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를 국가 통일의 장애물로 여겼던 17세기 프랑스에서 위그노들은 점증하는 공권력의 탄압에 직면해야 했다. 이에 신앙의 자유를 지키고자 유럽 각지로 망명하였던 위그노들은 새로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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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신교를 국가 통일의 장애물로 여겼던 17세기 프랑스에서 위그노들은 점증하는 공권력의 탄압에 직면해야 했다. 이에 신앙의 자유를 지키고자 유럽 각지로 망명하였던 위그노들은 새로운 정...
신교를 국가 통일의 장애물로 여겼던 17세기 프랑스에서 위그노들은 점증하는 공권력의 탄압에 직면해야 했다. 이에 신앙의 자유를 지키고자 유럽 각지로 망명하였던 위그노들은 새로운 정착지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종교·가족적 유대·정치의 측면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되었다. 이삭 뒤몽 드 보스타케와 자크 퐁텐의 망명 위그노 회고록은 이 시기에 프랑스를 떠나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에 정착했던 망명 위그노들의 다양한 삶의 정체성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보스타케는 가톨릭으로 개종을 함으로써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에 큰 상처를 입었던 반면 퐁텐은 종교적 수난을 극복하고 위그노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켰다. 이 가운데 이들이 집필한 회고록은 가족적 유대를 지키고 이를 후대에 보전하고자 했던 이들의 의지를 반영한다. 한편, 망명 위그노들에게 있어 정치적 정체성도 매우 중요했다. 보스타케는 잉글랜드 국왕 윌리엄 3세에 대한 충성을 과시하면서 정착지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고자 했다. 반면 든든한 정치적 후원자가 없었던 퐁텐은 정착지 하층 토착민과의 끊임없는 갈등을 회고록에 상세히 기술하면서 선량하고 충성스러운 잉글랜드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구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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