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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후기 體元의 관음신앙의 특성 = The Avalokitesvara belief of Chewon in late Go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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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4세기의 고려 사회는 원의 간섭기로서 사회 전반에 변화의 기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사회 운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불교는 중앙 교단이 일반 정치 상황과 같이 원과 연계되어 공덕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적 경향에 젖어들었다. 이전까지 활력을 보여주던 수선사 계통의 결사불교 대신 법상종과 가지산문이 새로 대두되면서 친원적 성격을 띠게 되고 국가적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왕실과 권문들에 의해 사경과 불화 제작이 크게 늘었다.
      이 시기에 활동한 體元은 신라 화엄에서부터 강조되어 왔던 관음신앙을 강조하였다. 적극적인 관음신앙 신행자였던 체원은 『華嚴經觀自在菩薩所說法門別行疏』와『白花道場發願文略解』를 편찬하여 관음신앙의 이론적 토대와 실천 사례를 해석하고 길잡이가 되도록 하였다.
      『화엄경관자재보살소설법문별행소』는 40화엄에 수록된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찾아 법문을 듣는 부분을 따로 떼어 이에 대해 징관의 해석을 제시한 다음 자신이 다시 여러 전적을 인용하여 풀이한 것이다. 체원은 이 책에서 『화엄경』의 관음을 『법화경』의 관음으로 해석하고자 하였다. 『화엄경』의 관음은 관음이 20 여종의 공포에 처한 중생이 두려움을 벗어나게 하고 不退轉에 이르게 한다는 것으로 특히 해안가 보타락가산에 관음이 상주한다는 주처 신앙에 특징이 있다. 이에 비해 『법화경』의 관음은 칠난 삼독 등 온갖 고뇌에 처한 사람들을 구제해 주고 여러 응신으로 나타나 無畏를 베푸는 현세구원적인 것이다. 체원이 이 성격이 다른 두 관음신앙을 한데 모아 강조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바라는 관음신앙이 현실구제적인 데 있음을 파악하여 나온 것이었다. 『화엄경』의 20종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과 『법화경』의 고난 구제가 상통하므로 이런 작업이 가능하였다. 나아가 체원은 그런 고난 구제의 구체적인 사례를 감응전 등에서 찾아 수록하여 실천적인 지향을 강조하였다. 체원은 이 책을 통해 고난 구제와 감응 사례를 중심으로 화엄적 관음과 법화적 관음의 융합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백화도량발원문약해』는 신라 화엄의 정초자 의상이 관음을 예념하여 지었다는 발원문으로서, 관음의 백화도량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구도적 성격의 것이었다. 체원은 이를 의상과 법장 등 화엄 초기 조사들의 전적을 인용하여 풀이하였다. 체원은 이를 통해 화엄교단이 구도적 관음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체원은 40화엄 관음법문 부분을 지송용 『관음지식품』으로 간행하고 『삼십팔분공덕소경』을 간행하여 공덕을 강조하였다. 이 시기 급증하는 사경과 불화 제작의 경향도 공덕과 왕생을 강조하는 것이며 관음은 미타에 다음가는 많은 예를 보인다.
      체원의 이와 같은 저술과 간행 작업은 상류층들의 사경 등 직접적인 공덕신앙을 지원하면서 특히 자신이 속한 화엄 교단을 중심으로 교단에서의 구도적 관음신앙의 정립과 공덕적 신앙의 일반인에 대한 이해와 확산을 통해 포괄적인 관음신앙을 전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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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세기의 고려 사회는 원의 간섭기로서 사회 전반에 변화의 기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사회 운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불교는 중앙 교단이 일반 정치 상황과 같이 원과 연계되...

      14세기의 고려 사회는 원의 간섭기로서 사회 전반에 변화의 기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사회 운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불교는 중앙 교단이 일반 정치 상황과 같이 원과 연계되어 공덕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적 경향에 젖어들었다. 이전까지 활력을 보여주던 수선사 계통의 결사불교 대신 법상종과 가지산문이 새로 대두되면서 친원적 성격을 띠게 되고 국가적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왕실과 권문들에 의해 사경과 불화 제작이 크게 늘었다.
      이 시기에 활동한 體元은 신라 화엄에서부터 강조되어 왔던 관음신앙을 강조하였다. 적극적인 관음신앙 신행자였던 체원은 『華嚴經觀自在菩薩所說法門別行疏』와『白花道場發願文略解』를 편찬하여 관음신앙의 이론적 토대와 실천 사례를 해석하고 길잡이가 되도록 하였다.
      『화엄경관자재보살소설법문별행소』는 40화엄에 수록된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찾아 법문을 듣는 부분을 따로 떼어 이에 대해 징관의 해석을 제시한 다음 자신이 다시 여러 전적을 인용하여 풀이한 것이다. 체원은 이 책에서 『화엄경』의 관음을 『법화경』의 관음으로 해석하고자 하였다. 『화엄경』의 관음은 관음이 20 여종의 공포에 처한 중생이 두려움을 벗어나게 하고 不退轉에 이르게 한다는 것으로 특히 해안가 보타락가산에 관음이 상주한다는 주처 신앙에 특징이 있다. 이에 비해 『법화경』의 관음은 칠난 삼독 등 온갖 고뇌에 처한 사람들을 구제해 주고 여러 응신으로 나타나 無畏를 베푸는 현세구원적인 것이다. 체원이 이 성격이 다른 두 관음신앙을 한데 모아 강조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바라는 관음신앙이 현실구제적인 데 있음을 파악하여 나온 것이었다. 『화엄경』의 20종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과 『법화경』의 고난 구제가 상통하므로 이런 작업이 가능하였다. 나아가 체원은 그런 고난 구제의 구체적인 사례를 감응전 등에서 찾아 수록하여 실천적인 지향을 강조하였다. 체원은 이 책을 통해 고난 구제와 감응 사례를 중심으로 화엄적 관음과 법화적 관음의 융합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백화도량발원문약해』는 신라 화엄의 정초자 의상이 관음을 예념하여 지었다는 발원문으로서, 관음의 백화도량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구도적 성격의 것이었다. 체원은 이를 의상과 법장 등 화엄 초기 조사들의 전적을 인용하여 풀이하였다. 체원은 이를 통해 화엄교단이 구도적 관음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체원은 40화엄 관음법문 부분을 지송용 『관음지식품』으로 간행하고 『삼십팔분공덕소경』을 간행하여 공덕을 강조하였다. 이 시기 급증하는 사경과 불화 제작의 경향도 공덕과 왕생을 강조하는 것이며 관음은 미타에 다음가는 많은 예를 보인다.
      체원의 이와 같은 저술과 간행 작업은 상류층들의 사경 등 직접적인 공덕신앙을 지원하면서 특히 자신이 속한 화엄 교단을 중심으로 교단에서의 구도적 관음신앙의 정립과 공덕적 신앙의 일반인에 대한 이해와 확산을 통해 포괄적인 관음신앙을 전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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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14th century, Goryeo dynasty was transparenced in the intervene of Yuan. The Buddhism which took a role of social management changed conservative. It connected with Yuan and focused on merit belief. The Suseonsa school was weakened and Beopsang school and Gajisan school were arose. They were connected with Yuan and Goryeo government.
      Chewon tried to suggest the reason and practice of practical belief, he based on Avalokitesvara belief which was maintained from Silla. With his comrade Inwon, Chewon believed actively Avalokitesvara belief. He wrote Hwaomgyeong-Gwanjajaebosalsoseolbeopmun- byeolhaengso and Baekhwadoryangbalwonmun-ryakhae. He wanted these books would be a guide of Avaloki- tesvara belief.
      Hwaomgyeong-Gwanjajaebosalsoseolbeopmun-byeolhaengso is the interpretation of separated part of Gan- davyuha(40 volumes), which contains Sudhana meet Avalokitesvara and hear his sermon. The author Che- won innoted the interpretation of Chengguan and added his own interpretation which is consisted of various books. Chewon intended to expound Avatam- saka-sutra linked with Lotus-sutra in Avalokitesvara belief. The Avalokitesvara belief of Avatamsaka-sutra is the practice of great benevolence, and give empha- sis on the fact that Avalokitesvara lives on the shore of Mt. Potalaka. That of Lotus-sutra is accomplishing people’s desires. Chewon joined these two various Avalokitesvara believes, because people want to get actual helps. The Avalokitesvara belief of Avatam- saka-sutra which shows Avalokitesvara derives people from twenty fears is similar to that of Lotus-sutra which Avalokitesvara derives three disasters and seven difficulties. So Chewon could join these two Avalokitesvara believes. Furthermore he found actual prayers for Avalokitesvara and listed them in that book. With this work, he showed that he wants to indicate practical praying for Avalokitesvara. So most of quoted books are annotations on the Gandavyuha (40volumes), and the book of responding prayers.
      Baekhwadoryangbalwonmun-ryakhae is the interpre- tation of praying letter for Avalokitesvara after he ascertained Naksan is the holy place where Avalokite- svara lives now. The letter intends to not deriving fears but wants to rebirth in Pure Land. Chewon quoted this with Uisang and Fazang, the Silla and Tang founders of Hwaom Buddhism. And he interpreted the detail of the case of practical Avalokitesvara belief.
      Chewon made these two books and did other works. The one was publishing the part of Avalokitesvara preaching in Gandavyuha-sutra(40volumes) for men’s reading, and the other one was the publishing of Samsippalbungongdeoksogyeong. He emphasized the practical praying for Avalokitesvara. In those days the writingsandpaintingsofAvalokitesvarawereincre- ased. Those Avalokitesvara works were second to Amita works. This was based on that circumstances. In those records we can find people’s praying for merit and Pure Land. This is also reflected those trends.
      The writing and publishing of Chewon helped the noble class who made merit through writing sutras. And it gave important roles through his effort for profounding the praying Avalokitesvara belief on the basement of Hwaom school. In 14th century, Goryeo dynasty must seek the new change which contains lower people’s intention. In that case, Chewon’s works were a meaningful res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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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14th century, Goryeo dynasty was transparenced in the intervene of Yuan. The Buddhism which took a role of social management changed conservative. It connected with Yuan and focused on merit belief. The Suseonsa school was weakened and Beopsang sch...

      In 14th century, Goryeo dynasty was transparenced in the intervene of Yuan. The Buddhism which took a role of social management changed conservative. It connected with Yuan and focused on merit belief. The Suseonsa school was weakened and Beopsang school and Gajisan school were arose. They were connected with Yuan and Goryeo government.
      Chewon tried to suggest the reason and practice of practical belief, he based on Avalokitesvara belief which was maintained from Silla. With his comrade Inwon, Chewon believed actively Avalokitesvara belief. He wrote Hwaomgyeong-Gwanjajaebosalsoseolbeopmun- byeolhaengso and Baekhwadoryangbalwonmun-ryakhae. He wanted these books would be a guide of Avaloki- tesvara belief.
      Hwaomgyeong-Gwanjajaebosalsoseolbeopmun-byeolhaengso is the interpretation of separated part of Gan- davyuha(40 volumes), which contains Sudhana meet Avalokitesvara and hear his sermon. The author Che- won innoted the interpretation of Chengguan and added his own interpretation which is consisted of various books. Chewon intended to expound Avatam- saka-sutra linked with Lotus-sutra in Avalokitesvara belief. The Avalokitesvara belief of Avatamsaka-sutra is the practice of great benevolence, and give empha- sis on the fact that Avalokitesvara lives on the shore of Mt. Potalaka. That of Lotus-sutra is accomplishing people’s desires. Chewon joined these two various Avalokitesvara believes, because people want to get actual helps. The Avalokitesvara belief of Avatam- saka-sutra which shows Avalokitesvara derives people from twenty fears is similar to that of Lotus-sutra which Avalokitesvara derives three disasters and seven difficulties. So Chewon could join these two Avalokitesvara believes. Furthermore he found actual prayers for Avalokitesvara and listed them in that book. With this work, he showed that he wants to indicate practical praying for Avalokitesvara. So most of quoted books are annotations on the Gandavyuha (40volumes), and the book of responding prayers.
      Baekhwadoryangbalwonmun-ryakhae is the interpre- tation of praying letter for Avalokitesvara after he ascertained Naksan is the holy place where Avalokite- svara lives now. The letter intends to not deriving fears but wants to rebirth in Pure Land. Chewon quoted this with Uisang and Fazang, the Silla and Tang founders of Hwaom Buddhism. And he interpreted the detail of the case of practical Avalokitesvara belief.
      Chewon made these two books and did other works. The one was publishing the part of Avalokitesvara preaching in Gandavyuha-sutra(40volumes) for men’s reading, and the other one was the publishing of Samsippalbungongdeoksogyeong. He emphasized the practical praying for Avalokitesvara. In those days the writingsandpaintingsofAvalokitesvarawereincre- ased. Those Avalokitesvara works were second to Amita works. This was based on that circumstances. In those records we can find people’s praying for merit and Pure Land. This is also reflected those trends.
      The writing and publishing of Chewon helped the noble class who made merit through writing sutras. And it gave important roles through his effort for profounding the praying Avalokitesvara belief on the basement of Hwaom school. In 14th century, Goryeo dynasty must seek the new change which contains lower people’s intention. In that case, Chewon’s works were a meaningful res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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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 Ⅱ. 體元과 고려 후기 불교계
      • Ⅲ. 『觀自在法門別行疏』―화엄과 법화 관음의 조화
      • Ⅳ. 『白花道場發願文略解』―신라 화엄계 관음의 전통
      • Ⅴ. 맺는말
      • Ⅰ. 머리말
      • Ⅱ. 體元과 고려 후기 불교계
      • Ⅲ. 『觀自在法門別行疏』―화엄과 법화 관음의 조화
      • Ⅳ. 『白花道場發願文略解』―신라 화엄계 관음의 전통
      • Ⅴ. 맺는말
      • 참고문헌
      •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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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정병삼, "의상 화엄사상 연구" 서울대출판부 1998

      2 박영제, "원 간섭기 초기 불교계의 변화 in: 14세기 고려의 정치와 사회" 민음사 1994

      3 권희경, "고려의 사경" 글고운 2006

      4 李萬, "高麗時代의 觀音信仰" 국대불교문화연구원 1988

      5 蔡尙植, "高麗後期佛敎史硏究" 일조각 1991

      6 趙明濟, "高麗後期 看話禪 硏究" 혜안 2004

      7 정병삼, "高麗 後期 觀音信仰" 1 : 1996

      8 蔡尙植, "體元의 著述과 華嚴思想" 동국대불교문화연구원 1982

      9 洪潤植, "韓國佛畵畵記集" 가람사연구소 1995

      10 澄觀, "華嚴經隨疏演義鈔"

      1 정병삼, "의상 화엄사상 연구" 서울대출판부 1998

      2 박영제, "원 간섭기 초기 불교계의 변화 in: 14세기 고려의 정치와 사회" 민음사 1994

      3 권희경, "고려의 사경" 글고운 2006

      4 李萬, "高麗時代의 觀音信仰" 국대불교문화연구원 1988

      5 蔡尙植, "高麗後期佛敎史硏究" 일조각 1991

      6 趙明濟, "高麗後期 看話禪 硏究" 혜안 2004

      7 정병삼, "高麗 後期 觀音信仰" 1 : 1996

      8 蔡尙植, "體元의 著述과 華嚴思想" 동국대불교문화연구원 1982

      9 洪潤植, "韓國佛畵畵記集" 가람사연구소 1995

      10 澄觀, "華嚴經隨疏演義鈔"

      11 "華嚴經觀音知識品"

      12 體元, "華嚴經觀自在菩薩所說法門別行疏"

      13 宗密, "華嚴經行願品疏鈔"

      14 澄觀, "華嚴經行願品疏"

      15 崔致遠, "華嚴經社會願文 in: 圓宗文類 권22"

      16 澄觀, "華嚴經疏"

      17 體元, "白花道場發願文略解"

      18 金煐泰, "白花道場發願文의 몇 가지 문제" 13 : 1988

      19 木村淸孝, "白花道場發願文考" 1988

      20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21 金煐泰, "均如傳 妙理圓成觀의 著者" 11 : 1988

      22 "千手千眼觀世音菩薩廣大圓滿無礙大悲心陀羅尼經"

      23 "三十八分功德疏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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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8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5-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KCI등재후보
      2015-03-19 학회명변경 영문명 : Korean Institute for uddhist Studies -> Korean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9-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8-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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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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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7 0.77 0.6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9 0.55 1.569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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