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만주국에서 고등 관료로 근무했던 조선인의 형성과 그들의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었다. 현재까지 각종 자료를 통해 만주국에서 고등 관료로 근무했던 조선인은 201명이 확인된다. ...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76363223
2009
Korean
만주국 ; 고등 관료 ; 고등고시 ; 대동학원 ; 입신출세주의 ; 정체성 ; Manchuko ; Higher Civil-servant ; the Higher Civil-servant Examination ; Daedong School ; Careerism ; Identity
KCI등재후보
학술저널
213-238(26쪽)
8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이 논문은 만주국에서 고등 관료로 근무했던 조선인의 형성과 그들의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었다. 현재까지 각종 자료를 통해 만주국에서 고등 관료로 근무했던 조선인은 201명이 확인된다. ...
이 논문은 만주국에서 고등 관료로 근무했던 조선인의 형성과 그들의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었다. 현재까지 각종 자료를 통해 만주국에서 고등 관료로 근무했던 조선인은 201명이 확인된다. 당시 조선인이 만주국 고등 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경로는 5가지였다. 첫째, 일본 고등문관시험 합격자의 만주국 진출, 둘째, 조선총독부에서 만주국으로의 인사 이동을 통한 진출, 셋째, 만주국 고등고시 합격을 통한 진출, 넷째, 만주국 자체에서의 승진, 다섯째, 대동학원 졸업을 통한 진출 등 5가지이다. 이 5가지 경로 가운데 현재까지 확인되는 바로는 30% 이상의 조선인이 만주국 고등고시를 통해 고위 관료로 진출했다. 대부분의 조선인 고등 관료는 일반 행정 부분에 종사했으며 사법, 교육, 경찰 분야에서도 일부가 확인된다.
당시 젊은 조선인들의 만주국 고등 관료를 선택한 동기는 만주국이 내세운 ‘오족협화’ 등과 같은 피상적 구호에 근거해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만주국 고등 관료를 선택한 조선인들은 입신출세주의를 내면화했다고 할 수 있다. 만주국 조선인 고등 관료들의 최종 출신학교를 보면, 제국대학 대 비제국대학 비율이 2:8 정도였고, 사범학교 출신자들이 많은 것이 특색이었다.
만주국에서 조선인 고등 관료들은 그들만의 연결을 통해 만주국에서 그들의 위상을 확보하고자 했다. 당시 조선인 관료들을 하나로 묶는 핵심 고리는 대동학원이었다. 1945년경 일본의 패전 징후가 농후해지면서 만주국 조선인 관료는, 만주국에서 잔류와 조선으로의 귀환 그리고 남과 북으로의 선택에 직면했다. 당시 대부분의 만주국 조선인 관료는 남한으로의 귀 환을 선택했고, 이후 남한에서 전문 관료로 성장하게 된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aims to explore the formation of Korean higher civil servants and their identity in Manchuko. So far, The number of Korean working as higher civil-servants in Manchuko was 201. At that time, there were four kinds of ways five Korean to be...
This article aims to explore the formation of Korean higher civil servants and their identity in Manchuko. So far, The number of Korean working as higher civil-servants in Manchuko was 201. At that time, there were four kinds of ways five Korean to be the higher civil-servant in Manchuko.
The first is, the pepole who passed the higher civil-servant examination in Japan are choose the higher civil servant in Manchuko. The second is, the personnel change between the The Government-General of Joseon and the Manchuko government. The third is, passing the higher civil-servant examination in Manchuko. The fourth is, the promotion in Manchuko bureaucracy and the last is, graduating from the Daedong School(大同學院).
Among these five ways, the third was taken by more than 30% of Korean higher civil servants in order to advance to the higher-ranking bureaucracy in Manchuko. Since then, most of them were engaged in the field of general administration and the rest were in the field of justice, education and police.
In those days, what motivated the young Koreans to be higher civil servants in Manchuko is such a superficial faith as 'the confederation of five ethnic groups(五族協和)'. And that means that the Korean higher civil servants in Manchuko internalized careerism. Indeed, the statistical data on which school they graduated from shows that the proportion of the Imperial Universitys are about 20% and especially most of them were from the college of education.
The Korean higher civil servants have tried to acquire their own integrity in the realms of officialdom through their personal network. The critical juncture of the personal network was the Daedong School.
As the sign of Japan's defeat was developing in 1945, the Korean higher civil servants were faced with the crossroad for the choice to remain in Manchuria or to return to Korea. The most of Korean higher civil servants have decided to return to South Korea, however, some people have chosen North Korea. Since then, they have grown to be the technocrats in both South and North Korea.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명단"
2 이기훈, "청년, 갈 곳을 잃다: 1930년대 청년담론에 대한 연구" 역사문제연구소 76 (76): 359-386, 2006
3 김규민, "차라리 만주국 관리가 낫다 in: 8ㆍ15의 기억: 해방공간의 풍경, 40인의 역사체험" 한길사 2005
4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중국지역 한인 귀환과 정책(3): 동북지역" 역사공간 2004
5 한상복, "중국 연변의 조선족: 사회의 구조와 변화" 서울대 출판부 1993
6 프래신짓트 두아라, "주권과 순수성: 만주국과 동아시아적 근대" 나남 2008
7 오수창, "조선후기 경상도, 평안도 지역차별의 비교" 역사문제연구소 59 (59): 309-335, 2002
8 이기동, "일제하의 한국인 관리들" 신동아 1985
9 안용식, "일제하 한국인 판임문관에 관한 연구" 연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30 : 1999
10 안용식, "일제하 조선인 문관고등시험 합격자 분석" 한국국정관리학회 17 (17): 365-406, 2007
1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명단"
2 이기훈, "청년, 갈 곳을 잃다: 1930년대 청년담론에 대한 연구" 역사문제연구소 76 (76): 359-386, 2006
3 김규민, "차라리 만주국 관리가 낫다 in: 8ㆍ15의 기억: 해방공간의 풍경, 40인의 역사체험" 한길사 2005
4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중국지역 한인 귀환과 정책(3): 동북지역" 역사공간 2004
5 한상복, "중국 연변의 조선족: 사회의 구조와 변화" 서울대 출판부 1993
6 프래신짓트 두아라, "주권과 순수성: 만주국과 동아시아적 근대" 나남 2008
7 오수창, "조선후기 경상도, 평안도 지역차별의 비교" 역사문제연구소 59 (59): 309-335, 2002
8 이기동, "일제하의 한국인 관리들" 신동아 1985
9 안용식, "일제하 한국인 판임문관에 관한 연구" 연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30 : 1999
10 안용식, "일제하 조선인 문관고등시험 합격자 분석" 한국국정관리학회 17 (17): 365-406, 2007
11 장신, "일제하 조선인 고등관료의 형성과 정체성 - 고등문관시험 행정과 합격자를 중심으로 -" 한국역사연구회 63 (63): 39-68, 2007
12 정선이,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졸업생의 사회적 진출양상과 특성" 23 : 2007
13 남창룡, "일제 만주제국 출신 조선인 1203명 명단과 그 활동상"
14 조선일보사, "인물정보"
15 미야타 세스코, "식민통치의 허상과 실상" 혜안 2002
16 임성모, "식민지 조선인의‘만주국 경험’과 그 유산" 세종문화회관 2002
17 "세계일보"
18 "삼천리"
19 국회도서관, "북한인물록" 국회도서관 1979
20 國學刊行會, "반민특위재판기록3" 다락방 1993
21 이동진, "민족, 지역, 섹슈얼리티: 만주국의 조선인 ‘성매매종사자’를 중심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28 (28): 25-59, 2005
22 임정혁, "물리학자 도상록의 생애와 연구활동에 대하여 in: 한국사론 42: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의 전개" 국사편찬위원회 2005
23 "문화일보"
24 남창룡, "만주제국 조선인" 신세림 2000
25 김민철, "만주국의 관료를 꿈꾸는 조선인 대동학원 출신자들" 민족문제연구소 12 : 1996
26 한석정,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 괴뢰국의 국가효과, 1932-1936" 동아대 출판부 1999
27 "동아일보"
28 김경일, "동아시아의 민족이산과 도시: 20세기 전반 만주의 조선인" 역사비평사 2004
29 브루스 커밍스, "동북아시아 정치경제의 기원과 발전: 산업부분, 생산물주기 그리고 그 정치적 결과 in: 제3세계, 자본주의 그리고 한국" 법문사 1987
30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자료집(13): 학생독립운동 자료집" 독립유공자 사업기금운영위원회 1977
31 조기준, "나의 인생 학문의 역정" 일신사 1998
32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증언반, "끝나지 않은 여정" 대동 1996
33 국사편찬위원회, "근현대인물자료"
34 소영현, "근대 인쇄 매체와 수양론ㆍ교양론ㆍ입신출세주의 in: 1950년대 미디어와 미국표상" 깊은샘 2006
3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연구소, "격동기 지식인의 세가지 삶의 모습"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연구소 1999
36 강영훈, "강영훈 회고록" 동아일보사 2008
37 강필선, "雪華山의 메아리: 인간 강필선" 한국정경사 1972
38 이민재, "第三滄巖文集" 아카데미서적 1990
39 滿洲國治安部警務司, "第4回警察統計年報"
40 島田俊彦, "現代史資料(11): 續滿洲事變" みすず書房 1965
41 권일, "玄海灘을 사이에 두고: 日本속의 南과北" 海外僑胞問題硏究所出版部 1983
42 "滿鮮日報"
43 이훈구, "滿洲와 朝鮮人" 平壤崇實專門學校經濟硏究室 1932
44 日本政治問題調査所, "滿洲行政經濟 報, 1942" 日本政治問題調査所 1942
45 滿洲帝國政府, "滿洲建國十年史" 原書房 1969
46 滿洲帝國民政府, "滿洲帝國民政府統計 報" 1936
47 治安部警務司, "滿洲國警察史 in 完全 刻板" 在外公務員援護會 1976
48 滿洲國史編纂委員會, "滿洲國史(總論)" 滿蒙同胞援護會 1971
49 曺元煥, "滿洲一如と民族協和" 私家版 1937
50 滿洲 工協會, "滿洲 動 鑑" 嚴松堂書店 1941
51 고재필, "河南回顧錄-上-" 파란들 2003
52 "每日新報"
53 滿洲建國大學在韓同窓會, "歡喜嶺: 滿洲建國大學在韓同窓文集" 滿洲建國大學在韓同窓會 1986
54 "朝鮮"
55 최하영, "政務摠監, 韓人課長을 呼出하다" 월간 중앙
56 洪陽明, "大陸進出의 朝鮮民衆, 만주국에서 活躍하는 그 現象" 11 (11): 1939
57 滿洲國文敎部, "在滿朝鮮人敎育改善案"
58 滿鐵産業部, "在朝鮮人ノ實情" 1947
59 金璟載, "北滿山河와 人物" 삼천리 1936
60 신기석, "八十平生" 탐구당 1987
61 임성모, "‘국방국가’의 실험: 만주국과 일본파시즘" 16 : 2001
62 F. C. Jones, "Manchuria since 1931" Oxford University Press 1949
63 윤휘탁, "<만주국>의‘2等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 역사학회 169 : 2001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201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4-03-25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 |
2014-03-24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동양정치사상사 ->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 |
201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11-09-09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영문명 : The Association For Korean And Asian Political Thoughts -> The Association For Korean And Asian Political Thoughts |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59 | 0.59 | 0.56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46 | 0.41 | 1.834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