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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국 조선인 고등 관료의 형성과 정체성 = The Formation of Korean Higher Civil Servants and Their Identity in Manchu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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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7636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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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논문은 만주국에서 고등 관료로 근무했던 조선인의 형성과 그들의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었다. 현재까지 각종 자료를 통해 만주국에서 고등 관료로 근무했던 조선인은 201명이 확인된다. ...

      이 논문은 만주국에서 고등 관료로 근무했던 조선인의 형성과 그들의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었다. 현재까지 각종 자료를 통해 만주국에서 고등 관료로 근무했던 조선인은 201명이 확인된다. 당시 조선인이 만주국 고등 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경로는 5가지였다. 첫째, 일본 고등문관시험 합격자의 만주국 진출, 둘째, 조선총독부에서 만주국으로의 인사 이동을 통한 진출, 셋째, 만주국 고등고시 합격을 통한 진출, 넷째, 만주국 자체에서의 승진, 다섯째, 대동학원 졸업을 통한 진출 등 5가지이다. 이 5가지 경로 가운데 현재까지 확인되는 바로는 30% 이상의 조선인이 만주국 고등고시를 통해 고위 관료로 진출했다. 대부분의 조선인 고등 관료는 일반 행정 부분에 종사했으며 사법, 교육, 경찰 분야에서도 일부가 확인된다.
      당시 젊은 조선인들의 만주국 고등 관료를 선택한 동기는 만주국이 내세운 ‘오족협화’ 등과 같은 피상적 구호에 근거해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만주국 고등 관료를 선택한 조선인들은 입신출세주의를 내면화했다고 할 수 있다. 만주국 조선인 고등 관료들의 최종 출신학교를 보면, 제국대학 대 비제국대학 비율이 2:8 정도였고, 사범학교 출신자들이 많은 것이 특색이었다.
      만주국에서 조선인 고등 관료들은 그들만의 연결을 통해 만주국에서 그들의 위상을 확보하고자 했다. 당시 조선인 관료들을 하나로 묶는 핵심 고리는 대동학원이었다. 1945년경 일본의 패전 징후가 농후해지면서 만주국 조선인 관료는, 만주국에서 잔류와 조선으로의 귀환 그리고 남과 북으로의 선택에 직면했다. 당시 대부분의 만주국 조선인 관료는 남한으로의 귀 환을 선택했고, 이후 남한에서 전문 관료로 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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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aims to explore the formation of Korean higher civil servants and their identity in Manchuko. So far, The number of Korean working as higher civil-servants in Manchuko was 201. At that time, there were four kinds of ways five Korean to be...

      This article aims to explore the formation of Korean higher civil servants and their identity in Manchuko. So far, The number of Korean working as higher civil-servants in Manchuko was 201. At that time, there were four kinds of ways five Korean to be the higher civil-servant in Manchuko.
      The first is, the pepole who passed the higher civil-servant examination in Japan are choose the higher civil servant in Manchuko. The second is, the personnel change between the The Government-General of Joseon and the Manchuko government. The third is, passing the higher civil-servant examination in Manchuko. The fourth is, the promotion in Manchuko bureaucracy and the last is, graduating from the Daedong School(大同學院).
      Among these five ways, the third was taken by more than 30% of Korean higher civil servants in order to advance to the higher-ranking bureaucracy in Manchuko. Since then, most of them were engaged in the field of general administration and the rest were in the field of justice, education and police.
      In those days, what motivated the young Koreans to be higher civil servants in Manchuko is such a superficial faith as 'the confederation of five ethnic groups(五族協和)'. And that means that the Korean higher civil servants in Manchuko internalized careerism. Indeed, the statistical data on which school they graduated from shows that the proportion of the Imperial Universitys are about 20% and especially most of them were from the college of education.
      The Korean higher civil servants have tried to acquire their own integrity in the realms of officialdom through their personal network. The critical juncture of the personal network was the Daedong School.
      As the sign of Japan's defeat was developing in 1945, the Korean higher civil servants were faced with the crossroad for the choice to remain in Manchuria or to return to Korea. The most of Korean higher civil servants have decided to return to South Korea, however, some people have chosen North Korea. Since then, they have grown to be the technocrats in both South and Nor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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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논문요약
      • Ⅰ. 서론
      • Ⅱ. 만주국 조선인 사회의 형성과 정체성
      • Ⅲ. 만주국 조선인 고등 관료의 형성
      • Ⅳ. 만주국 조선인 고위 관료의 정체성
      • 논문요약
      • Ⅰ. 서론
      • Ⅱ. 만주국 조선인 사회의 형성과 정체성
      • Ⅲ. 만주국 조선인 고등 관료의 형성
      • Ⅳ. 만주국 조선인 고위 관료의 정체성
      • Ⅴ. 결론
      • 〈참고문헌〉
      • 영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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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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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중국지역 한인 귀환과 정책(3): 동북지역" 역사공간 2004

      5 한상복, "중국 연변의 조선족: 사회의 구조와 변화" 서울대 출판부 1993

      6 프래신짓트 두아라, "주권과 순수성: 만주국과 동아시아적 근대" 나남 2008

      7 오수창, "조선후기 경상도, 평안도 지역차별의 비교" 역사문제연구소 59 (59): 309-33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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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안용식, "일제하 한국인 판임문관에 관한 연구" 연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30 :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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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 : The Association For Korean And Asian Political Thoughts -> The Association For Korean And Asian Political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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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59 0.59 0.5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6 0.41 1.83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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