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고구려 碑의 성격, 형태 및 전개 양상 그리고 고구려에서 형성된 石碑 양식의 신라 전파 등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고구려에서 비는 廣開土太王대에 이르러 그 목적과 용도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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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Korean
高句麗 ; 廣開土太王 ; 墓上立碑 ; 紀事碑 ; 功德碑 ; 石柱碑 ; Koguryo ; King Gwanggaeto ; Myosangibbi ; Narrative Stele ; Memorial Monument ; Stele
KCI등재
학술저널
15-36(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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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고구려 碑의 성격, 형태 및 전개 양상 그리고 고구려에서 형성된 石碑 양식의 신라 전파 등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고구려에서 비는 廣開土太王대에 이르러 그 목적과 용도에 따...
이 논문은 고구려 碑의 성격, 형태 및 전개 양상 그리고 고구려에서 형성된 石碑 양식의 신라 전파 등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고구려에서 비는 廣開土太王대에 이르러 그 목적과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광개토태왕이 守墓制度의 개선 방안으로 추진한 墓上立碑는 그 주된 내용이 守墓人煙戶의 差錯을 방지하기 위한 명단을 새긴 것으로 紀事碑라 할 수 있다. 최근 발견된 집안고구려비 역시 당시 수묘제도의 개선 내용을 공시하는 紀事碑이다. 이에 비해 광개토태왕비는 입비 목적을 ‘그 공훈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한다(銘記勳績, 以示後世)’고 명확히 밝히고 있어 功德碑의 성격이 짙다.
墓上立碑의 ‘墓上’에 대해서 그동안 광개토태왕비의 규모와 위치를 직접 연결시켜 墓前 또는 墓域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集安高句麗碑의 발견으로 일단 별도의 묘상비의 존재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의 입비는 중원의 禁碑令에 반한 자주적 정책이며 그 형태에 있어서도 자연석에 가까운 石柱碑로서 고구려의 독창적인 양식이다. 이러한 自然石柱碑 양식은 忠州高句麗碑로 이어지고 고구려 분묘 양식의 변천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無文字碑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고구려의 자연석주비 양식은 신라에 전해져 신라의 석비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그간 신라 진흥왕 이후 출현하는 蓋石과 碑座를 갖춘 전형적인 板狀型碑의 연원을 중국 측에서 찾았는데 국내성 유적에서 발견된 비좌를 통해 고구려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6세기 후반 이후 신라에서 螭首와 龜趺을 갖춘 전형적인 당비 양식이 출현함으로써 고구려 계통의 석비 양식은 점차 퇴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character, form and development of Koguryo stele and the spread of the stele style made in Koguryo to Silla. Steles in Koguryo were produced in many forms depending on their purposes and uses in the period of king Gwanggaeto...
This paper examines the character, form and development of Koguryo stele and the spread of the stele style made in Koguryo to Silla.
Steles in Koguryo were produced in many forms depending on their purposes and uses in the period of king Gwanggaeto. Stone epitaph erected as a way of improving institution of guarding royal tombs by king Gwanggaeto contains the list inscribed in order to prevent a mistake of the duty of the guardian. The Koguryo stele of Jian discovered recently is also narrative monument announcing the contents of improvement of the institution of guarding the royal tombs at that time. In contrast, the King Gwanggaeto Stele states clearly that it was erected to ‘record his merits and hand down them to posterity(銘記勳績, 以示後世)’ and it has the character of memorial stele.
‘Stele’ of Myosangibbi(to erect a stele on a tomb) was understood as in front of a tomb or the boundary of a tomb by connecting the scale of the King Gwanggaeto Stele and its current location directly. But, it seems that a possibility of existence of a separate Myosangibbi should be considered by the discovery of the Goguryeo Stele of Jian.
Steles in Koguryeo were erected by independent policies against the Prohibition Order of Erecting Steles in Jungwon ad their forms were also original styles of Goguryeo as stone steles near natural stone. Such a natural stele style was succeeded to Koguryo stele in Choongju and found in various styles with the changes of tomb styles of Koguryeo through no script stele.
Natural stele of Koguryo was introduced to Silla, which influenced the stele culture of Silla. The origin of typical plate type stele equipped with covering stone and stele base appeared since king Jinheung of Silla was searched in China, but it was influenced by Koguryo through the stele base discovered in relics of domestic castle. As the typical Dangbi style with Risu and Gwibu had appeared since the late 6th century, it was known that the stele style of Koguryo origin was gradually declined.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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