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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전환기 지방 유림의 한시에 나타난 이산 체험과 가족애의 일면-고암(鼓巖) 황병중(黃炳中)을 중심으로 = An Aspect of the Diaspora Experience and Family Love in the Poetry of Traditional Intellectuals in the Local Regions During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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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9438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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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e unprecedented chaos of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traditional intellectuals sought new ways of responding. Yoo In-seok (柳麟錫) proposed three norms to respond to the confusion of the time, the “Cheobyeonsamsa” (處變三事). However, there were many intellectuals who responded to the times in their own way. Hwang Byeong-joong (黃炳中) from Gwangyang also responded to the time of chaos in this way. When his family and relatives resisted colonialism, his family had to experience the pain of separation. Afterwards, he was arrested by Japanese police, making it difficult to guarantee his safety. His hometown, which has been preserved for generations, also belonged to others. This experience was reflected in his work, and his feelings were very well revealed at the time. In particular, it described the pain of colonial rule, the sorrow of separation, and feelings toward the family community very realistically. In short, his work is meaningful in that shows the reality of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very well, depicting the pain of that era and the will to overcome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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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unprecedented chaos of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traditional intellectuals sought new ways of responding. Yoo In-seok (柳麟錫) proposed three norms to respond to the confusion of the time, the “Cheobyeonsamsa” (處變三事). H...

      In the unprecedented chaos of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traditional intellectuals sought new ways of responding. Yoo In-seok (柳麟錫) proposed three norms to respond to the confusion of the time, the “Cheobyeonsamsa” (處變三事). However, there were many intellectuals who responded to the times in their own way. Hwang Byeong-joong (黃炳中) from Gwangyang also responded to the time of chaos in this way. When his family and relatives resisted colonialism, his family had to experience the pain of separation. Afterwards, he was arrested by Japanese police, making it difficult to guarantee his safety. His hometown, which has been preserved for generations, also belonged to others. This experience was reflected in his work, and his feelings were very well revealed at the time. In particular, it described the pain of colonial rule, the sorrow of separation, and feelings toward the family community very realistically. In short, his work is meaningful in that shows the reality of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very well, depicting the pain of that era and the will to overcome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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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근대 전환기’라는 복합적인 혼란 속에서 전통 문인들은 새로운 대응방식을 모색했고, 이는 유인석(柳麟錫)이 제시한 “처변삼사”(處變三事)로 압축할 수 있다. 하지만이에 적확히 해당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 인사들도 상당했다. 전남광양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친 고암(鼓巖) 황병중(黃炳中, 1871~1935) 역시 이러한 인물이었다. 조선 말기에서 일제 말엽 직전까지 펼쳐진 그의 삶은, 고난과 시련으로 얼룩진 한국 근대사를 ‘관통’하는 생애였다. 그는 당숙과 동생의 거의로 인해 가족들삶의 기초가 송두리째 무너져 긴 시간 동생과 헤어져야 했고 친척들은 해외로 이주하였으며, 상당수의 지인들이 의병장으로 산화하거나 자결을 택했다. 이런 배경에서 그의 시는 이 모든 혼란들을 수습하며 ‘남아있는 자’ 혹은 ‘살아남은 자’의 몫을 충실히 이행해야 했던 당대 지식인의 삶과 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식민 지배의 폭력과 가족들의 이산에 따른 통한, 또 가문 공동체의 와해를 보며 이를 극복해보려는 의지까지가 선명히 피력되어 있었다. 즉 ‘강제징용·망명·이민·추방’의 예처럼 국외로 떠난자가 아닌 국내에서 전개된 가족 이산의 아픔과 이를 극복해내기 위해 분투했던 굴곡진삶의 경험이 구체적이고도 곡진히 담겨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한시 작품은 의고(擬古)적인 음풍농월이 아닌, 당대의 지성 및 민족적 과제와 동행하며 ‘호흡’하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한시’라는 공간 속에 담기지 않거나 작품 너머에 있는, 더욱 모질고 굴곡졌을 당대 지방 민초들의 삶과 내면의 한 단락까지를 가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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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전환기’라는 복합적인 혼란 속에서 전통 문인들은 새로운 대응방식을 모색했고, 이는 유인석(柳麟錫)이 제시한 “처변삼사”(處變三事)로 압축할 수 있다. 하지만이에 적확히 해당...

      ‘근대 전환기’라는 복합적인 혼란 속에서 전통 문인들은 새로운 대응방식을 모색했고, 이는 유인석(柳麟錫)이 제시한 “처변삼사”(處變三事)로 압축할 수 있다. 하지만이에 적확히 해당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 인사들도 상당했다. 전남광양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친 고암(鼓巖) 황병중(黃炳中, 1871~1935) 역시 이러한 인물이었다. 조선 말기에서 일제 말엽 직전까지 펼쳐진 그의 삶은, 고난과 시련으로 얼룩진 한국 근대사를 ‘관통’하는 생애였다. 그는 당숙과 동생의 거의로 인해 가족들삶의 기초가 송두리째 무너져 긴 시간 동생과 헤어져야 했고 친척들은 해외로 이주하였으며, 상당수의 지인들이 의병장으로 산화하거나 자결을 택했다. 이런 배경에서 그의 시는 이 모든 혼란들을 수습하며 ‘남아있는 자’ 혹은 ‘살아남은 자’의 몫을 충실히 이행해야 했던 당대 지식인의 삶과 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식민 지배의 폭력과 가족들의 이산에 따른 통한, 또 가문 공동체의 와해를 보며 이를 극복해보려는 의지까지가 선명히 피력되어 있었다. 즉 ‘강제징용·망명·이민·추방’의 예처럼 국외로 떠난자가 아닌 국내에서 전개된 가족 이산의 아픔과 이를 극복해내기 위해 분투했던 굴곡진삶의 경험이 구체적이고도 곡진히 담겨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한시 작품은 의고(擬古)적인 음풍농월이 아닌, 당대의 지성 및 민족적 과제와 동행하며 ‘호흡’하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한시’라는 공간 속에 담기지 않거나 작품 너머에 있는, 더욱 모질고 굴곡졌을 당대 지방 민초들의 삶과 내면의 한 단락까지를 가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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