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성리학적 사회질서의 정착과 향촌 지배세력의 대응

국문 초록 (Abstract)

이 연구는 조선조 정치사회에서 체제이념으로 수용된 성리학적 규범이 국가의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향촌사회에서 뿌리내리게 되는 과정을 향촌사회에 기반을 둔 재지 사족들의 역할을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그래서 조선 전기에 국가의 향촌 정책과 그것에 대한 향촌 사회 지배세력의 대응을 분석할 것이다. 이를 위해 당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인 조선왕조실록의 관련 기사, 사족들이 남긴 문집류나 간찰류, 각종 고문서 등의 관련 내용을 분석하여 새로운 통치규범으로 제시된 성리학적 규범원리가 어떻게 향촌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이해되었으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이 경주되었는가를 ‘정치문화의 창조과정에서의 정치사회화 기제’라는 관점에서 분석하여 조선 전기에 성리학적 규범질서가 향촌사회로 확산되어 가는 과정과 그것이 어떻게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 정착되어 하나의 정치(사회)문화로 확립되었는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조선조 정치사회에서 국가의 기본적 질서규범으로 채택된 성리학적 규범이 향촌사회에 까지 확산되고 정착되어 일상적으로 실천되기까지는 적어도 약 1세기의 시간을 필요로 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것은 물론 국가의 정책적 노력이었겠지만, 향촌사회에 기반을 두고 그 곳을 지배하고 있었던 재지 사족세력이었다. 이들은 향촌사회에 기반을 두면서 새로운 규범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국가의 정책적 시도에 대응하면서 나름대로 향촌사회를 안정화시킬 방안을 자율적으로 모색하였고, 그 과정에서 성리학적 규범을 향촌사회에 확산시키고 정착시켜 나갔다.

사실 조선조가 추구한 성리학적 질서는 ‘가(家)’의 윤리를 사회적으로 확산시켜나가는 것인데, 조선조 정치사회는 혈연적으로 연계된 가문을 중심으로 형성된 향촌사회에서 노비와 사족, 향민으로 결합되어 일종의 의제적 ‘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향촌사회에서 질서를 세운다는 것은 일종의 성리학적 규범의 확산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자기 도덕성의 외적 실현의 첫 번째 단계에 놓여 있는 ‘제가’의 실천이라는 문제와 밀접히 결합된 문제였다. 즉 성리학적 규범을 익히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한 사족에게 있어서 향촌사회에서 질서를 형성하는 문제는 즉 자기 수양된 성리학적 규범을 실천하는 문제였고, 동시에 자신들의 정치적 이상을 구현하는 문제였다. 그러므로 조선조 정치과정에서 향촌지배세력의 자율적 노력을 통한 성리학적 규범질서의 확산과정에 대한 연구는 조선조 정치사회가 채택한 정치이념인 성리학적 질서에 대한 정치사회화의 과정을 분석하는 것이며, 동시에 조선조 정치사회에서 성리학적 정치문화가 유지와 전수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의 분석이 이루어져야겠지만, 본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문제를 중심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즉 첫째 향촌자치규약의 성립과정을 관주도의 향촌질서 형성 노력과 재지 사족의 자율적 향촌질서의 형성 노력이 어떠한 관계속에서 놓여 있었고, 그 상호작용 관계와 변화과정을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분석할 것이다. 둘째 향촌사회에서 성리학적 가치규범과 질서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정치사회적 기제들이 작동하였는가를 분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