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사에서는 1920년 6월 『개벽』을 발간한 이래 1935년 3월까지 15년간 모두 9종 406호의 잡지를 간행하였다. 이 글에서는 이들 잡지의 간행 현황과 추이를 살펴보고, 각 잡지의 편집에 참여한 ...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4730135
정용서 (연세대학교)
2015
Korean
Kim Gi-Jeon ; Bak Dal-seong ; Bang Jeong-hwan ; Sin Yeong-cheol ; Yi Jeong-ho ; Cha Sang-chan ; Chae Man-sik ; Choe Yeong-ju ; 김기전 ; 박달성 ; 방정환 ; 신영철 ; 이정호 ; 차상찬 ; 채만식 ; 최영주
KCI등재
학술저널
145-186(42쪽)
11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개벽사에서는 1920년 6월 『개벽』을 발간한 이래 1935년 3월까지 15년간 모두 9종 406호의 잡지를 간행하였다. 이 글에서는 이들 잡지의 간행 현황과 추이를 살펴보고, 각 잡지의 편집에 참여한 ...
개벽사에서는 1920년 6월 『개벽』을 발간한 이래 1935년 3월까지 15년간 모두 9종 406호의 잡지를 간행하였다. 이 글에서는 이들 잡지의 간행 현황과 추이를 살펴보고, 각 잡지의 편집에 참여한 이들이 누구였는지를 1920년대를 중심으로 추적하였다.
1920년 6월 창간한 『개벽』은 처음에 김기전, 박달성, 이돈화, 차상찬 등이 중심이 되어 편집하였다. 1922년 6월 창간한 『부인』은 현희운이 편집책임을 맡다가 9월호부터 박달성이 뒤를 이었다. 『어린이』는 1923년 3월 창간호부터 방정환이 편집을 책임졌다. 방정환은 1924년 3월호부터 『어린이』와 『신여성』의 편집을 함께 담당하였다. 1925년에 들어 방정환은 『어린이』 편집에만 주력하기로 하고, 『신여성』은 다른 사람이 맡기로 하였다. 『신여성』 1925년 2월호부터 5월호까지는 신영철이 편집을 책임졌고, 8월호부터 이듬해 신년호까지는 허정숙이 맡았다. 1926년 5월호부터는 신영철이 다시 편집에 참여하였다.
1926년 11월 『별건곤』이 발행되면서 내용 중복 등을 이유로 『신여성』을 휴간하였다. 『별건곤』은 차상찬과 신영철 두 사람이 편집을 책임지고, 『어린이』는 방정환과 이정호가 그 역할을 했다. 『어린이』와 『별건곤』 2종류의 잡지만 간행된 19271928년은 개벽사의 잡지 발행이 가장 불안정했던 시기였다.
1928년 말에 개벽사에서는 소년소녀를 대상으로 한 『어린이』, 남녀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생』,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한 『별건곤』이라는 잡지 발행 체제를 갖추려고 하였다. 그 일환으로 『어린이』는 1929년 신년호부터 내용을 한층 쉽게 편집하였고, 최영주 이태준 등을 신입기자로 채용하였다. 1929년 말에는 채만식 박로아 성선희 김원주 등이 새로 입사하였다. 1930년 가을에는 『학생』을 폐간하고, 『신여성』을 다시 발간하기로 결정하였다. 『신여성』 편집은 방정환과 종래 『학생』을 편집했던 최영주를 중심으로 하고, 『별건곤』 『어린이』 담당자들이 협력하기로 하였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ebyeoksa published a total of 406 magazines of 9 varieties for 15 years, beginning with the publication of Kaebyeok in June 1920, until March 1935. This study examines the state and progress of publication rates for its magazines. Also the people wh...
Kaebyeoksa published a total of 406 magazines of 9 varieties for 15 years, beginning with the publication of Kaebyeok in June 1920, until March 1935. This study examines the state and progress of publication rates for its magazines. Also the people who participated in the editing of each magazine are studied retrospectively. The first Kaebyeok created in June 1920 was initially edited mainly by Kim Gi-Jeon, Bak Dal-seong, Yi Don-hwa, and Cha Sang-chan. Hyeon Hui-un was initially responsible for editing Bu-in first published in June 1922, and Bak Dal-Seong took over from the September issue. As for Eorini, it was edited by Bang Jeong-hwan starting with the first March publication of 1923. Bang Jeong-hwan was responsible for the editing of both Eorini and Sinyeoseong starting with the March 1924 publication. By 1925, Bang Jeong-hwan decided to focus only on the editing of Eorini, and Sinyeoseong was to be another person’s responsibility. Sin Yeong-cheol became editor for the February to May’s edition, year 1925, of Sinyeoseong, and Heo Jeong-suk took that position starting from August’s edition to the New Year’s edition the following year. Starting from the May 1926 edition, Sin Yeong-cheol again participated in the editing.
With the publication of Byeolgeongon in November 1926, Sinyeoseong’s publication was suspended due to reasons such as repetition of contents. Those who were responsible for the editing of Byeolgeongon were Cha Sang-chan and Sin Yeong-cheol and for Eorini, Bang Jeong-hwan and Yi Jeong-ho. 1927 to 1928, in which only two sorts of magazines, Eorini and Byeolgeongon, were published, were times in which Kaebyeoksa’s magazine publications were most unstable.
In the end of the year 1928, Kaebyeoksa made an effort to equip itself with a system in which Eorini targeted young boys and girls, Haksaeng targeted teenagers, and Byeolgeongon the general public. As a part of such an effort Eorini was edited to be an easier read starting from the New Year’s edition year 1929, and employed were Choe Yeong-ju and Yi Tae-jun as new reporters. In late 1929, Chae Man-sik, Bak Ro-a, Seong Seon-hui and Kim Won-ju entered the company. In fall 1930, the magazine Haksaeng’s publication stopped and it was decided Sinyeoseong will be published again. The editing of Sinyeoseong was to center Choe Yeong-ju, who had edited Haksaeng previously, and Bang Jeong-hwan. Those responsible for the editing of Byeolgeongon and Eorini were to participate.
참고문헌 (Reference)
1 차웅렬, "흘러간 개벽사의 별들(전10회)" 598~607 : 2000
2 "혜성"
3 "학생"
4 정용서, "최영주(1906-1945)의 소년운동과 출판활동" 3 : 2013
5 "천도교회월보"
6 "천도교청년회회보"
7 "제일선"
8 박현수, "잡지 미디어로서 <어린이>의 성격과 의미" 대동문화연구원 (50) : 261-296, 2005
9 "어린이"
10 "신여성"
1 차웅렬, "흘러간 개벽사의 별들(전10회)" 598~607 : 2000
2 "혜성"
3 "학생"
4 정용서, "최영주(1906-1945)의 소년운동과 출판활동" 3 : 2013
5 "천도교회월보"
6 "천도교청년회회보"
7 "제일선"
8 박현수, "잡지 미디어로서 <어린이>의 성격과 의미" 대동문화연구원 (50) : 261-296, 2005
9 "어린이"
10 "신여성"
11 "부인"
12 "별건곤"
13 정용서, "방정환과 잡지 <어린이>" 8 : 2013
14 "매일신보"
15 "동아일보"
16 유석환, "개벽사의 출판활동과 근대잡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2007
17 "개벽"
18 이상경, "婦人/新女性" 케포이북스 2009
19 이명희, "[어린이] 자매지 [학생]의 의미" 상허학회 8 : 51-69, 2002
20 차혜영, "<개벽>에 비친 식민지 조선의 얼굴" 모시는 사람들 2007
21 최수일, "<개벽> 연구" 소명출판 2008
전시기(1937~1945)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사건기록과 ‘사상’사건의 추이
일본 防衛硏究所 소장 조선 주둔 일본군 관계 사료의 구성과 성격 -‘滿洲-朝鮮’ 史料群을 중심으로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81 | 0.81 | 0.72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5 | 0.66 | 1.616 | 0.06 |