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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城百濟의 時間的 上限과 下限 = The Chronological Study on Hanseong Period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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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887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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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re has been a lot of controversy regarding the upper and lower limit in time period of Hansung Baekje. The main reason resulted from the different perspectives of researchers who were engaged in the related material. Potteries from Baekje did not appear in many varieties at first, but appeared gradually. The time period of it was estimated to be late 3rd century because of the era of Chinese potteries excavated in Pungnap Walled site. Yet, there is possibility that it might be early 4th century. The transition period from 1st to 2nd Hansung period has been believed to be during the middle of the 4th century. In the 360s, pedestal bowls and lids with a knob were found. It is not still clear when they started to use it, but it seems they might have appeared during the late 1st Hansung period, while pedestal bowls appeared after the 4th century.
      Sueki, excavated from Mongchon Walled site, and Gaya and Goguryeo potteries excavated from Pungnap Walled site traces back to 475, in which Hansung collapsed. Chinese potteries found in the great tomb, which were spread in the region, were thought to be significantly important material in a sense that they can tell the tim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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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re has been a lot of controversy regarding the upper and lower limit in time period of Hansung Baekje. The main reason resulted from the different perspectives of researchers who were engaged in the related material. Potteries from Baekje did not a...

      There has been a lot of controversy regarding the upper and lower limit in time period of Hansung Baekje. The main reason resulted from the different perspectives of researchers who were engaged in the related material. Potteries from Baekje did not appear in many varieties at first, but appeared gradually. The time period of it was estimated to be late 3rd century because of the era of Chinese potteries excavated in Pungnap Walled site. Yet, there is possibility that it might be early 4th century. The transition period from 1st to 2nd Hansung period has been believed to be during the middle of the 4th century. In the 360s, pedestal bowls and lids with a knob were found. It is not still clear when they started to use it, but it seems they might have appeared during the late 1st Hansung period, while pedestal bowls appeared after the 4th century.
      Sueki, excavated from Mongchon Walled site, and Gaya and Goguryeo potteries excavated from Pungnap Walled site traces back to 475, in which Hansung collapsed. Chinese potteries found in the great tomb, which were spread in the region, were thought to be significantly important material in a sense that they can tell the tim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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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한성백제의 시간적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자료를 접하는 연구자의 시각차이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백제 토기의 출현, 한성 1기와 2기의 구분, 475년 한성 함락이란 역사적사건이 지닌 고고학적 의미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출현기 백제 토기는 전 기종이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니어서 고배, 삼족기, 꼭지달린 뚜껑은 존재하지 않았다. 직구호와 대형 호, 꼭지없는 뚜껑이 출현하고 원삼국기 이래의 유문타날 장란형토기와 심발형토기가 성행하는 점진적인 모습이 출현기의 실상이었을 것이다. 그 시점은 3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풍납토성 출토 시유도기와 전문도기의 연대관에 기초하고 있지만 4세기 초로 내려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성 1기와 2기를 구분짓는 근거는 토기의 경도나 표면 처리방식이 될 수 없어서 한성 2기에도 다량의 연질, 와질의 토기류가 사용된 것이 백제 토기의 특징이다. 1기와 2기의 획기는 4세기 중엽이란 기존 통설이 여전히 유효한데 늦어도 360년대에는 유개고배류와 꼭지달린 뚜껑 등이 존재하였다. 그 출현시점은 분명치 않은데 한성 1기의 늦은 단계일 가능성이 높으며 유개고배는 4세기 이후에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몽촌토성 출토 스에키, 풍납토성 출토 가야 토기와 고구려 토기를 한성 함락인 475년 이후에 배치하는 것은 불가하며, 지방의 수장묘 출토 중국 도자기류는 약간의 전세 기간을 인정하더라도 연대 결정 기준으로서의 자료적 가치는 충분히 지닌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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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백제의 시간적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자료를 접하는 연구자의 시각차이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백제 토기의 출현,...

      한성백제의 시간적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자료를 접하는 연구자의 시각차이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백제 토기의 출현, 한성 1기와 2기의 구분, 475년 한성 함락이란 역사적사건이 지닌 고고학적 의미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출현기 백제 토기는 전 기종이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니어서 고배, 삼족기, 꼭지달린 뚜껑은 존재하지 않았다. 직구호와 대형 호, 꼭지없는 뚜껑이 출현하고 원삼국기 이래의 유문타날 장란형토기와 심발형토기가 성행하는 점진적인 모습이 출현기의 실상이었을 것이다. 그 시점은 3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풍납토성 출토 시유도기와 전문도기의 연대관에 기초하고 있지만 4세기 초로 내려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성 1기와 2기를 구분짓는 근거는 토기의 경도나 표면 처리방식이 될 수 없어서 한성 2기에도 다량의 연질, 와질의 토기류가 사용된 것이 백제 토기의 특징이다. 1기와 2기의 획기는 4세기 중엽이란 기존 통설이 여전히 유효한데 늦어도 360년대에는 유개고배류와 꼭지달린 뚜껑 등이 존재하였다. 그 출현시점은 분명치 않은데 한성 1기의 늦은 단계일 가능성이 높으며 유개고배는 4세기 이후에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몽촌토성 출토 스에키, 풍납토성 출토 가야 토기와 고구려 토기를 한성 함락인 475년 이후에 배치하는 것은 불가하며, 지방의 수장묘 출토 중국 도자기류는 약간의 전세 기간을 인정하더라도 연대 결정 기준으로서의 자료적 가치는 충분히 지닌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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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權五榮, "한성백제의 시작과 끝,In 한일 삼국ㆍ고분시대의 연대관(Ⅱ)" 釜山大學校博物館ㆍ國立歷 史民俗博物館 2007

      2 權五榮, "한성기 백제의 물류거점, 풍납토성,In 고대 동아시아의 물류거점유적" 2010

      3 朴淳發, "토기 양식으로 본 고대국가 형성,In 국가형성의 고고학" 한국고고학회 2008

      4 權五榮, "서울 풍납토성 경당지구유적 200점의 토기를 매납한 백제 왕도(王都)의 어정(御井)"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5 朴淳發, "백제토기 탐구" 주류성 2006

      6 이명엽, "백제토기 신기종의 출현과 중국 도자기의 영향" 한국대학박물관협회 67 (67): 39-70, 2006

      7 朴淳發, "백제의 토기,In 백제문화의 원형" 공주대학교 2004

      8 성정용, "백제 관련 연대결정자료와 연대관" 호서고고학회 22 (22): 76-90, 2010

      9 崔鍾澤, "몽촌토성 내 고구려유적 재고" 고려사학회 12 : 2002

      10 崔鍾澤, "黃州出土百濟土器類" 韓國上古史學會 4 : 1990

      1 權五榮, "한성백제의 시작과 끝,In 한일 삼국ㆍ고분시대의 연대관(Ⅱ)" 釜山大學校博物館ㆍ國立歷 史民俗博物館 2007

      2 權五榮, "한성기 백제의 물류거점, 풍납토성,In 고대 동아시아의 물류거점유적" 2010

      3 朴淳發, "토기 양식으로 본 고대국가 형성,In 국가형성의 고고학" 한국고고학회 2008

      4 權五榮, "서울 풍납토성 경당지구유적 200점의 토기를 매납한 백제 왕도(王都)의 어정(御井)"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5 朴淳發, "백제토기 탐구" 주류성 2006

      6 이명엽, "백제토기 신기종의 출현과 중국 도자기의 영향" 한국대학박물관협회 67 (67): 39-70, 2006

      7 朴淳發, "백제의 토기,In 백제문화의 원형" 공주대학교 2004

      8 성정용, "백제 관련 연대결정자료와 연대관" 호서고고학회 22 (22): 76-90, 2010

      9 崔鍾澤, "몽촌토성 내 고구려유적 재고" 고려사학회 12 : 2002

      10 崔鍾澤, "黃州出土百濟土器類" 韓國上古史學會 4 : 1990

      11 權五榮, "風納土城出土 外來遺物에 대한 檢討" 忠南大學校 百濟硏究所 36 : 2002

      12 酒井淸治, "須惠器の編年と年代觀,In 日韓古墳時代の年代觀" 歷博國際硏究集會 2006

      13 韋正, "韓國出土 錢文陶器 年代에 관한 몇가지 考察,In 경남의 가야고분과 동아시아" 2010

      14 定森秀夫, "韓國ソウル地域出土三國時代土器について,In 橫山浩一先生退官記念論文集 (生産と流通の考古學)" 橫山浩一先生退官記念論文集 1989

      15 木下亘, "韓半島出土 須惠器(系) 土器에 대하여" 忠南大學校百濟硏究所 37 : 2003

      16 김일규, "韓半島 中西部地域 三韓ㆍ三國時代 土器編年,In 한일 삼국ㆍ고분시대의 연대관(Ⅱ)" 釜山大學校博物館ㆍ國立歷史民俗博物館 2007

      17 龜田修一, "陶製無文當て具小考,In 橫山浩一先生退官記念論文集 (生産と流通の考古學)" 1989

      18 廣州市文物考古硏究所, "銖積寸累-廣州考古十年出土文物選萃" 文物出版社 2005

      19 成正鏞, "百濟地域의 年代決定資料와 年代觀,In 日韓古墳時代の年代觀" 歷博國際硏究集會 2006

      20 한지선, "百濟土器 成立期 樣相에 대한 再檢討" 백제연구소 41 (41): 1-31, 2005

      21 한지수, "百濟 風納土城 출토 施釉陶器 연구 -경당지구 196호 유구 출토품과 중국 자료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백제연구소 51 (51): 1-39, 2010

      22 金成南, "百濟 漢城樣式土器의 形成과 變遷에 대하여" 서울경기고고학회 3 (3): 2004

      23 朴淳發, "漢江流域 百濟土器의 變遷과 夢村土城의 性格에 대한 一考察" 서울대학교 1989

      24 성정용, "漢江·錦江流域의 嶺南地域系統 文物과 그 意味" 백제연구소 46 (46): 105-134, 2007

      25 朴淳發, "漢城百濟의 誕生" 서경문화사 2001

      26 김일규, "漢城期 百濟土器 編年 再考,In 한성 백제의 역사와 문화" 韓國古代學會 2007

      27 權五榮, "漢城期 百濟 기와의 製作傳統과 發展의 劃期" 忠南大學校 百濟硏究所 38 : 2003

      28 林永珍, "漢城時代 百濟의 建國과 漢江流域 百濟古墳" 百濟文化開發硏究院 4 : 1994

      29 정종태, "湖西地域 長卵形土器의 變遷樣相" 호서고고학회 (9집) : 13-36, 2003

      30 賀云翶, "東亞地區出土早期錢紋陶瓷器的硏究" 忠淸文化財硏究院 2 : 2005

      31 張寄庵, "徐州市云龍山發現北朝末期墓葬及漢代五銖錢范" 11 : 1955

      32 李漢祥, "威勢品으로 본 古代國家의 形成,In 국가형성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 2007

      33 金武重, "土器를 통해 본 百濟 漢城期의 中央과 地方" 서울경기고고학회 4 (4): 2005

      34 中央文化財硏究院, "南楊州 長峴里遺蹟" 2010

      35 전북문화재연구원, "南原 月山里古墳群" 2010

      36 馮慧, "南京新出土六朝錢紋陶瓷器標本硏究" 忠淸文化財硏究院 1 : 2005

      37 權五榮, "伯濟國에서 百濟로의 전환" 한국역사연구회 40 : 2001

      38 白井克也, "ソウルㆍ夢村土城出土土器編年試案" 東京大學文學部 考古學硏究室. 11 :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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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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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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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82 0.82 0.8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5 0.87 1.8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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