Even though this movements did not accomplish the main goals of Korean independence, the Korean intellectuals earnestly scrutinized in the essence of Korean-ness based...

      The many colonized Korean peoples participated in the March First Movement in 1919. Even though this movements did not accomplish the main goals of Korean independence, the Korean intellectuals earnestly scrutinized in the essence of Korean-ness based on the Koreans’ self-confidence.
      In general the Modern Nationalism which called the Printed-Nationalism ware usually built by both nation education and mass-communication such as Korean news papers, Korean magazines and so on. This paper focuses on the discourses of Korean identities by Choi Nam-son(崔南善)’s arguments and the articles of magazine Dong Myeong(東明) during the early 1920s.
      The academic finding of Korean-ness was called the Korean Studies(朝鮮學). One of these fields was the re-evaluation of Korean Arts. For the purpose of writing the history of Korean Arts, many Korean intellectuals competed with Sekino Tadashi(關野貞)’s theories on Korean Arts.
      Sekino Tadashi who was a professor of Tokyo Imperial University participated in the research and classification of the Korean traditional architectures. Based on these researches, he emphasized on two themes. The first, he said that all of Korean Arts were the mimic of the Chinese Arts. Second, through the history of Korean Arts, the Unified Shilla dynasty was evaluated the age of Golden period by him. On the contrary, the Korean intellectuals recognized anew the values of Korean Arts and translated the Japanese scholars’ articles on positively evaluated Korean ceramic wares during the Koryo and Choson dynasty against Sekino’s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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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은 민족 공동체 구성원 대다수가 참여한 활동이었다. 비록 독립이란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3‧1운동은 민족적 자아(自我)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 이후 민족이 재발견되었고, 이후 노동자, 농민, 청년 학생 중심의 ‘대중운동’의 시대가 열렸다.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민족적 자아란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 것일까? 근대적 민족주의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조선 지식인들에게 교육과 언론 매체를 통해 조선 역사와 문화 연구를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근대적 학문 방법론에 입각하여 조선 역사와 문화와 관련해서 ‘조선적인 것’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일본인 주도의 조선 역사와 문화 연구에 대한 학술적 대응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본고에서는 최남선이 주도한 잡지 『동명』을 중심으로 1920년대 전반기 조선 역사와 문화에 대한 대중적 소개를 살펴보았다.
      1920년대 전반기는 다양한 신문과 잡지를 통해 지식인이 주도해서 담론을 형성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다양한 출판물 가운데 조선 미술에 관한 정리는 민족사 서술의 일환이며 동시에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 조선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었다. 더불어 1920년대 전반기 조선 문화 특히 조선 미술에 대한 정리는 ‘조선 문화 연구’의 일환인 ‘조선학’의 형성과정을 살필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우선 1920년대 전반기 조선 미술사(美術史)에 대한 논의에는 아직 조선인의 속에 이루어진 체계적인 조선 미술사가 서술되지 않았기에, 조선 미술사 구성의 방향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당대 조선미술사 연구가 일본인 연구자와의 대결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점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 당대 대표적인 미술사 연구자인 세키노 타다시(關野貞)의 중국 미술의 ‘모방’ 논의와 통일신라시대를 예술의 황금기라고 보는 논리에 대한 대응으로 조선 미술사의 구성과정을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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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은 민족 공동체 구성원 대다수가 참여한 활동이었다. 비록 독립이란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3‧1운동은 민족적 자아(自我)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 이...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은 민족 공동체 구성원 대다수가 참여한 활동이었다. 비록 독립이란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3‧1운동은 민족적 자아(自我)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 이후 민족이 재발견되었고, 이후 노동자, 농민, 청년 학생 중심의 ‘대중운동’의 시대가 열렸다.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민족적 자아란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 것일까? 근대적 민족주의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조선 지식인들에게 교육과 언론 매체를 통해 조선 역사와 문화 연구를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근대적 학문 방법론에 입각하여 조선 역사와 문화와 관련해서 ‘조선적인 것’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일본인 주도의 조선 역사와 문화 연구에 대한 학술적 대응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본고에서는 최남선이 주도한 잡지 『동명』을 중심으로 1920년대 전반기 조선 역사와 문화에 대한 대중적 소개를 살펴보았다.
      1920년대 전반기는 다양한 신문과 잡지를 통해 지식인이 주도해서 담론을 형성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다양한 출판물 가운데 조선 미술에 관한 정리는 민족사 서술의 일환이며 동시에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 조선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었다. 더불어 1920년대 전반기 조선 문화 특히 조선 미술에 대한 정리는 ‘조선 문화 연구’의 일환인 ‘조선학’의 형성과정을 살필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우선 1920년대 전반기 조선 미술사(美術史)에 대한 논의에는 아직 조선인의 속에 이루어진 체계적인 조선 미술사가 서술되지 않았기에, 조선 미술사 구성의 방향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당대 조선미술사 연구가 일본인 연구자와의 대결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점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 당대 대표적인 미술사 연구자인 세키노 타다시(關野貞)의 중국 미술의 ‘모방’ 논의와 통일신라시대를 예술의 황금기라고 보는 논리에 대한 대응으로 조선 미술사의 구성과정을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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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조동걸, "현대한국사학사" 나남출판 1998

      2 이만열, "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흐름" 푸른역사 2007

      3 이지원, "한국 근대 문화사상사 연구" 혜안 2007

      4 "학지광"

      5 류시현, "최남선 연구" 역사비평사 2009

      6 "청춘"

      7 홉스봄, "자본의 시대" 한길사 1983

      8 최석영, "일제의 조선 연구와 식민지적 지식생산" 민속원 2012

      9 이순자, "일제강점기 고적조사사업연구" 경인문화사 2009

      10 이난수, "안확의 조선미(朝鮮美) 탐구" 한국유교학회 (72) : 241-271, 2018

      1 조동걸, "현대한국사학사" 나남출판 1998

      2 이만열, "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흐름" 푸른역사 2007

      3 이지원, "한국 근대 문화사상사 연구" 혜안 2007

      4 "학지광"

      5 류시현, "최남선 연구" 역사비평사 2009

      6 "청춘"

      7 홉스봄, "자본의 시대" 한길사 1983

      8 최석영, "일제의 조선 연구와 식민지적 지식생산" 민속원 2012

      9 이순자, "일제강점기 고적조사사업연구" 경인문화사 2009

      10 이난수, "안확의 조선미(朝鮮美) 탐구" 한국유교학회 (72) : 241-271, 2018

      11 우동선, "세끼노 타다시(關野貞)의 한국 고건축 조사와 보존에 대한 연구 - 분제의 소재"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구 한국근대미술사학회) 11 : 211-236, 2003

      12 이종수, "벽화를 꿈꾸다" 하늘재 2011

      13 최경옥, "번역과 일본의 근대" 살림 2005

      14 고성애, "박종홍 철학의 형성과정 연구 -경성제국대학 입학 이전을 중심으로-" 철학사상연구소 (48) : 31-55, 2013

      15 "동아일보"

      16 "동명"

      17 최혜주, "근대 재조선 일본인의 한국사 왜곡과 식민통치" 경인문화사 2010

      18 "개벽"

      19 關野貞, "朝鮮の建築と藝術" 岩波書店 1941

      20 차순철, "『韓紅葉』과 일본인들의 한국문화 인식과정 검토" 한국고대사탐구학회 (11) : 35-60, 2012

      21 류시현, "1900~1910년대 세키노 타다시(關野貞)의 조선 문화 연구" 인문사회과학연구소 19 (19): 27-4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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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6-10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전남사학 -> 역사학연구 KCI등재
      2006-03-21 학회명변경 한글명 : 전남사학회 -> 호남사학회
      영문명 : Chonnam Historical Association -> Honam Historical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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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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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8 0.68 0.6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3 0.6 1.183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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